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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험난한 삶, 그 가시밭길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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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험난한 삶, 그 가시밭길에서 쓰다" [세상이 'J'에게·⑧] "흘린 눈물이 시멘트를 뚫고 꽃으로 피어날 것"
재능교육 학습지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노동권을 찾고자 거리로 나선 지 2012년 1월 28일로 꼬박 1500일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서울 한 복판, 시청광장에서 보이되 보이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 오랜 한뎃잠에 몸도 마음도 축이 나고, 바닥의 한기도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언제까지 이들이 풍천노숙을 해야할까. 재능교육 노동자들을 위해 많은 이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프레시안은> B급 좌파가, 작가가, 노동운동가가, 청년이, 혹은 당 대표가 그들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릴레이로 싣는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재능out 국민운동본부에서 공동으로 기획했다. 그들이, 혹은 세상이 재능노동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편집자>


학습지교사는 비혼 여성들도 있지만 대부분 기혼인 여성들이 많은 곳이다. 내가 아는 선배도 8~9년 가까이 학습지교사 일을 하고 있다. 선배는 모범사원으로 표창까지 받는 등 해외까지 나갔다 오기도 했다. 그 말만 들으면 학습지 회사가 교사들의 복지나 혜택 등 기본노동권을 존중해주는 곳이라고 환상을 가질 것이다. 학습지교사를 소사업자로 딱지 붙여 열심히 뛴 만큼 가져갈 수 있다는 감언이설이 또 그럴싸하다. 그래서 월급 500원 받는 사장이 나왔나?

선배가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몸이 부서져라 일한 대가다. 차별을 견뎌낸 대가다. 다리가 퉁퉁 붓는 건 예사고 한창 예민할 사춘기로 접어든 새끼들의 고민을 제대로 들어줄 수가 있나. 회원들이 끊어지지 않으려면 쓸개 빼놓고 비위를 맞춰야 하고, 그만둔 회원들의 자리는 내 돈 들여 채워야 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폼이다.

아픔과 눈물과 분노와 핏물이 맺힌 거리가 있다. 그 거리에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아리따운 청춘은 노동으로 소진하고, 노동을 했으나 갑자기 사라져버린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되찾고 있는 1532일 그녀들의 삶이 있다.

학습지교사는 특수고용노동자, 임금 받는 노동자인데 특수고용 딱지를 붙여 무엇을 뺏으려 하는 건지 모르겠다. 노동조합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그렇겠다. 그들의 돈벌이 수단뿐인 것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힘을 합하고 또 단체협약을 요구하는데 그들의 돈벌이 기계들이 말을 하려고 하니 참을 수 없었겠다. 그것도 같잖은 여자들이 말이다. 그래서 행동대원들을 내세워 가장 먼저 하는 짓이 온갖 추잡스러운 욕설과 음담패설로 하여금 스스로 나가떨어지게 하는 것일 게다. 가장 먼저 느낄 수밖에 없는 여자로서의 수치심과 모멸감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게 말이다.

ⓒ노동과세계(이명익)

참 야비하지 않는가. 그런 상황들은 여성노동자가 주된 사업장에선 안으로 밖으로 위에서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드러나는데도 잘릴까 봐 말도 못하고 견딜 뿐인데, 내가 그 처지가 되도 저항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있는 곳은 바늘구멍처럼 좁은데다 장시간에 최저임금도 안 되는 한정된 상황에 혼자 삶이어도 불안한 밥이다.

더욱이 아이들이나 먹여 살려야 할 가족까지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둬서도 안 되고 온갖 차별 또한 견뎌야 하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의 지금 삶이다.

이러한 현실이 당신은 이해되는가? 대관절 삶이 무어란 말인가. 살기 위해 산목숨을 걸고 거리에서 싸우는 희극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그녀들이 무엇을 그리도 욕심을 냈단 말인가. 자꾸 '대체 이게 사는 거야?' 라는 똑같은 말만 입속에 맴돈다.

그녀들만의 일이 아니다. 언제라도, 내게도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몸뚱이 하나로 먹고살아야 하는 삶이라면 그 누구라도 말이다. 그러나 또 그러한 상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들의 싸움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몸과 마음이 피멍들고 문드러지면서도 거리 노숙이 끝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청 앞 재능농성장엔 아마도 먼 훗날 그녀들의 고통이, 흘린 눈물이 시멘트를 뚫고 꽃으로 피어나겠다. 혜화동 본사 앞에도 말이다. 그러니 거리 농성이 끝날 수 있게 해야 한다. 불완전한 재능 여성노동자들이 집으로 되돌아간들 비정규직 삶은 늘 불안정할지라도 힘내서 다시 싸울 수 있게 거리 노숙을 멈출 수 있도록 힘을 실어야 한다.
어떻게? 시청 앞 천막농성장이 불편한 당신이 생각해보라.

거칠게나마 진심을 담아서 쓴 시 한 편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 바친다.



나를 때리지 마세요
멸시하는 눈빛 험악한 욕설
온갖 수치심에 가슴이 벌렁거려요
치마 속을 더듬는 손길에
내 아이들의 가슴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비정규직 불도장 하나 찍혔어요

나는 꽃이에요
감정이 있는 꽃이에요
다른 꽃으로 때리지 마세요
나와 같은 꽃들로도 때리지 마세요

나도 이름이 있었어요
딸이고 아내이고 엄마이기 전에
나를 나이게 하는 이름이 있었어요
변변치 않은 이력에 변변치 않은 살림에
가진 건 없어도 이름은 있었어요
빼앗긴 이름 훔쳐간 내 사랑
치욕스럽게 달라붙는 희망을 가져가세요

나는 꽃이에요
향기 나지 않는 꽃이라도
시간 속에 피어 있는 노동꽃이에요
모가지를 꺾으려 하지 말고
뿌리째 뽑아 씹어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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