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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알바생이 회장님을 고발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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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알바생이 회장님을 고발한 까닭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11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작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1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프레시안>은 당선된 작품을 지면에 싣는다. <편집자>

다시, 커피숍

"몇 개월 정도 일할 수 있어요?"

벌써 네 번째 매장이다. 작년 초에 처음 접한 커피숍 일을 시작으로, 마포와 종로 그리고 서대문을 거쳐 강남에 이르렀다. 소위 '알바'로 폄하되곤 하는 이 직업으로 안정 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에는 너무 많은 변수들이 작용했다.

잦은 이직에 대한 구차한 변명을 찾자면 이 정도이다. 서대문에서 일했던 매장에서 어처구니없이 해고 된 이후 속세의 노동에 번뇌를 느낀 나는 '노무사 시험'을 핑계로 부모님의 등골을 빼먹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렇게 누린 특권 또한 오래가지 못했는데, 이는 나의 주민등록번호 앞 두 자리에 기인한다.

'죄송합니다. 귀하는 원서접수 자격이 없습니다. (만 20세 미만)'

세상에나. 노무사 응시에 연령이라는 자격제한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물학적 나이에 비해 삭은 외모 탓에 '나는 어리다'라는 감각을 잊고 산 까닭도 있지만, 아우 씨… 더 이상 생활비와 교육비를 부모님께 의존할 근거가 사라졌다. 오비 골든라거 한 캔으로 몽롱해진 감수성을 달래고 곧장 구인구직 사이트를 전전했다. 조건이 맞는 매장을 발견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같은 날 저녁에 바로 면접을 봤다.

"8시간 씩 주 5일 괜찮겠어요? 이 정도면 월 75만 원 수준이네요."

이 바닥이 으레 그렇듯, 나의 시장가치는 '최저임금'으로 책정 되었다. 대단히 소박한 시급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 40시간 풀타임 노동 또한 덜컥 받아드렸다. 생활임금 쟁취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명제는, 나란 존재를 통해 경험적 진리치를 확보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75만 원이라는 금액이다.

올해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받는 풀타임 노동자의 월 급여는 90만 원 수준이다. 그런데 나는 왜 '요로코롬한' 금액을 통장에 찍어 받아야 하는 것일까? 이는 근로기준법 55조에 기인한다. 한국의 노동자는 일한 시간에 시간당 급여를 곱한 금액을 월급으로 지급받지 않는다. '유급휴일'이라는 '간지'나는 개념에 근거하여, 하루는 돈을 받으면서 쉬게 된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임금을 주휴수당이라 부른다. 어쨌든 결론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유급휴일'의 권리에서 배제 된 것이다. 혹자는 알바생이 무슨 근로기준법이냐며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근로기준법에서 '알바생'의 권리를 별도로 규정하여 차별대우 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문한 탓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유급휴일이 배제 된 불합리한 계약 조건을 받아드렸다. 나뿐만 아니라 이 바닥에서 일하는 철수와 영희, 편의점에서 일하는 짱구와 훈이, 더 나아가 청년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만국의 떨거지들 모두가 이러한 조건 속에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고통 받고 있다면 사회적 모순이지만, 이 명분을 예리한 검으로 휘두르기 위해선 약간의 준비가 필요했다.

ⓒ뉴시스

원두의 미래를 고민하다.

유급휴일의 개념은 내가 속해 있던 노동조합의 구성원들에게 확산 되어갔다. 전태일 사후 40년이 지난 선진 일류국가에서 가장 기본적인 노동법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몰골이라니. 실제로 홍대에 위치한 커피빈에서 5개월가량 근무한 한 조합원은, 자신이 지급받지 못했던 주휴수당을 점장에게 청구하기에 이른다.

지난한 과정 끝에 그녀는 약 50만 원의 체불임금을 돌려받았다. 커피빈의 한국 상륙 20년 역사상 최초로 주휴수당을 지급받은 파트타이머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자신 뿐 아니라, 같은 매장에서 일했던 동료들의 권리를 되찾아 주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으나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유급휴일 개념이라는 성령을 내려 받은 일부 조합원들의 권리찾기를 넘어, 21세기 전태일들의 권리장전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우리들은 남아도는 잉여력을 발휘한다.

청년들의 권리장전을 위해서는 범우주적인 철학을 담은 팀이 필요했으며, 그 결과물은 위와 같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는 매장에서, 공정하지 못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한국의 청년들을 위해, 급기야 우리는 원두의 미래를 고민하기에 이른다. 자라나는 미래 세대의 청순한 임금을 삥땅쳐가며, 매 년 수천억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커피 업계의 만행은 우리들의 전투력을 극대화 시켰다.

아울러 '한 놈만 패라'는 패싸움의 기본 원리 또한 철저히 반영 되었다. 패싸움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놈들이 임금을 떼어 먹고 있다는 '심증'을 뒷받침할 '물증'이 필요했고, 우리는 실태조사에 착수 했다.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 보고 연락 드렸어요."

유비쿼터스를 체화하며 자라난 우리들은, 실태조사를 위해 발로 뛰는 대신 수화기를 든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포털에서 조건에 맞는 매장을 선정하여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수다를 떨다가, 마지막으로 '주휴수당'의 지급 여부를 확인 한다. 답은 뻔하다.

"그게 뭐죠? 저희는 그런 거 없어요."

