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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무시한 굴욕적 한-미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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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무시한 굴욕적 한-미 FTA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19>] 노무현 정부와 FTA (2)
2006년 2월 2일 한·미 양국 정부대표는 워싱턴에서 FTA 협상을 개시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로버트 포트만 USTR(미국무역대표부) 대표는 상하양원 의장에게 보낸 공한(公翰)에서 포괄적인 협상방향을 제시했다. 예외 없는 개방을 강조하면서 협상과정에서 의회는 물론 재계와도 긴밀하게 협의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이에 앞서 6∼8개월간 한국과 집중적인 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그때 이미 협상방향의 골격이 섰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이 사실을 밝히지도 않고 의견청취-여론수렴도 없이 돌연 한-미 FTA 추진을 선언했다. 협상과정에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국민적 설득작업이 없었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외면했던 것이다. 협상내용은 전문적이고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런데 국익증진이라는 구호로 단순화해서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폈다. 반면에 이해집단-계층의 의사표시는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해 원천봉쇄했다.

미국의 통상정책은 기본적으로 국민과 기업의 이익이 그 방향을 결정한다. 그래서 미국은 2006년 3월 14일 공청회를 열고 관련기업-단체의 요구와 의견을 청취했다. 그 내용이 모두 개별기업의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노무현 정권은 단 한 차례 공청회를 열다가 반대가 심하다는 이유로 그만두고 더 이상 열지 않았다. 협상준비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협상개시를 발표한 지 50일이나 지난 2006년 3월 21일에야 국무회의를 열어 59명의 협상단 인력충원계획을 의결했다. 그들이 뒤늦게 미국의 통상제도를 숙지하고 산업현황을 파악해서 협상대책을 강구하고 피해대책을 수립했다고 볼 수 없는 일이다.

반면에 미국은 USTR이 나서 미국기업이 외국정부-외국기업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즉각적으로 보고를 받는다. 주재국의 미국상공회의소가 창구역을 맡는다. USTR은 여기에 근거하여 무역장벽보고서를 작성해 매년 3월 31일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한다. 이것이 통상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통상압력의 자료로 활용된다.

2006년 보고서 712쪽 중에는 한국부분이 40쪽을 차지했다. 무엇보다도 농산물 시장개방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또 개별기업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며 내정간섭에 해당하는 내용이 많았다.

추진과정을 보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국민적 논의도, 국회와 협의 과정도 무시한 채 졸속협상-밀실협상으로 일관하면서 그 내용을 일체 알리지 않았다. 자국이익은 팽개치고 미국이익을 챙기려고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는 굴욕적인 협상자세를 견지했다.

일반국민은 물론이고 국회의원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독선적-고압적인 자세로 '너희가 왜 국익을 묻고 주권을 따지느냐'는 투였다. 국회에서도 개괄적인 내용조차 공개를 거부했다. 다만 질의과정에서 부분적인 윤곽이 드러났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은 국회에 협정내용을 밝히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협정문 본문과 부속서 일부만 공개했다. 핵심적인 내용인 관세 양허안, 서비스투자 유보안, 품목별 원산지 기준, 관련용역보고서, 기술협의회 회의록 등은 빼고 말이다. 그것도 문서의 형태가 아니었다. 제한된 장소에 설치된 컴퓨터의 화면을 통해서만 열람하도록 제한했다.

인쇄는 물론이고 필기도 허락하지 않았다. 분량이 500쪽에 가깝다니 암기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은 말이 열람이지 협정문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는 관람이라는 표현이 옳았다. 그나마도 통일외교통상위원회와 FTA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과 그 보좌관 1명으로 제한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국민 기본권에 재갈 물린 채 밀어붙인 FTA

한-미 FTA는 경제제도-사회체제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다. 따라서 협상내용은 모든 상임위원회의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 특히 농수산위, 재경위, 정무위, 산자위, 보건복지위, 법사위는 그 내용을 면밀히 파악, 검토해야 관련법 개폐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또 후속조치로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열람의 범위를 소수의 의원에게 제한한 것은 국회의 권위를 무시한 처사다. 열람대상 협정문은 영어로 작성되어 있다. 사전의 도움 없이 해독할 수 있는 의원이 몇 명이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설혹 영어에 능통하더라도 내용이 방대하고 난해하여 분야별로 전문적 조언을 얻어야 분석과 판단이 가능했다. 영어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반면에 미국 의회는 TPA(무역촉진권한)에 따라 4~6월 청문회를 열어 협상내용의 유불리를 따졌다. 그 작업을 위해 민간전문가 700여 명으로 구성된 33개 자문위원회에서 협정내용을 검토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미국 협상단이 한국측 요구를 번번이 거부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의회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 국회는 구체적인 내용도 모른 채 행정부가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면 '가' 아니면 '부'라는 단답식으로 처리하도록 노무현 정권이 추진했던 것이다. 국가의 장래가 달린 중차대한 사안을 관료 몇 사람의 손에 맡긴 꼴이다. 국민은 비선출직 공무원에게 그 같은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바 없다.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이 드셀 수밖에 없었다. 영화인들이 반대하고 나서자 집단이기주의라고 매도했다. 농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반대하자 폭력시위라며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협상장 주변에는 시위대보다 훨씬 많은 전경을 풀어 곤봉과 방패로 집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곤 했다. 그것도 미국 대표단 앞에서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면서 말이다. 막상 원정시위대가 미국에 가서 반대의사를 표현했으나 그곳에서는 자유로운 시위를 보장했다.

국가 간의 협상에서는 반대여론이 주효하다. 그것을 지렛대로 삼아 양보를 최소화하고 요구를 최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그 같은 노력을 포기했다. 언론도 FTA에 따른 농업피해를 알리지 않자 농민들이 돈을 모아 방송광고를 제작했다. 이마저도 방영을 가로막았다.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린 채 FTA를 추진했던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무리한 시장개방에 따른 한국내의 반대여론이 전체협상에 끼칠 악영향을 의식할 필요성조차 없었다. 여기에다 협상중도에 청와대에다 경제부총리 출신 한덕수를 수장으로 하는 체결추진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리곤 정부의 홍보체제를 총동원하여 FTA만이 살길이라며 허구적인 홍보에 혈안이었다. 반대여론을 쇄국주의자니 극단주의자니 하며 FTA의 파괴성을 호도했다.

이것은 어떤 난관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타결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의 표현이었다. 그 뜻을 간파한 미국은 무리한 요구를 거듭했고 그 판단에 따라 밀어붙여 자국의 이익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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