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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남재준, ‘푸에블로호 교훈’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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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남재준, ‘푸에블로호 교훈’ 잊었나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17>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과 2014년 통일 담론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8.15처럼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들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필자는 <한국생활사박물관>,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 <민음 한국사> 등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역사 오디세이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2>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3>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4>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5>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6>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7> 세종은 오로지 존경 대상? 세종을 질투하라
<8> 10월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9> 하얼빈역·궁정동…한국 근현대사 관통한 두 번의 10.26
<10> 러시아혁명의 교훈, 대중을 외면하면 진보도 없다
<11> 전태일과 박정희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12> 미국이 한국 독립 낙점? 유영익의 기묘한 이승만 띄우기
<13> 개화파의 역사적 과오, 안중근이 씻어 내다
<14> 망령 되살린 수구의 '종북' 칼춤…6.29의 저주 풀어야
<15> 억압과 저항의 '선사 시대' 넘어 '민중기원'은 온다

<16> 부활하는 일제 망령…해법은 동학농민군 계승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의 영역(英譯)을 진행할 때였다. 한국의 지리적 위치를 잘 모르는 외국인을 위해 한글 원본에는 없는 동아시아 지도를 도입부에 삽입하기로 했다. 지도에 표현되는 나라는 몽골, 중국, 남북한, 일본이었다. 그때 나는 역사적으로 우리가 한 나라였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한반도에 'Korea'라는 하나의 나라 이름만 적어 넣으려 했다. 주변의 큰 나라들이 다 단일 국가로 표시되는데 작은 반도에 두 개의 나라 이름을 적는 게 자존심 상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자 영역본 편집을 책임진 미국인 편집자가 이의를 제기했다. 서양인에게 남북한은 엄연히 다른 나라이기 때문에 단지 Korea라고만 표기하면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북한(North Korea)과 남한(South Korea)을 명기해야 한다고 완고한 주장을 폈다. 그는 서양인에게 이 책이 잘 읽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면, 현실에 존재하는 두 국가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고 Korea로 뭉뚱그리는 것은 ‘오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 책이 서양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결국 그의 뜻대로 해 주었다. 그 후 해마다 1월 23일이 돌아오면 그때의 논쟁이 떠오르곤 한다. 1968년 1월 23일은 북한의 해군 함정이 미국의 첩보선인 푸에블로호를 동해상에서 나포한 날이다. 나포 과정에서 83명의 푸에블로호 선원 중 1명이 죽고 82명은 배와 함께 포로가 되었다. 북한은 푸에블로호가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공해상에서 납치한 것이라며 선원과 배의 즉각 송환을 촉구했다. 미국의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급파되고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 한반도로 전진 배치되는 등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조성되었다. 문제는 당시 한국에서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사건이 이틀 전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해 1월 21일 북한의 특수부대가 박정희 대통령의 목숨을 노리고 청와대 부근까지 침투했다가 치열한 교전 끝에 격퇴됐다. 한국의 보복 공격과 전쟁으로 확산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마음대로 전쟁을 결심할 수도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북한은 정전 상황이고 남쪽에서 이 상황을 통제하는 것은 미군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군사령부이기 때문이다. 당장 북한을 응징하려는 한국 정부의 뜻과 달리 유엔군사령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자국의 이익과 직접 관련된 푸에블로호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2월 2일부터 한국을 제쳐두고 판문점의 중립국감독위원회 건물에서 북한과 단독 비밀 회담을 하며 사건 해결을 조율했다. 한국 정부는 시쳇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동맹국의 대통령을 노린 침략 행위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자기 나라의 배 한 척과 선원들의 신상이 걸린 문제에는 그토록 기민하게 대응하는 미국에 배신감마저 느꼈다. 엎치락뒤치락하던 푸에블로호 협상은 북한에 억류된 선원들이 첩보 행위와 영해 침범을 시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프랑스 등 서방 여론도 미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흐르고, 미국이 중재를 요청한 소련도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라며 발을 뺐다. 협상을 질질 끌던 미국은 그해 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닉슨 후보가 당선되자 태도를 바꿔 자국민의 안전을 먼저 확보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미국은 북한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영해 침범을 시인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굴욕적인’ 사과문에 길버트 우드워드 소장이 ‘미국 정부를 대표해’ 서명한 것이다. 사과의 대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다. 북한은 푸에블로호와 그곳에 실려 있던 모든 증거물을 억류한 채 82명의 선원과 시신 1구만 돌려주었다. 미국 정부는 자국민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명한 것이라면서 사과문의 효력을 부인했지만, 그 사과문은 북한과 미국이 국가 대 국가로 주고받은 공식 문서로 역사에 남아 있다.

