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나는 현대중공업 '바지사장'이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나는 현대중공업 '바지사장'이었다"

[ A사장은 왜 죽음을 택했나 ] '기성 후려치기'로 폐업한 신문수 씨 ①

지난 17일 현대중공업 한 사내하청 대표가 자신의 차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했다. 발견된 유서에는 적자 때문에 회사운영하기 힘들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15년에만 현대중공업에서는 100여 개의 업체가 폐업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원청의 '기성 후려치기'를 견디다 못해 폐업됐다. <프레시안>에서는 A사장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하청업체 대표로 일하다 폐업수순을 밟은 이들을 만났다. 이미 '자살'의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어보자.

신문수 씨는 1978년 4월, 현대미포조선에 입사했다. 이후 1984년 8월께 현대중공업으로 전입했다. 줄어든 물량 때문이었다. 평생 노동자로 살아왔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11년 초였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에서는 하청업체 한 곳이 부도나면서 이를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회사 상무가 신 씨를 대표로 추천했다. 신 씨도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정년퇴임을 4년 앞두고 찾아온 좋은 기회였다. 조선 경기가 회복세를 타고 있던 때라 타이밍도 좋다고 생각했다.

인수할 때 전임 대표가 남긴 빚, 즉 임금체불액 1억8000만 원을 갚아주는 조건으로 하청업체를 인수했다. 2011년 3월이었다. 그렇게 신 씨는 평생 노동자에서 90명이 일하는 업체 대표가 됐다.

하지만 업체 운영은 쉽지 않았다. 조선 건조업 회사가 흑자를 내기란 어려웠다. 원청에서 받는 기성비로 노동자들 임금과 운영비를 내면 매번 적자가 발생했다. 조선업이 활황기를 맞으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하면서 버텼다. 사실 업체를 운영하지 않으면 딱히 할 일도 없는 신 씨였다. 평생 조선업 기름밥만 먹은 그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2015년 들어와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경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원청에서 대량으로 직원을 구조조정한 뒤부터였다. 고통분담을 근거로 기성비 인하를 강요했다. 기성비는 하도급 대금의 일종으로, 톤당 작업단가를 말한다. 투입된 인원과 작업시간 등을 계산해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돈이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하청업체 '후려치기', 노동자 '목 조르기')

ⓒ매일노동뉴스(정기훈)

늘어만 가는 적자, 견디지 못하는 하청업체 대표

신 씨 회사인 백산기업의 2015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기성 및 지출 내역서를 보면 4월 기성실지급금이 3억4859만1883원인 반면, 임금지급비와 경비 합계는 4억7712만1469원이었다. 1억여 원의 적자를 본 것.

5월은 기성실지급금이 3억6172만7794원, 총 경비합산은 5억6356만2284원으로 2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같은 식으로 6월에는 1억4000여만 원, 7월에는 6920여만 원, 8월은 4500여만 원, 9월은 1억 원, 10월에는 9200여만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매달 인건비와 운영비에서 40~50% 정도만 원청에서 지급했기 때문이다. 이전과 똑같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서 작업했지만 절반의 기성비만을 지급한 것. 견디다 못한 신 씨가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신 씨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신 씨 업체와 똑같은 일을 하는 다른 업체의 경우, 더 많은 기성비를 챙기기도 했다. 거기는 왜 그렇게 많이 주느냐고 따져도 소용없었다. 이전에 지급하지 못했던 것을 이번에 보전해준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엿장수 마음인 기성비였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 믿고 버텼다. 매달 적자를 감내했다. 하지만 더는 견딜 수 없게 됐다. 그 사이 노동자들 임금을 주기 위해 살고 있던 아파트 담보대출은 물론, 중소기업청에서 1억 원도 대출받았다. 빚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은행 마이너스대출이 8000만 원, 가족 명의로 제2금융권에서 빌려 쓴 사채가 약 2억8000억 원이나 됐다. 이 모든 게 지난 4년6개월 동안 대표를 하면서 생긴 빚이다.

결국, 올해 11월 한계를 체감했다. 11월 말까지 한 달 일한 기성비로 현대중공업에서는 1억8000만 원을 가져가라고 했다. 이는 11월에 나갈 임금의 절반도 되지 않는 돈이었다. 11월 임금을 해결하려면 1억5000만 원의 빚을 또다시 내야 했다.

