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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의 서울, 익숙한 것과 결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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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뉴타운의 서울, 익숙한 것과 결별하자" [인터뷰] 취임 100일 맞는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 일성은 "시민이 권력을 이겼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다"였다. 변화의 열망을 안고 당선된 박 시장이 2월 3일이면 취임 100일을 맞는다.

취임식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했고, 최근엔 트위터로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경호동 폐쇄를 검토해달라는 시민의 요구에 "알아보라고 지시했다"고 답변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서울역 노숙인을 위한 온돌을 설치하는가 하면 서울시와 산하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발걸음마다 화제가 됐음에도 "뚜렷한 게 없는 시장으로 남고 싶다"고 한다. 덧붙여 "그럼에도 시민들의 삶은 윤택해지고 서울은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싶다"고 한다. 박원순다운 겸손과 욕심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뉴타운 문제가 그렇다. 지난 30일 서울시의 뉴타운 대책 발표 뒤 어느 큰 신문은 '박원순식 뒤집기'라고 1면을 뽑았다. 전임 시장들의 정책을 무리하게 갈아엎는 게 아니냐는 투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 그 신문도 인정한다. 뉴타운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엔 주민들 간의 반목만 남아있다. 출구전략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취임 100일에 즈음해 박 시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밝힌 뉴타운 대책은 본격적인 박원순식 서울 시정의 시발이자 변화의 풍향계다. 뉴타운 문제에 관한 고민과 박원순식 해법을 직접 만나 들어봤다.

▲ 박원순 서울시장. ⓒ프레시안(최형락)

"벌써 한 10년 된 듯하다"

프레시안 : 2월 3일이 취임 100일이다. 그동안 시정의 이모저모를 둘러본 소감이 어떤가?

박원순 : 벌써 10년은 된 듯하다. 지금은 글쎄, 감흥이 많이 사라져버렸다.(웃음)

프레시안 : 길게 느껴진다는 뜻인가.

박원순 : 그런 말도 되겠고, 이미 많이 적응됐다는 거 일수도 있다.

프레시안 : 많은 일을 해왔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고충이 많았을 텐데, 가장 큰 고민거리를 스스로 뉴타운이라고 했고, 오늘 그 고민의 결과가 나왔다.

박원순 : 서울시장의 고민은 서울시민의 고민이다. 아마도 단일 사안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서울시민에게 미치고 있는 게 주택문제다. 그 중에도 뉴타운 문제의 영향력이 제일 크다. 뉴타운은 자신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뿌리를 흔드는 문제다. 당연히 가장 많은 민원이 온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하기도 하다. 시장으로서도 가장 큰 고민이다.

프레시안 : 뉴타운 출구전략을 발표하며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추후 갈등을 각오하고 있다는 뜻일텐데.

박원순 : 너무나 많이 일이 벌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어렵다. 그러니 현재 상황에서라도 어쨌든 정리를 해야 한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정리한다고 없던 것처럼 만들 수는 없다. 나에게도 그렇고 서울시민에게도 그렇고 100%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선을 다해 가능하면 서울시민, 서민들이 덜 고통 받도록 하는 게 내 책무라 생각한다.

프레시안 :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세입자, 원주민 대책에 방점이 찍힌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 출구전략을 설명한다면?

ⓒ프레시안(최형락)
박원순
: 기본적으로는 주민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과거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뉴타운 사업을 결정했던 게 많이 있다. 이에 공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서울시가 정확한 판단을 돕기 위해 실태조사를 진행한다. 그걸 토대로 정확한 정보 제공하겠다는 게 이번 발표의 핵심이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고 주민들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주민 다수가 하겠다고 하면 하는 거고, 해제하겠다면 해제하는 쪽으로 지원한다. 더 나아가 해제할 경우, 서울시는 주거의 개선을 위해 인프라 설치를 지원한다. 내가 말해온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을 새로운 대안 개발로 추진한다.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는 쪽이라도 가능하면 세입자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과거보단 더 많은 분들을 임대주택으로 모시고 싶다.

