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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명이 또 '괴물'에게 먹혔습니다!

[죽음의 먼지, 대한민국을 덮치다 ②]

(☞관련 기사 : ① 미세 먼지, '괴물'이 실체를 드러내다)

이 연재를 유심히 보는 독자라면 흔히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리는 석면의 위험을 들어본 적이 있겠죠. 사실 석면은 그 정체가 확실히 밝혀진 미세 먼지의 한 종류입니다. 길이 10마이크로미터(10의 –6미터) 이하의 바늘처럼 생긴 석면 먼지가 공기 중을 돌아다니다 우리 몸속의 폐로 들어와 치명적인 폐 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석면에 붙은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명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석면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 속의 엽기적인 살인마처럼 살인 현장에 자신의 표식을 확실하게 남기기 때문이죠. 석면 때문에 망가진 폐의 대부분은 증상('석면폐'나 '악성 중피종'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명은 석면이 아니라 미세 먼지에 붙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세 먼지야말로 자신이 어떻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지 좀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미세 먼지가 과학자와 보건·환경 당국의 눈길에 포착된 것도 바로 이런 사정 탓입니다.

ⓒ프레시안(손문상)

살인마, 꼬리가 잡히다

1993년 12월 9일, 하버드 대학 연구 팀이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을 논문을 한 편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 팀은 1974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 6개 도시에 살고 있는 25세에서 74세의 주민 8111명의 건강 상태를 추적 조사했습니다. 대기오염과 건강 상태와의 관계를 확인하려는 작업이었죠.

20년 가까운 추적 기간 동안 애초 자원했던 8111명 중에서 1430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연구 팀은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했죠. 초미세 먼지(PM2.5)의 오염도가 낮은 도시부터 높은 도시까지의 사망률이 거의 직선을 그리면서 높아졌습니다. PM2.5와 사망률 사이의 극적인 관계가 드러난 것입니다. 은밀히 희생자를 찾아다니던 살인마의 꼬리가 드디어 잡혔죠.

이 하버드 대학 연구 팀의 추적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습니다. 1974년부터 2009년까지 3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애초 8111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6개 도시의 초미세 먼지(PM2.5)를 비롯한 대기오염 상황도 개선되었죠. 물론 이 과정에서 살인마의 실체도 좀 더 뚜렷해졌습니다. 2012년 3월 28일 논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초미세 먼지(PM2.5)의 농도가 1세제곱미터당 10마이크로그램 증가하면 전체 사망률은 14% 증가한다. 특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 질환의 사망률은 26% 증가하고, 폐암 사망률은 37% 증가한다."

이 결론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생소한 단위부터 알아보죠. 1세제곱미터는 가로 세로 높이 1미터입니다. 그러니까 1세제곱미터 당 10마이크로그램은 가로 세로 높이 1미터가 되는 공간에 10마이크로그램의 초미세 먼지가 있다는 얘기죠. 그럼, 10마이크로그램은 어느 정도 양일까요? 10마이크로그램은 일반적으로 쓰는 티스푼의 50만분의 1 정도 되는 양입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얼른 감이 안 옵니다. 최근 서울 시내를 비롯한 전국의 날씨가 꽤 청명했죠? 예를 들어, 지난 4월 4일 서울시의 초미세 먼지(PM2.5)의 농도가 1세제곱미터 당 8마이크로그램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공기가 좀 안 좋다 여겨지는 날이면 서울시의 초미세 먼지(PM2.5)의 농도가 1세제곱미터당 20마이크로그램 정도로 올라갑니다.

이제 감이 오시죠? 청명한 날의 공기가 탁하다 싶은 공기로 바뀔 때가 바로 1세제곱미터당 10마이크로그램의 초미세 먼지가 늘어나는 상황이죠. 다시 논문의 결론을 보면 "사망률 14%, 심혈관 질환 사망률 26%, 폐암 사망률 37%"가 눈에 띕니다. 생각보다 너무 큰 숫자죠?

