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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은 미국의 로비스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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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반기문은 미국의 로비스트인가? 용산기지 협상때 "환경부 압박"…91년 '불평등 합의' 직접 서명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말 방한에 이어 오는 8일(미국 현지 시각) '친노 좌장'이라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만나는 일정을 잡으며 정치권 뉴스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리얼미터' 등 여론조사 기관의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반 총장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함께 양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반기문, 문재인-안철수 가상 3자 대결서 1위)

반 총장에 대한 이같은 '대망론'의 기초에는 그가 성공한 외교관이라는 '사실'이 있다. 하지만 '외교관 반기문'에 대한 비판적 평가 역시 존재한다. 지난달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에 대해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하나"라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英 언론 "반기문, 역대 최악의 유엔 사무총장")

이 <이코노미스트> 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미국은 그를 대략 자기 사람으로 간주했다(America regarded him as broadly in its camp)."

지난 2011년 정보 공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25만여 건의 미 국무부 외교 전문(電文)을 입수해 공개했을 때, 폭로된 전문의 내용은 미국이 반 총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보여줬다. 다음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 대사의 평가. (☞관련 기사 : 美 대사 "반기문, 천성적으로 미국 동조자")

한국 외교통상부의 미국 전문가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인 반기문은 워싱턴에 2차례, 뉴욕에 1차례 등 미국에서 3차례 파견 근무를 했다. 반기문은 외교부와 청와대에서 미국 관련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반기문은 미국인과 미국의 가치, 미국 정부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천성적으로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sympathetic)이라는 것이다.

이는 반기문 세대의 잘 교육받은 한국인들의 전형적 특성이기도 하다. 그들의 의식 발달에서 중요한 경험은 한국전쟁이었고, 그들은 미국이 우호적 강대국이며 지역 및 세계 문제에 있어 (한국과) 이상과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확신에 머물러 있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서부터 주한 미군 기지 반환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한국에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때 우리는 반기문을 찾았다. 그는 언제나 동조적이었고 도움이 됐다. 우리는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더라도 (그와) 미국 정부와의 관계가 변함없을 것이라는 데 어떠한 의심도 없다.


물론 버시바우 전 대사가 미 본국 정부에 '보고'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한국 정부에서 중요한 직위에 있는 고위 관료가 '미국 동조자'라는 것은 바로 주한 미 대사관의 공로이고 업적이 된다. 대사관의 책임자인 버시바우가 자신들의 '성과'를 본국에 부풀려 보고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반 총장이 노무현 정부 내에서 청와대 및 다른 정부 부처(통일부, 환경부 등)에 비해 미국 정부의 요구에 좀더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쪽에 있던 것은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 서울 용산의 주한미군 기지 반환 문제가 대표적이었다.

ⓒ프레시안(장보화)

외교 장관 반기문, 美 대사 만나 "환경부 압박하겠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 간에 첨예한 입장차가 있었던 사안 가운데 하나가 용산 기지 문제였다.

이 협상에서, 미국 측은 당시 환경 오염이 심각한 수준이었던 용산 기지의 오염 정화 비용을 한국 측이 부담하기를 바랐다. 반면 한국 정부, 특히 환경부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땅을 오염시킨 장본인인 미국 측이 오염을 정화한 상태로 한국에 부지를 반환해야 한다는 게 환경부의 주장이었다.

그러자 미국은 리언 라포트 당시 주한 미군 사령관의 이름을 따 '라포트 제안'으로 불린 제안을 협상안으로 제시했다. '라포트 제안'의 요지는, 한국 법령이 아닌 주한 미군 자체 기준으로 '정화됐다'고 볼 만한 수준까지 오염을 정화해서 한국에 용산 기지를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오염 제거에 드는 비용은? 미국이 200만 달러(약 20억 원 내외)를, 한국이 나머지를 부담한다는 게 미국 측의 제안이었다. 정화 비용은 당시 추산으로 5억1500만 달러(5000억 원 내외) 수준이었다. (2011년 실제로 용산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할 당시 국방부는 '기지 철거 및 오염 정화' 비용이 2134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은 결국 이 '라포트 제안'을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 2006년 7월 14일 9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도출된 협상 결과였다. (☞관련 기사 : '한미 동맹' 위해 '미군 기지 환경 치유' 양보)

한국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이기까지, 한국 정부 내의 논의에서 환경부와 대척점에 섰던 것은 외교통상부와 국방부였다. (☞관련 기사 : 한미 FTA에 가려 '미군 기지 환경 협상' 졸속 우려) 그런데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국무부 외교 전문에는,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미국 대사를 만나 '라포트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환경부를 압박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협상 최종 타결을 3달 앞두고 버시바우 당시 대사가 반 장관을 만난 후 미 본국에 보고한 내용은 이렇다.

