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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타결, 남은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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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진중공업 타결, 남은 과제는?

김진숙 "김주익 씨도 이렇게 걸어 내려왔으면…"

"주익 씨도 이렇게 걸어 내려왔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흰 모자를 쓰고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은 채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목에는 꽃으로 만든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땅에서 35미터 크레인 위로 올라간 지 309일만이다.

김 지도위원은 "309일 동안 한시도 잊지 못한 이름이 김주익, 곽재규"라며 "크레인에 있으면서 4도크를 제대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4도크는 곽재규 씨가 고 김주익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85호 크레인에서 129일간 고공농성을 하다 목을 매 숨지자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장소다.

김 지도위원은 "많은 이들이 309일을 어떻게 버텼나 물어본다"며 "85호 크레인에 있었던 일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시간들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 지도위원은 "이제 해고자 비해고자 구분이 없어졌다"며 "100프로 만족하지 못하지만, 저나 여러분 모두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왔다"고 이번 합의문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김 지도위원은 "오늘 이 시간으로 먼저간 동지들의 마음의 빛, 투쟁 중에 있었던 서로간의 앙금 씻어내고 갑시다"라며 "여러분 오늘부터 새로운 시작이고 출발이다"고 말했다.

▲ 김진숙 지도위원. ⓒ연합

금속노조 "이행강제금 3억 원? 별도합의로 취하하기로"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서 309일 째 고공농성을 벌여온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10일, 농성을 풀었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정리해고자 94명을 본합의를 체결한 날부터 1년 내에 재취업시키기로 하고 해고 기간 이전의 근속년수에 따른 근로조건을 인정하는 합의안을 냈다.

김 위원의 유례없는 '최장 기간 고공 농성'은 희망버스 등 일반 시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적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들을 가지고 있다. 일단 사법처리 등 김진숙 위원이 겪을 '후폭풍'의 문제와 사측이 '1년 내 재취업' 등과 같은 약속을 이행하는지에 대한 감시 문제 등이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앞으로 한진중공업 사태와 같은 정리해고 사태가 반복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도 과제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온 이후 언론에서는 김 위원이 이행강제금이 3억 원에 육박한다는 기사가 연달아 나왔다. 지난 1월 17일 법원이 김 지도위원에게 하루에 100만 원 씩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데 따라 현재 내야 하는 이행 강제금이 2억9800만 원에 이른다는 것.

그러나 금속노조 측은 "지난 1월 17일 건 관련해서는 한진중공업과의 별도 합의서에서 취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김연홍 금속노조 사무처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본 합의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지만 별도 합의서에서 취하하기로 했다"며 "본 합의문에도 '지부와 지회. 개인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는 최소화하기로 한다'고 적시했다"고 밝혔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합의문에서 "형사 고소·고발, 진정 사건은 노사 쌍방 모두 취하하기로" 했으나 김진숙 위원은 별도의 사법처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 업무방해와 집시법 위반은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 받을 수 있다.

경찰은 이미 업무방해 혐의로 김 지도위원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경찰은 김 지도위원과 농성을 함께한 문철상 금속노조 부산양상지부장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김진숙 지도위원은 타워크레인에 내려와 정문 밖을 나간뒤 대기하고 있던 부산지방경찰청 관계자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계자와 함께 부산 동아대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김진숙 씨의 건강이 회복된 이후 건조물 침입 및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조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김 지도위원도 이번에 복직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 위원은 1981년 대한조선공사에 여성 최초 용접공으로 입사했다가 1986년 상사명령 불복종, 회사명예 실추 등의 이유로 해고됐고, 이후 대한조선공사가 한진중공업으로 통합됐다.

이후 2003년 김주익 씨가 크레인에서 목을 매고 사망한 뒤, 이전에 해고된 자들이 모두 복직됐으나 유독 김진숙 지도위원만은 한국경영자총협의회에서 반대해서 복직하지 못했다. 김 지도위원은 이번 합의문에서 밝힌 재고용 대상자가 아니다.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정리해고법

ⓒ연합
한진중공업 문제는 사실상 김진숙 지도위원의 힘으로 해결됐다. 하지만 문제를 일으킨 근본원인인 정리해고법이 앞으로도 이런 문제를 또다시 일으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97년에 통과된 정리해고법은 회사가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있을 경우,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구조조정을 합법화한 것이다. 하지만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라는 이유가 사용자에 의해 오용·남용되고 있다는 게 이번 한진중공업 사태에서 입증됐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진중공업은 생산직 노동자의 3분의 1인 400명 정리해고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 사주일가는 174억 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그럼에도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결국 현재 정리해고법은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은 "사실 우리나라의 정리해고법은 독일에서 그대로 가져온 법으로 해외 선진국과 거의 비슷하다"며 "경영상 긴박한 위기를 정리해고의 이유로 삼고 있는 나라는 많다"고 설명했다.

은 연구원은 "하지만 선진국의 경우, 한국처럼 정리해고를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그 원인은 한국처럼 해고에 있어 경영자의 입장을 배려해주고 옹호해주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은 연구원은 "해외의 경우, 경영자가 정리해고를 하려 하면 쉽게 하지 못한다"며 "'경영상의 긴박한 위기'라는 요건이 제대로 갖춰줬는지 세밀하게 살펴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 연구원은 "우리가 정리해고법안을 카피해 독일의 경우는 단체협약을 통해 정리해고법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며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노조와 오랜 시간 대화하고 이야기한 뒤 충분히 노동자를 설득하고서야 정리해고를 실시한다"고 주장했다.

은 연구원은 "또한 제 3자까지도 개입해, 주식 배당은 어떻게 했는지, 부동산 매입은 했는지 등 경영상의 모든 세부 사항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법안에 게재된 '긴박한 위기'라는 걸 충분히 입증하는 시간이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은 연구원은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유럽처럼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를 입증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과 정리해고 문제를 단체교섭 대상에 포함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요식행위로 전락한 정리해고법,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정리해고법은 해고를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요식적 절차로 변질됐다"며 "지금의 기업은 시도만 하고 이렇게 했으니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겠다는 식으로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결국 기업에게 면죄부를 주는 식으로 정리해고법이 쓰이고 있는 현실"이라며 "말 그대로 신중하게 법이 집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리콜, 즉 재고용을 제시하며 "어쩔 수 없이 경영상의 이유로 구조조정을 했다면 나중에 경영이 정상화 될 경우, 다시 해고자를 뽑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말 그대로 사람을 갈아치우는 식(정규직을 정리해고 하고 그 자리에 비정규직을 앉히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진중공업과 같은 대규모 싸움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장은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권 위원장은 지난 10월 12일 열린 토론회에서 정리해고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4가지 요건으로 △해고를 하지 않으면 기업경영이 위태로울 정도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존재할 것(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경영방침이나 작업방식의 합리화, 신규채용의 금지, 일시 휴직 및 희망퇴직의 활용 등 해고 회피를 위한 노력을 다했을 것(해고 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설정하여 이에 따라 해고 대상자를 선별할 것(해고 대상자 선별의 합리·공정성)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측과 성실한 협의를 거칠 것(사전 협의 절차))을 소개했다.

이 자리에서 권 변호사는 "초기 대법원 판례는 4가지 요건을 갖춰야만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했으나 최근에는 4가지 요건 중 핵심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요건을 사용자의 '경영상 인력감축의 필요성' 내지 '합리성' 정도로 격하시키고, 특히 4가지 요건 각각에 대한 준수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전체적·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객관적 합리성과 사회적 상당성을 지녔으면 그 정리해고는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는 등 정리해고 기준을 완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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