프레시안 : 문제는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다. 소위 매몰비용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박원순 : 명확한 우리 입장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우선 매몰비용이 적지 않은 비용이라 서울시가 선뜻 대겠다고 하긴 어렵다.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진 단계까지는 우리가 부담한다. 법률에도 그렇게 돼 있다. 그건 하겠다. 그러나 조합이 결성된 이후의 경우는 사실 액수가 많고, 경우에 따라선 조합의 도덕적 해이 문제도 있다. 우리가 비용지불능력도 충분하지 않지만, 있다 하더라도 그 비용을 서울시가 부담하는 게 맞는지는 더 많은 연구와 중앙정부와의 협력이 있어야 된다.

또한, 매몰비용 관련 부풀려진 부분은 없는지 정확한 조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 비용으로 부담하는 게 좋으냐 하는 부분도 고민해야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실태조사가 되어야 한다. 사실 (오늘 발표한 내용을) 출구전략으로 고민한 게 얼마 되진 않았다. 계속 추진하는 쪽에 무게중심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워낙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다보니 출구전략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출구전략에는 일몰비용 문제가 중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정치권과 중앙정부의 역할을 당부했는데, 교감이 있었나?

박원순 : 중앙정부와는 실무단위에서 계속 대화를 하고 있다. 특히 이번 도정법 및 도촉법 개정 과정에서도 서로 논의를 한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작년 연말에 개정된 법안은 불충분하다. 그래서 고민이 깊었다. 서울시가 가장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이라도 만들어서 해제가 가능한 근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동의해서 법안이 만들어지긴 했으나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간 서울시 도시계획은 잘못됐다"

프레시안 : 중앙정부가 매몰비용 문제에 적극적으로 화답하지 않으면 이번 대책은 사실상 선언적 의미 이상이 되기 어려운 것 아닌가?

박원순 : 그렇지 않다. 우리가 제시한 것으로도 큰 변화가 있다. 어마어마한 변화다. 지금까지 뉴타운을 해제한 경우는 없었다. 무조건 가는 쪽이었다. 이미 결정됐고, 추진위가 생기고 조합이 생기고, 착공단계로 가는 등 모두 단계에 맞춰 착공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것을 선회하는 방향을 제시했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게 나왔다.

오늘 발표한 것 중에 중요한 것은 실태조사다. 그동안 이게 없으니 온갖 부정, 비리로 얼룩져서 시민들은 뭔지도 모르고 뉴타운을 동의했다.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기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조합에 대항해 비대위를 구성한다. 그러면서 주민 간 갈등이 조성됐다. 이젠 서울시가 전문가들과 함께 정확한 실태조사를 해서 부담금이 얼마나 되는지 진실을 알려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새로운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장한 것이다. 그리고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면 해제하고, 추진위의 경우, 서울시가 매몰비용을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이건 어마어마한 변화다.

프레시안 : 작년 도정법 개정에도 불충분한 부분이 있다고 했으니, 추가적으로 필요한 개정 사항이 있다면?

박원순 : 비용문제가 첫째다. 그 외에도 해제의 여건을 조금 더 완화시키는 것도 포함돼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조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렇게 하겠지만, 모법 자체도 조금 더 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다시 투표를(찬반투표) 해서, (진행된 사업을 해제하는 것으로) 바꾼다는 게 쉽지 않다. 그것을(반대 비율) 낮춰줘야 해결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뉴타운이 여러 문제를 낳긴 했지만 이전의 서울시가 수년에 걸친 도시계획에 의해서 진행한 사업이다. 주민 의사에 따라 해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전반적인 도시계획의 큰 틀이 어그러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박원순 : 며칠 전에 헬리콥터로 서울시를 돌아봤다. 나는 과거의 도시계획이 제대로 됐던가, 서울의 미래 발전에 충분할 정도로 제대로 된 계획이었나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의문에 스스로 확인을 했다. 지금의 뉴타운형 재개발 사업은 너무나 획일적이고 꼭 같은 형태의 성냥갑 아파트 사업이었다. 이 사업으로 주택의 측면에서, 시민의 삶에서, 도시 경관에 있어 좋아졌나.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런 것이 일부 중단됐다고 도시의 미래가 나쁜 방향으로 간다고 보진 않는다. 이 문제는 과거에 저질러진 문제를 어떻게 하면 시민의 고통을 줄이고, 그러면서 도시의 미래에 부담이 덜 가는 방향으로 마무리를 짓느냐의 문제다.

