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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전두환 각하 분신"…국정원 DNA 안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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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린 전두환 각하 분신"…국정원 DNA 안 변했다 [긴급 인터뷰] 안병욱 전 국정원 과거사위 민간위원 <2>
국정원이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댓글을 활용한 정치 개입의 실체가 드러나며 궁지에 몰린 국정원은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기습 공개하며 한국 사회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다. 국정원 제자리 찾기를 위한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다.

<프레시안>이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를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안 교수는 과거사 진상 규명 전문가로서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 2004-2007년) 민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인터뷰는 6월 27일 안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프레시안>은 안 교수 인터뷰를 2차례로 나눠 게재한다. 다음은 인터뷰 뒷부분이다. <편집자>


국정원 파문 관련 긴급 인터뷰
<1> "'이명박근혜' 국정원, 박정희 때로 회귀한 까닭은…"

5.16 쿠데타 세력의 1호 안건, 정보부 설립

프레시안 : 국정원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근 행태가 그들로선 전혀 이상한 게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병욱 : 그렇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와 김종필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서 맨 먼저 처리한 안건이 중앙정보부 설립이었다. 당시 김종필은 쿠데타를 한 바로 그날 오전 10시에 최우선적으로 중앙 정보 기구에 관한 복안을 제시하고 곧바로 설치 작업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6월 10일 중앙정보부법이 공포되면서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가 출범했다.

백 보를 양보해서 이 사람들이 쿠데타 후 해야 할 일이 여러 가지가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이른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1호 안건이 정보부 설치안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지 몇 시간도 안 되어서 그걸 해야 할 필요성이 어디 있었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안병욱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처음부터 정보부는 쿠데타 세력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의 고등경찰이나 이승만 정부 시절의 특무대 같은 조직을 통해 반대 세력을 숙청하고 탄압하겠다는 뜻에서 만든 것이다. 다른 뜻이 뭐가 있었겠나? '정권을 보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 바로 이것이었다. 그건 과거 스탈린 치하의 KGB(옛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나 다른 인권 탄압 국가들의 비밀경찰들이 한 일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보부이기 때문에, 정보부에 시종일관 제일 중요한 건 반정부 세력을 적발해서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모든 선거에 개입하는 것이었다. 선거를 조작하고 그것에 개입하는 등의 부정 선거를 총괄한 기관이 정보부였다. 그 힘으로 (1969년) 3선 개헌을 해냈고 (1972년) 유신 체제를 만들어냈다.

그다음에 정권을 이어받은 전두환도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정당성도 없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도 없는, 몇 명 되지도 않는 광주 학살 세력이 정권을 움켜쥘 수 있었던 건 정보부(1980년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에서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심복이던 장세동 국가안전기획부장은 1986년 안기부 창설 기념일 치사에서 직원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대통령 각하의 분신 기관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안기부가 '전두환 각하'의 분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 말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직원들에게 보냈다는 이른바 '지시·강조 말씀'의 뉘앙스가 같지 않나?

그러니까 '전두환의 분신임을 잊으면 안 된다', 이게 (국정원의) 태생적인 본질이자 성격이다. (국정원) 해체를 통한 개편이 아니면 그 악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장세동의 안기부와 원세훈의 국정원, 빼닮았다

프레시안 : 국정원 조직 중에서도 정치 개입 논란을 많이 일으키는 국내 파트를 대폭 축소하거나 없애는 수준이 아니라, 국정원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안병욱 : 그렇다. (중앙정보부가 만들어진 이래) 수십 년간 굳어진 DNA적 본질에 과거사 정리 정도로 대응한 것이 원천적으로 무의미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1961년 쿠데타 세력이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과 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정보부다. (그러나) 지금은 냉전 시대 방식으로 쿠데타나 일으키고 몇 사람이 폭력으로 권력을 휘어잡는 것이 적어도 문명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구조에서 필요했던 정보 기관, 때에 따라서는 비밀경찰은 역사의 유물로 사라졌다.