▲ 푸에블로호 앞에서 반미 성토대회를 열고 있는 북한 주민들. ⓒ연합뉴스

푸에블로호 사건에서 드러난 한국과 미국의 시각차

이 사건이 <한국생활사박물관> 영역본의 남북한 표기 논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문제의 사과문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3조를 공식 부인한 셈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한국의 으뜸가는 동맹국인 미국이 공식적인 외교 문서에서 북한을 국가로 지칭하고 원산 앞바다를 그 국가의 ‘영해’로 인정한 것이다. 한반도에 그냥 하나의 Korea를 표기하려던 나와 North Korea, South Korea라는 두 개의 국가를 반드시 표기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그 미국인 편집자의 시각차는 꽤 거시적인 외연을 갖고 있는 셈이다. 북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이러한 시각차는 또한 매우 역사적이다. 우리는 유엔의 감시 아래 치러진 1948년 5.10 총선거를 통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미국을 비롯한 우방들이 공유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푸에블로호 사건에서 보이듯 미국의 생각은 다르다. 푸에블로호 때는 급해서 그랬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1990년대 북핵 위기를 잠재우기 위한 제네바 합의 때도 미국은 북한과 국가 대 국가로 협상을 벌였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공공연히 북한을 주권국가로 지칭하기도 했다. 혹자는 1968년 위기 해결의 주도권을 미국이 쥐고 있었던 것이 결과적으로 전쟁을 막아 다행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운명을 미국이 좌우하는 이 구조는 언제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남북한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1994년 북핵 위기 때는 우리 정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고 해 한반도가 핵전쟁의 참화에 휩싸일 뻔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또 북한이 붕괴하면 그 통치권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넘어와 바로 통일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6.25전쟁 중 유엔군이 북한 지역을 점령했을 때 그곳을 통치한 것은 유엔군사령부였다. 전시니까 그러려니 하겠지만 1950년 10월 7일 유엔 결의안은 “유엔 감독 하에 합법적인 선거에 의한 통일 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안정된 조건을 전 한반도에서 창출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김영호, <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 과정>)”면서 그 조치를 취할 권한을 유엔사에 주었다. 우리 생각과 달리 미국과 유엔은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이 1948년 당시 유엔이 감시할 수 있었던 남쪽에 국한되며, 유엔사로부터 북한을 넘겨받으려면 새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북한이 붕괴하면 곧 통일? 핵심은 정전 체제 청산이다

최근 들어 통일이 화두가 되고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지난해 송년회에서 2015년이면 남북한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되어 있을 거라고 했다는 보도가 들린다. 연초에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다. 의도했든 아니든 이러한 발언들은 북한의 붕괴가 멀지 않았고 그것이 곧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로 연결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에 따르면 정부는 통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국민 앞에서 스스로 통일을 추진할 능력이 있는지부터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제가 패망했을 때 우리 민족은 바로 자주적인 통일 독립 국가가 세워지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곧 미군이 들어와 군정을 실시했고, 미군이 나갔을 때 우리는 분단되어 있었다. 북한의 붕괴와 같은 급변 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그처럼 국민의 여망을 배신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1968년 위기가 보여주듯 민족의 운명을 유엔군사령부가 좌우할 수 있는 정전 체제를 근본적으로 청산하지 않는 한 북한의 붕괴가 곧 통일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 정부가 능력도 없으면서 그런 환상에 기대어 국민을 호도한다면 국민은 그 정부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만으로도 분명해졌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통일 추진의 능력을 가질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북한의 붕괴처럼 전쟁이나 전쟁에 준하는 급변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막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주역을 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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