또 한편으로 서울시의 거대도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과거에 제대로 안 돼 있었고, 부족했고 미완이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생각한다. 적극적으로는 새로운 플랜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도시에 대한, 도시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과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전문가들이 '슥슥' 만들었던 플랜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고민해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과 고민하는 과정, 이른바 2030에 대한 플랜을 구상하고 있다. 시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과정을 설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의 확장으로 도시 갤러리, 박물관을 만들 생각이다. 베를린 시청 별관에 있는 도시 갤러리를 본 적이 있다. 싱가포르에서도 봤다. 그보다 더 잘 된 게 북경 도시박물관이다. 거기는 북경시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고 시민들이 다 볼 수 있게 해놓았다. 예를 들어 한강변에서 동작대교를 지나면 뭐가 있는지를 다 알 수 있도록 세밀하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높낮이도 다 확인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산과 강과 주거지가 어우러진 걸 다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거다. 이를 보면서, 시민들은 '도시가 어지럽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서울시가 어떻게 가야 할지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런 도시계획을 고민한다. 서울시민의 비전과 수준, 품격이 그 도시의 품격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걸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시민 전체와 학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50층 건물이 낡으면 100층으로 더 올릴 건가? 그건 아니다"

프레시안 : 박 시장이 말하는 도시에 관한 새로운 상상력은, 뉴타운에 대입해보면 해제되는 지역을 어떤 계획을 가지고 바꾸어 낼 것이냐의 문제일 듯 하다.

박원순 : 도시정비사업은 한꺼번에 마치 전쟁하듯이 다 파괴하고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과거 역사성을, 또는 공동성체성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 예컨대 두꺼비하우징 같은 경우는 마을을 개선하는 것 아닌가. 또 그런 과정이 마을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 지금은 대기업 삼성물산, GS건설 등 이런 곳에서 뉴타운 공사를 한다. 하지만 두꺼비하우징은 동네회사가 한다. PVC관이 필요하면 동네 상점에서 산다.

그러면 동네 경제가 활성화 되고 동네 일자리가 생긴다. 이런 발상으로 도시정비사업이 진행돼야 한다. 물론 여기에서 주민들이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길을 낸다든지, 어린이집을 만든다든지, 도서관을 만드는 등의 일은 서울시가 부담해야 될 내용들이다. 그러면서 집도 업그레이드되고 창의적인 건물들도 생겨난다. 이렇게 되면 도시가 정말 정겹고 아름답고, 생산력이 되살아나는 공간으로 재건축된다.

프레시안 :마을만들기, 두꺼비하우징 등은 박 시장이 선거운동을 하면서부터 상당히 강조점을 뒀던 의제다. 하지만 그게 시민운동을 한 박 시장에겐 익숙한 개념인지 모르지만, 일반 시민에겐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 낯설다.

ⓒ프레시안(최형락)
박원순
: 당연하다. 지난 세월동안 우리가 적응한 건 '빨리빨리'였다. 성장주의, 탐욕에 기반한 전면 철거, 전면 건설. 이런 것에 적응해왔다. 그리고 아파트 문화에 적응했다. 나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선 우리가 익숙해왔던 것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익숙한 것이 계속되면 앞으로 계속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50층으로 지어진 아파트를 나중엔 어떻게 할 것인가. 100층으로 높이나? 더 높일 수 없다. 지금은 상향하면서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론 이런 방식에 경비가 더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불가능하다. 지속가능한 주택개발이나 도시의 모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임대주택 8만호 공급을 약속했는데 한편으론 SH공사 부채를 7조원 가량 줄이겠다고 했다. 상충하는 것 아닌가? 혹은 두마리 토끼를 잡을 묘안이 있다면?

