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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명박이 강조한 '선진화'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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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명박이 강조한 '선진화'의 함정 [민생복리가 경제민주화다] <1> 신자유주의 망령과 위험한 유희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이것은 국민적 합의이며, 경제발전 불균형에 따라 국민적 불만이 발화점에 달했다는 뜻이다. 역대정권이 노동의 가치는 말하지 않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니, '친기업'이니 떠들며 자본 위주의 편향적 경제-사회정책을 펴온 결과이다. 이에 따라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난제는 양극화이다.

역대정권이 시장주의와 규제완화에 근거한 신자유주의를 맹신한 결과 계층-부문 간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계층-부문 간의 반목과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그 간극을 좁히지 않고는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단계에 이르렀다.

정치권이 내놓는 경제담론을 보면 구체성-현실성이 결여된 채 재벌개혁에만 매몰되어 있다. 경제민주화를 자칫 잘못 논의하다가는 이념논쟁만 유발하여 본질은 증발되고 사상논쟁만 남을 공산이 크다.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민생복리이다. 그 지향점은 양극화 완화를 통한 사회통합이다. 논의의 초점을 민생복리에 맞추지 않는다면 경제민주화는 공허한 정치적 수사로만 남는다. <연재 전문>

2007년 봄 세계금융시장에 엄습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가 1년 반이 지나서 기어코 대폭발을 일으켰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지인 월스트리트를 초토화한데 이어 세계경제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것은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발진해 20년 이상 세계경제 질서를 재편해온 시장주의와 규제완화를 골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의미한다. 사태진전에 따라서는 21세기의 제국 미국의 종언을 알리는 조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판국이다.

만성적인 쌍둥이 적자라는 재정-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려온 미국은 1980년대 중반에 들어 해외시장 개방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통상정책을 전환했다. 군사력을 배경으로 세계시장을 열어젖히면서 그 전면에 내건 기치는 시장주의와 규제완화이다. 1989년 공산주의의 붕괴로 미국이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등극하자 '국경 없는 세계경제'(borderless world)라는 전략목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상품뿐만 아니라 용역-자본-기술-인력의 이동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철폐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자 간 협정인 WTO(세계무역기구)와 양자 간 협정인 FTA(자유무역협정)이다. WTO와 FTA의 본질은 시장주의와 규제완화에 근거한 무차별적인 시장개방이다. 미국자본이 세계의 모든 시장, 모든 영역에서 제약 없이 사업을 영위하도록 보장하라는 것이다. 미국인이 돈을 버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규제를 풀라는 뜻이다.

그래서 한국도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해 금융-자본시장을 활짝 열었고 외국인의 부동산 매입도 허용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이름으로 정리해고, 비정규직을 도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교육도 의료도 시장으로 보고 개방을 압박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역대정권이 미국의 개방압력에 편승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규제완화를 발전전략으로 답습해 왔다. 그 선봉에는 미국 유학파 관료집단이 포진해 있다. 김영삼 정권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과 금융-자본시장 개방, 외환위기로 인한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도입. 김대중 정권의 노동시장 규제완화에 따른 양극화 심화, 부동산 규제완화로 인한 투기촉발. 노무현 정권의 한-미 FTA 추진과 한국경제의 미국종속화. 이명박 정권의 공적영역 민영화를 통한 신자유주의 완결판 등이 그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경제-사회정책은 미국 신자유주의의 복사판이다. 그 대표격이 금융산업 규제완화이다. 자본의 탐욕이 빚은 월스트리트의 대참사라는 교훈을 목도하고도 재벌은행 탄생을 밀어붙였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경계철폐가 그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투자은행을 모방한 자본시장통합법이 2009년 2월 시행에 들어갔다. 여기에 재벌의 계열확장의 길을 트려고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했다.

▲ 한미FTA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돼 이명박 정부 때 체결됐다. ⓒ뉴시스

공기업 선진화 또한 위험한 함정이다. 선진화란 말장난에 불과한 속임수이다. 노무현 정권도 정책변화 앞에는 꼭 선진화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심지어 기자실을 폐쇄하면서도 취재선진화 방안이라고 강변했다. 노무현 정권의 정책이라면 무엇이든지 냉소적이던 이명박 정권도 선진화라는 단어를 그대로 답습해 썼다.

민영화는 영어로 'privatize'이다. 사유화란 뜻이다. 공적영역을 사적 자본한테 넘겨 독점이익을 보장하면 오히려 후진화가 될 수 있다. 물, 불, 빛은 인간생존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말 바꾸기를 하면서 상수도, 전기, 가스를 민영화하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인간 삶의 기초적 요소를 독점자본의 탐욕에 맡기려 들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우수한 인간에 의해 사회가 진화하고 발달한다는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을 신봉한다. 다시 말해 미국 자본주의는 바로 이 적자생존론에 근거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교육에서도 그대로 차용했다. 교육을 산업과 시장으로 보는 이른바 자율화 정책이 그것이다. 초등생을 일제고사를 통해 서열화하고 2008년 국제중 설립을 결정했다.

전파는 국민의 재산이다. 따라서 전파는 어떤 정파-자본의 독점물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의 민영화를 추진하다 성사가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조-중-동에게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방송사업권을 허용했다. 공공재인 방송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려 했던 것이다. 의술을 인술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무색하게도 상업적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다음 대통령은 공적영역의 가치를 신봉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노령화사회를 넘어 노령사회로 진입할 단계다. 이제 과중한 의료비 부담이 국민적 과제로 다가왔다. 그런데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통해 국민건강보험의 공영제를 해체하려는 불순한 시도가 그치지 않는다. 국민은 보편적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전력, 수도, 도로, 공항 등 공적영역을 민영화하려는 시도 또한 차단해야 한다. 이미 공항, 도로, 지하철이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부분적으로 사적 자본에게 넘어갔다. 이것은 사영화(privatization)이다. 국민에게 무차별적-보편적 혜택을 제공해야 할 공적영역(public sector)이 특정-독점자본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은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몰락을 보고도 그 망령과 위험한 유희를 펼치겠다는 뜻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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