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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마잉주 이벤트, 왜 성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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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마잉주 이벤트, 왜 성공했나? [양갑용의 중국 정치 속살 읽기] 만남 자체로 역사가 된 시진핑-마잉주 회담
지난 주 토요일(7일) 싱가포르에서 분단 후 66년 만에 중국과 타이완의 최고위급 정상이 만났다. 중국은 이를 '시마회(習馬會)'라 부르고 타이완에서는 '마시회(馬習會)'라 불렀다. '회담'이라는 명칭은 사용되지 않았으며 '정상'이라는 표현 또한 비켜갔다. 협정문에 서명하거나 공동 성명이 발표된 것도 아니고 만남 직후 공동 기자 회견도 없었다.

그럼에도 중국과 타이완 매체는 만남 자체에 높은 평가와 함께 후한 점수를 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국과 타이완의 정상이 만난 것은 신중국 건립 이후 이번이 처음이지만 공산당과 국민당의 만남이나 양안 관계(중국과 타이완 관계) 실무를 담당하는 부문 간의 공식 및 비공식 만남은 적지 않았다.

대륙을 지배하는 공산당과 타이완을 통치하는 국민당은 이미 20세기 초반 군벌과 일본 제국주의를 상대로 두 차례 국공 합작(國共合作, 국민당과 공산당의 협력)의 경험을 갖고 있다. 중국과 타이완으로 갈라 선 이후에는 국제 냉전 질서의 영향으로 상호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나 중국이 개혁 개방을 시작하면서 양안 관계는 상호 필요에 의해 급속하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경제 발전에 자본이 필요했고, 타이완은 노동력과 시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양안 간 경제적 상호 의존의 심화는 안정된 정치 관계 회복을 필요로 했고 그 결과 중국과 타이완은 공식, 비공식 접촉면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1993년 4월 27일 양안은 반관 반민 대화 채널을 통해 당시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兩岸關系協會, 해협회)의 왕다오한(汪道涵)과 타이완의 해협교류기금회(海峽交流基金會, 해기회) 구전푸(辜振甫)가 싱가포르에서 만났다.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당시 '왕구 회담(汪辜會談)'은 1949년 이후 중국과 타이완 간 첫 공식 회담으로 기록되었다.

2005년 4월 29일에는 당시 국민당 주석이던 롄잔(連戰)이 중국을 방문하여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를 만난 적도 있다. 당시 제3차 국공 합작이라는 용어가 회자되었으며 당시 공산당과 국민당의 만남은 '얼음을 깨는 여정(破冰之旅)'으로 묘사되었다. 이번 시진핑과 마잉주의 만남 또한 이러한 과거 양안 교류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톱다운 방식 아닌 보텀업 방식 위주의 양안 교류

중국과 대만은 이미 경제적으로 매우 밀접한 협력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 간 공식 교류 외에 당 대 당 교류, 민간 교류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마잉주의 모두 발언에 따르면 양안 간에는 지난 7년 동안 23개 항목에 이르는 합의서를 교환했으며 4만여 명의 학생이 상호 교류하고 있고 매년 800만 명의 여행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상호 교역 또한 1700여 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양안을 둘러싼 제반 여건이 이미 성숙한 단계에서 이루어진 이번 양안 정상의 만남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양안 교류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 아니라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양안 교류에서 톱다운 방식은 지난 1992년에 양안이 합의한 이른바 '하나의 중국' 원칙이 있을 뿐이다. 시진핑과 마잉주의 이번 만남은 바로 이러한 원칙을 재확인하는 수준의 정치적 퍼포먼스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이 일관되게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양안이 합의 했지만, 각자 그 해석은 달리한다는 점에서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하나의 중국'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이견이 존재하는 부분은 미뤄두자"는 의미의 중국어 표현인 '각치쟁의(擱置爭議)'로 여지를 남겨 두었다.

따라서 '하나의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의미하는 중국인지, 아니면 중화민국을 의미하는 중국인지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유지하게 한 것이다. "각자 입장에 따라 하나의 중국을 해석한다"는 이른바 '일중각표(一中各表)'로 봉합된 '92 공식(九二共識)'을 이번 기회에 시진핑이 더욱 공고히 하고 심화하려는 모습에 큰 의미를 둘 수 있겠다.

