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답하라 1994>에서 쓰레기와 나정이 싸우는 뒤편으로 쓰레기의 책장이 보인다. <개미><상실의 시대> 등이 꽂혀 있다. ⓒtvN |
▲ <응답하라 1994>에서 쓰레기가 <영원한 제국>을 읽고 있다. ⓒtvN |
1990년대는 여러 모로 의미 깊은 10년이다. 민족문학 담론과 그동안 금지되었단 좌파사상서의 '해금' 열풍이 휩쓸었던 1980년대, 그리고 IMF 이후 정신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격변을 겪었던 2000년대 사이를 잇는 시기다. 거대이념이 아니라 '나'라는 개인의 욕망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고, 문화담론이라는 미명하에 설익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파고에 휩쓸렸으며, 경제와 세계화라는 열쇳말에 울고 웃었던 10년이었다. 출판계 역시 그와 같은 사회 분위기를 투명하게 반영하는 지표가 되었다.
'프레시안 books'는 <응답하라 1994>의 열풍에 힌트를 얻어 90년대 출판계의 중요한 키워드와 현상, 질문들을 돌아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웃음과 사랑이 넘치는 회고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지금의 출판계와 독서 현황의 실마리를 짐작할 수 있는 근과거 90년대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호출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기사 본문에 등장하는 출판사명은 당시 출판사명을 그대로 명기했으며. 기사 도중 들어간 책 사진의 서지 정보는 현재의 것으로 명기했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경제: 1989년의 베스트셀러 1위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총수가 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영사 펴냄)였다.
"젊은이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가려 해야 한다. 그리고 개척자가 되라. 참된 인생은 개척의 길이다. 세계는 지구촌이라 불릴 정도로 좁아졌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있고, 이 땅에는 숱한 사람들이 온갖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아직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이 있다."
▲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김우중 지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
한국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1989년 1인당 국민소득은 5556달러를 찍으며 처음으로 5000대에 진입했고, 1990년에는 6303달러에 달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매년 천 단위로 달라지는 국민소득 풍요의 시대를 만끽하며, 한국인들은 1987년을 전후로 한 노사분규의 악몽을 쉽게 묻어둔 채 국력 신장의 선봉주자인 경제인들에 대한 호감을 표하기 시작했다.
김우중 총수에 이어 럭키금성의 구자경 회장이 1992년 '나의 경영혁신 이야기'를 담은 <오직 이 길밖에 없다>(행림출판 펴냄)를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자율경영'과 그룹 체질 개선을 통해 세계적 기업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과 김대중의 치열한 대립 구도에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뛰어들었다. 그는 참으로 자신만만한 제목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제삼기획 펴냄)를 펴내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은 뒤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전략을 취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출판비평가 한기호는 <베스트셀러 30년>(교보문고 펴냄)에서 "(이 책을)30만 부나 발행하고 일간신문 1면에 대대적인 광고를 했으나, 기증본이 많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상위에는 오르지 못했다"고 전했다.
▲ <신화는 없다>(이명박 지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
1995년에는 이명박 국회의원이 <신화는 없다>(김영사 펴냄)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컴퓨터 달린 불도저''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불리던 그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현대그룹을 나와 국회의원으로 변신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자전에세이에 담았다. 1990년 인기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유인촌이 이명박을 모델로 한 주인공을 맡음으로써 대대적인 인기를 모았던 것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당시 이명박 국회의원은 "기업가는 장사꾼이 아니다. 진정한 기업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발명가다. 진정한 기업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해결사다. 진정한 기업가는 비생산을 생산으로 만드는 혁신가다. 기업가는 돈보다 일을 사랑하고, 일의 성취에 뜻을 둔다"라고 주장했다.