확인 된 매장은 곧장 스프레드 시트의 데이터로 입력된다. 우리는 이런(이딴?) 식으로 7개 주요 커피숍 프렌차이즈, 250여 개 매장의 조사를 완수했다. 충격적이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약 80%의 매장에서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었으며 여기서 발생한 체불임금은 최소 200억 원에 달했다.

실태조사 이후의 치열했던 패싸움 과정은 구태여 길게 서술하지 않겠다. 결론만 짧게 읊자면, 우리는 대한민국 청년 노동자들을 대신하여, 17%의 임단협을 대한민국과 체결했다. 협약 비준은 우리 마음대로 날치기 처리했으니, 최고 권력자의 의지를 담은 서명 한 자락이면 전국적으로 발효된다.

비하인드 절망

주휴수당 사업의 일환으로, 나는 내가 근무하던 가맹업계의 회장을 고발했다. 그냥 나 혼자 진정서 들고 쫄래쫄래 노동청에 접수해도 그만이지만, 거창하게 보도자료도 뿌렸다. 보다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여 언론사에서 받아 적도록 하기 위함이었음을 고백한다. 특정 개인이 '50만원' 상당의 체불임금 진정절차를 밟는 것에는 아무런 자극이 없지만, 알바생이 회장을 고발했다는 스토리텔링을 입히면, 나름의 충격과 공포가 된다. 이 사태도(?) 결과적으로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하는 일로 회상되지만, 나에게는 버거운 절망이 함께 했다.

주휴수당을 지급하라는 선한 목적이, 이를 성취하기 위해 사용 되는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수단들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이 역사가 깊고 무식한 질문은, 원두의 미래를 고민하는 모임이 탄생하고, 수화기를 들고, 사장을 고발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정당하지 않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대단히 의심스러운 수단까지 동원하는 '가카'와 그의 친구들을 비추어 봤을 때, 세상 편한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이 답이 없고 너저분한 물음표 앞에 인간이란 존재의 한계를 느끼고, 주님의 품으로 귀의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겐 종교가 없다.

수단이 의심스러울지라도 목적이 정당하다면, 돌파는 불가피하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좋다. 백 번 양보해서, 설령 주님의 음성이 내려오지 않을 지라도, 우리의 길이 온전히 옳다고 치자. 그렇다면 정의로운 목적이 실현 되어야 한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공정하게 나누고, 진정한 법과 원칙을 실현하며, 더 나아가 개념 없는 자본의 폭주에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 이 길이 열려야 한다. - 허나, 우리의 행보로 인해 고통 받을 이는 대체 누구인가?

"이것은 마치, 뒤에서 칼을 맞은 느낌이에요…."

주휴수당 사업 과정에서 마주한 가맹 사업주의 떨리는 목소리 앞에, 나는 진정으로 길을 잃었다. 자본이라는 실체 없는 유령에 고통 받고 상처 입은 것은 이들 또한 마찬가지 아니던가. 탐욕으로 압착 된 대지의 임대료에 신음하고, 갑을 관계로 형성 된 불공정 가맹 계약 조건 속에서, 하루의 절반을 노동하지만 자신의 인건비조차 빠듯한 이들은, 그 잘난 '사장'이라서, 상처 입어도, 괜찮은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속 편한 명제 아래, 이들의 고통을 묵인하여도, 정녕, 괜찮단 말인가?

슬프게도 자본은, 청년 노동자들에게 알량한 주휴수당 몇 푼 얹어준다 할지라도, 그들의 순이익을 보전할 수많은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가맹 점주들에게 제대로 된 노동교육 한 번 제공한 적 없으면서, 가맹 매장에서 발생한 임금 체불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물가 상승이라는 거창한 '쉴드'로, 유통 마진을 극대화 시킬 수도 있다. 리베이트로 선정 된 인테리어 업체의 제안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일은, 정말 일도 아니다.

직영 매장 근로자와의 근로계약을 '불이익 변경' 함으로서 자신들의 이윤을 보전할 수도 있다. 고등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나의 대가리에서 나오는 꼼수가 이 정도라면, 경영학을 전공하고 이윤률 극대화를 교육 받은 자본이 구사할 수 있는 꼼수의 경지는 대체 어디까지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정치 사이에는 협소한 오솔길만이 기다리고 있다 했던가. 이는 대단히 낙관적인 평론이다. 그대가 인간이라면, 정의와 상식으로 나아가는 가는 경로에는 어설픈 오솔길조차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며, 절망으로 나아가는 경로에는 하이패스가 설치 된 고속도로가 보일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막대한 주류소비를 통한 간접세 지출로 국민의 의무를 다할 것이며, 때로는 깊은 심연에서 습기에 찬 당신의 안구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을 목도하는 야만의 제도가 폐지되었다는, 3000명의 청년 노동자의 가슴에 5억 원이 돌아갔다는, 서울의 미래가 승리하였다는, 여의도 한복판에 정의를 갈구하는 5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는, 309일의 절망 끝에 그녀가 내려 왔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어찌 희망을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절망의 근거가 막중하고, 희망의 근거가 소박할 지라도, 이 길로 나아가자. 길이 없다면 만들어 나아가자. 지친 우리들의 어깨 위에 시대와 인간의 정신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건투를 빈다.

* 원제는 <원두에서, 희망으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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