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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박근혜 공통 표적은 통상임금? 진짜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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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박근혜 공통 표적은 통상임금? 진짜는 따로 있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통상임금에 얽힌 GM 자본의 이해관계
'사회 행위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 사회와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익숙한 이 개념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등장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의도를 갖고 행위를 하지만, 정작 결과는 누구의 의도와도 일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귀결되는 일은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황새 한 마리가 조개를 쪼자 조개가 급히 입을 꽉 다물어 서로 다투게 되었는데, 지나가던 어부가 우연히 이를 보고 힘들이지 않고 둘 다 잡아갔다는 '어부지리(漁父之利)'의 고사도 넓게 보면 그런 사례에 속한다. 전립선 치료제를 연구하다가 이 약의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나는 현상에 착안해 발모제가 개발되었다는 얘기도 마찬가지이다.

의도되지 않은 결과?

하지만 그 모든 일이 지나간 뒤에, 결과로부터 과거의 행위를 추적하며 '복기' 과정을 거쳐보면 엉뚱한 결과처럼 보이는 일이 사실은 충분한 이유와 근거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단지 사전에 누군가 '의도'하지 않았을 뿐이지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따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행위자가 '글로벌 갑(甲)'이라 할 제네럴모터스(GM) 회장과, 5000만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여 전, 그러니까 지난 5월 8일 '한미CEO라운드'에서 GM의 대니얼 애커슨 회장과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나눈 몇 마디 대화가 갑자기 한국에서 '통상임금' 논란으로 번진 사건이 있었다. 애커슨 회장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통상임금 문제가 그토록 중요한 의제였을까?

<인사이드 경제>는 두 사람 모두 '통상임금'이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 다른 의도를 관철시킬 요량으로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은 것이라고 본다. 물론 결과론적인 분석일 뿐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각자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는가를 복기해보는 것은 미래를 어렴풋이나마 가늠해보기 위한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어줄 것이다.

복기해보기 : GM의 의도는 무엇일까?

GM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말 시작된 심상치 않은 움직임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난해 11월, 글로벌GM은 차세대 크루즈 생산에서 군산공장을 제외한다는 발표를 하게 된다. 그 직후부터 사무직 상대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등 한국GM 노동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과 공세를 취하고 있다.

군산공장 주력 생산 차종인 쉐보레 크루즈 대신 부평 2공장에서 생산하던 쉐보레 캡티바 차세대를 군산에 배정한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내수 위주의 물량이라 미래가 불투명하다. 차세대 캡티바 대신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발표된 부평 2공장의 미래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에는 군산공장 가동률이 50%대까지 떨어지면서 휴업하는 날짜가 늘고 있다. 급기야 상대적으로 일감이 있는 부평 1공장으로 전보 내지 파견 신청자를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부평 2공장과 엔진공장들 역시 잔업과 특근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부평 1공장에서 생산하던 아베오의 차세대 물량까지도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 시점에 지난 4월, 본사의 대니얼 애커슨 회장은 "남북 관계 악화 시 GM의 한국 철수 가능성"까지 공공연하게 언급하면서 그동안 금기처럼 여겨졌던 '자본 철수' 얘기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구조조정 공격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GM 자본이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논리가 바로 '통상임금 소송' 문제이다. 역시, GM은 남북 관계로 계산기를 두드린 것이 아니라 비용 문제를 놓고 자본 철수설까지 퍼뜨리며 공격을 준비해온 것이다. 올해 한국GM 노사 관계에서 통상임금과 관련해 등장했던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중 시간 순서대로 4가지만 뽑아서 '복기'를 해보기로 한다.

▲ GM 쉐보레 크루즈. ⓒ쉐보레 웹 사이트

#1. 1월 30일, 사측이 제시한 CPV 비교표

올해 1월 30일 한국GM지부 확대 간부 수련회가 열린 자리에서, 사측이 잠깐 참여해 경영 설명회를 진행한 바 있다. 그중 GM의 해외 공장과 한국 공장의 CPV를 비교하는 내용이 있었다. CPV란 '차량 1대당 생산 비용(Cost Per Vehicle)'을 뜻하는 말인데, 다른 완성차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GM에서만 자체 계산하여 쓰는 개념인 듯하다.

