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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에서 IT와 패션의 '메카'로…구로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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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에서 IT와 패션의 '메카'로…구로의 변신 [김경민의 도시이야기]<21>동대문을 넘어서는 패션 1번지
과거 서울 구로공단이 대한민국 수출 전초기지로 역할 했던 것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구로는 아마도 '후지고' 못 사는 동네라는 인식이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로에 대한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기성세대의 것과 사뭇 다르다. 그들에게 구로는 첨단 오피스 밀집 지역이자, '마리오아울렛'으로 대표되는 쇼핑의 메카이다. 옛 경방공장이 위치했던 타임스퀘어, 대성산업이 위치했던 디큐브시티 그리고 마리오아울렛 등 옛 구로공단 내 위치한 대형 아웃렛들은 이미 서울 (어쩌면 수도권) 서남권 지역을 평정했다.

더 이상 구로는 과거 굴뚝 산업 시절 공장들이 밀집했던 그리고 산업 역군이라 불렸던 공장 노동자들이 몰려 살던 동네가 아니다. 공장 지대 구로는 현재 중산층 타운, 첨단 오피스 타운 및 쇼핑의 메카로 변모 중이며, 과거 '가리봉 수준'이란 기억은 이제 소멸하였다. ('가리봉 수준'은 과거 공단 노동자들이 본인들의 처지를 비관하며 불렀던 자조적인 의미의 단어다)

▲ '패션 매카'로 자리매김한 서울 구로의 현재 모습. ⓒ김경민
ⓒ김경민
ⓒ김경민

구로는 80년대 후반 전성기 시절에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0%를 담당하기도 했던 '한강의 기적' 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물론 열악하고 조악한 산업 시설과 주거 환경, 그리고 노동자 탄압 등이 존재했던, 어쩌면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장소일지 모른다. 하지만 구로는 세계 산업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대단한 스토리(이야기)를 갖고 있는 장소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은 식민지 과정에서 산업화를 경험하였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한국과 같이 전 세계를 무대로 수출 산업을 부흥시켜 선진국 대열에 든 국가는 드물다. 그리고 구로는 이러한 경제 발전의 시발점 역할을 담당하였다. 구로는 단순히 낡고 허름한 공장 단지가 아니라, 한국의 현재를 구축한 발판이 된 세계 산업사에 기억될 만한 중요한 장소다.

변모하는 구로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등장이다. 그림에서 보듯, 종근당제약 공장(7만8621제곱미터, 대림e-편한세상 2298세대), 조흥화학 공장(5만6411제곱미터, 신도림동아아파트 1908세대), 기아특수강 공장(5만3761제곱미터, 태영데시앙아파트 1252세대), 대성연탄 공장(3만5000제곱미터, 디큐브시티) 등으로 무려 32만6153 제곱미터 부지에 8220세대 공장이 아파트단지로 변화하였다.

▲ 왼쪽은 2013년 현재 구로구 아파트 단지. 오른쪽은 1970년대 과거 공장 위치. ⓒ김경민

하지만 아파트 단지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같은 물리적인 변화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파트(주택) 시장의 질적인 측면이다. 2008년 이후 구로 지역 아파트 가격은 굉장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구로 지역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신도림동 아파트 가격은 2008년 세게 경제 위기로 대치동과 도곡동 등 서울 부촌의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는 동안에도 가격은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인근 목동(신정동) 아파트 가격이 고점 대비 24% 폭락한 것에 반해 구로동과 신도림동의 가격 변화는 거의 없었다.

이는 양질의 산업구조 (오피스 타운으로의 변화)가 확립되어가고 편의성 있는 쇼핑 환경이 조성되면서 구로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추세이다.

▲ 신도림과 목동 지역의 아파트 가격 변화. (출처: 부동산114 REPS(Real Estate Power Solution)) ⓒ김경민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더욱 선명하게 드려내 주는 것은 교육 지표의 변화다. 구로구에 위치한 신생명문 신도림고등학교의 고교 선택 경쟁률은 놀라움 그 자체다. 구로구에 속한 이 고등학교의 경쟁률은 2010년 17.1 대 1 (서울시 전체 1위), 2011년 19대 1 (서울시 전체 3위), 2012년 12.4 대 1 (서울시 전체 4위)을 기록하였다. 교육을 중시하는 중산층 타운으로 변모하지 않았다면, 신도림고의 돌풍과 같은 현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시 전체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에서도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는 상황, 그리고 구로구 소재 고등학교의 돌풍은 중산층 타운으로 변화하고 있는 구로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구로공단, 봉제공장 밀집지에서 IT벤처타운으로

