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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자본주의, 그 악마성을 쏘다 to 재능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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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자본주의, 그 악마성을 쏘다 to 재능교육 " [세상이 'J'에게·②] "재능노동자의 승리를 믿는다"
재능교육 학습지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노동권을 찾고자 거리로 나선 지 2012년 1월 28일로 꼬박 1500일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서울 한 복판, 시청광장에서 보이되 보이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 오랜 한뎃잠에 몸도 마음도 축이 나고, 바닥의 한기도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언제까지 이들이 풍천노숙을 해야할까. 재능교육 노동자들을 위해 많은 이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프레시안은> B급 좌파가, 작가가, 노동운동가가, 청년이, 혹은 당 대표가 그들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릴레이로 싣는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재능out 국민운동본부에서 공동으로 기획했다. 그들이, 혹은 세상이 재능노동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편집자>


너무도 추웠다. 겨우 한 시간 서서 강연을 하는데 나중에는 뱃속까지 냉기로 가득 차 뱃가죽이 후들거려 제대로 발음조차 할 수 없었다. 혹한의 거리 강연에 대비해 내복도 단단히 챙겨 입었건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12년 1월 10일 시청 앞 텅 빈 광장과 거리는 너무도 추웠다.

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 한여름 현기증 나는 더위 속에서, 전기시설도 없는 맨 바닥 얇은 천막 속에서 1500일을 농성해 온 재능노조 조합원들에게 부끄러워서 더 떨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요구는 대단히 단순하다. 당신들이 노동자로 고용했으니 정상적인 노동자로 대우해 달라는 것뿐이다. 엄청난 임금인상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호화로운 근로조건을 요구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철벽같은 교육재벌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이들을 거리로 내몰아 버렸다. 어린이들과 그 부모들 앞에서는 한껏 자애로운 미소로 학습지를 팔아먹으면서 뒤로는 깡패용역들을 고용해 그 알량한 천막을 때려 부수고 고소고발로 목줄을 조였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1500일째 물러나지 않고 싸우고 있는 이들 앞에서,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고층빌딩 매서운 골바람에 흔들리는 천막 속에서 밤을 지새우는 이들 앞에서 단 한 시간 만에 추위에 항복해 버린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더 떨었을 것이다.

▲'재능교육OUT 국민운동본부'가 28일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학습지노조 및 재능교육지부 조합원들에 대한 압류 및 경매에 대해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노동자 투쟁의 역사 100년

재능노동자들이 추위보다 더 뼈에 사무치는 분노에 치를 떨며 밤을 지새우는 이 서울거리에 처음 노동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백 년 전이다.

당시만 해도 자본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박한 초창기 모습을 띠고 있었다. 서울 4대문 안의 인구는 이십만을 넘지 못했고 노동자의 숫자는 수천 명밖에 되지 않았다. 자본의 규모는 오늘의 중소기업 수준도 되지 않아서 가장 큰 공장이라야 수백 명, 대부분 수십 명 이하의 소공장들이었다. 해방될 때까지도 인구와 노동자 숫자는 크게 늘지 않았다.

노동력 착취 역시 지금처럼 세련된 악마의 모습을 띄기보다, 단순무식한 야만성에 의존하고 있었다. 농촌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처녀 총각들을 꼬여서 감금하다시피 가둬놓고 하루 쌀 한 되도 안 되는 저임금과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 복지나 안전대책 같은 것은 알지도 못했고 상상하지도 않았다.

노무관리라는 개념조차도 없었다. 오늘의 대자본가들처럼 악마적이도록 세련된 관리기법 따위는 갖지 않았기 때문에 파업이나 농성이 일어나면 뒤로 물러나 일제경찰에게 의존하는 식이었다. 대신 일제경찰과 그들의 주구가 된 조선인 형사들이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으로 이들을 다스렸다. 노동운동가 중에 일제경찰의 고문으로 죽거나 후유증으로 옥사한 이의 숫자는 60명에 이른다.

착취방식 진화의 결과, 특수고용노동자

보다 시간을 앞당겨 2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자본가들의 노무관리는 기본적인 원시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일단 회사에 입사하면 경비원이든 청소부든 식당 아줌마든 누구나 정규직 사원으로 대우했다. 대신 오늘날의 비정규직과 대동소이한 수준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부여했다. 또한 파업 농성이 일어나면 경찰을 동원해 파괴하고 사무직원들에게 구사대를 만들게 해서 폭력을 휘둘렀다.