나라마다 환율과 물가가 달라서 차량 1대당 생산 비용을 어떻게 일률적으로 계산해서 비교할 수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여하튼 GM 사측이 자체적으로 계산한 결과를 설명했는데, GM 해외 공장 물량의 80%가 1000달러 이하의 CPV를 보여준 반면, 한국GM의 경우 창원공장을 제외한 나머지 공장(군산과 부평 1,2공장) 모두 CPV 수치가 1000달러를 넘는다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GM의 전 세계 공장들 중 한국 공장이 고비용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자료의 맨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보일락 말락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소송 포함." 하하! 이게 무슨 얘기인가? 현재의 임금으로 비교를 한 것이 아니라,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자들이 승소할 것을 전제로 가산된 임금을 놓고 비교를 했다는 뜻 아닌가? 아마도 GM 자본은 가능한 최대치를 계산했을 터이니, 현재 비용에서 20% 안팎으로 높은 비용을 적용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2. 2월 22일, GM 해외사업본부 팀 리(Timothy Lee) 사장의 경영 설명회

지난해 차세대 크루즈를 한국에서 생산하지 않겠다는 발표 이후 끊임없는 물량 경쟁과 공격이 이어졌고, 심지어 GM의 한국 철수설까지 나도는 상황에서 GM의 해외 공장 총괄 책임을 지고 있는 팀 리 사장이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지난 2월 22일, 부평공장을 방문한 팀 리 사장은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과 함께 현장 노동자들 앞에서 경영 설명회를 개최했다(관련 기사 : GM '8조 원 투자' 발표에 담긴 비밀).

"향후 5년간 한국GM에 8조 원 투자" 등 장밋빛 약속을 쏟아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없었으며, 그 자리에서 팀 리 사장은 구체적으로 '임금 소송'이 비용 압박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짐작하다시피 '통상임금 소송'을 의미한다. 그런데 통상임금 소송이 어디 한국GM 노동자들만의 문제인가? 한국 제조업 전반에 걸친 문제인데!

그런데 마치 이런 질문에 답을 하려는 듯, 그 자리에서 팀 리 사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마디 내뱉는다. "회사와 노동조합, 한국 정부가 잘 협력해야 한다." '허걱'~! 이건 무슨 뜻인가? GM이 전 세계 정부를 상대로 했던 것처럼, 한국 정부를 상대로도 '갑(甲)질'을 하겠다는 뜻?

#3. 4월 2일 공개된 한국GM 감사보고서(안진회계법인)

지난 4월 2일, 전자 금융 공시 시스템에 안진회계법인이 작성한 한국GM의 감사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한국GM은 상장법인이 아니어서 기업 경영과 실적에 대한 정보를 일반인이 확인할 길이 거의 없다. 유일한 수단이 감사보고서인데, 비상장법인이라 할지라도 공개해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산량과 매출액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GM의 실적 발표는 '적자'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통상임금 소송 관련 이미 1, 2심 재판에서 패소한 한국GM 사측이 최종심 대법원에서도 질 경우에 대비해 관련 인건비 8140억 원을 "장기 미지급 비용"으로 비용 처리를 해버린 것이다!

당장 발생한 비용도 아니고 따라서 지급된 비용도 아니다. "나중에 지급해야 할지도 모를 돈"으로 적립해둔다는 뜻일 뿐이다. 그런데 이 비용을 실적에 반영해, 멀쩡한 흑자 기업에 대해 지난해 3400억 원 규모의 영업 적자, 108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보고한 것이다.


위 자료는 공시된 감사 보고서 중 '손익계산서'에 나온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항목들 몇 가지만 따로 뽑아본 것이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5.8% 증가한 15조9496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무려 9400억 원 이상 늘어났는데 적자가 나게 된 핵심 이유는, 지난 5년치의 통상임금 소급분에 해당하는 8140억 원을 한꺼번에 비용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느 항목에 이 비용을 반영했을까? 최근 쌍용차 회계 조작 의혹과 관련한 논란에서 보는 것처럼, 일반인의 눈으로는 도무지 회계 장부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통상임금 소급분'이라고 명시해서 반영하면 되는데,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엔가 이 비용이 반영되어 있지만 그게 어디인지는 숨겨놓는다. 그러니 항상 회계 조작 의혹을 사는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참으로 억울한 얘기이지만) 쌍용차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숨은 그림 찾기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11년 전기에 비해 2012년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매출원가가 상승하는 항목 하나가 눈에 띈다. "부품 및 기타 매출원가" 항목이 전년 대비 60% 상승해 무려 6700억 원 가까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 이게 뭐기에?