구로지역이 사람들의 관심 밖 지역에서 중산층 타운으로 거듭나는 와중, 구로공단의 산업구조 역시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구로공단은 과거 봉제와 섬유 등의 경공업에서 최근 소프트웨어, 디자인, 멀티미디어 등 정보통신(IT)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침체기에 빠지면서 1987년 당시 7만3000명이었던 고용 인력이 1998년 2만5000명으로 감소하였다. 하지만, 2000년 전후로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급격한 성장을 구가하고 있으며, 2011년 기준 고용인력은 14만여 명에 달한다. 13년 사이에 무려 5배 이상의 고용 성장이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과거의 저학력, 저소득 계층이 아닌 고학력, 고소득 계층이다. 이와 더불어 사업체 수 역시 폭증하였다. 1990년대 후반 IT산업 집적이 시작되면서 동기간 무려 20배에 가까운 사업체수 성장을 기록하였다. ③

ⓒ김경민

이러한 산업의 구조적 변화는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진행된 것은 아니다. 구로는 1970~1980년대 한때 연 성장률이 30%에 이를 정도로 고도 성장기를 구가하였으나, 1980년대 말 이후 1990년대에는 급격한 침체를 겪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구제금융사태를 겪으면서 낙후된 시설과 산업 구조 변화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면서 구로공단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1999년 국내 벤처 집적시설 1호인 키콕스(KICOX) 벤처타운 완공 후 530개 벤처 업체가 입주하면서, 구로는 중소 벤처기업 중심지로 산업 성격이 변화하게 된다. 특히 2000년대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과거 IT 벤처의 요람이라 여겨졌던 강남 테헤란 밸리가 IT 클러스터라는 성격을 잃어가는 중에 구로는 강남 테헤란 밸리를 압도하면서 IT 첨단 벤처기업들의 메카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2000년에서 2007년 사이 강남구 소재 벤처기업이 953개에서 828개로 감소한 데 반해, 구로의 벤처기업은 84개에서 859개로 급증하였으며, 구로 단지에 유입된 벤처기업의 약 40%는 강남권에서 이주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성공에는 규제 완화(1996년 수도권 공장 총량제에서 아파트형 공장을 제외)에 따른 아파트형 공장의 대량공급, 저렴한 임대 가격에 따른 높은 가격 경쟁력, 서울이라는 입지와 높은 교통 접근성, 집적화에 따른 긍정적 네트워크 효과 등이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 2000~2007년 구로 단지로 이주해 온 벤체 증업체의 이동 경로 (구로공단 부활의 의미, <> 제608호) ⓒ김경민

대한민국 패션 1번지, 구로

서울 시내 거리 곳곳마다 수많은 SPA(Special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의류기획∙디자인, 생산∙제조, 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제조회사가 맡는 의류 전문점) 상품의 대형 매장이 위치하고 있다. 대표적 SPA 업체로는 자라, 유니클로, GAP, H&M, 포에버21, 스파오 등 해외와 국내의 다양한 회사들이 있다. 이들은 최신 유행 디자인을 즉각 반영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이른바 패스트 패션을 추구한다. 따라서 SPA 상품의 가장 큰 특징은 기획-디자인-생산-유통(판매)의 기간을 단축해,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비단 SPA 상품뿐 아니라, 다른 패션 업체들도 기획-디자인-생산-유통을 이른 시일 내에 할 수 있다면, 굉장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능들이 지리적으로 한 지역에 몰려있는 곳의 장점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 패션 메카로 여겨지는 곳은 동대문 지역이다. 의류 기획-생산-판매 기능들이 동대문 시장과 그 주변 지역에 집적되었기에,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 '트렌디'한 의류를 동대문은 지속해서 시장에 내놓고 있다. 하지만 디자인 베끼기 논란이 종종 일어나며, 많은 봉제 공장이 여전히 가내 수공업 형태로 제품 완성도가 고르지 못한 현실, 그리고 봉제 공장 노동자들의 고령화란 요인 때문에 동대문은 현재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패션 메카로서 동대문의 위상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패션 산업에서 가장 고부가 가치 영역인 디자인이 제대로 자리매김하여있지 못하다는 점과 생산 기술력이 과거만 못하다는 현실을 의미한다. 동대문의 미래가 신문 지상에서 이야기하는 장밋빛 미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구로 지역의 패션 산업은 성장 가능성 측면에서 동대문을 넘어서고 있다. 구로공단 시절부터 구로 지역 내 패션 산업은 대기업에 의한 공장화된 생산 공정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의류 생산 품질을 보증하였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구로 지역은 마리오와 W몰 등 메가 쇼핑 시설들이 지속해서 생겨나고 있어 서울의 남서부 패션 상권의 핵심으로 성장하였다. 더더욱 중요한 부분은 고부가가치 영역인 디자인 분야의 인력들이 다수 구로 지역에 모여 있다는 점이다.

