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역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녹산노동자 '희망찾기', 반월시화공단노동자 권리찾기 모임 '월담', 성서공단 노동조합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녹산공단, 반월시화공단, 성서공단의 네 개 공단에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3717명 노동자의 임금 실태와 임금 요구안을 조사했다. 이 조사를 통해서 무려 42.9%의 공단 노동자가 저임금을 받는다는 사실과 낮은 시간당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해야 생활할 수 있는 현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노동자 요구에 근거하여 임금 인상 요구안을 마련하고 한국경영자총협회에 요구안을 전달하였다. 공단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안의 의미, 그리고 왜 공단 노동자들이 저임금일 수밖에 없는지, 대안은 무엇인지를 함께 이야기하고자 <프레시안>과 함께 5회에 걸쳐 기획 연재를 진행한다. <편집자>
한 달 180만 원! 공단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저 광고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임금이 너무 낮다? 그렇다. 인상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이번 임금 요구안 조사는 낮은 임금과 인상되어야 할 임금 사이에서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저임금'에 갇힌 당신, 바로 그것이 차별이다
이번 조사에서 주 53시간 이상을 일한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전체의 33.9%였다. 세 명 중 한 명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시간 이상을 일한다. 당연히 저임금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에게는 '시간이 금'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일할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 더 나은 시급보다 잔업 특근이 더 많은 사업장이 좋은 사업장이 된다. ‘더 나은 시급’의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은 시급’의 가능성은 차별에 갇혀 있다. 여성, 고졸 이하, 청년 및 고령 노동자, 단순․생산직, 비정규직 노동자 중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특히 10~20대의 경우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53%에 이른다. 공단에 들어올 때부터 저임금에 갇히는 것이다.
일을 구하기 위해 공단을 찾아가면 파견 업체가 줄을 지어 서 있다. 한 달에 얼마, 내일부터 일할 수 있어요? 바로 연결된다. 일이 힘들어 며칠 있다가 그만둘 수도 있다. 요령껏 일을 익혀 몇 달을 일할 수도 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 달리 항의할 방법도 없이 그만둬야 한다. 그만두기 전이나 다시 일을 구하거나 임금 액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업종, 사업장 규모, 성별에 따라 임금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획기적으로 다른 일을 구하지 못하는 한, 내가 받을 수 있는 임금이 어느 만큼인지는 몸에 배었다.
이번 조사에서 두드러진 점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임금이 낮을수록 먹고살기 어렵고 그래서 더 높은 임금을 기대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받는 임금이 얼마인지에 따라 희망 임금과 현재 임금의 격차인 인상 필요액이 차근차근 높아진다.
임금 수준은 삶의 수준을 제한한다.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옷을 입으며, 어떤 시간을 보낼지, 현실에서는 소득 규모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역으로 말해, 임금 수준은 희망 수준을 제한한다. 얼마를 더 받고 싶은지 말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임금이 인정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저임금이 ‘네가 받을 만한 돈’을 규정해왔고, ‘그만큼의 돈을 받을 만한 너’를 규정해왔다.
최저임금에 붙들린 희망, 그만큼 절박한 기대
‘그만큼의 돈’은 대체로 최저임금 수준이다. 공단 노동자들의 희망임금과 희망 최저임금 사이의 격차는 기본급에 대한 감각과도 맞물려 있다. 기본급은 적당한 수준의 시간 동안 일하고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급여다. 적당한 수준을 이미 한참 넘어버린 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에는 추가 수당의 비중이 작지 않다. 기본급이 획기적으로 오르기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자신의 몸을 더 혹사해 추가 노동을 하는 방식으로 희망임금에 대한 기대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더 많이 일해 더 많이 받는 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은 너무 야속하다. 내 몸을 바치는 절망의 대가일 뿐이니.
그런데 임금 수준이 낮아 희망임금도 적은 노동자들에게도 희망 최저임금이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선이 되고 있음도 드러났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 인상 필요액 격차는 20만 원에 가깝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는 10만 원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다양한 분류에 따라 보이는 희망임금 수준의 차이에 비해 희망 최저임금 수준의 차이는 크지 않다. 간단히 말하면,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가 절박하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는 희망임금보다 삶의 필요를 반영하고 있다.
