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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시한폭탄, '아파트 노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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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시한폭탄, '아파트 노예들'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김재영의 <하우스 푸어>
김재영의 <하우스 푸어>(더팩트 펴냄)를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가, 이 책 바로 곁에 꽂혀있는 김부성의 <하우스 푸어에서 살아남는 법>(미르북스 펴냄)도 함께 빌려 왔다. 두 책의 제목을 이루고 있는 '하우스 푸어'는 'house+poor'의 합성어로 영어 사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음(daum.net)이 지원하는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내 집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저금리를 바탕으로 주택 가격이 오를 때 과도한 차입을 통해 집을 샀으나 금리 인상과 주택 가격 하락 등으로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산층을 일컫는다.

부동산 불패 신화에 기대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던 사람들이 부동산 경기 침체로 큰 손해를 입으며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고 있다. 2010년 현재 국내에서 하우스 푸어는 약 198만 가구로 추정되고 있다.


책이 꽂혀 있는 서가의 위치, 지은이의 이름 그리고 제목마저 매우 흡사해서 나는 <하우스 푸어>와<하우스 푸어에서 살아남는 법>이 '이구동성'인 줄 알았다. 하지만 두 책은 완전히 다른 책이다. 김재영의 <하우스 푸어>가 부제 그대로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양산된 원인을 추적하면서 아파트 투기 과열과 재건축 붐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라면, 이 책보다 한 달 늦게 출간된 김부성의 <하우스 푸어에서 살아남는 법>은 하우스 푸어론(論)에 대응하기 위한 업계의 논리를 담고 있다.

갑자기 방송과 언론은 물론 인터넷상에서 '하우스 푸어'라는 용어가 유행되고 하우스 푸어를 소재로 한 책이 출간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책을 사서보고 (고객들의) 매수 의지가 완전히 꺾여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이후 이런 유형의 전화 상담이나 방문 상담이 많아졌는데, 하우스 푸어에 대한 주제가 한여름 전국을 강타하면서 실수요자들이 공포의 도가지로 빨려 들어가는 현실에는 이들에게 공포의 덫을 놓는 세력이 배후에 있음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 고객과의 전화 통화를 계기로 필자는 본 책을 집필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 사실 이책은 이 고객이 필자에게 쓰라고 한 것이나 진배없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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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우스 푸어에서 살아남는 법>(김부성 지음, 미르북스 펴냄). ⓒ미르북스
위의 인용은 <하우스 푸어에서 살아남는 법>을 쓴 이가 '부동산 업계'의 이해 당사자라는 것을 감추지 않는다. 지은이는 "유명 방송사의 공신력 있는 PD가 저자"(28쪽)인 <하우스 푸어>를 직접 겨냥하여 "'하우스 푸어론'을 펼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 마치 왜곡되고, 조작된 거대한 드라마로 간주한다. 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 중 건설사와 보수 언론 그리고 탐욕에 눈이 뻘건 투기 세력이 일반 선량한 실수요자들에게 덫을 놓고 폭리를 취한 후 먹튀를 한다는 가설을 줄곧 강조"한다면서, "그러나 사실 '하우스 푸어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세력이야말로 일부 방송 매체와 비관론자들이 연합하여 시장 침체기에 시장 참여자들의 조바심과 공포를 역이용해 자신들의 브랜드를 더욱 확장하기 위해 벌이는 거대한 '짜고 치는 고스톱'"(29쪽)이라고 비난의 수위를 높인다.

과연 김부성의 지적처럼 <하우스 푸어>의 지은이는 물론이고 부동산 폭락론자(비관론자)들이 하우스 푸어론을 앞세워 얼마만큼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책 판매"에 성공했을까? 내가 보기에 지은이의 본심은 이들을 반시장주의 정서로 충만한 '좌파'로 낙인찍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인기나 인세에 눈 먼 파렴치한으로 모는 게 더 설득력 있고 파괴적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부동산 칼럼니스트인 지은이에 따르면, 하우스 푸어론이 솔깃하게 들렸던 것은, 2008년말 미국발 금융 위기 직후 집값 하락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때문이라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한 이유를 세 가지로 꼽는다.

①수요 측면 :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②공급 측면 : 2~3년 전에 분양했던 비(非)분양가 상한제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짐(현재), 정부의 보금자리 주택 정책이 공급 과잉을 낳으리라는 우려(미래) ③심리 측면 : 집값 폭락론자 및 하우스 푸어론자들의 왕성한 활동으로 심리 위축(+보금자리 청약에 다른 대규모 매매수요 연기).