시진핑은 '두개의 중국(兩個中國)'이나 '하나의 중국, 하나의 타이완(一中一台)'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진핑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면서 명시적으로 '일중각표(一中各表)'나 '각치쟁의(擱置爭議)'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향후 양안 관계 협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국제 관계에서 중국과 대만 사이에 힘의 비대칭성이 날로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대등한 양안 관계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는 점도 이번 회의에서 주목할 대목이다. 양안 정상은 '운명 공동체(命運共同體)', '염황(炎黃)의 자손' 등으로 중국과 타이완이 모두 한 가족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타이완에게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와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IIB)' 참여를 환영한다는 워딩(wording)은 양안 관계가 대등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시진핑과 마잉주의 만남이 양안 간 대등한 관계의 만남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중국을 둘러싼 주변 환경과 중국의 국제적 지위가 타이완에 비해서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타이완의 전략적 공간은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이는 양안 관계가 비대칭으로 구조화되어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어떤 합의도 하지 않았지만 성공한 정치 이벤트

따라서 시진핑과 마잉주의 이번 만남은 66년 만에 양 정상 간 첫 만남이라는 상징적인 의미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지나치게 단순하게 말하면 단지 포토라인에 함께 섰을 뿐이다. 물론 양안 간 대륙위원회와 국무원타이완판공실 최고 책임자 간 핫라인 개설, 양안 교류 협력 심화, 적대 상태의 종식, 양안 문화 교류 확대 등 여러 사안이 논의되었으나 모두 선언적 의미일 뿐 합의문이나 공동 성명에 담기지 않았다. 정상 간 만남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합의해서 상호 실천하기로 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

그럼에도 퇴임을 6개월여 남긴 마잉주에게는 시진핑과의 만남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번 만남이 내년 1월 타이완 총통 선거와 입법원 의원 선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대체적인 논평에도 불구하고, 6개월 임기를 남긴 총통과 7년의 임기를 남긴 총서기의 만남 그 자체는 이미 정치적이다. 따라서 만남 자체가 역사적이라는 것은 일종의 레토릭일 뿐이다.

이번 만남이 매우 정치적이라는 말은 용어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시진핑은 유독 민족 '부흥(復興)'을 강조했고, 마잉주는 유독 문화 '진흥(振興)'을 강조했다. '부흥'이란 용어의 선택과 '진흥'이라는 용어 선택 자체에 이미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런 정치적 의미는 만찬 참석자 면면에서도 읽을 수 있다. 양안 정상을 포함하여 쌍방이 각각 7명씩 비공개 만찬에 참석했는데, 타이완 측에서는 타이완 총통부 비서장 정용취안(曾永權), 국가안보회의 비서장 가오화주(高華柱), 총통부 부비서장 샤오쉬천(蕭旭岑), 대륙위원회 주임 위원 샤리옌(夏立言), 국가안보회의 자문위원 츄쿤쉬안(邱坤玄), 대륙위원회 부주임위원 우메이홍(吳美紅) 등 6명이 참석했고, 중국 측에서는 중앙판공청 주임 리잔수(栗戰書),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왕후닝(王滬寧), 중공중앙판공실 부주임겸 총서기 판공실 주임 딩쉐샹(丁薛祥), 외교담당 국무위원 양제츠(楊潔篪), 국무원 타이완 판공실 주임 장즈쥔(張志軍), 국무원 타이완 판공실 부주임 천위안펑(陳元豐) 등이 참석했다. 어떤 사람을 만찬에 참여시킬 것인지는 양측 모두 전략적 선택에 달려있다.

타이완, 중국 양측 모두 권력의 핵심이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 의미보다는 정치적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타이완의 우메이홍과 중국의 천위안펑은 향후 양안 관계에서 실무 역할을 맡게 될 주목받는 신진 인물들이다. 특히 천위안펑은 1963년생으로 20여 년간 당과 국무원 타이완 판공실에서 근무했다. 그는 국무원 타이완 판공실 주임을 역임했던 천윈린(陳雲林)의 비서 출신으로 천윈린과 헤이롱장(黑龍江)에서 15년 동안 함께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천윈린이 해협회(海協會) 회장에 취임하여 타이완의 장빙쿤(江丙坤)과 수차례 '천장 회담(陳江會)'를 추진할 때 ECFA(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 등 18개항의 합의문 체결을 막후에서 지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양안 정상 간의 만남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며 향후 양안 관계의 핵심 요인으로 부상할 것이라 기대를 받고 있다.

이번 시진핑과 마잉주의 만남은 양안 정상 간 최초의 만남이라는 역사적 의미 외에 정치적 의도가 농후하게 투사된 만남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싱가포르를 회담 장소로 선택한 점, 양국 국기를 게양하지 않은 점, 총통이나 주석의 명칭을 '선생'으로 통일한 점, 국가 기구 사람들보다 측근 인사로 수행 인원을 구성한 점, 공동 기자 회견을 배제하고 각자 기자 설명회를 개최한 점, 회의실 사용료와 식비 등 비용을 분담한 점. 특히 협정문이나 공동 성명이 발표되지 않은 점은 만남 자체가 매우 정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동존이(求同尊異: 차이점을 존중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하자는 것)' 뿐만 아니라 '이중유동(異中有同)'의 정신에 입각하여 양안이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가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이번 만남이 양안 정상 만남의 정례화 신호탄이 될지는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양국 국민들에게 '하나의 중국인'이라는 심정적인 동질감을 주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두 정치 지도자의 만남은 정치적으로 성공한 이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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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중국의 정치 엘리트 및 간부 제도와 중국공산당 집권 내구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푸단 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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