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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노동 현장의 불법을 방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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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노동 현장의 불법을 방관하다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10>] '살인 자본주의'
김대중 정권의 노동정책을 보면 미국의 잠정해고(lay-off)를 배우는 듯했다. 1990년대 들어 미국의 거대기업들이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니, 규모축소(downsizing)니 해서 경영혁신을 단행했다. 그 핵심은 인력감축이었다. 그 결과 미국기업들은 경쟁력을 확보했고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장기호황을 누리는 나라가 되었었다. 바로 이 점이 김대중 정권으로 하여금 정리해고제를 도입하도록 자극했던 것 같다.

해고를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단시일 내에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었을 것이다. 먼저 인력감축을 단행해 기업을 회생시킨 다음에 고용창출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 정책방향인 듯했다. 미국의 잠정해고를 본떠서 정리해고제를 도입했지만 미국은 한국과는 실정이 다르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복지제도가 미비해 대량실업의 충격을 완충할 여력이 없었다. 미국에서는 해고되어도 재취업의 기회가 많고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으로 최저생계의 위협이 덜하다. 한마디로 한국은 퇴직금 말고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미국과 한국은 또 다른 점이 있었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미국은 세계유일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그 미국은 단극체제(monopolar system)의 군사력-정치력을 배경으로 세계 각국에 시장개방을 강압했고, 여기에 성공했다. 이것은 미국기업에게 시장확대를 의미한다. 미국에는 주주권이 확립되어 기업경영이 비교적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전문경영인이 의사를 결정하고 책임을 진다. 미국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해고인력을 흡수할 여력이 크다.

한국기업은 인력을 감축하더라도 해외시장의 위축, 내수시장의 침체로 인해 단시일 내에 회생력을 발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대량해고보다는 노동분산을 통해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방향이 옳았다. 불필요한 노사마찰을 피하고 고용안정을 도모하면 애사심을 고취하여 생산성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도 선해고-후고용은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위험부담이 크다.

재벌기업의 집단부실화는 혈족 중심의 경영체인 한국재벌이 지닌 구조적 문제다. 재벌기업은 전문지식-경험이 없는 2~3세들이 독단적으로 경영의사를 결정한다. 기업부실화의 상당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전문경영인의 역량도 문제지만 역할도 제한적이다. 공기업도 비전문가가 경영책임을 맡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국에서도 대량해고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심지어 '살인 자본주의'(killer capitalism)이라는 혹평도 제기되었다. 배당을 늘리라는 주주의 압력에 굴복해 필요 이상으로 감원함으로써 미국사회를 빈민화한다는 주장도 만만찮았다. 절도, 살인 같은 범죄의 증가 배경을 호황-불황에 따라 인력의 감축-증원을 반복하는 노동정책에 돌리고 있었다. 해고의 공포가 노동자의 정신을 황폐화해 마약복용이 늘어난다는 주장도 있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연합뉴스

정리해고 도입, 불법해고 만연, 말만 남은 고통분담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면 인력감축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필요했다. 하지만 정리해고제가 감정적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다면 이 또한 심각한 문제였다. 노동현장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대립관계에서 불법해고가 자행되고 있었다. 불법-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김대중 정권이 불간섭주의를 채택했는지 방관하는 자세였다.

그 까닭에 노조의 고소-고발에 대해 아주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노동법이 집행과정에서 형평성을 상실하면 노동자들이 억울하다고 생각해 해고에 승복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 불만은 증폭되었고 그 종착역은 정권으로 향했다. 김대중 정권은 실업문제가 사회혼란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강구했어야 했다.

불법해고에 대해서는 법집행에 엄정성을 기하여 실업인구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했어야 했다. 고용안정이 최선의 실업대책이기 때문이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적정규모의 잉여인력을 사내에 유보해야 경기변동에 효율적-능동적 대처가 가능하다. 인건비를 절약한다고 인력감축에 주력하면 경기가 호전되더라도 훈련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경쟁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에 부닥친다.

노동시간을 줄여서라도 해고인력을 최소화했어야 했다. 그것이 고통분담이었다. 1990년대 세계적으로 훌륭한 교훈이 있었다. 폴크스바겐은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양면의 협공을 당하는 형국이었다. 1980년대에는 일본차에 눌리고 1990년대 들어서는 미국차에 밀려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었다.

수만 명의 인력을 감축해야 할 곤경에 처했으나 노사협의를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함으로써 대량해고를 피했다. 노동분산(work-sharing)을 통해 주 3~4일 근무제를 채택했던 것이다. 노사협력을 통해 경영난을 원만하게 극복한 폴크스바겐은 1998년 들어 '새 딱정벌레'를 출시해 세계시장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1990년대 들어 장기불황을 겪고 있던 일본에도 당시 해고선풍이 불고 있었다. 하지만 평생직장의 개념은 아직도 뿌리가 깊었다. 일거리가 없어 하루 종일 창가에 앉아 신문이나 뒤적이는 사원들이 있었다. '창문족'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기업마다 적지 않았던 것이다. 기업이 잉여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당시 일본정부는 고용안정을 위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실업방지에 주력했었다. 1998년 4월 22일 발표한 종합경제대책 가운데 실업대책을 보면 실업방지를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55세 이상 지급하던 임금보조금을 45세 이상으로 확대했다. 신규고용 임금보조금 비율도 33%에서 50%로 인상했다. 일시휴가, 전출조치에도 임금-수당 보조금을 지급했는데 그 비율도 인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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