21세기에 걸맞은 정보 기관이 필요하다. 군림하고 억압하고 지배하고 자기들만의 안전판 노릇을 하는 비밀 기관이 아닌, 전 지구적인 거대한 정보 세계에서 국민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동안) 난 그런 기관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국정원 해체를 쉽게 얘기하지 못했다. 국정원이 환골탈태하면 그런 기관으로 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였다. 상당히 어렵지만, 기대를 해봤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지난 정권부터 시행착오를 겪으며 확인된 건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국가 정보 기관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구시대의 시대착오적 DNA로 조직돼 있는 국가 기관은 해체하는 게 지금 상황에선 절대적으로 옳은 판단이다.


"무슨 명예가 남아 있어 대화록 공개했나…국정원 해체해야"

프레시안 :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나.

안병욱 : 군대든 검찰이든 국정원이든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권위적 정권 시절엔 (거꾸로) 군대의 명예 때문에 혹은 검찰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 원장의 이야기를 달리 표현하면 한국 사회의 모든 부분은 국정원의 명예에 종속된다(는 말이다). '국가 위의 권력 기관'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갖고 있고, 그게 그 사람들의 행동에 반영되는 것 같다.

국정원이 큰 실수를 해 나라에 손해를 끼친 일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선 2011년에 무기 구입을 위해 인도네시아 협상단이 방한했을 때 국정원 요원들이 (협상단이 묵는) 호텔방에 몰래 들어가 노트북을 꺼내 보다가 붙들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게 국정원의 알몸이다. 또 그렇게 북한 북한 하면서도, 정작 세계에서 맨 먼저 파악했어야 할 김정일 사망에 대해서는 국정원이 당시 그 기미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이런 기관에 무슨 명예가 남아 있어서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다는 건가. 정말 명예를 생각한다면 그 두 사건만으로도 자기들 스스로 명예를 지키기 위해 '우리 분사하겠다. 이제 국정원을 해체해 달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 같으면 그렇게 얘기할 것 같다.

프레시안 :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의 파장이 예상대로 국경을 넘었다. 북한은 "최고 존엄에 대한 우롱"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 정상 외교를 하는 데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끝까지 비밀을 지켜야 할 정보 기관이 나서서 정상 간의 대화록을 공개한 것이 나쁜 선례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다.

안병욱 : 소수 권력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한국이 어떻게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그런 행태에 어처구니가 없다. 국가 간 정보전이 치열한 21세기에 그런 국정원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6년 전(2007년 남북 정상회담) 외교 협상을 위해 때에 따라 외교적 언사를 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예를 든 것들을 거두절미해 끌어다가 정권 유지에 활용하는 수준 아닌가. 800여 년 전 고려 시대의 무신 정권들도 이것보다는 머리를 잘 썼을 것 같다.

프레시안 : 대화록 기습 공개와 연산군의 사초 강제 열람을 비교하는 목소리도 있다.

안병욱 : 지금 이 문제는 연산군이 (금기를 깨고) 사초를 본 것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외신에서도 "한국에선 정보 기관이 누설자"라는 보도가 나오지 않았나.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국제 망신이다.

프레시안 : 국정원이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린 셈이다. 국가 최고 정보 기관의 무너진 신뢰, 회복 가능할까. 이 대목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워터게이트 사건도 떠오른다. 1970년대를 뒤흔든 그 사건에 CIA 전직 요원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CIA가 그로 인해 손실된 정보 역량을 만회하는 데 10년 넘게 걸렸다는 자료도 있다.

안병욱 : 현 정부에선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민주적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지난번에 과거사를 청산하듯이 이명박 정부 때부터 현재까지 이뤄지고 있는 일들을 다시 한 번 청산할 계기가 만들어져야 (저들이) 저지른 일들을 수습할 수 있다.

