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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제를 가장한 상업주의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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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제를 가장한 상업주의의 화신 2006월드컵이 독일사회에 미치는 영향들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열기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확실치 않다. 하지만 기업과 언론이 당시의 열기를 다시 끌어내려고 하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왜일까? 월드컵은 이제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월드컵은 엄청난 규모의 상업적 이해관계가 걸린 행사가 되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응원의 주무대가 될 시청 앞 광장 이용의 '독점권'을 KBS, SBS, 조선일보가 동참한 'SK 텔레콤 컨소시엄'에 팔아넘겼다. 붉은 악마의 티셔츠는 독점계약을 맺은 특정업체만이 만들어 팔 수 있다. 이를 두고 월드컵이 상업주의를 부추기고 있으며 더 나아가 민족주의를 이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개최국인 독일의 사정은 어떨까? 아래의 글은 2006 월드컵이 독일사회에 미치는 정치·경제·사회적 영향을 짚어보고 있다. 필자는 '월드컵이 모두를 위한 축제'라는 표현은 현실을 덮는 수사일 뿐이라고 말한다. 월드컵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이들은 결국 거액을 투자한 다국적기업, 사회문제를 감추려는 정치가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월드컵이 독일과 세계인들을 '친구'로 만들어준다는 것은 독일 현실과 정반대되는 말이며 오히려 월드컵 개최가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안보의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필자는 월드컵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정부의 주장도 정반대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는다.

아래 글은 세계 사회주의자 웹사이트(World Socialist Web Site)에 실린 마리안느 아렌스의 글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원문은 <세계 사회주의자 웹사이트>(//www.wsws.org/articles/2006/may2006/cup-m31.shtml)에 실려 있다. <편집자>


2006 독일월드컵- 수백억 유로의 사업

월드컵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월드컵 마니아들의 유례없는 열기는 독일의 일상을 압도하고 있다. 사람들은 도심의 공공장소, 상점 진열대에서는 물론이고, TV 방송의 작은 프로그램, 신문의 작은 구석에서조차 월드컵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그러나 실제 월드컵은 광고와 상업주의의 축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다국적기업과 FIFA 사이를 오가는 자본

월드컵은 수천억 유로의 이권이 결린 거대사업이다. TV 중계권료만 해도 10억 유로 이상이 오간다. 또한 4억 유로 이상이 광고권을 판매하는 데에서 창출된다. 이는 입장권 판매액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액수다.

한때 대중들은 TV 중계 프로그램의 상업 광고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제 광고는 방송중계의 주목적이 되었다. 전 세계에 중계되는 경기를 통한 홍보효과를 아는 공식 후원업체들은 이제 이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월드컵 주관단체인 FIFA는 축구팬들이 20억 유로의 상품을 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에 비해 20% 증가된 액수다. 판매액의 15~20%는 FIFA 몫으로 돌아간다. FIFA는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상품판매에 대한 세금의 4.25%만을 부담한다. 15개의 공식 후원업체는 광고독점권을 따내기 위해 FIFA에 수백만 유로를 지불한다.

FIFA는 '2006 월드컵 축구(Football World Cup 2006)'이라는 문구의 독점사용권을 따내기 위해 독일 연방법원에 찾아갔으나 허가되지 않았다. 쥐트도이체 차이퉁(Suddeutsche Zeitung)은 이 사건을 두고 마치 BMW사가 "차를 운전하세요"라는 문구를 독점하겠다는 경우와 똑같다며 비꼬았다.

공식 스폰서업체는 아디다스, 코카콜라, 맥도날드, 야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엔호이저부시, 어바이어, 도이체 텔레콤, 컨티넨탈, 도시바, 필립스, 현대자동차, 마스터카드, 후지필름, 에미레이트 항공, 질레트다. 또한 독일 내의 6개의 프로모터사가 있다.

FIFA는 공식 후원업체들에게 '2006 월드컵'이라는 문구사용에 대한 독점권만을 제공하는 게 아니다. 무료 입장권이나 VIP 관람석 이용권 제공은 물론이고 계약을 새롭게 체결할 때도 우선순위를 제공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의류와 축구공의 공식 지정업체인 아디다스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2014년 월드컵 후원과 관련해 이미 계약을 끝냈다. FIFA와 코카콜라의 계약 역시 25년간 유효하다.

