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정의에 따르면, 전담 인력은 노인 일자리 사업을 수행하는 민간 수행 기관(노인복지관, 시니어클럽, 대한노인회)과 노인 일자리 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시·군·구의 노인 일자리 사업 업무를 전담 지원하기 위해 배치되는 상근 인력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노인 일자리 사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인력이라고. 분명, 이들은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며, 이웃에게 사랑을 최전방에서 실천하는 사회복지사들이다.
이 사회복지사들이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차별받고 있다. 전담 인력으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을 만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회복지 현장의 비정규 노동자들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들의 사용자는 복지 현장의 관장인가? 보건복지부인가?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노인의 날 기념 전국 어르신 초청 오찬 행사에 입장한 뒤 참석자들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정규직은 직원회의 참여 못 한다
"사회복지 현장은 기업과는 다를 줄 알았어요. 급여 차이는 조금 있어도 차별은 없을 줄 알았어요." 전담 인력으로 3년 일한 이 모(36) 사회복지사는 차별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욕을 당했다며 분개했다.
"신종플루가 한참 기세등등할 때입니다. 복지관 정문에서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신종플루 검사를 해요. 정규직은 그냥 통과하고요. 정규직은 바빠서 검사할 시간 없다는 거예요. 하는 일과 업무량에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에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전체 직원회의를 한다고 모이래요. 좀 일찍 가서 회의 테이블 정리하고 앉아 있었지요. 조금 있다, 관장님을 비롯한 정규직원들이 들어왔어요. 관장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왜 여기 앉아 있느냐고 물어요. 그래서 '회의한다고 해서 왔습니다'라고 했더니 부장보고 누가 비정규직까지 회의 참석시키라고 했느냐고 화를 내는 겁니다.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그때 생각에 자기 볼에 손을 갖다 댄다.
"더 자존심 상한 건요. 머쓱해서 나가려고 하는데, 관장님이 커피나 사람 숫자에 맞춰서 갖다놓고 가라는 거예요. 너무 서러웠어요. 사회복지 현장에서 이런 일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 모(28) 사회복지사가 말을 거든다.
"비정규직끼리 야근을 하게 됐습니다. 근데 저녁이 안 나오더라고요. 며칠 전 야근 때는 저녁이 나왔거든요. 그래서 식당 영양사 선생님한테 물었지요. '오늘 저녁 안 나옵니까?' 하고. 정규직이 야근할 때만 저녁이 나온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진짜 치사하더라고요. 먹는 것까지 차별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김 모 사회복지사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있었다.
"명절 때는 정규직은 5만 원 상품권, 비정규직은 3만 원 상품권을 줍니다. 더럽고 치사해요. 억울하면 그만두든지, 빨리 정규직이 돼야죠." 오기가 담긴 그녀의 바람이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착잡하다.
"정규직의 일이 밀렸을 때는 모든 직원이 야근합니다. 비정규직 일이 밀렸을 때는 우리만 야근해요." 김 모 사회복지사는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손을 가슴에 대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누구보다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우선시해야 하는 곳이 사회복지 현장 아닌가.
사라져 버린 사용자, 보건복지부
"정규직은 1년마다 호봉이 올라갑니다. 비정규직은 1년이 됐든 10년이 됐든 월급이 똑같아요. 퇴직금은 아예 없고요. 상실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10년을 일해도 월급이 같고 퇴직금이 없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정말이냐고 다시 물었다.
"오르긴 오르죠. 그해 최저임금이 오르면 딱 그만큼만 올라요." 최저임금 인상은 이들에게 생명줄 같은 것이다.
이 모 사회복지사가 옆에서 거든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노인 일자리 사업과 그에 따른 예산을 수행 기관(노인복지관, 종합사회복지관, 시니어클럽, 대한노인회)에 위탁합니다. 이때 예산에 퇴직금은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결국 전담 인력을 11개월만 쓰고 자르라는 거죠. 11개월보다 더 고용하려면 수행기관이 퇴직금을 부담하라고 합니다. 수행기관은 영리 사업을 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당연히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부담을 감수할 수 없지요."
이 모 사회복지사의 이야길 더 들어보자.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도, 휴일 근무를 해도, 야근 수당, 초과 수당, 휴일 근로 수당이 안 나옵니다. 정규직은 다 나오거든요. 우리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 정규직원은 복지부에서 예산이 안 내려오니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땐 나쁜 마음을 먹기도 해요. 복지부에서 하달한 전담 인력 지침서에는 전담 인력 고유 업무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도록 돼 있어요. 내가 할 일만 하고 다른 일은 모른 척할까 생각도 해봤죠. 그렇지만 11개월짜리라도 지키려면 그렇게 할 수 없죠.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것은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결혼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씁쓸한 미소를 짓는 이 모 사회복지사 눈자위가 저녁놀처럼 붉어진다.
