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사회/계급 문제에 관심 없는데요"라고 말할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착각하는 사실 중 하나는, "나는 '그것'에 대해 관심 없다"라고 강변하는 그 순간의 태도가 또한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하물며 이런 태도가 소위 '공인', 즉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문화예술인일 경우에는 더 한층 큰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 사람이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밝히든, 그런 것에는 관심 없다고 공언하든 그 발언의 핵심은 그 공인의 창작 활동을 해석하는 중요한 열쇳말이 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토마스 만의 경우도 그랬다. 토마스 만은 친형이자 독일문학계의 또 다른 중요한 작가인 하인리히 만의 활발한 정치적 활동을 비난하며, 그 자신은 예술적 자아의 성장과 고뇌에만 집중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했다. 하지만 제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겪으면서 그는 달라졌다.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거대한 운명으로서 역사와 정치적 변화의 소용돌이를 받아들였고, 어떤 재앙과 난관 속에서도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걸작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그는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난 2월 26일 저녁 숭실대학교 형남공학관에서 열린 '인문학의 생각읽기' 시리즈 출간 기념 강연 세 번째 시간으로 토마스 만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친 이 위대한 작가의 지적 여정은, 현재 한국 사회의 격변 속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고찰할 수 있는 지점을 여럿 제기했다. 강연은 <토마스 만의 생각을 읽자>(윤순식 글, 박지훈 만화, 김영사on 펴냄)의 저자 윤순식 교수(덕성여자대학교 교양학부)가 맡았다.
'인문학의 생각읽기'는 앨빈 토플러를 포함해 노암 촘스키, 토마스 만 편이 출간되었고 향후 피터 드러커, 제레미 리프킨 등으로 이어지는 인문학 해설서 시리즈로,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 문명의 정신사에 큰 영향을 미친 현대 명사들의 저작을 중심으로 그 생애와 사상을 다룬다. 출판사 김영사on과 <프레시안>, 숭실대학교 교육개발센터는 본 시리즈와 함께 기획된 5회의 특별 강연을 진행 중이며, 그 주요 내용을 간추려 <프레시안> 지면에 싣는다.
한국에서 토마스 만이라는 작가는 별로 유명하지 않습니다. 오래 전 작가들이라 하면 괴테,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정도는 다들 아시겠지만, 토마스 만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라 하더라도 완독한 이들이 거의 없지요. 그래도 이번에 김영사에서 출간된 <토마스 만의 생각을 읽자>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친근하게 그의 전반적인 작품 세계를 설명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같은 이원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 1901년 발표된 그의 첫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과 1903년의 중편소설 <토니오 크뢰거>입니다. 먼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은 토마스 만 자신의 가족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이면서, 19세기 말 독일 시민계급의 이상과 현실을 반영한 '세계의 거울'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부덴브로크 가문의 4대에 걸친 몰락을 그리고 있는데요, 먼저 1, 2대 사람들은 건실하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을 거둡니다. 그 절정은 3대의 주인공 토마스 부덴브로크가 뤼벡의 시의원으로 선출되는 것에 이르지만, 4대에 이르러 쇠퇴에 접어듭니다. 즉 토마스의 유약한 어린 아들 하노가 음악에 몰두하며 건강을 해치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죠. 대단히 유구한 역사를 가진 명문가가 19세기 말의 데카당스한 분위기에 휘말리며 몰락하지만, 반드시 끝이라는 의미보다는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절망적인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은 500만 부 이상이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토마스 만은 1929년 이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토마스 만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 아니라 <마의 산>으로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스러워했고, 또 소설의 실질적인 배경인 뤼벡의 시민들 역시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의 부제가 '한 가문의 몰락'이라고 한 점에 크게 분개하며 토마스 만이 도시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면서 "자신의 둥지를 더럽힌 한 마리 슬픈 새"라고 빈정거리기도 했습니다.
한편 토마스 만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토니오 크뢰거>는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의 마지막 주인공이었던 유약한 하노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썼을 법한, 일종의 속편격인 작품입니다. 토마스 만 버전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라고 평하는 이들도 많았지요. 시와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소년 토니오 크뢰거는 작가로 성장하지만, 건강한 시민들의 평범한 삶에 끊임없는 열등감을 느낍니다. 그는 시민성과 예술성이라는 대립 명제 사이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죠. 두 세계 사이에서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는, "길 잃은 한 시민의 양극적 고뇌"를 그린 작품이에요.