자기계발서: 1991년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앨빈 토플러의 <권력이동>(이규행 옮김, 한국경제신문사 펴냄)은 '21세기는 정보의 시대'라는 명제 하에 장차 기존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닌 '지식과 두뇌'에 바탕을 둔 유식계급인 '코그니타리아트(cognitariat)'가 등장한다고 주장했다.(<베스트셀러 30년>) 뒤이어 등장한 재벌들의 자전적 에세이들을 연달아 읽던 대중들은 점차 '나도 성공하고 싶다'라는 구체적 욕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미국 80년대 장기불황기의 스타 저자 스티븐 코비(한기호의 설명에 따르면 스티븐 코비는 "데일 카네기 이후 가장 뛰어난 컨설턴트"로 불렸다고 한다)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김영사 펴냄)가 성공과 처세, 리더십을 아우른 자기계발 분야 등 당시만 해도 낯선 개념을 소개하면서 단숨에 장기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나카타니 아키히로 지음, 이선희 옮김, 바움 펴냄). ⓒ바움 |
IMF를 겪고 난 뒤 실업자 155만 명에 달하는 우울한 시대를 통과하던 이들은 1999년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의 <낯선 곳에서의 아침>(생각의나무 펴냄)에 몰두했다. 30~40대 남성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이 책에서 구본형은 무엇보다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준화된 인간들이 평준화된 삶 속에서 평준화된 행복을 느끼도록 디자인된 산업사회는 이미 다 가고 있다. 이제 잠자고 있는 자신만의 욕망을 살려내 전면적인 생존전쟁을 준비하라." 이 슬로건처럼, 1999년부터 사람들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재벌 이외에도 성공한 보통 사람들의 회고록 역시 잘 팔렸다. 1988년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간 유학생 신세용의 <나는 한국인이야>(장원 펴냄)는, 미국 학교의 기숙사 방에 대형 태극기를 걸어둔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소년의 얼굴을 광고에 내세우면서 해외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1993년 홍정욱의 <7막 7장>(삼성 펴냄)은 유명배우 남궁원의 아들인 저자가 중학교 3학년 무렵 미국으로 건너가 존 F 케네디의 모교인 초우트 로즈마리 홀 고교를 거쳐 하버드대학교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이야기를 담아 엄청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책을 읽고 충동적인 유학길에 오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1993년 이후 초우트에 지망하는 한국인 유학생의 수는 열 배 이상 증가했는데 대부분 이 책을 잃은 사람이었다."(<베스트셀러 30년>)
또한 남편과 사별한 후 세 아이와의 생활을 위해 뒤늦게 닥종이 인형작가로 변신, 이후 열네 살 연하의 독일 청년과 결혼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김영희의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디자인하우스 펴냄), 막노동꾼을 전전하다 스무 살이 넘어서 비로소 공부를 시작, 서울대학교 인문계열에 수석으로 합격한 장승수의 자전 에세이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김영사 펴냄), 스물 셋에 마흔 아홉의 서강대학교 학장 케네스 킬로렌과 결혼한 뒤 '국제 비즈니스 계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리는 홍보전문가이자 로비스트로 명성을 떨친 조안 리의 <사랑과 성공은 기다리지 않는다>(문예당 펴냄) 등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일본 :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한 극단의 감정은 1990년대에 격렬하게 분출되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이 몰락하자 국가적 대항심은 민족의식과 결합하며 일본을 향했다.
먼저 물꼬를 튼 건 1993년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지식공작소 펴냄)였다. KBS 기자이자 동경 주재 첫 여성특파원이었던 전여옥은 '개인' 차원에서 일본이란 나라의 실체를 매우 '주관적으로' 파헤치겠다는 일성을 내지르며 '비판적 일본론'을 썼다. 흑인병사와 명품에 환호하는 일본 여성, 왕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비겁한 언론, 몰개성한 집단주의와 이지메 문제 등을 매우 표피적으로 건드리며 '일본, 별 것 아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대대적인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이 책은 2010년 최종적으로 재일 르포작가 유재순의 <일본인 당신은 누구인가>를 표절했다는 판결을 받았다.