집값 하락의 원인이 ①, ②에서 비롯한다면, 부양책은 주택 시장 기능을 마비시킨 정부의 규제 정책을 개선하고, 주택 상품의 공급과 수요가 평형을 찾으면 된다. 이토록 단순한 해결책을 믿기 때문에 김부성은 현재(이 책을 쓰던 때)의 "'하우스 푸어론'은 유효 기간 6개월짜리 통조림이다"(46쪽)라고 확신하면서, 처음부터 하우스 푸어론이 먹히지 않았던 지방은 물론이고, 수도권의 '하우스 푸어시대' 역시 "올해 말~2011년 상반기에는 종말을 고할 가능성이 농후하다"(47쪽)고 거듭 확언하는 것이다. 아래는 이 책의 결론이자, 하우스 푸어론자들의 선동에 박아 넣는 마지막 쐐기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정부의 규제 완화 발표 예정 시점인 8월 말이 시장 전환점으로 간주한다. 이후 가을과 연말을 지나면서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시장 거래가 다소 숨통이 트이면서 시장이 기사회생하여 내년 이후 수급 전쟁이 발발, 시장 역습이 시작되면 지금 하우스 푸어론자들이 쳐놓은 공포의 덫에 걸려 집을 던지고 남의 집에 전세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쓰라린 결과를 맛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 부분을 독자 여러분들은 유념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265쪽)

실물 경제에서 심리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사람은 없다. 그렇더라도 그가 '자칭 집값 정상화론자'라고 야유했던 하우스 푸어론자들의 공포 분위기(?) 조성이, 아파트 경기 침체와 가격 하락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까? 지은이는 이 책 어디에서도 하우스 푸어론과 당시의 집값 하락 사이의 연관성을 증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③을 집값 하락의 중요한 원인으로 계속해서 강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 점을 현상과 속내가 겉도는 것을 드러내는 징후로 파악해야 하며, 하우스 푸어론에 대한 지은이의 가열한 견제와 경시야말로 '하우스 푸어론이 그럴듯하다'는 부동산 전문가의 무의식적 토로(실수)로 보아야 한다. 즉, 아파트 경기 침체와 집값 하락의 원인과 해결책이 ①, ②에 있다면, 솔직히 ③은 크게 괘념할 게 못된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의 식견 속에 현재의 집값 하락이 단기적인 정책 실패나 수급 조절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불안이 들어선다면, 소위 하우스 푸어론자들이 시장에 쳐놓은 '공포(심리적 위축)'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심리적 위축은 ①, ②보다 더 크고 거부하기 어려운 사실(real)에 대한, 정직하고 숨김없는, 히스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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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우스 푸어>(김재영 지음, 더팩트 펴냄). ⓒ더팩트
김재영의 <하우스 푸어>는 김부성이 악의적으로 왜곡한 것처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내 집 마련의 꿈'을 투기꾼의 탐심으로 비난하면서, '하우스 푸어'꼴이 난 중산층을 조롱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그런 악의적인 왜곡과 달리, <하우스 푸어>는 중산층의 '내 집 마련의 꿈'을 볼모로, 자신들의 사익을 불리는 구조적 병폐에 대한 해부요 고발이다.

하우스 푸어가 양산되는 이유는 일반 가계의 단순한 판단 착오 때문이거나 탐욕 탓으로 돌려버리기에는 매우 구조적인 근원을 갖고 있다. 정부-금융 기관-건설 업체-언론-부동산 정보 업체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부동산 덫이라는 거대한 매트릭스를 만든 것이다. (103쪽)

<하우스 푸어>의 지은이는 "하우스 푸어가 발생한 원인은 집값 하락이 주범이자 하우스 푸어가 발생한 이유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4쪽)라는 단순한 문제의식에서 맴돌았던 <하우스 푸어에서 살아남는 법>의 지은이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하우스 푸어가 생겨난 맥락의 전모를 밝힌다.

집(아파트)을 마련하기 과다한 은행 대출을 받은 뒤에, 집값이 폭락하여 레버리지 효과(빚을 얻어서 사더라도 이자 부담보다 더 많은 이익을 주는 효과)도 기약하지 못한 채, 비싼 이자를 물면서 생활의 어려움을 겪거나, 손해를 보고 아파트를 팔아야 하는 하우스 푸어가 발생한 원인은 다음과 같다.

2000년대 아파트 가격 상승에는 정부-건설 업체-시중 금융 기관들의 묘한 공생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정부는 갈수록 떨어지는 성장 잠재력을 부동산 투기 붐을 불러일으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시중 금융 기관들의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 관행을 방조했다. DTI 규제는 각 가계에 무리하게 대출해 폭리를 취하는 금융 기관들의 약탈적 대출 관행을 막기 위한 금융 소비자 보호 조치다. (…) DTI 규제는 부동산 붐의 정점인 2006년에야 도입했다. 이처럼 약탈적 대출이 지속되다 보니 가계 소득을 훨씬 넘어서는 대출을 받은 가계들이 양산됐고, 그것이 2007년 이후 하우스 푸어의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71~72쪽)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이 문제가 되었던 최초의 사례는 1987~1991년 사이였다. 하지만 이때는 2000년대 초입에 생겼던 두 차례의 투기 붐(1차 : 2001~2003년, 2차 : 2005~2006년)과 달리 소득과 일자리가 있었다. 그 때문에 주택 가격이 뛰어오르기도 했지만, 1989년에 토지 공개념이 도입될 만큼 토지-주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도 높았다. 그 결과 1991년부터 외환 위기가 터지기 전인 1997년까지, 6년간의 경제 성장률이 6퍼센트였는데 반해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은 제자리걸음 상태로 평균 2퍼센트 정도만 상승했다. 이 기간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가격이 끊임없이 올랐다는 신화는 허구인 것이다.