이 숫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서울시의 25세 이상 연간 사망자 수는 약 4만 명 수준입니다. 만약 서울시의 초미세 먼지가 지금보다 더 나빠져 1세제곱미터당 10마이크로그램 정도 늘었습니다. 이런 상태대로 서울 시민이 30년 정도를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이 그대로라면) 사망자 숫자는 약 4만5600명으로 늘어납니다.

초미세 먼지 때문에 5600명이 추가로 더 사망하는 셈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어쩌면, 그는 살 수 있었다!

'30년이라고? 그렇게 긴 시간이라면….' 여기까지 읽고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안심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1993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미세 먼지의 위험을 따지는 연구가 쏟아졌습니다. 특히 과학자들은 수년에서 수십 년의 오랜 기간이 아닌 매일 매일의 미세 먼지 농도 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정도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특정 도시에서 미세 먼지가 날마다 얼마나 증가하고 감소하는지 기록한 다음에 그날 도시의 사망률이나 질병 발생의 변화도 살폈습니다.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요인을 가능한 한 다 거르고 나서도, 초미세 먼지의 변화와 사망률 혹은 폐암, 심혈관 질환 등의 발생 건수가 같이 오르내린다면 양자 사이의 관계를 연결할 수 있겠죠.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연구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한 가지 예를 살펴보죠. 환경부 산하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매일 매일의 서울의 초미세 먼지(PM2.5)의 농도 변화와 그 날 그 날 사망자 수의 증감을 분석했습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초미세 먼지가 1세제곱미터당 10마이크로그램 증가하면 사망자 수가 0.95% 증가했습니다.

서울의 하루 평균 사망자 수는 115명입니다. 만약 초미세 먼지의 농도를 10마이크로그램 줄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망자 수를 0.95% 줄일 수 있으니, 하루에 1명 이상(약 1.1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셈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초미세 먼지 때문에 공기가 조금만 깨끗했다면 살 수 있었던 서울 시민 1명이 매일 매일 목숨을 잃었던 것이죠.

지능적인 살인마, 희생자를 고르다

초미세 먼지의 위험을 다룬 수많은 연구 결과를 여기서 다 살펴볼 필요는 없겠죠. 앞에서 살펴본 것만으로도 초미세 먼지가 우리 눈앞에 닥친 위험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기 환경을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제일 걱정되는 대기오염 물질이 초미세 먼지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으니까요. 그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초미세 먼지의 위험을 살핀 많은 연구 결과를 종합해 봤을 때, 둘 사이에는 뚜렷한 인과 관계가 있습니다. 초미세 먼지를 짧은 시간 흡입하든, 오랜 시간 흡입하든 모든 종류의 사망률이 높아집니다. 특히 심근 경색이나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 질환, 폐암과 같은 호흡기 질환에 의한 사망률과의 인과 관계 역시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새삼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살인마는 사람을 차별합니다. 여러 연구는 어린아이, 어르신, 임신부 등 노약자가 미세 먼지를 흡입했을 때 특히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초미세 먼지에 노출된 산모가 저체중아를 출산한다든지, 영아 사망률을 높인다든지, 65세 이상 노인의 심혈관 질환 사망률이 특별히 더 높다든지….

당연합니다. 초미세 먼지는 지능적인 살인마입니다. 어제까지 건강하던 사람이 미세 먼지 때문에 갑자기 병에 걸려서 죽는 일은 없습니다. 미세 먼지는 애초 건강에 문제가 있는 약자를 손쉬운 희생양으로 고릅니다. 어린아이, 어르신, 임신부 등의 노약자나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만성 질환자가 바로 그들이죠.

바로 다음 연재에서는 이 대목만 특별히 한 번 더 살피겠습니다. 사실 세 살배기 아이를 둔 아빠로서 개인적으로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 미세 먼지 때문에 '아픈 아이'에서 '아픈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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