박원순 : 그래서 어려움도 많다. 여러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우선 부채를 줄이는 건 우리가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물론 SH공사 부채는 소유 물량을 팔면 된다. 하지만 우리가 그걸 함부로 팔면 안 된다. 강서구 마곡지구의 경우, 최고로 좋은 땅이다. 88도로와 연결됐고, 인천공항, 김포공항과도 바로 연결된다. 비싼 값에 팔면 몇 조원은 금방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곳이 서울시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기능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결국 이게 두 마리 토끼가 되는 거다. 공약만 달성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건, 우리 다음 세대까지 제대로 된 서울을 만드는 것이다. 그걸 위해 고민하고 있다.

물론 부채를 줄이기 위한 창조적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땅을 팔아서 채무를 줄이지 않을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고 있다. 서울시는 세수가 고정돼 있다. 거기에 맞춰 중앙정부가 준 걸로 살림을 해왔다. 세수를 늘릴 수 없나를 고민하고 있다. 그것의 결과가 38기동대다. 헌법 38조가 납세의 의무다. 거기서 따왔다. SH공사에서 1년에 총액4000~5000억 원 이상이 체납되고 있다. 우리가 열심히 해서 1000억 원만 받아내면, 3년 동안 3000억 원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팀도 더 만들고 과로 승격했다. 38증세과로 만들었다.

또 있다. 서울시에 와보니 1년에 2000억 정도가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으로 쓰인다. 하지만 노약자 무임승차 비용은 중앙정부가 충당해야 할 의무가 있다. 법률에 의해 그렇다. 그것은 노인복지차원에서 중앙정부가 하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부채를 우리가 떠 안고 있다. 그게 1년에 2000억 원이다. 3년이면 6000억 원이다. 그것만 줄여도 부채는 확 줄어들 수 있다. 이건 중앙정부가 반드시 내도록 하겠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1조 원을 줄이는 게 가능하다.

뿐만 아니다. 기본적으로 380조가 중앙정부 예산이다. 서울시는 1000만 명이 사는 곳이고, 2500만 명이 일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 예산은 20조다. 10%도 안 된다. 재정자립도는 물론 다른 시보다 높다고 하지만 우리가 쓸 곳에 제대로 쓰지 못한다. 그렇기에 재정분권이 강화되어야 한다. 돈을 어디에 쓸지를 잘 아는 건 지자체다. 이미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 들어서면 제일 먼저 재정분권을 해야 한다. 그래야 돈이 알뜰히 잘 쓰인다. 가능하면 돈은 구청장이 쓰도록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지금 체제가 그렇게 돼 있지 않다. 최소 30~40조 정도는 서울시에게 와야 한다.

프레시안 : 중앙정부의 역할을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직접 제안해볼 계획은 없나?

박원순 : 현실성이 있을까.(웃음)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경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최근 한미FTA 관련해 서울시에서 법규와 배치되는 부분을 정리했다. 친환경무상급식과 같은 건 한미FTA 통과되면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 것 같은데.

박원순 : 그럴 수 있다. 친환경급식 조례를 보면 우리 농산물을 받게 돼 있다. 그러나 미국 어느 식품회사가 GMO식품을 왜 안 사냐고 문제 삼을 수 있다. 한미FTA 위반되니 조례를 폐지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가 구체적으로 있다. 이걸 공무원들이 검토했을 뿐 아니라, 전문 로펌 변호사에 외주를 줬다. 법령을 전부 전수 조사했다. 전체가 7000개 조례를 조사했다. 그렇게 해서 중앙정부에 냈다. 하지만 중앙정부에서는 이거 제대로 했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다 법률전문가들이 따져서 했는데 말이다.