"보건복지부가 전담 인력이라는 애를 낳고, 그 애에 대한 책임은 수행 기관에 떠맡겨요. 자신들이 낳았으면, 책임도 져야죠. 수행 기관 뒤에 숨어 있지 말고 당당히 나서서 근로조건을 개선해 줘야 합니다." 김 모 사회복지사는 복지부가 실제적인 사용자라고 주장한다.
노인 일자리 전담 인력 제도는 2008년에 처음 복지부가 실시했다. 당시 급여 90만 원, 계약 기간 9개월 조건으로 전국에서 902명이 채용되었다. 2012년에서야 최저임금 상승으로 급여가 100만 원으로 인상되었다. 2013년 역시 최저임금 인상으로 급여가 102만 원으로 올랐다. 계약 기간은 도입 5년 만에 2개월 연장된 11개월이 되었다. 현재 전국적으로는 2040명이 일하고 있다.
이 모 사회복지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비정규 노동자들 사이에 회자하는 '사라져 버린 사용자 책임'이란 것이 떠오른다.
전담 인력의 급여는 분명 복지부에서 나온다. 업무 지침서도 복지부가 하달한다. 복지부가 전담 인력의 사용자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11개월 함께 일하다 보니 사업에 호흡도 좀 맞아가고, 정이 들 만하니까 그만두는 거야. 이게 다 복지부가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 11개월로 제도를 짜 놓은 거야. 그렇다고 내가 퇴직금을 줄 수도 없고 복지관 관장한테 주라고 할 수도 없고…."라며 아쉬워하신다.
수행 기관 입장에서는 일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계속 고용하고 싶지만, 퇴직금 지급 여부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우리는 수행 기관에 모든 걸 위탁했으니 더 이상의 책임은 없다. 11개월 고용하라고 했지, 누가 그 이상 고용하라고 했느냐'며 법적 책임은 수행 기관이 떠안으라고 한다. 복지부의 이 말은,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하는 것과 닮아있다.
결국 수행 기관과 전담 인력 사이에 퇴직금을 안 받는 조건으로 담합(?)을 하며 고용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비정규 사회복지사, 목소리를 내다
"전담 인력 사회복지사들의 처우가 형편없다 보니 지원하는 사람이 고정화되는 경향이 보여요. 사회복지학과를 갓 졸업한 사람 또는 경력 단절 여성들이 뒤늦게 사회복지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 길로 들어서죠. 대학을 갓 졸업한 이들에겐 '경력이 없으니 배우는 기간으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경력 단절 여성에겐 '너무 나이가 많으니 이 정도도 감지덕지한 것 아니냐'고 하면서 이들을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고 있어요."
102만 원의 급여와 11개월짜리 계약직이라는 근로 조건 때문인지, 함께 일하는 정규직 사회복지사들 앞에선 괜히 움츠러든다며, 김 모 사회복지사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용률 70% 목표는 달성하기도 불가능하지만, 달성하면 뭘 해요. 우리 같은 일자리만 만들면서 생색만 낼 거잖아요."
전담 인력의 처우를 보면, 노인 일자리 사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력이라는 복지부 말에 진정성이 있기는 한 걸까?
"제가 담당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분 중에 노년유니온 조합원이 계셨어요. 그 어르신에게 노년유니온 활동에 대한 이야길 듣고 우리도 사회복지사 유니온을 만들어서 스스로 권익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우리도 복지관 관장이 아닌 복지부와 직접 교섭하고 싶습니다."
이 모 사회복지사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기가 돈다. 이렇게 해서 노년유니온과 비정규직 사회복지사들의 간담회가 이루어졌다. 전담 인력 사회복지사들의 요구는 이렇다.
"전담 인력은 사회복지 경력이 인정이 안 돼요. 힘들게 정규직으로 취업해도 그간의 경력이 비정규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1호봉에서 시작합니다. 경력을 인정받길 원합니다."
"102만 원 월급에 4대 보험료 제하면 93만 원. 여기에 식대, 차비, 통신료를 부담해야 해요. 친구하고 밥 한 끼 먹으면 남는 게 없습니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을 줬으면 합니다."
"전담 인력 인건비를 복지부에서 주니까, 1년 이상 근무 시 퇴직금을 복지부가 책임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사용자는 복지관이나, 시니어클럽, 대한노인회가 아닙니다. 복지부가 우리 사용자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사회복지사의 처우도 빈약한 상황이지만, 이들 전담 인력들의 실태는 비인간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어느 공간에서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일하고 있다.
우리들의 사용자에게 요구를 전하고 싶어요
"우리들의 사용자는 누구인가요? 누가 사용자로서 책임져야 하나요? 그들을 만나 우리의 요구를 전하고 싶어요."
그래도 간담회를 하면서 희망의 씨앗도 발견했다. 비정규직 사회복지사들이 이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숨어 있는 사용자는 바로 복지부이다. 복지부는 사용자의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번 칼럼을 들으세요.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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