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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막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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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막심' 박근혜 [박동천 칼럼] 마리 앙투와네트를 보게 될 수도
섭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우리 마을에 정직한 사람이 하나 있는데, 자기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신고하고 증언했습니다." 공자가 답했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잘못을 감추어주고, 자식은 부모의 잘못을 숨겨줍니다. 정직은 이 가운데에 있습니다."

서양 고전에도 흡사한 얘기가 나온다. 플라톤이 쓴 <에우티프론>이라는 대화에서 에우티프론은 자기 아버지를 살인죄로 고발했다고 의기양양해 한다. 하인들끼리 싸움이 붙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였는데, 자기 아버지는 그 살인자를 묶어서 구덩이에 처박아 뒀다. 당국에 어떻게 처리할지를 문의하러 왕래하는 동안 며칠이 걸렸다. 그 사이에 범인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었다. 이를 두고 에우티프론은 자기 아버지가 살인을 범한 셈이라고 고발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에우티프론에게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에우티프론은 자신이 신에 대한 경건을 행할 뿐인데, 다른 사람들은 경건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와 문답을 거치는 동안 에우티프론 역시 경건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박정희는 한국 정치사에서 논쟁적인 인물이다. "민족중흥"과 "조국근대화", 그리고 "반공"이라는 기치 아래 인민을 동원해서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경제적 단위에 구심점을 확보한 공로는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법을 짓밟고 고문과 살해를 일삼은 죄악은 두고두고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정직은 이 가운데에 있다. 경제 발전을 위해 "그 정도의" 야만이 불가피했다는 옹호론도 정직이 아니며, 그의 악행만을 부각함으로써 역사에서 그의 존재를 지우려는 시도 역시 정직이 아니다.

박정희의 사례는 <논어>나 <에우티프론>에 나오는 사례와 같지 않다. 동서양 고전에 나오는 두 사례는 모두 사적인 경우인 반면에 박정희는 위임받은 공권력을 악용해서 공동체를 파괴한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당대에 이미 대한민국 공동체를 두 갈래로 찢어 놨다. 박정희 사후에 그를 둘러싼 논쟁이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고 생산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시점이라는 변수를 고려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당대에 박정희가 저지른 악행들이 대한민국의 건설과 유지를 위해 "불가피했는지"는 두고두고 논쟁거리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와 같은 권력에 의한 악행이 불가피하다는 소리는 어불성설이다. 지금은 어떻게 보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소통과 배려를 통한 사회 평화가 총량지표상의 성장보다 훨씬 중요하다. 박정희에 대해 정직한 사람이 할 말이 바로 이것이다.

박근혜가 이런 정직을 발휘한다면 나는 칭송할 것이다. 박근혜가 자기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고, "어려운 처지에서 애쓰다 보니 저지른 악행들"에 대해 용서를 빈다면, 많은 사람들이 용서할 태세가 되어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에우티프론의 실수를 저지르는 셈이 되지는 않는다. 박근혜가 그렇게 한다면, 자기 아버지에 대한 최대의 효도가 될 것이다.

박근혜에게는 다른 길도 있다. 박정희의 공과를 과거사로 묻고 지금부터 대통령으로서 할 일을 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섭공의 마을 사람에 빗대면, 양을 훔친 아버지를 나서서 고발하지는 않되,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의 범죄를 고발하지 못하게끔 겁박하거나 은폐하지도 않는 셈이 된다. 박근혜가 박정희의 치부까지 정당화하려 들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도 박정희의 무덤을 파헤치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공동체는 박정희가 찢어놓은 상처를 봉합하고 미래를 향해 관심을 집중할 도덕적 풍모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해도 박근혜는 효녀라는 칭송을 들을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하지만 지금 박근혜는 최악의 길을 가고 있다. 양을 훔친 <논어>의 아버지, 비록 죄인이지만 사람을 죽게 방치한 <에우티프론>의 아버지를 숨겨주는 데 더해서, 아버지의 범죄를 선행으로 둔갑시키려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그것도 박정희가 자행했던 가장 악질적인 범행, 즉 공론장을 폭력으로 짓밟아서 보통 사람들의 선한 감수성을 박멸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박정희가 40년 전에 찢어놓은 공동체를 봉합하기는커녕, 아예 두 쪽으로 갈라서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내란을 획책하고 있다.

이런 짓은 성공할 수 없다. 공포분위기를 일시적으로 조성해서 57%의 지지율을 만들어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람들이 공포에서 깨어나는 순간 공동체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인민이 공포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박근혜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가 저지른 악행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역사는 가차 없는 판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박정희의 악행에 대해 가장 잔인한 증언이 누구보다도 그의 장녀 박근혜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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