회사에 자신이 내걸었던 업체 보증금 8000여만 원으로 11월 임금을 해결하겠으니 여기서 모자란 부분을 원청에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회사는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신 씨는 업체를 폐업하기로 했다. 11월 30일의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임금체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90명의 직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퇴직금이 약 4억 원 정도 된다. 이 돈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나는 '바지사장'이었다"

신 씨는 자신을 두고 '바지사장'이었다고 표현했다. 신 씨는 "모든 업무공정을 사실상 원청에서 지시하고 관리한다"며 "업체 대표가 하는 일은 인력 수급과 관리뿐"이라고 설명했다. 문제가 생길 때, 책임지는 사람이 하청업체 사장이라는 것.

실제 신 씨 업체가 원청에게서 받은 공문을 보면 휴일근무부터 야간근무, 공정방식까지 원청에서 일일이 지시해왔다. ‘TANK COVER 공정 송부의 건'을 보면 '주야간 조를 배원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공정이오니, 힘드시더라도, PE과의 저력을 보여줬으면 합니다'라고 사실상 야간에도 일할 것을 독촉하고 있다.

'LPG 호선 UPPER DECK 너클 부위 관리'에서는 '너클 포인트 관리가 중요합니다'라며 'JOINT비드부위가 가장 높은 게 아니라 CENTER GIRDER가 가장 높아야 됨'이라며 '내업에서 덜 너클(연결기)이 잡힌 부분은 취부(설치) 전 오버헤드 비드 백히팅해서 잡고 취부바람'이라며 구체적으로 공정까지도 일일이 설명‧지시했다.

'휴일근무 계획 관련의 건'에서는 '금주 휴일근무(24일, 25일) 계획을 10월 19일 오후 3시까지 제출 바란다'고 통지했다. 하청업체의 휴일근무도 일일이 체크하고 있는 셈이다.

신 씨는 "공사 진행시 매일 아침 조회시간에 원청 부서관리자가 직원인원 체크 및 현장 작업 업무 지시와 식수 인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 뒤, 공사를 진행한다"며 "이렇게 원청은 사실상 모든 공정과정에 관여하고 지시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신 씨는 "그래놓고 이제와서는 현대중공업의 적자 경영책임을 사내 하청업체에 전가하고 있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하청업체와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 신문수 백산기업 전 대표. ⓒ프레시안(허환주)
"돈은 절반으로 후려치면서 일은 똑같이 시키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기성후려치기'다. 조선소는 인건비가 전체 공정비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에 인건비는 사실상 고정비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원청이 주는 기성비는 기존 인건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신 씨는 "현재 원청은 임금 발생 대비 40~5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기성금을 우리에게 주면서 일은 전년과 똑같이 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투입된 인력과 작업시간 등을 고려해 실적에 따라 기성비를 정상적으로 지급해 왔다고 주장한다. 신 씨는 이러한 주장을 두고 "전혀 그렇지 않다"며 "예를 들어 6개 사내하청업체가 비슷한 인원과 작업시간으로 실적을 쌓았는데 일을 끝낸 뒤 기성금을 받아보면 중구난방이다. 어떠한 기준도 없다"라고 비판했다.

신 씨는 "결국 위에 잘 아부하고 접대 등을 하는 업체대표는 기성을 제대로 책정 받고 그렇지 않은 업체대표들은 지속해서 낮은 기성금만 받도록 해서 운영 악화에 이르게 하는 게 지금의 현대중공업"이라며 "지금의 문제는 현대중공업의 무리한 기성비 인하에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중공업 측은 기성금을 20~50% 삭감하고 있다는 주장 관련, 당사와 협력회사 간 도급대금은 실 투입인원, 작업시간과 관계없이 물량(처리 중량, 면적 등)을 기준으로 계약되며, 당사는 계약된 도급대금을 협력회사의 공사 진행율에 따라 계약기간 동안 매월 나누어 지급하고 공사수행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도급대금 전액을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최근 협력회사의 일련의 경영상 어려움 관련해서는 현대중공업의 기성 문제가 아니라, 조선업계의 인력 구인난으로 시장 임금은 상승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기술 인력이 부족하여 협력회사의 생산성이 저하되고 있음에도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