역사학자 안병욱의 조망
▲ "박근혜 기준은 박정희 명예 회복…역사 전쟁 벌일 것"

▲ "일베-뉴라이트-<조선>은 이어져 있다"
▲ "남로당식 사관? <조선>, 흉기 들고 난동"

"젊은이들이 죽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행동해서야…"

프레시안 : 남북 관계와 관련해 더 짚었으면 한다.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후 NLL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 논란은 2007년 정상회담의 산물인 10.4선언 이행 문제와도 닿아 있다. 서해평화협력지대 문제도 물론 포함된다. 일각에선 이번 논란을 계기로 10.4선언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안병욱 : 앞에서 국민 의식에 대해 얘기했는데 굉장히 조심스럽긴 하다. 하지만 (일부) 국민이 감성적 선동에 휘둘린 측면이 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멀리하는 듯해 아쉬움을 느낀다. (비교하자면) 예컨대 독도 문제나 동북공정 얘기가 나오면 국민들이 갑자기 광풍에 휩쓸린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것에 비추어 보면, NLL 논란은 광풍 중에서도 대단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셈이다. 정치권이 그렇게 만들었다.

냉정히 생각하면, 백 보를 양보해서 NLL이 휴전 회담 때 작성된 군사 분계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남북 간에 도저히 그대로 갈 수 없는 충돌의 최예각 지대에 있다면 때에 따라선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1972년에 나온 7.4남북공동성명을 떠올려보자. 그 몇 년 전(1968년)에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겠다며 북한에서 게릴라가 내려왔고, 동해안 일대에 무장 '공비'가 침투했다. 감정을 앞세워 대응했다면 그런 상대방에게 어떻게 특사를 보내서 '남북 평화 문제를 얘기하자'고 할 수 있었겠나. 감정은 감정이고, 한 국가를 운영한다는 측면에서는 외교적이고 이성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게 정치인들한테 필요한 자세다.

(더욱이) NLL은 그것과 다르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여당이던 김영삼 정부 시절(1996년)에 이양호 국방부 장관도 NLL이 군사 분계선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저들이) 모든 면에서 신뢰하는 미국조차 NLL이 국제법에 반한다고 확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방이 우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란 걸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NLL에 대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로 지키고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서해에서 봄철이면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젊은 병사들이 여럿 순직할 수 있는 상황 아닌가. 그런 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정치인들이 슬기롭게 풀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은 서해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또 다른 전투가 벌어져 젊은이들이 마치 죽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행동한다.

어떤 경우라도 병사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첫 번째 원칙이어야 한다. 불필요한 전투가 벌어져 젊은이들이 산화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가. 필요하다면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

그런 점 때문에, 대화록에도 나와 있듯이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하고 또 설득한 것 아닌가. 분쟁의 서해 바다를 평화협력지대로 만들어 NLL 문제를 평화로 덮자고.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기득권 세력이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불편해 하는 이유

프레시안 : 새누리당 등에서는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을 NLL 포기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안병욱 : 2007년 당시 정상회담 특별 수행원으로 다녀왔는데, 돌아온 다음에 회담 수행기를 한 잡지에 기고했다. 그때 '앞으로 남북이 평화적으로, 바람직하게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돌파구로서 대안적 모델이 서해평화협력지대'라고 평가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 (그것 이외에) 우리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현재 없다. 서해 앞바다를 남북이 공동으로, 평화적으로 설정해 공유하고 협력한다면 그것이 확대될 때 남북이 통일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까지 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정리하면) 남북 간에 이뤄졌던 어떤 합의나 선언보다 그 점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실질적이고 실천 가능성이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기득권 세력이나 새누리당은 바로 그 점이 불만스러운 것이다. 남북 관계에서 기득권 세력은 상대방과 적대적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 전쟁(전면전)까지는 바라지 않을 것 같지만, 전쟁이 일어나기 전 단계에서 대립하고 긴장 관계를 맺으면서 존재를 위해 가장 적절한 근거를 확보하는 식이다.

서해평화협력지대는 그러한 근거를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그들로서는 불편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있지도 않은 NLL(포기 발언)을 선거에 적극 활용하고 보수 언론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반도의 긴장 관계를 옛날로 복구한 것이다.

북쪽에서 대화록 공개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것이 새누리당엔 전혀 두려운 일이 아니다. 북쪽이 그런 성명을 내기를 은근히 바랄 수도 있다. 대화록 공개를 통해 (적정선에서) 남북 간의 긴장을 조성하는 것은 새누리당의 이해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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