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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구, 왜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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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구, 왜 하셨어요? [서리풀 연구通] 연구자의 책임을 묻는다
최근 국내 연구자들이 가짜 학술단체 활동을 통해 학문 실적을 부풀렸다는 사실이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됐다. 이들은 와셋(WASET: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이라는 이름의 학술단체가 운영하는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고 공공 연구기금을 활용하여 해외 관광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여했다. 이 학술단체는 동료심사라는 기본 절차도 없이, 등록비만 내면 논문을 마구잡이로 게재하거나 구연 발표 기회를 주고는 했다. 학계에서는 이렇게 연구자를 현혹하여 갈취하는 학술지를 '약탈적 저널(predatory journal)'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국내의 일부 연구자들이 이러한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을 실적으로 삼고 심지어 최우수 발표상을 받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한 것이다. 이번 보도에 따르면 와셋 사건에만 국내 272개 기관, 4227명의 연구자가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이는 연구비라는 공공자원을 낭비하고, 연구 실적 평가 체계를 교란한 윤리적 스캔들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러한 가짜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들이 학계 내부에서나 사회적으로 별 영향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연구 윤리 측면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어쩌면 연구가 생산하는 지식 그 자체, 그리고 이러한 지식의 생산 과정에 있을 것이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런던 위생열대의학 대학원, 이탈리아 보코니 대학 공동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공중보건영양 Public Health Nutrition>에 발표한 논문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연구팀은 코카콜라가 연구비를 지원했다고 공개한 218명의 연구자 명단을 바탕으로 연구비 수주의 투명성과 학계 네트워크의 영향력, 연구 주제를 검토했다(☞관련 논문: ).

연구팀은 이 연구를 통해 다음의 네 가지 질문에 답하고자 하였다.

1. 코카콜라가 공개한 연구자 명단은 완전한가?
2. 얼마나 많은 논문과 연구자가 코카콜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 받았는가?
3. 어떤 연구 주제가 코카콜라의 지원을 받았는가?
4. 코카콜라로부터 지원을 받은 연구자는 자신의 논문에 그 사실을 명시하였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연구팀은 학술정보 데이터베이스인 '웹 오브 사이언스(Web of Science)'에서 코카콜라가 제시한 투명성 기준에 따라 연구비 지원을 보고했어야 하는 논문과 연구자의 목록을 만들었다. 검색 결과 157개 학술지에 실린 331편의 논문에서 907명의 연구자가 확인되었다. 이 명단을 코카콜라가 공개한 명단과 대조해보면 양쪽 모두에서 확인된 연구자는 42명에 불과했다. 이는 코카콜라가 공개한 연구자 명단의 약 20%, 연구팀이 구축한 명단의 4%에 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코카콜라의 연구비를 받은 것이 확실한 이 42명의 저자가 포함된 논문들을 제외한 후, 코카콜라 명단에는 없지만 연구비 지원을 밝힌 152편의 논문에서 다시 527명의 연구자 명단을 추려냈다. 이후 중복된 논문을 제외하고 남은 131편 논문의 책임저자들을 대상으로, 코카콜라로부터 연구비를 받았는지 여부를 전자 우편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14명(11%)이 코카콜라로부터 연구비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고, 29명(22%)은 부인했으며, 68명(53%)은 응답하지 않았다. 종합하자면, 총 128편의 논문, 471명의 연구자가 코카콜라가 발표한 명단에는 없지만, 코카콜라에서 연구비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어서 연구팀은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의 보고 양식인 'PRISMA' 지침에 따라 코카콜라와 그 협력사로부터 연구비를 받았다고 명시한 논문 389편을 선별했다. 선별된 논문에서 연구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이들 사이의 관계망을 그린 후, 코카콜라 명단 포함 여부, 코카콜라 연구비 수주 사실을 인정했는지 여부를 각기 다른 색으로 표기했다, 그 결과 코카콜라가 연구비를 지원한 연구자 중 코카콜라가 명단을 공개한 연구자(그림 1의 붉은색 점)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1.


그림 . 코카콜라로부터 연구비를 받았다고 밝힌 연구자들의 관계망(붉은색: 코카콜라 홈페이지에 공개된 연구자, 보라색: 코카콜라가 공개한 명단에는 없었지만, 코카콜라 자회사에서 연구비를 받았다고 밝힌 연구자, 초록색: 코카콜라 명단에는 없지만, 연구비를 받았다고 밝힌 연구자)

다음으로 연구팀은 앞에서 만든 논문 목록과 연구자 명단을 통해 누가, 어떤 주제로 코카콜라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는지 확인했다. 연구자 명단에서 가장 논문을 많이 쓴 사람은 미국 스포츠의학회의 전 회장이었다. 그는 열량 섭취 수준이 높을 때 열량 균형의 역할에 관한 연구로 540만 달러의 연구비를 받았고 세계열량균형네트워크(GEBN)의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코카콜라와 세계열량균형네트워크(GEBN)의 관계에 대해서는 참고). 그 외에도 열량 균형 연구를 주도한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 보건대학원의 전 학장, 식품에 첨가된 설탕이 비만과 당뇨에 영향을 준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 미국영양학회와 캐나다당뇨협회 회원 등이 코카콜라 연구비를 지원 받은 연구자 관계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동일한 자료를 이용해 어떤 연구가 코카콜라의 지원을 받았는지 구조화된 주제 모델링을 시행했다. 그 결과 코카콜라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연구들은 신체 활동, 열량 섭취, 체중, 당뇨, 운동, 비만 등의 주제로 수렴했다. 이는 대개 설탕 섭취와 비만의 관련성을 다루고 있으며, 코카콜라가 지속적으로 반박해왔던 주제이다. 그리고 이 연구들은 <미국임상영양학회지(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 <미국심장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 <랜싯(Lancet)>, <미국의사협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등 평판이 높은 학술지에 실리면서 학계에서 신뢰를 얻고 있었다.

한국의 경우 이처럼 공식적인 분석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업의 연구비 지원만이 문제인 것도 아니다. 국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는 경우에도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4대강의 사례로부터 여실히 경험한 바 있다(☞관련 기사 : ).

연구비 지원을 통해 기업에 우호적인 지식을 생산해내고 국민보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에 비하면, 아무도 읽지 않을 엉터리 논문을 와셋에 기고해서 세금을 낭비하고 개인의 업적을 부풀리기 하는 것은 그나마 '양호'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소개한 논문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연구 활동이 연구자의 자율성이나 학문적 열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에는 사회적 자원이 투입되고 또 그 결과물은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특히 무엇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지식을 생산할 것인지는 연구자 개인의 재량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든 학술적으로든 '집합적으로' 결정된다. 학문 활동의 자유만큼이나 연구자의 사회적 책무성, 또 학계와 지식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가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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