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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사전에 한-미 FTA 절반 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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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사전에 한-미 FTA 절반 양보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18>] 노무현 정부와 FTA
국제협상이란 상대에 따라 유효한 전략이 필수적이다. 양보를 최소화하는 한편 요구를 최대화하여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양보에도 단계가 있고 수순이 있어야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상대가 경제적-군사적 우월자라면 현실적으로 비대칭 협상이라는 점에서 전략의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보면 국익을 망각한 채 전략은 없고 일방적인 양보만 거듭했다.

어떤 국가정책도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수반함에 따라 국민 사이에 이해가 엇갈린다. 따라서 국민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론화를 통해 이해득실을 따져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국민적 논의도 거치지 않고 느닷없이 2006년 2월 2일 미국과 FTA 협상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그것도 미국 의회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서울도 아닌 워싱턴에서 발표했다. 처음부터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고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했던 것이다. 그나마도 공청회조차 한번 갖지 않고 군사작전하듯이 밀어붙였다.

협상도 개시하기 이전에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이라고 해서 양국 간의 핵심적인 통상현안을 미리 양보해 버렸다.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건강보험약가 현행유지,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적용 예외 등이 그것이다.

본협상에서 미국측의 어떤 양보를 이끌어내더라도, 그 대가로도 양보하기 어려운 현안이었다. 협상 테이블에 나서기도 전에 절반을 양보한 꼴이었다. 이른바 4대 선결조건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강력히 부인하다 나중에 사실이라고 실토하는 부정직성도 드러냈다.

▲ 소. ⓒAP=연합뉴스

전략 없이 양보만 거듭

농축산물 중에서 미국의 최대관심품목은 쇠고기였다. 쇠고기 수입 재개는 통상이 아닌 질병의 문제였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해서 쇠고기 수입을 중단했던 것이다. 광우병의 위험이 없어지지도 않았는데 다시 문을 열었다. 처음부터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를 가볍게 처리했으니 협상이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일본도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열었다가 광우병이 재발하자 다시 닫았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문화의 다양성을 무시한 처사였다. 미국업자가 국산영화를 많이 상영하는 극장에 할리우드 영화를 배급하지 않을 텐데 영화를 아무리 잘 만든들 무슨 소용이 있나?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할리우드 영화와 어찌 대결하려는지, 경쟁촉진이란 가식적 논리를 내세워 스크린쿼터를 축소했다.

약값 인하정책은 건강보험의 취약한 재정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포기를 약속했다.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미국의 초국적 제약사 이익을 챙겨주는 짓이다. 도시의 대기오염은 자동차 배출가스가 주범이다. 그것을 줄이려는데 미국산 자동차는 예외로 하라는 요구를 들어줬다.

4대 선결조건은 교역의 범위를 넘어선 문제다. 그런데 선뜻 내주고는 미국에 엉뚱한 요구나 늘어놓았다. 그 첫째가 개성공단 생산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였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민족 간의 내부거래이고 역외가공무역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은 하나의 독립국가이다. 북한의 국제법적 지위를 떠나서 북-미 간의 대립관계를 고려하더라도 미국이 들어줄리 만무한데 애걸했다.

미국은 모든 외국인 입국자를 잠재적 밀입국자로 보고 통관단속이 엄격하다. 그럼에도 불법이민자가 1200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 비자면제를 강하게 요구했다. 사업차 복수비자를 받으면 5년간 유효하다. 불편하지만 비자를 발급 받지 못해 사업을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비자면제 따위에 매달렸던 것이다.

또 반(反)덤핑-상계관세 제소를 남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수입물량이 늘어나면 반덤핑, 상계관세를 통해 수입물량 규제에 나선다. 국내산업의 피해를 구제한다는 명목이다. 관련업계가 제소해서 확정판결이 나려면 1년이 걸리며 최종관세율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한번 걸리면 최종판결이 날 때까지 상계관세는 수입제한, 반덤핑은 수입금지의 효과를 갖는다. 그것을 노려 관련업계가 남발한다.

제소권은 피해당사자인 산업계가 갖는데 한국 정부가 규제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미국 행정부가 산업계에 자제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 또 한국에만 법적용을 예외로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미국 협상단은 TPA(무역촉진권한법)에 의해 FTA를 추진한다. 협상범위는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본질적인 문제는 뒷전에 두고 엉뚱한 요구에 매달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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