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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일한 사치는 만년필…글은 피로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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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일한 사치는 만년필…글은 피로 쓰는 것" [리영희 선생님을 보내며] "Live simple, Think High!"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상징인 리영희 선생님이 결국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 선생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은 너무 잘 알려져 있기에 긴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잘 알려지지 않은 선생님의 숨겨진 측면을 개인적 일화를 중심으로 몇 가지 회상하면서 선생님을 보내드릴까 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뵌 것은 71년 박정희 정권이 발동한 위수령으로 대학을 잘려서 낭인으로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선생님 역시 통신사에게 해직되어 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대학 동기인 이근성 <프레시안> 고문, 김효순 한겨레 대기자 등과 한국일보 근처의 허름한 대폿집에서 자주 선생님을 모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영정 ⓒ뉴시스

그런데 하루는 선생님이 오셔서 어린애처럼 좋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시냐고 묻자 "이번에 원고료를 타서 처음으로 책상을 샀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해서 물어보자 좁은 집에 노모까지 모시고 사는데다가 생활도 어려워 집에서 글을 쓸 때 가족들이 밥을 먹는 작은 앉은뱅이 밥상을 식사 후 닦아서 책상으로 써왔는데 이번에 책상을 샀다는 이야기이었습니다.

<우상과 이성>과 같은 주옥같은 글들이 변변한 책상도 아니고 밥상에서 쓰였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너무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검소한 생활철학에 다시 한 번 존경심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의 철학이 "Live simple, think high!(사는 것은 소박하게, 생각은 높게!)"이라며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철학과 정반대로 물질문명과 소비의 시대 속에 "소비하고 사는 것은 높게 살면서, 생각은 너무 단순하고 낮게 하면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선생님의 그 말씀은 선생님이 여러 책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구체적인 지식과 문제의식 이상으로 중요한, 삶에 대한 가르침이었고 지식인이 살아가야 할 삶의 자세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살아가면서 개인적으로 물질적 유혹에 흔들릴 때면 항상 선생님의 그 말을 되씹어 보곤 했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말 뒤에 이어진 선생님의 또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호철아, 그래도 나도 사치가 하나 있어. 먹물의 사치인데 그것만은 못 버릴 것 같고 안 버릴꺼야." 궁금해서 목이 빠지며 선생님의 입만 쳐다보는 저에게 선생님은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그것은 글을 쓸 때 반드시 좋은 만년필로 쓰는 것이야. 난 죽어도 볼펜으로 글을 못 써. 글은 자신의 피로 쓰는 거야. 그러니 내가 직접 나의 피가 펜에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 보듯이 경건한 마음으로 잉크를 넣고 펜촉을 닦고, 잉크가 다 소모되면 내 피가 그만큼 나갔구나 생각하고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잉크를 넣고 해서 써야지, 어떻게 볼펜처럼 대량생산된 소모품으로 글을 써. 그리고 만년필 중 하필 좋은 만년필이어야 하는 이유는 글을 많이 쓰니 손목이 아파서 글이 잘 나가야 하기 때문이고."

선생님의 이 말씀은 두 가지 면에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하나는, 사치라고 해서 무언가 거창한 것이 나올 것인가 하고 기대했다가 기껏 만년필로 글을 쓰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시는 선생님의 검소한 생활방식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만년필로 글을 써야 하는 이유로 밝히신 그 이유, 즉 글은 피로 쓰는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글은 피로 쓰는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말입니까?

▲ 2003년 3월 국회 앞에서 열린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에 나와 발언하고 있는 리영희 선생. ⓒ프레시안(김하영)
노무현 정부가 정권 초기 이라크파병을 강행하고 있을 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으로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조직하면서 사안이 사안인지라 몸이 불편하신 줄 알지만, 댁으로 찾아가 "도와주십사"라고 부탁을 드려 선생님을 모시고 집회에 참석했던 기억이 납니다.

명동성당으로 향하는 차 속에서 예전에 함께 술을 들던 이야기를 하며 빨리 건강해져서 다시 약주를 함께 할 수 있기를 빈다고 하자 "와인 한잔 정도는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제가 사는 분당에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좋은 술집이 있어 한번 모시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이후 몇 번 뵈었지만, 그 약속은 거짓 약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가셨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은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Live simple, think high!"
"글은 피로 쓰는 것이다"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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