공식 후원업체들은 행사 시작 전부터 그 위력을 발휘한다.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시작된 경기장 명칭 사용권의 영향을 받은 독일의 축구 경기장들은 수익증대를 위해 경기장의 이름을 광고주에게 파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겔젠키르헨 아우프 샬케(Gelsenkirchen's Auf Schalke)라는 이름의 경기장은 벨트린스(Veltlins) 라는 맥주 상표로 이름을 바꿨으며 프랑크푸르터 발트슈타디온(Frankfurter Waldstandion)이라는 경기장은 현재 이지크레디트(easyCredit)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그러나 이 상표들은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월드컵 기간에는 다시 경기장 이름을 프랑크푸르트(Frankfurt), 겔젠키르헨(Gelsenkirchen) 등으로 변경해야 한다.

제대로 즐기기엔 너무 비싼 월드컵
▲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설치된 대형 축구공과 독일 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장 프란츠 베켄바워(Franz Beckenbauer) ⓒ연합뉴스

지역 축구팬들이 월드컵기간에 경기장에 갈 기회는 거의 없다. 시민들은 월드컵이 '모두가 참여하고 즐겨야 할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외치는 홍보물 세례를 받지만, 실제로 입장권을 사려면 엄청난 돈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인터넷을 통해서는 입장권 중 3분의 1만을 구매할 수 있다. 예약은 오래 전에 해야 하며 예약 시 상세한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함은 물론이다. 입장권을 선물로 받았거나 제3자를 통해 구한 이들은 경기장 입구에서 거절당할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입장권의 재판매도 금지되었으나 수많은 항의가 있은 후에 허가됐다.

주요 도시들은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을 위해 넓은 장소와 대형 스크린을 준비한다. 아디다스는 베를린 국회의사당 앞에 '미니 올림픽 경기장'을 개설해 1만 명의 관중들이 경기를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아디다스는 한때 주민들이 즐겨 공놀이를 하던 넓은 평지에 '축구세계'라고 이름 붙여진 4만 평방미터 규모의 거대한 축구공원을 지었다.

9일 경기가 시작되는 뮌헨의 북부에는 3억4000만 유로를 들여 경기장을 신축했다. 알리안츠(Allianz)라 이름이 붙은 이 경기장은 '건방진(arrogance) 경기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친구가 되는 시간'이라고?"

2006 독일월드컵의 공식 슬로건은 '친구가 되는 시간'이다. 이는 현재 독일의 현실과 극명히 대조되는 문구로서 외국인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다'는 몽상만을 심어줄 뿐이다.

발칸 전쟁 때 독일로 이주한 외국인들, 아프리카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이주해 온 외국인들은 구조적으로 불법이라는 이유로 계속 강제 이송되고 있다. 월드컵이 끝난 후 프랑크푸르트나 함부르크, 뮌헨 경기장에서 불과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새벽 3시에 경찰이 외국인등록사무소에서 나왔다며 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워 강제이송시키는 장면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설사 그 지역에서 20년을 살며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어른들은 일을 한다고 해도 이들은 쫓겨나기 마련이다. 정말 지금이 우리가 '친구 되는 시간'일까?

한편으로 외국인처럼 보이는 이들을 폭행하는 극우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월드컵을 3주 앞두고 전 독일 정부대변인 우베 카르스텐 헤예(Uwe Karsten Heye)는 독일을 방문하는 흑인 관광객들에게 시내 중심가에 나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신나치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을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브란덴부르크 같은 중소도시에는 아예 가지 않는 게 좋다. 살아 돌아오기 힘들기 때문이다"고 경고했다.

작년 한 해 극우주의자들의 범죄는 25% 증가했다. 최근 에디오피아 출신 독일인이 받은 공격은 몇몇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골치 아픈 문제는 모두 잊고 즐기자?

정치인들은 헤예(Heye)의 주장에 격렬히 반대하며 자국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 정치인들은 다가올 행사의 어두운 면을 감추려는 기색도 역력하다. 월드컵은 경기장 신축, 기반시설 개발 등을 동반한다. 시민들의 지갑은 텅텅 비어가지만 FIFA의 욕구를 만족시킬 만큼의 개발과 공사에 투자되는 돈은 굴러들어온다. 이 때문에 월드컵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힘을 발휘한다.

해결되지 않은 사회적 현안들을 덮는 데에도 월드컵은 효과적이다. 사회양극화, 실업난, 건강보험 문제, 교육문제, 연금문제, 정보 스파이 문제 등 독일 사회 내의 수많은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독일의 정치엘리트들은 국가주의가 기세를 떨치기 바란다. 환호와 즐거움의 물결 속에서 그들을 압박하고 있는 사회현안들이 잊히길 바란다.

