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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후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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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이후를 생각한다 [김민웅 칼럼] '비상시국연대회의'가 필요하지 않은가?
정상 가동 상태 아닌 박근혜 정권

박근혜 이후를 생각한다? 너무 조급하고 때 이른 상상인가? 또는 섣부른 주관적 예상일까? 그렇지 않다. 바로 이 생각을 중심에 놓고 오늘의 현실을 내다보지 않으면, 미래의 방향과 대안은 불확실해지고 시민들은 의지와 용기를 낼 수가 없다. 박근혜 정권은 현재 정상 가동 상태가 아니다. 그런데 이를 교체할 미래적 대안이 보이지 않으면 이 상태는 그냥 아무 탈이 없는 것처럼 억지로 여기고 그냥 갈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의 결말은 모두가 망가지는 것이다.

지금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비상시국 연대회의"가 속히 결성되어 박근혜 이후를 감당할 총체적 진로를 미리 끌어내야 하는 시기다. 단순히 국정원 개혁이나 대통령의 사과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단계를 훨씬 지났다. 근본적 해결을 택하지 않고는 정치사회적 불안과 갈등 그리고 대립은 어떻게해도 풀리지 않을 것이며, 권력은 자기방어에 극단적인 수단을 쓰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 사회 전체의 피해는 너무도 커진다.

대선 결과의 정당성, 공중분해되고 있어

국정원의 대선 공작 기획 실체는, 이 정도 드러난 것만으로도 지난 대선 결과의 불법성을 부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국정원을 비롯해서 국가기관의 조직적 지원을 받은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의 공정성과 정당성은, 더는 유지할 수없는 지점에 이르고 있는 것만 같다. 법적으로도 당선의 효력은, 재판의 결과가 남아 있으니 아직 소멸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매우 취약해졌다. 박근혜로서는 거의 막다른 골목에 처했다.

박근혜 본인의 지휘나 인지 여부, 또는 개입이 있었느냐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불법적 선거공작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는 바로 그만큼, 지난 대선의 결과물은 헌법체제 밖에 자꾸 밀려나고 있다. 헌법수호를 천명해야 하는 대통령의 위치로 볼 때, 박근혜는 헌법수호와는 대립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과는 계속 어긋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건은 과거에 일어났으나, 그 결과물을 현재 운영, 관리, 방어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박근혜 정권이다. 당선 자체의 수동적 수혜를 포함해서, 이후 그렇게 창출된 권력발동에는 핵심 주체다. 주체로서 그 운영의 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불법과 공작이 이루어졌다면, 그 권리를 놓는 것이 옳다. 아니라면, 주도적 공범이 되고 마는 것을 의미한다. 그도 저도 아니라고 하고 싶다면, 최소한 불법공작을 한 주체들을 철저하게 처벌하고, 자신도 국민적 판단을 요청하며 그 판단의 결과에 승복하는 절차를 밟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보고 누락이 문제가 아니라 수사력 해체가 문제

그렇지 않고 지금까지처럼 불법을 추가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국정원 대선불법공작 기획사건은 과거형을 넘어서서 현재진행형으로 수사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적 저항의 강도도 높아져 갈 것이다. 국정원 직원 체포 사건에 대한 윤석열 전 팀장의 이른바 "보고 누락" 논란도, 윤 전 팀장의 진실규명 의지를 좌절시키려는 세력에 대한 수사로 그 중심을 세워야 한다. 국정감사에서 확연하게 노출된 상황은, 검찰 수뇌부가 국정원 대선 공작 기획 사건을 최소화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원 대선 공작 사건의 위중함은, 누구나 알게 되었듯이 국가 권력기관이 민의를 조작했다는 사실이다. 민의가 조작되고 이것이 정치권력을 구성하는 토대가 된다면 그 권력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실체 외에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권력은 단 하루라도 민주주의 체제에서 존속해서는 안 된다. 민생도 민의가 정확히 반영되는 구조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민의 조작으로 태어난 권력은 민생 해결의 정치적 발상과 의지를 가질 수가 없다.

하늘이 손바닥보다 크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대선 공작 기획을 이끈 지휘체계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를 은폐하고 사안을 축소시킬 방법은 날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감추고 막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하고 사람을 자르고 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간단히 말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에는 그 손바닥이 너무 작고 하늘은 하염없이 크다. 그리고 그 하늘은 결국 민심이 되어간다.

박근혜 정권이 전교조 불법화 시도를 비롯해서 전 방위적 탄압을 하고 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전방위적 반(反) 박근혜 전선을 결집시키고 있으며, 시민적 동력을 키워가고 있다. 지금 단계로는 결정적 변혁을 일으키기에는 부족한 듯이 보이지만, 지난 대선 이후의 동력 상실과 좌절감에 비하면 엄청난 기세가 모여지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가 해고자 배제를 요구하는 정권의 정책에 반기를 든 것도 배제논리로 일관하고 있는 권력에 도전하는 중대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당장에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그로써 새로운 힘의 집결처가 생겨날 것이다.

장물은 본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만일 자신이 소유한 물건이 장물인 것이 밝혀지면, 원 소유주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아니면 의도가 그렇지 않다 해도 장물을 챙긴 혐의를 받게 된다. 공범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쥐고 있는 권력이 장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장물을 더는 자신의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정원의 대선 공작과 여론 조작 기획은 민주주의의 틀을 파괴하고 권력을 탈취해, 그것을 장물로 만든 범죄다. 이걸 주인에게 귀속시키지 않으면, 스스로가 공범인 것을 자기도 모르게 입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처음에는 그런 줄 몰랐다고 해도. 이제 알게 되었다면 그 권력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렇게 하고 싶진 않겠지만,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민주주의다. 본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면, 먼저 장물 신고부터 하고 그것을 포기하는 절차를 밟으면 된다. 이후를 걱정 안해줘도 된다. 참 주인이 알아서 자기 것을 찾아 갈 것이다.

<비상시국연대회의>가 당장에 권력교체의 주체가 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능력과 조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은 비상시국이며, 힘과 지혜를 최대한 모아나가야 하는 국면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이런 현실을 어떻게, 얼마를 제대로 버텨낼 수 있을까? 물론 힘과 불법과 탄압, 여론조작이라는 여러 수단을 동원하려 들겠지만 점차 그 역량은 고갈되어갈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과 이후를 제대로, 국민들의 삶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밀고 나갈 동력이 착실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생각 하나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필요하다는 의지만으로도 이미 역사는 새로운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시작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때가 자꾸만 무르 익어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가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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