1987년 6월 항쟁과 7,8월 대파업으로 시민과 노동자의 민주주의적 권리가 급속히 향상하면서 자본가들도 비로소 급속히 진화하기 시작했다. 잘 단결된 소수 대규모 노동조합의 존재는 인정하되 나머지 대다수 조직화되지 않은 힘없는 노동자들의 권리는 그대로 묶어두거나 오히려 저하시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정책이 그 시초였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효과적인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노동자의 비정규직화와 소사장제, 생산라인의 외주업체 분할,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도입, 복수노조,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중지 등이었다. 재능교육을 포함한 학습지노동자들 같은 특수고용직들의 경우는 개개인을 소자본가로 분리해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을 빼앗아버리는 희대의 정책까지 고안해 냈다.

과거 어느 시대에도 보지 못했던 이 온갖 가지의 새로운 착취방식은 실로 놀라운 효과를 가져왔다. 노동조합은 무기력해지고 다수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근로조건은 87년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놀라운 성과였을 것이다.

1500일을 싸워도 눈 하나 깜빡 않는 자본

자본의 이 경이로운 진화는 자본으로 하여금 오늘의 노동계를 거의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재능노동자들이 1500일을 피를 토하며 외쳐도, 다른 현장에서 밀려난 수많은 노동자들이 짧아도 1년, 길게는 수년씩 싸워도 저들은 눈 하나 깜빡 않고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진화한 노무정책으로 노동자들을 산산이 나눠놓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선구적 노동자들이 아무리 목이 터지게 외치고 매를 맞으며 희생해도, 대다수 현장 노동자들은 자본이 쳐놓은 금지의 선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 채 하루하루 비굴한 나날을 굴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 대자본들의 규모는 생산력의 발전을 훨씬 뛰어넘게 성장했다. 또 그 생산기술 역시 너무 빨리 발전해 소비자들이 뒤따라 갈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자본의 축적보다, 생산기술의 발전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진화한 것은 자본의 노무관리 기법이었던 것이다.

자본의 대역습 앞에서

반면 노동운동은 사실상 거의 진화를 하지 못했다. 과학기술보다 더 앞서 진화하는 노무관리를 따라잡기는커녕, 고작해야 백 년도 훨씬 넘은 시대의 원전들을 읽는데 그치거나 아예 그것조차도 공부하지 않고 당장의 이해싸움에만 급급했다. 그리고 사실상 철저히 패배해 버렸다.

적어도 현재상황은 그 어떤 노동자단체도 자본을 위협할만한 총파업을 조직해 낼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총파업은커녕 노조전임자들의 임금지급 문제며 복수노조법을 악용한 어용노조 설립으로 진퇴양난에 싸인 노조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의 상황에서 나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명확한 지침과 전망을 갖고 있다고 자신하지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87년 대파업으로부터 95년 민주노총 건설까지가 노동자의 대공세 기간이었다면, 이후로부터 지금까지는 완전히 자본의 대역습에 처절히 패배하고 있음을 누가 부인할 것인가?

재능노동자들의 승리를 믿으며

하지만 재능교육의 투쟁이 빛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이 어렵고 고달픈 수세기에,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재능노조 조합원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

비록 지금은 자본의 대역습에 밀리고 있지만 노동계급은 반드시 자신의 권리를 전취하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서울에서 활동했던 노동운동조직 '경성트로이카'의 강령 중에는 하루 7시간 노동이 명시되어 있었다. 국민의료보험 실시, 국민연금실시, 퇴직금 실시, 남녀차별 금지가 명시되어 있었다.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 차별대우 금지까지 요구되었다. 그 대부분의 요구가 오늘날에는 현실이 되어 있지 않은가?

자본의 대역습은 이제 겨우 십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한동안 더 당하더라도 결국은 노동자의 대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자본가들도 승승장구 희희낙낙할 일만은 아니다. 만일 이대로 처참히 밀리기만 한다면 극한적인 빈부격차와 인권후퇴로 결국에는 폭동이 일어나 모든 것을 뒤집어엎게 될 것이다.

아주 빠른 시간은 아닐지라도, 대반격을 통한 승리냐 아니면 폭동이냐 하는 기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자본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자본의 그 진화하는 악마성은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재능노동자들의 외침은 그 악마성을 향한 작지만 강력한, 매서운 화살이다.

재능노동자들의 최후 승리를 굳게 믿고 응원한다. 뜨거운 마음의 성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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