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가정교사'까지 현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 우려했다. 지금 진행 중인 부실 기업 구조 조정이 "눈앞의 문제만을 미봉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
김광두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김병준 국민대학교 교수,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 김호기 연세대학교 교수, 백용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원덕 서울대학교 객원교수 등이 30일 발표한 성명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이 가운데 김광두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선거운동 캠프에서 정책 공약을 총괄했었다. 박 대통령의 경제 분야 가정교사로 불렸다. 백용호 교수와 김병준 교수는 각각 이명박,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 사령탑을 맡았었다. 이원덕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 사회정책 수석 비서관을 지냈다. 김상조, 김호기 교수는 시민운동에 오랫동안 참여했다. 진보와 보수를 폭넓게 아우르는 명단인 셈.
이들은 "구조 조정, 새 해법을 찾아야 한다"라는 성명에서 "한국 사회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이념과 경력은 제각각이지만, 현실 인식은 마찬가지라는 것. 이들은 지난해부터 정기적인 모임을 해 왔다. 정식 명칭도 없는, 사적인 자리다. 이렇게 모인 이들이 굳이 실명으로 성명을 낸 것은 이런 위기감 때문이다.
"최근 부실 기업 구조 조정 과정에서 표출된 경제정책의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 부재 및 관료들의 책임 회피 성향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한국 경제의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다."
이런 위기감에 대한 대응은 여당과 야당의 정쟁거리가 아니라는 게 이날 성명 참가자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부실 기업 구조 조정에 대한 원칙과 과제를 네 가지로 꼽았다.
첫 번째는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 타워(사령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급박하게 진행 중인 구조 조정을 지휘하는 사령탑은 불분명하다. 청와대 서별관회의가 사령탑에 가까운 셈인데, 비공개로 진행된다. 성명을 낸 이들은 "(구조 조정 사령탑이) 밀실에 숨어서는 안 되며, 국회와 협의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통로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 교수들은 "여기에 필요한 정책적 권한과 자원을 배분하고, 그 과정과 결과에 궁극적 책임을 지는 주체는 오로지 대통령"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구조 조정 과정이 '비용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로 귀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부실에 책임이 있는 주체에 대해 응분의 법률적 책임을 묻고 합당한 자구 노력을 요구하는 법제도와 관행"이 확립돼야 한다는 것. 부실 기업 대주주 및 경영진은 물론, 국책은행과 청와대 및 관련 정부 부처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은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자구 노력을 주문했다. 노동자 해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이해관계자가 노력하되, 노동조합이 할 일도 있다는 게다. 근로시간 단축 및 임금 삭감 등의 노력이다. 아울러 이들 교수들은 "구조 조정의 고통이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에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는 구조 조정 재원 확보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재정(추가경정 예산 편성 및 증세)과 공적자금(정부보증채권 발행)과 양적완화(중안은행의 발권력 동원)" 등 다양한 비상 수단을 신중히 고려할 수 있다고 봤다. 어떤 방식에 대해서도 원천적인 반대는 하지 않은 셈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국회의 사전적 동의와 사후적 감독을 받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앞서 거론된 방안 모두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보다 넓은 시야로 진행하라는 주문이다. 재무적 관점에서만 진행되는 구조 조정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산업 구조 재편, 사회안전망 구축 등을 두루 고려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런 성명 내용을 논의하는 자리에 모인 이들은 열 명이다. 이 가운데 여섯 명이 실명 공개에 동의했다.
다음은 30일 성명 전문이다.
구조조정, 새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현 상황을 우려하는 지식인들의 고언 -작년 하반기 이래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사회활동 경험을 가진 10여 명의 지식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안을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는 월례 모임을 이어왔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한 모임은 아니었지만, 이분법적 진영 논리로 대립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지식인의 도리가 아니라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의 현실 인식은 하나로 모아졌다. 즉, 한국 사회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부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표출된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Control Tower) 부재 및 관료들의 책임 회피 성향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한국 경제의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는 여야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이에 우리의 우려를 공개 표명하기로 뜻을 모았고, 정부와 정치권의 진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부실 기업 구조 조정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과 과제는 다음과 같다.첫째, 저성장⋅불확실성의 국제경제 환경, 점점 거세지는 중국의 위협 등을 감안할 때 고통스러운 구조 조정을 요구하는 분야는 몇몇 업종, 몇몇 기업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근시안적 시각에서 눈앞의 문제만을 미봉하는 태도를 버리고, 경제 현실을 엄정하게 진단하고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수립⋅집행하는 범정부 차원의 Control Tower를 조속히 세워야 한다. 단, 그 Control Tower는 밀실에 숨어서는 안 되며, 국회와 협의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통로를 구축하여야 한다. 물론 여기에 필요한 정책적 권한과 자원을 배분하고, 그 과정과 결과에 궁극적 책임을 지는 주체는 오로지 대통령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둘째, 구조 조정 과정이 '비용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로 귀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부실에 책임이 있는 주체에 대해 응분의 법률적 책임을 묻고 합당한 자구 노력을 요구하는 법제도와 관행이 확립되어야 한다. 그 대상에는 해당 부실기업의 대주주⋅경영진은 물론 국책은행과 청와대 및 관련 정부부처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노동자 해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이해관계자가 노력하되, 노동조합 역시 근로시간 단축 및 임금 삭감 등의 자구노력에 적극 나서야 하며, 구조조정의 고통이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에 집중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셋째, 구조조정의 비용은 이해관계자들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규모 구조조정이 급박하게 진행되어 이해관계자들의 비용 부담 능력을 넘어서는 경우에는 재정(추경 편성 및 증세)과 공적자금(정부보증채권 발행)과 양적완화(중안은행의 발권력 동원) 등의 다양한 비상수단을 신중히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될 자금을 조성⋅투입하는 경우에는 '최소 비용의 원칙' 및 '공평한 손실 분담의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법제도적 통제 장치를 구축하여야 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국회의 권한이자 책무이며, 정부는 국회의 사전적 동의와 사후적 감독을 받아야 한다. 넷째, 근래 한국경제의 침체 및 국제경쟁력 약화를 감안할 때, 부실 기업 구조 조정 방향이 협의의 재무적 관점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제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의 변화 및 4차 산업 혁명의 진전 등을 고려한 산업구조 재편의 관점, 그리고 구조 조정의 고통을 완충하고 인구 구조 변화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구축의 관점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국가 발전 비전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득권과 진영논리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는 국민 모두의 과제이나, 특히 정부와 정치권이 솔선수범해야 할 과제이다. 2016.5.30 이 모임의 참여자 중에는 현 직위 및 직책 상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사람도 있어, 일부만 이름을 밝힌다. (가나다 순)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김병준 (국민대 교수)김상조 (한성대 교수)김호기 (연세대 교수)백용호 (이화여대 교수)이원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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