<토니오 크뢰거>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양극성의 문제는, 토마스 만의 작품 세계를 압축하는 '아이러니'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보통 문학에서의 아이러니는 '표현된 말과 다른 의미를 뜻하면서 또 조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토마스 만의 경우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립'이자 '사물의 상반되는 두 측면을 다룰 때 어느 한쪽만 치우치지 않음으로써 양면을 모두 볼 수 있게 해 주는 서술'을 뜻합니다. 삶의 총체성을 중요시하는 독일 문학계의 전통을 이어받은 토마스 만의 중요한 서술 기법입니다.
하지만 1922년경부터 토마스 만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에세이 '독일 공화국에 대하여'에서부터 나치를 비난하고 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시작했고, 1924년 <마의 산>을 발표하면서 결정적인 태도 변화를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마의 산>을 처음 구상했던 1913년 무렵부터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 토마스 만의 심경에 큰 변화가 일어난 거지요. 그는 이 장대한 장편소설 속에 여전히 삶과 죽음, 시민성과 예술성의 대립을 다루고 있지만 그보다 더 전후 유럽 문제를 심층적으로 바라보면서, 현실에 보다 가깝게 접근합니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핵심은, "인간은 선과 사랑을 위해 결코 죽음에 자기 사고의 지배권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입니다. 저 문장만 이탤릭체로 표기되어 있을 정도로, 잔인한 현실 앞에 이상을 저버리지 말자고 힘주어 주장합니다. 토마스 만은 1930년대 프린스턴 대학교 학생들에게 <마의 산>을 소개하면서 "나는 저 문장을 주제라고 생각하며 썼지만, 여러분은 작가 자신이 최고의 해설자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어요. (웃음)
<요셉과 그 형제들>은 미국에서의 암울한 망명 생활에 대한 개인적 소회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아이러니와 유머가 가득한 작품이라는 점도 특이합니다. 이전까지의 아이러니 기법보다 오히려 더 한 차원 높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그는 1953년 어느 방송 좌담회에서 "아이러니보다는 유머가 자아내는 예술적 효과를 더 높이 평가한다"라고 자평한 바 있죠. 그 전까지는 양극 사이에서 수평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거기서 빚어지는 갈등과 슬픔을 응시했지만, 유머는 쾌활한 유희를 구사하며 양 극단을 초월한 경지에서 내려다보는 태도를 뜻합니다.
1947년, 토마스 만이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소설인 <파우스트 박사>가 출간됩니다. 독일의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를 다룬 이 작품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이자 유럽을 파국으로 몰고 간 파시즘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소설입니다. 지식과 재능의 한계를 깨닫고 악마와 계약한 레버퀸을 통해 히틀러라는 인물을 우회적으로 암시하는 이 소설은, 예술을 사랑하는 독일인 사이에서 어떻게 이런 악마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를 질문하지요. 그는 독일인이 저지른 엄청난 죄를 용서해달라는 절절한 고백을 합니다. 토마스 만은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나 역시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까지 언급한 바 있어요. 다만 이 소설 속 현대 음악 기법 중 쇤베르크의 12음 이론을 차용했는데, 이에 대해 쇤베르크가 표절 논쟁을 제기하며 분노하기도 했어요. 둘은 결국 화해하지 못했습니다.
독일에선 토마스 만을 '작가'가 아니라 '시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이야기꾼으로서의 소설가 경지를 넘어선 사람이라는 존경의 표현이죠. 독일문학의 최고 경지인 괴테에 버금가는 작가로서 칭송받는 존재예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토마스 만만큼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공격의 대상이 된 작가도 없습니다. 그는 돈을 밝혔고 자기중심적이며 독선적이었고, 예민하기로는 프리마돈나 같았고 거만하기로는 테너가수 같았다고 합니다.
현대 소설, 하면 당연히 제임스 조이스나 프란츠 카프카의 이름을 떠올리게 됩니다. 토마스 만은 그 같은 현대 소설이 나오기 직전의 전통적인 세계소설을 극한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이후 현대 소설이 나올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세계성은 바로 거기에 존재합니다. 한국에도 그의 대표작들이 많이 번역되어 있으니 여러분께서 이번 기회를 통해 토마스 만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그의 소설을 읽어보겠다는 결심까지 이르신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2회 남은 본 시리즈 강연의 신청은 계속 받고 있습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 및 프레시앙(후원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강연이며 성함과 연락처, 동반 인원을 적어 담당자 이메일([email protected])로 보내주십시오.시간 : 3월 12일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장소 : 숭실대학교 형남공학관 115호 ()남은 강연 스케줄 :4강 3월5일 수요일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5강 3월12일 수요일 '우리 삶에서 인문학적 소통이 왜 필요한가' 강신주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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