프레시안 : "한미FTA는 필요하다"고 한 기본입장과는 배치되는 것 아닌가?

박원순 :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한미FTA가 필요하다고 했다. 통상국가이기에 통상 부분에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시켜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부를 늘리는 조항은 강화하고, 대신 시민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애거나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보면 서울시민의 관점에서, 시장의 관점에서는 한미FTA가 구체적 문제가 있다는 생각한다. 이는 당연히 중앙정부가 사전에 없도록 했어야 했다. 아니면 최대한 경감하도록 해야 했다. 그렇기에 체결된 이후엔 보전대책이나 재교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리고 서울시장의 역할을 벗어나서 말을 안 하고 있지만, 농촌입장에서 농민들 피해가 있다면 중앙정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사구시로 실증적으로 검토하자는 게 나의 생각이다.

프레시안 : 한미FTA를 폐기하겠다는 게 민주통합당 입장이다. 박 시장 견해는 다른가?

박원순 : 그것까진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 폐기하는 데도 문제가 없진 않을 것이다. 어찌됐든 전임 정부나 전 국회라 하더라도 국가 행위는 연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민주통합당 입당 시기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선출됐고, 통합 국면이 마무리되면 입당을 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구체적인 입당시기를 언제로 생각하고 있나?

박원순 : 참 어려운 문제다. 기본적으론 이미 그렇게 이야기했기에 입당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른바 야권이 분열돼 있다. 그런 점에서 연대와 협력이라는 부분은 나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서울시장 선거 때 다들 협력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시민들이 야권을 지지해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소망했던 다수 시민들이 지지해서 내가 당선됐다. 그분들이 원한 건 새로운 혁신과 통합이었다. 그런 시민들의 입장을 어떻게 고려해야 할지를 생각한다 이걸 고민하고 있다.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

프레시안 : 올해가 선거의 해다. 지난해 박 시장이 당선되면서 시민정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정치인 박원순으로서 역할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아 보인다.

박원순 : 그 기대는 부응하긴 참 힘들다. 서울시장으로서 가지는 그런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또 그 역할이 적은 게 아니다. 어떻게 보면 서울시장 직을 잘 수행하는 게 가장 큰 정치적 역할이라 생각한다. 더구나 법적으로도 선거법상 시장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하다못해 결혼식 주례도 못한다. 책도 한 권 선물 못 한다. 또 민주통합당에 입당한다 해도, 내가 가진 역할은 단순한 정당 당원으로서가 아니라 일정한 통합과 연대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책무도 있다. 그렇기에 정치인으로서 활동은 제한이 있다.

프레시안 : 남은 3년, 박원순 재임시절에 서울시의 어떤 부분을 바꾸고 싶나. 한 번 더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지?

박원순 : 얼마 전 100개의 씨앗을 발표했다. 보기에 따라선 사소할지 모르지만, 또 보기에 따라선 또 굉장히 커다란 거다. 앞으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3년 동안 꾸준하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무엇으로도 기억되지 않는 사람으로 남길 바랬다. 물론 노력은 해야 한다. 그간 너무 사람들이 그런 거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뭔가를 해내려 하다 보니 무리한 일들을 했다. 나는 그렇게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하다 보면 이런 저런 성취라는 게 쌓일 거라 생각한다.

나는 청계천 같은 건 안 한 시장으로, 뚜렷한 게 없는 시장으로, 그렇지만 시민들의 삶은 윤택해지고 서울은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시장으로 남고 싶다. 도대체 저 사람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싶다. 시경에 보면 농민이 밭을 갈고 있는데, 황제가 지나가는데도 못 알아봤다는 고사가 있다. 시장이 너무 요란하면 시민이 불편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앞으로 좋은 시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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