그나마 안정적이던 아파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아 오른 것은 외환 위기를 겪고 나서다. 외환 위기는 몇몇 재벌 기업을 제외하고 상당수의 중견 재벌과 중소기업을 줄도산에 빠트렸다. 다행히도 한국 경제는 외환 위기 직후에 반짝 찾아온 'IT 붐'과 '주식 붐'으로 소생되는 듯했다. 이때 정부는 재벌 기업 위주의 경제 구조를 중소기업과 벤처 산업을 중심으로 바꾸어 중산층의 안정에 기여해야 했으나, 기존의 재벌 기업과 수출 정책 위주의 정책을 펼쳤다. 외한 위기를 당하고도 승자독식의 재벌 선호 정책은 흔들리지 않았던 반면, 중산층은 정리 해고와 명예 퇴직의 일상화 그리고 비정규직과 실업의 만연이라는 커다란 횡액을 맞았다.

정부는 외환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가라앉는 경제를 가계 빚을 동원해 해결하려고 했다. 구제 금융으로 거덜 난 국가를 인수한 김대중 정부는 코스닥 등록 기업의 사기적 행태를 방조하면서까지 IT주식 붐을 키웠고, 저소득층 가계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길거리에서 신용카드를 뿌리는 것도 못 본 체 했다. 1999년과 2002년에 달성한 9퍼센트와 6퍼센트대의 고성장은 그렇게 이루어졌는데, 주식과 카드에 이어 가계 빚이 대규모로 동원된 곳은 바로 부동산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 위기 이후 외환 위기를 극복한다는 미명 아래 온갖 부동산 규제 완화책과 세금 감면책 등을 사용했다.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은근히 투기를 조장하기도 했다. 외환 위기 직후 부동산 시장이 워낙 침체돼 있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필요한 정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같은 정책 기조는 계속됐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2003년 10·29 대책 등을 내놓았으나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오히려 2004년 부동산 시장이 1년가량 침체 양상을 보이자 '연착륙론'이라는 이름 아래 각종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쏟아졌다. 그 결과 2005~2006년의 2차 폭등으로 이어졌다. (70쪽)

외환 위기를 극복한다는 미명 아래 구제 금융기의 경제 정책은 부동산 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하고자 했고,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중산층이 가계 빚을 내서 '부동산 재테크'에 뛰어든 게 바로 2000년대에 생긴 두 차례의 아파트값 폭등이다. 지은이는 이 일련의 사태를 "정부가 한탕하기 위해 가계의 한탕 심리를 동원한 꼴이었다"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가계를 제물로 삼"(70쪽)았던 것이라고 비판한다.

번번이 지목된 것처럼, 2007년부터 양산되기 시작한 하우스 푸어는 구제 금융기를 떠맡은 정권이 '글로벌 금융 기관 육성'을 내건 사실, 또 세계적인 금융 자유화 흐름과 관련 깊다. 국내의 금융 기관들은 그런 정책의 기조 아래, 부동산 담보 대출에 경쟁적으로 가담했다. 금융 기관은 건설 업체의 공생은, 건설 업체들이 분양가를 높이고, 투기 바람이 불러 일반 가계가 대출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금융 기관의 이익이 되는 연결 고리로 묶여졌다. 여기에 건설 업체의 광고를 주 수입원으로 삼는 언론과 부동산 정보 업체의 기여도 한 몫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들은 '정부-건설 업체-시중 금융 기관'이다.

김재영은 2000년대에 생긴 부동산 거품을 만든 장본인은 투기 세력이 아니라 일반 가계였다면서, 아무 것도 경제적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동산 재테크만큼 자신의 경제적 미래를 확실히 보장해주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무리한 대출을 하면서 까지 "부동산 투기의 덫"(73~74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상이 하우스 푸어가 생겨나게 된 대강의 맥락이지만, 이외에도 이 책은 건설 업계의 이해만 반영하는 '선분양제', 주민의 이익을 보호하지 못하는 '재건축(재개발)', '토건 사업'의 발전에 목을 맨 경기 지표 향상, 공공성이 모자란 정부의 주택 정책, 언론과 건설 업체의 결탁, 아무도 감독하지 않는 과대광고, 정치인들의 과시적인 '뉴타운 공약' 등에 대한 문제를 낱낱이 살피고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론(저신용자 주택 담보 대출)에서 비롯된 미국 금융 위기는 불경기가 만성화되고 중산층이 실업의 나락에서 헤맬 때, 주택 담보 대출이 얼마만큼 무서운 쓰나미가 되어 국가 경제를 뿌리째 흔들어 놓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처럼, 외환 위기 이후 별 뾰쪽한 성장 동력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아파트 값은 항상 오른다'라는 아파트 신화에 매몰되어, 언제 회복될지 모를 세계적인 불황을 보지 못하는 인지부조화는, 한국을 쓰러뜨리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오직 바보만이 이 인지부조화로부터 공포나 심리적 위축을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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