어느 팀이 경기에서 이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가운데, 국가의 빚은 점점 많아질 거란 점 하나만은 확실하다. 12개 경기장의 신축 및 재건축에 13억8000만 유로가 소요됐다. 또한 기반시설 건설과 안보유지 문제는 또다시 수십억 유로가 소요되게 만든다.

또다른 중요한 사실은 평소에는 대중에게 널리 반대를 살 만하거나 진행되기 어려운 정책들이 월드컵을 이유로 속속 진행된다는 것이다. 특히 안보 문제가 그렇다. 월드컵기간 중 정부는 공공장소에 경찰과 군대를 배치할 예정이다. 이건 오히려 테러 위험을 느끼게 하는 공포심을 유발한다. 수백 개의 CCTV 카메라가 공공장소에 설치될 예정이고, 독일에서는 처음으로 무장한 군대가 공중조기경보기(AWACS)와 함께 배치된다.

한편 테러에 대비하여 5000명이 넘는 의학·핵·생물학·화학무기 전문가들이 독일에서 대기할 예정이다. 유럽 15개국에서 통과된 쉥엔(Schengen) 협약은 훌리건들이 독일에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보류됐다. 베를린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훌리건 전력이 있는 이들의 DNA 샘플을 채취하기로 했다.

각 경기는 6000명의 경찰 및 주변을 감시하는 비행기와 함께 진행된다. 뮌헨에서 진행될 개막전에서는 경기장 주변 60km 이내에 FIFA가 고용한 2만 명의 사설 경비업체 직원이 배치된다. 이 모든 것은 국가비상사태를 대비한 예행연습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군중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 준비는 소홀한 상태다. 12개 경기장 중 4군데가 화재 예방조치, 탈출통로 등이 월드컵을 개최하기에 부적절하다거나 미비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월드컵은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한다. 경기장과 기반시설 건설은 마감기한에 맞추기 위해 하루 10~12시간의 강행군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개인 보안업체 또한 마찬가지였다. 토, 일요일 근무는 이제 보통이고 독일에서 전통적으로 엄격한 제한을 받았던 상점 개점시간이 연장됐다.

월드컵은 "극도의 비상사태" 속으로 모든 이들을 몰아넣고 있다. 축제가 끝난 뒤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돈은 부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월드컵이 다가올수록, 매우 값비싸고 세심하게 연출된 미디어행사가 펼쳐질 것이 예상된다. 비록 많은 수의 사람들이 경기 시청을 즐기지만, 이 '메가톤급 행사'는 의심과 회의, 그리고 불신도 함께 유발하고 있다.

베를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시민 2명 중 1명만이 월드컵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선 많은 돈이 든다. 경기가 열리는 도시의 호텔들은 아직도 빈 방이 많다. FIFA의 마케팅회사인 WCAS사가 사전예약한 대부분의 방이 남아 있는 상태다. 베를린에는 4월 현재 5000~8000개에 달하는 방이 미예약 상태로 남아 있다. 올해 초 FIFA에서 계획했던 개막식은 입장권이 적게 팔려 취소됐다.

5월 중순, 월드컵 마스코트인 '골레오(Goleo Ⅵ)'를 만들었던 장난감회사 니치(Nici)가 파산했다. 이미 위기였던 상태에서 이 회사는 이 사업에 500만 유로를 투자했지만, 팬들은 인형에 관심이 없었다.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자된 사업들은, 몇몇 경기를 제외한 채 대부분 대중적 외면에 직면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한 예로 뮌헨에서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독일전통맥주인 바이스비어(Weissbier)도, 프랑크푸르트의 전통 사과술도 판매가 금지된다. 축구팬들은 후원업체의 상품인 코카콜라와 버드와이저만을 마실 수 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을 더 화나게 만드는 것은 정부가 약속한 것처럼 월드컵이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게 명백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월드컵으로 인해 창출되는 일자리는 단 몇 주의 고용에 국할될 뿐이며 급료를 받는 일도 매우 한정돼 있다. 경기장 내에 필요한 대부분의 작업은 무보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월드컵 스폰서 중 하나인 도이체 텔레콤은 3만 개의 일자리를 월드컵이 끝나는 다음 달에 없애기로 했다.

월드컵은 오고 또 간다. 그리고 수백만 유로는 부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대부분 노동자들이 그 값을 치르는 동안 이득을 보는 것은 몇몇 대중매체와 스폰서, 호텔, 카지노, 고급 레스토랑의 업자들일 것이다.

(번역=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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