게다가 공단에 흔한 방식인 포괄임금제는 더욱 최저임금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포괄임금제는 잔업, 특근이 많은 공단에서 통상임금 논란이 먼 이야기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달 몇 시간을 일하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한 달에 얼마를 줄 수 있는지가 결정되면 몇 시간 일을 시킬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포괄임금을 거꾸로 계산해 기본급과 연장근로수당의 견적을 뽑아주는 것이 많은 노무사의 업무 중 하나다. 한 달에 140만 원을 줘도 위법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 달에 200만 원을 줘도 불법인 경우가 있다. 꼼꼼한 노동자가 아니라면 따져보기 어렵다. 제대로 받고 있는지, 더 받아야 하는데 못 받고 있는지 따져보지 못하더라도, 내가 더 받으려면 최저임금이 올라야 한다는 감각은 본능적이다.
희망은 풀려나야 한다
임금이 얼마든 삶은 이어진다. 주어진 조건에서 살아가는 것을 노동자들의 체념과 무기력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 안에서도 다른 삶을 꿈꾸기에 장시간 노동을 감수하기도 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기대하기도 한다. 다만 선택지가 너무나 적다. 자신의 몸을 혹사하는 것, 일터에서 날마다 보는 동료들에게 너무 많은 정을 주지 않는 것, 비인격적 대우나 차별을 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 차라리 내가 너를 무시하고 말겠다며 넘어가는 것, 이런 것에 선택지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무안하다. 지금 한국사회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제시하는 선택지가 이것이다.
조건을 바꿔야 한다. 더 나은 삶, 더 사람다운 삶을 꿈꾸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과 전략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그중 하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모여서 내가 받아야 할 만큼 내놓으라는 요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이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의 현재 평균 임금은 10만 원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성별, 연령 등에 비해 임금 격차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희망 최저임금의 격차도 크지 않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의 희망임금은 없는 사업장보다 25만 원가량 높다. 사소하지 않은 힌트다. 필요한 만큼, 받아야 할 만큼 함께 요구할 수 있다는 감각이 있는 노동자들은 희망을 더 품을 수 있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단체협상도 할 수 있고 취업규칙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조합이라는 제도를 통해 만들어지는 권한이 아니다. 서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과 희망을 나누는 과정은 다른 전략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필요조건이다.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노동조합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있어서 노동자들이 이해관계를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희망은 이때서야 풀려날 수 있다.
정부와 사용자 단체가 책임지라고 함께 외치자
노동자 수가 300인 미만인 중소 사업장에 저임금의 모순이 집중되고 있다. 법정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도 22.7%에 이르고 있다. 단지 고용 인원이 적은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누군가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하고 법의 보호로부터도 배제되는 현실은 부당하다. 그동안 정부와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 단체들은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에 대해 중소 영세 사업장의 어려움을 강변해왔다. 그 어려움은 노동자가 짊어져야 할 몫이 아니라 정부와 사용자 단체의 몫이다.
정부와 사용자 단체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이 모여서 함께 사람다운 삶을 도모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단의 조건은 더욱 녹록지 않다. 해고 제한도 없고 노동시간 제한, 추가수당 지급 의무도 없는 5인 미만 사업장들, 취업규칙을 작성하거나 비치하지 않아도 되는 10인 미만 사업장들, 이런저런 법에 따른 조건을 만족하면서 최저임금과 최장근로시간을 유지하는 100인 미만 사업장들. 고용 인원이 몇 명이라는 기준이 무색하게 불법 파견이 횡행하고, 소사장제 등으로 도급화를 진행해 하청의 연쇄 고리를 무한정 늘어뜨리는 공단. 지금의 어려움을 만들어내는 조건들을 조금씩 비틀고 틈을 내는 시도가 조직 이후로 미뤄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임금요구안 조사는 아주 작은 시작이다. 노동자들이 이 조사에 자신의 희망을 모두 걸었을 리는 만무하다. 다만 말이라도 한 번 해본 것이다. 희미하지만 또렷하게, 무심한 듯하지만 삶의 무게를 담아. 이미 익숙해져 버린 차별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삶의 희망을 담은 조금 더 강한 목소리들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은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선택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몇 가지 선택지 안에 누군가의 삶과 꿈을 가두고 있는 것이 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책임을 정부와 사용자 단체에 요구하는 것은 첫 발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저임금 공단의 오늘]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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