보통 완성차 업체의 "부품 및 기타 매출" 항목은 거의 대부분이 CKD 수출이며 일부 A/S 관련 매출이 포함된다. 그런데 이 항목의 원가가 갑자기 60% 가까이 상승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이 안 된다. CKD 수출은 현지에서 최종 조립만 하면 되도록 부품을 포장해 컨테이너에 담아 수출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원가가 갑자기 상승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 <인사이드 경제>가 보기에는 바로 이 항목에다 통상임금 소송에 대비한 장기 미지급 비용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8140억 원 전액을 반영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갑자기 6700억 원이 늘어난 것으로 보아 최소한 상당액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아마도 GM 자본은 고의적으로 이 항목에 통상임금 비용을 반영함으로써, CKD와 A/S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를 쓰려는 것이 아닐까 의심된다. 최근 GM의 구조조정 계획에는 CKD와 A/S 외주화가 포함되어 있다. 8140억 원의 통상임금 비용을 반영해 멀쩡한 흑자 기업을 적자 기업으로 둔갑시켜 노동자들에게 양보 협박을 하고, 덤으로 적자가 났으니 세금을 덜 내도 되고, 이와 함께 CKD와 A/S 외주화 밀어붙이기의 근거까지 확보할 수 있으니, 게임 전문 용어로 '일타쌍피'?

#4. 5월 1일, 디트로이트에서 한국GM지부 민기 지부장과 GM 회장 면담

지난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한국GM지부 민기 지부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들 몇 명이 GM 본사의 초청 형식으로 디트로이트 본사를 방문했다. 5월 1일에는 GM의 대니얼 애커슨 회장과 약 45분간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바로 그날, 애커슨 회장은 민기 지부장에게 문제의 얘기를 미리 꺼내놓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면 백악관에서 통상임금 소송제에 대해 건의하겠다."

애커슨 회장과 민기 지부장의 면담 내용 일부는 이미 몇몇 외신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5월 6일 자 <로이터통신>은 한국GM지부 최종학 대변인의 짤막한 멘트도 인용하며 관련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즉, GM 회장은 직접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통상임금에 관한 얘기를 하겠다는 엄포를 노조에 노골적으로 얘기했던 것이다. 한미CEO라운드가 열린 5월 8일보다 꼭 1주일 앞선 시점에 말이다.

통상임금 할인이 아니라 구조조정이 목표

박근혜 : GM 회장께서 북한 문제 때문에 철수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 오신 것을 보니 철수가 아니라 투자를 더 확대하러 오신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는가?
애커슨 : 엔저 현상과 상여금을 포함하는 통상임금 문제,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절대로 한국 시장을 포기(abandon)하지 않는다.
박근혜 :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GM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가 갖는 문제이니까 이 문제를 확실히 풀어가겠다. (이상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이 전한 5월 8일 당시 발언 요지)

자, 지금까지 복기(復棋)해본 내용을 토대로 위 발언 요지를 살펴보자. 애커슨 회장과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 오간 대화의 핵심은 통상임금 문제가 아니라 '한국 시장 철수 또는 포기' 문제였다. 그렇다! GM 애커슨 회장의 발언은 단순히 통상임금 문제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저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구조조정' 공격이 핵심이었다.

GM의 공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군산공장 핵심 차종인 쉐보레 크루즈의 차세대 모델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창원공장의 다마스·라보 역시 올해 연말로 단종될 예정이다. 부평 1공장의 현재 주력 차종인 소형 SUV인 쉐보레 트랙스, 오펠 모카, 뷰익 앙코르 중에서 오펠 모카 차세대 물량은 유럽으로 유치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오펠 모카와 뷰익 앙코르, 쉐보레 트랙스는 겉모습이 약간 다르긴 하나 사실 같은 차량이나 다름없다. 다만 유럽에서는 오펠 브랜드로, 미국에서는 뷰익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을 뿐이다. 오펠 모카는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어 전량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판매지인 유럽에서 직접 생산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 뜻이라면 뷰익 앙코르의 차세대 모델 역시 판매지인 미국에서 직접 생산할 공산이 크다. 한국에는 내수 물량과 아시아 수출 물량 수준의 쉐보레 트랙스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2월에 열린 팀 리의 경영 설명회 때에는 부평 2공장의 주력 차종인 쉐보레 캡티바의 차세대 모델을 군산공장으로 옮기겠다는 발표를 했다. 대신 부평 2공장에서 전기차 생산을 하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도대체 그 물량이 어느 정도 될지는 가늠할 수가 없다. 군산공장에서 생산한다는 차세대 캡티바 역시 현재로서는 내수 물량 위주가 될 것으로 보여 생산량은 상당히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3일 한국GM 노사 간에 벌어진 임금 협상 자리에서, GM 자본은 부평 1공장의 핵심 차종 중 하나인 쉐보레 아베오의 차세대 모델 역시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정을 노조에 통보했다. 이건 2월에 열린 팀 리의 경영 설명회 당시 발표 내용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노동자들과 전쟁을 하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 한국GM 생산 공장별 주력 차종의 변화 예상도. 생산 물량의 상당한 축소가 예상된다. ⓒ오민규