버시바우 대사는 현재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이른바 '라포트 패키지', 즉 한국에 반환하는 주한 미군 기지를 환경적으로 깨끗이 하는 제안은 좋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불행히도 이 제안은 아직 한국 정부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주한 미군은 (한국과의) 합의 없이 이 패키지를 실행하고 있지만, 버시바우 대사는 다음 SPI를 위해 한국 측이 이 패키지를 5월 중순까지 승인해 주기를 희망했다.

반기문 장관은, 자신과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한국이) 미국 정부의 제안을 수용하게 하려고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임하는 환경 장관이 멈칫거렸다(balk)고 했다. 반 장관은 이번 주말에 그가 신임 환경 장관을 만날 것이며, 그 패키지에 대해 한 번 더 압박하겠다(give the package another push)고 했다.

그럼에도, 반 장관은 시민 사회에서 너무 많은 저항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최종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것으로 봤다. 조태용 북미국장(현 박근혜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외교부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을 계속 찬성하고 있지만, (미국의 태도가) '싫으면 관둬라'는 식이 되어서는 한국 정부가 (제안을) 수용하기가 정치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면서 수단을 좀더 강력하게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관련 자료 : )

결국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해준 셈이 된 2006년 7월의 SPI 합의에 대해서는 최재천 의원 등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도 비판론이 일 정도였다. (☞관련 기고 : 최재천 "'오염된 미군 기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녹색연합 등 환경 단체의 반발은 말할 것도 없었다. (☞관련 기사 : "환경 주권 못 지켜낸 대통령-총리에게 묻는다")

외무부 국장 반기문, 美 압력에 '불평등' 외교 문서 서명…YS 안기부 "인사 피해 입을까봐?"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6~09년의 협상은 사실 '미군 기지 이전 비용'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미군 기지 이전 비용은 한국이 부담한다는 것은 이미 15년 전의 합의로 전제돼 있었다. 2006년에 추가로 불거진 문제가 '이전 비용'이 아니라 '(우리 돈을 들여) 이전받기로 한 부지의 환경 오염 정화 비용'이었던 것은 그래서다.

그런데 '기지 이전 비용을 한국이 부담한다'는 이 '전제' 자체도 바로 반 총장의 작품이었다. 1991년 외무부 미주국장(현 북미국장)이었던 반 총장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 한국 측 대표 자격으로 이같은 내용의 합의안에 서명했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한미 간의 내용적 '합의'는 1년 전인 1990년 6월 주한 미군과 한국 국방부 사이에서 이미 이뤄졌다. 이에 'SOFA합동위원회가 있는데 왜 국방부가 그런 합의를 하느냐'며 형식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었고, 미국은 이듬해인 1991년 5월 20일 'SOFA합동위원회가 1990년 6월의 합의 내용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문서를 들이밀고 서명을 요구하게 된다. '반기문 국장'이 서명한 것은 바로 이 각서였다. (☞관련 기사 : '용산 미군 이전비 전액 부담' 놓고 비판 고조, '美 용산 기지 평택 이전' 가서명 초읽기 돌입)

실제로 각서 내용은 "1990년 6월 25일 서명된 미군 부대 이전을 위해 한미 양국이 서명한 합의 각서가 합법적이고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 "기본합의각서(MOA)와 양해각서(MOU)는 SOFA 규정에 따라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반기문 국장'이 이런 내용의 각서에 왜 서명했을까? 노태우 정부 당시의 국가안전기획부(현재의 국가정보원)조차 그것이 궁금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기부는 1991년 5월 '용산 미군 기지 이전 합의 각서 관련 대책 필요'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이번 합의각서의 미측 실제 서명권자인 포글만 주한 미군 부사령관은 (1991년) 5월 13일 외무부 반기문 미주국장을 방문해 (…) 동 각서(1990년 6.25 각서)의 합법성을 인정한다는 내용(미군 측이 일방적으로 작성)의 서류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반 국장은 그간 국방부가 외무부에 이첩을 보류해 오다 최근에야(1991.5.8.) 합의각서 사본을 전달, 아직 검토 중임을 들어 서명을 거절해 왔으나, 미군 측의 반발을 의식해 5월 20일 (각서에) 서명했다.

