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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도 유전무고, 무전유고(有錢無苦, 無錢有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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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도 유전무고, 무전유고(有錢無苦, 無錢有苦)? [황재옥의 '북한 인권을 생각한다'] 탈북자 지원대책, 좀 더 세밀해져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다. 같은 죄를 지어도 돈 있는 사람은 결국 풀려나고 돈 없는 사람은 영락없이 감옥에 가는 법 집행 현실을 비꼬는 말이다. 탈북자의 경우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탈북자들의 탈북 동기는 다양하다. 그들이 겪은 고통의 강도와 인고의 시간도 제각각이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돈을 가지고 떠난 사람과 돈 없이 떠난 사람 사이의 탈북 이후 처지는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북한에서 성분이 좋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고생을 덜 하고 남한으로 들어온다. 반면에 '생존'을 위해 탈북한 사람들은 국경을 넘는 단계에서부터 고생을 많이 한다. 인신매매 같은 인권유린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남한으로 입국한 뒤에도, 탈북자들은 사는 형편에 차이가 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일부 탈북자들은 식량난을 이기지 못해 탈북한 후,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무지 애를 쓴다. 정착지원금 등을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탈북비용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시 가난해지는 것이다. 빈곤의 악순환이다.

▲ 지난 2011년 9월 목선을 타고 표류하다 일본에 도착했던 탈북자 9명. 모두 한국행을 희망한 이들은 같은해 10월 4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연합뉴스

돈 있는 탈북자의 경우

얼마 전 필자는 '북한정치론' 강의 시간에 탈북자를 특강 강사로 초청했다. 학생들에게 북한실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특강 강사로부터 모처럼 생생한 북한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된 학생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북한 대학생들의 생활, 특히 남학생들은 북한 군대와 군인에 대한 질문이 많았고, 북한 청춘남녀의 연애사에 대해서도 궁금해했다. 필자는 탈북자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특강 강사는 평양 출신으로 생존을 위해 탈북한 여느 탈북자와는 좀 달랐다. 탈북자들도 등급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한 일간지에는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북한'이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국경을 넘는 일도 돈만 있으면 수월했다.

특강 강사 식구들은 북한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아버지 덕분에 1990년 중반 식량난이 극심했던 시기에도 쌀밥을 먹었다고 한다. 밥을 먹다가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먹던 밥을 숨겼다고 한다. 같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 나가는데도 쌀밥을 먹을 수 있었던 이들 가족의 탈북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단지 고위관료를 지낸 작은아버지가 체제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다 적발되어, 연좌제가 존재하는 북한에서 친척인 자신들의 가족들까지 함경북도로 쫓겨났다고 했다.

탈북 동기야 어떻든, '핵심계층'이었던 이들의 탈북 과정에서 힘이 되었던 것은 권세가 아닌 뇌물이었다. 그 뇌물은 모두 달러였고 그 달러는 고위간부였던 아버지가 여기저기서 받아 모아두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걸로 국경경비대에게 뇌물을 주고 가족 모두가 안전하게, 비교적 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중국으로 들어가서도 브로커에게 거액을 주었기 때문에 단 하루 만에 제3국으로 건너갔고, 곧장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북한주민들에게 있어서 탈북은 권세가 있건 없건, 돈이 있건 없건 일단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건 탈북에 대해, 그 동기나 과정에 대해서 우리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러나 주민들을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으로 나누어 통치하는 북한사회에서 그들의 이마에 새겨진 '주홍글씨'는 사선(死線)을 넘는 과정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북한에서 먹을 것 걱정 없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혜택을 받았던 탈북자 강사에게 필자가 물었다. "당신 가족들이 남한에 온 후, 북한에서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이냐"고. 잠시 생각하더니 "자유"라고 대답했다. 북한에서 고위 간부를 지낸 아버지는 현재 아파트 경비로 일하고 있다. 비록 북한에서처럼 대우받는 직업은 아니지만, 일을 끝내고 가족들과 함께 갖는 시간은 그들이 원하던 '자유' 바로 그것이었다. 무한경쟁이라는 짐이 어깨를 누르지만, 감시와 검열이 없는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고 탈북자 강사는 힘주어 말했다. '자유'의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를 숙연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돈 없는 탈북자의 경우