자,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자. 일부 언론이나 노동계의 주장처럼 5월 8일 애커슨 회장의 발언 취지가 '통상임금 민원 해결'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 민원 사항을 확실히 접수하겠다는 말을 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GM 자본의 태도는 좀 누그러져야 정상인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각종 발표를 보더라도 GM이 정말 한국 철수를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정도의 공격을 퍼붓고 있지 않은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GM의 메시지는 통상임금을 깎아달라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 후 청와대와 고용노동부가 앞장서서 통상임금 관련 노사정 협의를 하자며 나름 '성의(?)'를 보이고 있는데도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통상임금 문제를 자본의 뜻대로 풀어준다 하더라도, GM 자본은 막무가내로 구조조정 공격을 진행하려 할 것이 확실하다. 아무리 양보해도 밟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따라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단순히 통상임금 쟁점 대응으로만 이 문제를 풀어서는 곤란하다. 특히 한국GM 노동자들은 이번 사안이 자본의 구조조정 전쟁 선포임을 직시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아쉬운 지점이 있다. 5월 1일 애커슨 회장으로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통상임금 문제를 거론하겠다는 얘기를 들은 직후, 한국GM지부가 이 사실을 즉각 공개하고 폭로했다면?

물론 노조 측은 "설마 그 얘기를 진짜 할 줄은…"이라는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구조조정 공격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는 GM 자본에 맞서 '긴장'과 '비상 경계령'을 발동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10년간 GM은 한국에서 생산 물량을 지속적으로 늘려왔지만 이제는 180도로 정책이 바뀌고 있다. 즉, 지난 10년간의 노사 관계와는 전혀 딴판의 고압적인 GM 자본 태도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당장 2월에 스스로 경영 설명회에서 약속한 사안조차 100일 남짓 만에 뒤집어버리지 않는가.

이미 현장에서는 심상치 않은 변화가 오래전부터 감지되어 왔다. 군산공장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휴업일수가 늘어나더니, 이번 달에는 휴일(현충일)과 토·일요일에는 당연히 공장이 돌아가지 않으며, 나머지 19일 중 무려 8일간 휴업하고 오직 11일간만 공장이 가동된다. 부평 2공장 역시 휴일 특근이 사라진 상태이다. 물론 휴일 근무는 사라져야 할 병폐이지만, 구조조정 공격이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은 계급적 본능으로 느낄 수 있는 지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박근혜 정권은 왜 GM 자본에 통상임금 문제를 확실히 풀겠다는 메시지를 전했을까? 이 쟁점과 관련해서는 다음번 글에서 다룰 예정이지만, 간단하게 짚고 갈 지점만 언급해 보겠다. GM 자본의 목적이 통상임금을 넘어 구조조정이라면, 박근혜 정권의 목적 역시 통상임금 문제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애커슨과 박근혜는 서로 다른 의도를 갖고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각자의 의도가 하필이면 '통상임금'이란 쟁점에서 마주쳤고, 그래서 이 대목에서 '소리'가 났을 뿐이다.

아울러 애커슨 회장이 1주일 전에 이미 노조에 그런 언급을 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 역시 5월 8일 한미CEO라운드에서 애커슨 회장이 그 얘기를 꺼낼 것이라는 점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상식적으로 봐도 이런 회의가 열릴 경우, 청와대는 참석자들에게 어떤 얘기를 주고받을 것인지 사전에 조사하고 세팅을 하기 마련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투표일을 이틀 앞둔 12월 17일 부평역 유세에서 한국GM 군산공장이 차세대 크루즈 생산에서 배제된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군산공장에 이어 부평공장도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심정을 잘 알고 있다 (…) 힘든 일 없도록 잘 챙기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MBN 뉴스, 2012년 12월 18일 자). 이를 보더라도 박근혜 스스로 GM 관련 쟁점을 오래전부터 스크린하며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관련 기사 : 박근혜가 이긴 이유, GM 부평공장에 있었다)

따라서 그날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 역시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발언임에 틀림없다. 이런 발언을 할 경우 국내에 미칠 파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전에 충분히 검토했을 것이며, 이에 대한 대응 프로세스 역시 갖춰진 상태였을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고용노동부는 5월 8일 회의 직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통상임금 문제 노사정위원회 논의' 카드를 꺼내들지 않았던가. 이게 청와대가 준비한 프로세스의 첫 단계에 해당한다. 같은 날 '윤창중 성추행' 문제가 붉어지면서 이러한 프로세스가 착착 진행되지 않았을 뿐! 이제 우리는 그들이 준비한 계획과 의도가 무엇인지 파헤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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