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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건강 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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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건강 보장'이다 [서리풀 연구通]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담론이 놓치고 있는 것
새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인선이 늦어지고 있지만,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주요 정책 방향 중 하나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회적 요구가 높고,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공약했던 사항이기도 하다. 국정기획자문위 사회분과위원장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의 보건 정책 핵심은 보장성 확대에 있다"고 밝힌 바도 있다 (☞관련 기사 : ).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익숙한 담론이다. 이번 대선만 해도, 모든 후보자가 이를 공약에 포함시켰다 (☞). 쉽사리 개선되지 않는 현실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비급여 진료비는 줄기는커녕 늘고 있고, 소득에 비해 과중한 의료비 부담을 지고 있는 가구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담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인구의 3%가 적용을 받는 의료급여다. 물론 건강보험 비급여를 급여화한다면 의료급여 수급자의 '보장성'도 함께 높아지는 것은 맞다. 의료급여의 범위는 건강보험 기준을 준용하기 때문이다. 비급여 범위가 넓은 현행 제도 하에서는 본인부담 비용을 지원받는 의료급여 수급자조차 상당 수준의 비급여 진료비를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제외한) '전 국민'이 '당연적용' 대상이 되는 건강보험과 달리, 의료급여는 ①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의 40% 이하이면서, ②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부양을 받을 수 없어야 한다는 '선정 기준'을 가지고 있다. 선정되기 위해서는 먼저 '신청'을 해야 한다는 점도 큰 차이다.


의료급여 수급을 받기 위한 이러한 조건은 결과적으로 '비수급 빈곤층'을 양산한다. 이들의 상당수는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가 되어 건강보험 급여마저 제한받는다. 결국, 의료급여와 건강보험 어느 쪽에서도 보장을 받지 못하는 대표적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


건강보장이 인구집단, 서비스, 재정적 보호라는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림 1), '비급여의 급여화'와 '본인부담 인하'를 주요 기전으로 내세우는 현재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담론은 '보편적 보장'이라는 핵심 차원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그림 1> 건강보장의 세 가지 차원 (출처: Kutzin, 2012)


주) ① 인구집단: 누가 보장되는가? (보장되지 않는 이들에 확대) ② 서비스: 어떤 서비스가 보장되는가? (보장되지 않는 서비스를 포함) ③ 재정적 보호: 사람들이 호주머니에서 직접 내야하는 비용은 얼마나 되는가? (본인부담 인하)

최근 <사회과학과 의학>지에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경로를 모형화 한 논문이 실렸다 (☞바로 가기 : ).


수급권의 형태가 물질적 자원에 대한 접근을 통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에 대해서는 기존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을 선별해서 복지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은 주로 이 기전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영국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의 Judith Green 교수와 동료들은 수급권의 형태에 따라 서로 다른 영향을 받는 사회심리적, 구조적 기전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무엇보다 수급권의 형태가 한 사회에서 이해되는 방식, 곧 '프레이밍'과 '담론'이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연구자들은 영국의 런던, 케임브리지, 셰필드 지역에 거주하는 60세 이상 노인 29명을 대상으로 본인의 급여수급 여부와 현행 수급조건에 관한 관점을 묻는 심층면담을 진행했다. 참여자 선정에는 성별, 연령대, 인종을 고려했다.

참여자들은 다양한 복지 급여를 받고 있었으며, 도서관, 공원, 주민센터 등 다양한 공공시설도 이용하고 있었다. 모든 노인에게 제공되는 급여로는 무료 승차제, 겨울철 난방 수당이 있었고, 필요를 기반으로 자격이 부여되는 급여로는 장애급여, 주거급여, 실업급여가 있었다. 도서관의 경우 지역 거주여부에 따라, 주민센터의 경우 지역 거주여부와 나이에 따라 이용 자격이 주어졌다.

면담자료 분석결과, '집합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수급권, 즉 '보편적' 급여는 단순히 물질적 이익을 넘어, 사회적 접촉, 인정, 통합과 같은 중요한 건강 결정요인들에 대한 접근을 촉진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수급을 받는 게 당연해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생각해보면" NHS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국가보건서비스)도 하나의 '급여'죠. 민간의료를 직접 구매할 능력은 있지만, 그 대신에 NHS를 이용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의무가 됐어요.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내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기뻐요. (케임브리지 거주, 여성, 70대, 영국 출신 백인)

반면 필요 또는 취약성이라는 '개인화된' 조건에 따라 '선별'되는 것으로 이해되는 수급권은 물질적 자원에 대한 접근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정당성'에 관한 논쟁을 촉발함으로써 개인의 건강, 나아가 사회적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 2).

"그래서 이제는 (장애 급여를) 받아서는 안 될 많은 사람들이 그걸 받고 있고, 이건 정작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요. 이건 정말로 정부의 잘못이에요. 왜냐하면 그들이 그걸 꾀병부리는 사람들에게 줘버렸으니까요. '아, 장애급여를 받아보자.' 알잖아요. 이건 나쁜 일이죠. 부도덕한 일이에요." (런던 거주, 남성, 60대, 영국 출신 백인)

<그림 2> 복지 자격부여의 형태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들


(출처: Green et al., 2017)

연구는 보편복지/선별복지가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건강에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보험은 분명 보편복지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한국의 건강보장'이라는 관점에서는 선별복지인 의료급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보험 보장성' 담론이 아니라 의료급여를 포함한 보다 포괄적인 '건강보장'의 담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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