▲ 서울 시내 디자이너는 왼쪽 지도에서 보듯이 강남과 장안동, 구로 지역에 주로 집적한다. 한편, 서울 시내 패션생산인력(미싱사)는 오른쪽 지도에서 보듯 동대문 주변, 장안동, 구로지역에 집적한다. ⓒ김경민

따라서 구로지역은 디자인과 높은 수준의 생산 능력 그리고 유통 채널까지 모든 것이 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서울, 아니 대한민국의 패션 1번지이다. 한국계 사장에 의해 세계적인 SPA 상품으로 성장한 포에버21이 서울 사무소를 삼성동에서 구로로 옮긴 것은 패션 1번지 구로의 위상을 알려주는 증표다.

패션 산업의 가치 사슬은 디자인-패션 제조(샘플 및 패턴 제작) – 봉제 – 유통의 4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중 패션 디자인업은 창조 산업으로' 분류되며, 패션 제조 (샘플 및 패턴 제작) 역시 창조 산업의 관련 산업으로, 넓게 보면 창조 산업 영역에 해당한다. 하지만, 단순 봉제와 유통은 창조 산업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패션 디자인업, 패션 제조 및 봉제, 유통 – 패션 산업 가치 사슬의 모든 단계가 집적되어 있는 구로 지역은 단순 유통과 그에 종속된 봉제 위주의 동대문을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이미 넘어섰을지 모른다. 이는 유명 패션 업체들이 여전히 구로지역에 다수 포진되어 있는 것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유명 패션 상품 입지가 주는 또 다른 의미는 구로 지역이 민간 자체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발판이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동대문 패션 지구와 구로가 매우 대비되는 부분이다. 동대문 지역에서 성공을 하여 큰 패션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성공과 동시에 동대문을 떠났다. 따라서 민간 패션 산업의 성장 측면에서 구로와 상당히 대비되는 것이며 동대문 패션 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 연재에서 설명한 동대문 시장과의 종속적 성격, 제한된 신규 (패션 제조) 노동력의 유입, 노동력의 노령화, 기술력의 퇴보 등 다양한 문제점은 동대문 패션산업의 구조적 특성에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 소셜 벤쳐, '어반 하이브리드'에서 창신동 봉제 공장의 한계와 가능성을 알리고자, 창신동 공간브랜딩 차원에서 오는 20일 '창신동, 미디어로 꿰매다'라는 심포지엄과 이벤트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주석
①구양미, 2012,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진화와 역동성, 한국지역지리학회지, 18(3): 283-297
②박용규 외2, 2007, 구로공단 부활의 의미, 삼성경제연구소, CEO Information 제608호
③구양미, 2012,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진화와 역동성, 한국지역지리학회지, 18(3): 283-297
④박용규 외2, 2007, 구로공단 부활의 의미, 삼성경제연구소, CEO Information 제608호)
⑤유지연, 이금숙, 〈패션제조업의 분포 특성과 직능 간 연계성 분석〉, 《한국경제지리학회지》 16(1): 1-16, 2013.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1> 서울, '200년 역사' 상하이보다 못하다…왜?
<2> 휘청휘청 용산 개발, '티엔즈팡'만 미리 알았어도…
<3>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4>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만든 그는 왜 잊혔나
<5> 당신이 몰랐던 피맛골, 아직 살아 있다
<6> 박정희 시대 요정 정치 산실, 꼭 헐어야 했나
<7> MB·오세훈 '뉴타운 광풍'과는 다른 '낙원삘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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