(외무부에서는) 1988년 7월 '주한 미군 숙소로 무상 대여한 내자호텔을 반환받는 조건으로 48억 원을 지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맞서온 유광석 미주국 안보과장이 미군 측의 로비로 전보(일본 연수)된 바 있어, 반 국장도 같은 사례로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해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자조적 분위기마저 산견(散見)되고 있다." (☞관련 기사 : )

안기부는 "현재(1991년) 이 각서에 대해 위헌성 논란이 있고, 야권이나 대학가 등에 알려지면 반미 감정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각서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안에 유의하고, 외부에 노출시 위헌성·불평등성 등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 국장'이 이 각서에 서명한 것이 속된 말로 '사고를 친' 것일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사고 친 반기문? 오바마에게 호통 쳤다지만…

그러고 보니 윤여철 전 유엔 사무국 의전장은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김영사 펴냄, 2014년)라는 책의 추천사에서 반 총장에 대해 "겁 없는 사람"이라며 "가끔 뜻밖의 행동을 하고서는 호탕하게 웃으며 '사람이 좀 무식해야 사고를 치지!'라고 말하는 호기"를 보였다고 쓰기도 했다. 윤 전 의전장은 '사고'와 관련해 "스리랑카 방문, 이란 방문 시에도, 시리아 화학 무기 사태와 관련해 강대국과 의견 차이가 있을 때에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고 썼다.

윤 전 의전장이 '외교적'으로 다듬은 이 문장은 지난달 <한겨레>가 보도한 이 에피소드를 지칭했을 확률이 높다. 반 총장이 식사 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했다는 이야기다.

"사만다 파워 유엔 주재 미국 대사한테서 전화가 왔어. 미국이 공습을 할 수 있도록 시리아에 들어가 있는 유엔 현장 조사단을 빼달라는 거야. 대충 듣고 알았다고 했는데, 좀 있다가 존 케리 국무장관한테서 전화가 오는 거야. 빨리 조사단 철수시키라고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독촉을 하는 거야.

기분이 좀 상해 있는데 이번엔 오바마 대통령한테서까지 전화가 오는 거야. 차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차를 세우라고 했지. 오바마가 'Pack and leave!'를 세 번이나 외치는 거야. 우리 말로 하면 뭐야? 당장 짐 싸서 떠나라는 거 아냐. 그래서 나도 맞받아쳤지. '뭐가 그리 급하시오! 화학 무기 조사단의 보고나 들어 보고 얘기합시다.' 결국 내가 이겼지. 오바마가 폭격 명령을 거둬들인 건 나 때문이야." (☞관련 기사 : )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에게 소리를 쳤다는 이 사건은 정말로 '사고를 친' 것이었을까? 당시 유엔 조사단은 결국 시리아에서 '짐 싸서 떠났'다. (☞관련 기사 : ) 그리고 미국은 이듬해인 2014년 9월부터 시리아를 공습했다. 공습이 이뤄지자 반 총장은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이 세계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공감대가 국제 사회에 넓게 형성돼 있다"고 미국의 공습이 정당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오히려 반 총장이 '기름 장어'라는 별명이 무색한 '사고'를 친 사례는 따로 있었다. 그는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이던 2004년, 이라크에서 한국 국민 김선일 씨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에게 살해된 이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미국은 국민 두 명이 참수됐는데도 국무부에 항의 전화 한 통 없었다. 위험 지역에 가면 국민 스스로 안전에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고, 국회 청문회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이 '지금도 같은 생각이냐'고 묻자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구상의 어떤 정부도 100% 재외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관련 기사 : 반기문 장관 "국민에게도 책임 있어")

이쯤은 돼야 '사고'다. 강대국에 대해 호통을 치는 것과 '방향'이 정반대인 사고이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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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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