'자유' 대신 '생존' 그 자체가 동기인 탈북이 훨씬 많다. 지난 달 말 워싱턴에서 유엔 북한인권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재미 탈북여성 조진혜가 북한의 인권참상에 대해 증언했다. 조진혜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정치범수용소에서 고문으로 목숨을 잃었다. 1990년대 중반 대기근 때 식량을 구하러 중국에 갔던 언니는 인신매매를 당했다. 남동생 중 하나는 탈북 후 먹을 것이 없어 누나인 조진혜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탈북자강사 가족들이 쌀밥을 먹다가 인기척에 놀라 밥을 숨기던 같은 시기에 조진혜의 남동생은 배고파 죽었다. 아버지는 고문으로 목숨을 잃었고, 언니는 인신매매 당했다. 두 집안 사정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쪽은 '자유'를 찾아 나왔고, 다른 한쪽은 '생존'을 위한 '고난의 행군'을 떠났던 것이다.

조진혜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사람이 목숨을 잃을 만큼 심한 고문을 당하고 있고, 인권유린이 심하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돈 없이 탈북하면 여성들은 인신매매 당하기 쉽고, 영유아는 배고파 죽기 쉽다는 것도 확인했다. 돈 없고 권세 없는 북한주민들의 생명권과 생존권이 이렇게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런 사람들의 정치적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탈북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조진혜 언니처럼 돈이 없는 북한여성들은 곧잘 인신매매 당한다. 그리고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 동북3성(지린 성, 랴오닝 성, 헤이룽장 성)을 중심으로 중국에 숨어 지내는 탈북자 규모는 약 15만 정도로 추산된다. 그중에는 중국남자에게 인신매매 당한 후 북한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이 약 1만 5천 명 정도라고 한다. 인신매매로 중국인과 결혼해 살다가 발각되어 다시 북한으로 추방되는 북한여성이 낳은 아이들은 무국적자들이다. 생모의 존재나 자신의 출생 자체가 불법이고 비밀이다. 이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방치되고 있다. 이들은 생계와 교육 권리가 보장되지 않아 범죄에 노출되고, 심리적·정서적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이 당하는 인권침해도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인권문제 중 하나다.

탈북자 지원정책, 좀 더 세밀해져야

북한에서 힘깨나 쓰던 사람들은 탈북도 쉽게 하지만, 탈북 후에도 인신매매나 북송 같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자유'를 찾아오게 된다. 반면에 살기 어려워 탈북 후 여러 해 동안 죽을 고생을 하다 간신히 남한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은 빈곤의 악순환에 다시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생존' 문제가 계속되는 것이다. 정부로부터 받는 정착지원금이 점점 적어지는 탓도 있지만,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데려 나오기 위해서 그 돈을 쓰는 경우도 있고, 탈북과정에서 브로커들에게 약속했던 돈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었던 이들에 대한 한국사회 내에서의 차별이 탈북자들로 하여금 남한을 떠나 다시 외국으로 떠나게 하고 있다. 탈북자의 '탈남' 현상이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을 떠나 영국, 미국, 캐나다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서구사회와 태국 등지에 약 1500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탈북자의 정착지원을 관리하는 당국의 고민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사선을 넘어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그들의 고충과 고민이 무엇인지 그들의 입장에서 들어 보아야 할 것이다. '정지된'사회에서 살다 들어 온 그들에게 '역동적인' 남한사회의 그 모든 것이 낯설 것이다. 그들의 '홀로서기'를 도울 수 있는 맞춤형 지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남한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라도 알려줄 수 있는 '열려있는 전화'라도 그들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한사회의 탈북자에 대한 차별과 관련해서, 단지 그들은 북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제 고향은 함북 무산입니다"라는 이 말을 듣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68년이란 분단의 세월이 우리로서도 어색하고 낯설게만 느껴지지만,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아닌 우리 민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언젠가 이루어야 할 통일 한반도를 대비해서 당국과 사회가 작은 일에서부터 '마음'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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