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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불편하고 내 그림자가 외로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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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불편하고 내 그림자가 외로운 이유 [이 많은 작가들은 왜 강으로 갔을까?]<8> 공선옥 소설가
산을 오른다. 동네 뒷산을 오른다. 시장 갈 때나, 마실 갈 때처럼 낡은 운동화를 신고 집에서 입는 옷을 입고 천천히, 산을 오른다. 뒷짐을 지고 오른다. 할랑거리며 오른다. 오르다가 적당한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앉아서 산을 본다. 산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 산에만 있는 것을 내가 볼 수 있고 산에서만 나는 소리를 내가 들을 수 있는 그 순간을 나는 최대한 즐긴다. 산과의 교감, 산과의 대화다.

뒤에서 푸푸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산을 달려서 올라오고 있다. 그의 몸은 날렵하다. 튼튼한 장딴지는 구릿빛이다. 신발과 옷은 내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전문가'의 것 같다. 산에서 체력 단련을 해야만 하는 운동선수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는 일종의 생활의 필요에 의해서 산을 달려 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지나가고 아주머니 두 사람이 산 아래서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로 이야기를 나누며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누구의 딸이 성형수술을 해서 몰라보게 이뻐졌더라, 누구의 아들이 서울대학에 합격했다더라,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먹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굳이 그곳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에 그들은 흠뻑 빠져 있다.

그러나, 걸음걸이는 나보다 씩씩하다. 지금 우리가 오르고 있는 산은 분명 마을 뒷산이다. 그리 높지 않다. 아무리 낮아도 산은 산이라서 그런가. 아주머니들은 산에 오르기 좋은 도구들로 '중무장'을 했다. 한 아주머니는 등산용 지팡이를 두 개나 들었다. 그들의 복장에 기가 질린 나는 그만 할랑한 내 모습에 스스로 기가 죽어 슬그머니 사람들 없는 곳으로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산 중간은 평평한 오솔길에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체력 단련'이라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몸짓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산 위에서 맥없이 넋 놓고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체력 단련에 부지런을 떠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대한민국 사람들 참 건강하다'였다. 너무 건강들 해서 나는 기가 질린다. 가까이 다가가 뭐라고 말을 붙일 엄두가 나지 않게 건강들 하시다. 건강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눈빛이 반짝반짝들 하시다.

좋은 일이다. 결코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불편하다. 산 아래서의 생활이 불편해서 산을 올랐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불편하다.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이 불만이란 말인가.

〈물새 우는 강 언덕〉이란 옛 노래가 있다. "물새 우는 고요한 강 언덕에 그대와 둘이서 부르는 사랑 노래……." 지금 그 고요한 강 언덕이 몹시도 시끄럽다. 강 언덕에서의 사랑 노래는 잠시 스타벅스에나 가서 부르라고 한다. 사랑 노래 따위 안 불러도 좋지만 강 언덕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은 어디 가서 살라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언덕들에 자전거 도로가 놓인다고 한다. 물을 가둔 강에 유람선도 띄운단다. 그러면 연인들의 사랑 노래는 이 강 언덕에 다시 울려 퍼지고 건강한, 대한민국 아저씨, 아줌마들은 더욱더 건강해지기 위하여 강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려고 몰려올지도 모르겠다.

아, 참 좋은 일이다.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데 무엇이 불만이란 말인가. 건강 좀 해지고 싶다는데.

ⓒ이상엽
고속버스를 탔다. 옆자리에 자유로 확장 공사장에서 일하는 김씨 성을 가진 아저씨가 탔다. 김씨는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낙동강 제방 쌓는 일을 했다고 한다. 제방을 쌓아야 물을 가뒀을 때 둑이 터지지 않으니까, 그 공사부터 했나 보다. 지금 보를 만드는 곳에 가서 일할까, 생각 중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물은 가두면 썩어요, 물은 흘러야 안 썩어요. 그런데 왜 물 썩는 일에 참여하려느냐 하니까, 우리는 내일 일은 몰라요, 당장에 먹고살려니까 하는 거지.

저녁에 돌아오는 길에 아홉 시 뉴스에서, 토지 보상금을 노린 낙동강 주변 가짜 비닐 하우스에 돈이 얼마가 지급됐다고 한다. 내일 일은 알지 못하고 책임질 일도 없는, 당장에 먹고살려는 생각만 있는 선량한 사람들, 보상금을 노리고 하우스를 설치한 불량한 사람들 말고, 또 누가 '고요한 강 언덕'을 시끄럽게 하는 일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일까.

그러나 4대강 사업장에 가서 일할 생각을 갖고 있는 김씨는 분명히 알고 있다. 물은 가두면 썩는다는 것을. 당장에 먹고살려고 그곳에 가려 하는 김씨를 탓하지는 말자. 다만 나는 묻고 싶다. 김씨도 알고 있는 것을 4대강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정 모르는가. 모른 척하고 싶은 건가. 나중에 그곳에 유람선이 띄워지고 자전거 도로가 생겼다 치자. 그래서 신나게 강바람을 가를 건강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도 나는 묻고 싶다.

우리가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 건강하게 살면 정말 행복한 것일까? 우리가 정말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 고요한 강 언덕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가 언제까지 희희낙락할 수 있을까. 희희낙락의 시간 뒤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 나는 오늘도 헐렁한 옷 어깨에 걸치고 뒷산을 오른다. 뒷산에서 운동기구에 매달린 사람보다 고요히 사색하는 사람이 그리워, 나는 건강한 사람들을 피해 저쪽 소롯한 길로 숨어든다. 내 그림자가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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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은 오늘 불면이다>(강은교 외 지음, 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아카이브 펴냄). ⓒArchive

그들은 왜 강으로 갔을까. 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파괴'의 현장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록했을까.

이제는 막바지로 치달은 4대강 사업에 관한 세 권의 책이 출간됐다. 고은 외 99명이 쓴 시집 <꿈속에서도 물소리 아프지 마라>(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이하 아카이브 펴냄), 강은교 외 28명의 산문집 <강은 오늘 불면이다>(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성남훈 외 9명이 참여한 <사진, 강을 기억하다>(이미지프레시안 기획)가 그것들이다.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문인들과 사진가들이 기록한 '강의 오늘'을 <프레시안> 지면에 소개한다. 오늘도 포클레인의 삽날에 신음하는 '불면의 강'의 이야기는 한 달여 동안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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