모모세 다다시의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사회평론 펴냄)는 1968년 일본의 종합상사 서울지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수백 개의 한국 기업과 거래를 해온 전문경영인이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대책을 논한 책이다. 책 내용에 비해 상당히 자극적으로 붙인 제목은 역시 전여옥의 그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책의 성공으로 출판사는 월간지 <사회평론 길>을 펴내면서 진 빚을 모두 갚고 근근이 연명한 회사를 다시 도약시킬 수 있었다."(<베스트셀러 30년>)
이케하라 마모루의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중앙M&B 펴냄) 역시 26년간 한국에 지내면서 '한국인을 가장 많이 아는 일본인'으로 자처하는 저자가 '총체적 무질서' 대한민국이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라는 의미에서 쓴 책이다.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의 지시로 공무원들이 단체로 구입해 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4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베스트셀러 30년>)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김진명 지음, 새움 펴냄). ⓒ새움 |
여성, 그리고 페미니즘 : 1993년 양귀자는 여성 테러리스트와 그녀에게 납치된 인기 남자배우의 대립을 통해 한국사회 성 간의 불평등을 직설적으로 고발한 문제작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살림 펴냄)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세상의 모든 남성과 여성은 여자의 자식이란 사실이다."
▲ 양귀자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1994년 작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감독 장길수, 출연 최진실, 임성민). |
아마도 이에 영감 받은 듯, 전여옥 역시 뒤이어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푸른숲 펴냄)라는 에세이집을 통해 '현모양처의 시대는 갔다'고 주장했다.
1994년은 젊은 여성 작가들의 화려한 스타 탄생의 해였다. <서른, 잔치는 끝나다>(창작과비평사 펴냄)의 최영미와 함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문예마당 펴냄), <고등어>(웅진출판 펴냄), <인간에 대한 예의>(창작과비평사 펴냄)를 연속해서 히트시킨 공지영의 이름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광채를 발했다. 1993년 <풍금이 있던 자리>(문학과지성사 펴냄)로 3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던 신경숙이 1994년 쓴 <깊은 슬픔>(문학동네 펴냄)은, 출간 두 달만에 40만 부를 돌파했다.
"<창작과비평>의 대부인 백낙청 선생도 (이 책을)상당히 긍정적으로 조명하면서 비평적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았(다)."(<비평, 90년대 문학을 묻다>(작가와비평 엮음, 여름언덕 펴냄))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소리높이 외치던 이들은 뜻하지 않은 적수를 만난다. 바로 이문열의 <선택>(민음사 펴냄)이다. 조선 선조 시절 실존인물인 '정부인 안동 장 씨'가 '가정'을 선택하며 현모양처의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일대기인 이 소설에서 가장 문제가 된 구절은 이것이다.
▲ <선택>(이문열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
여기서 이경자의 소설 <황홀한 반란>과 <절반의 실패>,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 이후 이 소설 텍스트 자체에 대한 비평은 사라졌고, 이문열은 반 페미니즘 보수의 아이콘으로 몰리며 곤욕을 치렀다. 1998년 격주간 서평전문지 <출판저널>에선 최악의 페미니즘 도서로 "이렇게 행동하는 너의 이데올로기는 뭐냐?"라는 유행어를 낳았던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민음사 펴냄)과 함께 이문열의 <선택>을 꼽은 바 있다.
아버지 : 1991년 드라마 <고개 숙인 남자>가 꽤 인기를 모으기도 했지만, 90년대가 진행될수록 급진적 페미니즘이 점점 더 힘을 얻으면서 남자들, 특히 아버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아버지>(김정현 지음, 문이당 펴냄)가 등장했다. 췌장암에 걸린 50대 가장이 소원했던 가족과 화해를 이루지 못한 채 죽어가는 비극적 멜로드라마를 그렸다.
"<아버지>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읽고 감명을 받아 삼성의 전체 간부들에게 선물했다는 소문과 함께 책 판매에 속도가 붙기 시작해 200만권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한국출판산업사>((사)한국출판학회 엮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 <영원한 제국>(이인화 지음, 세계사 펴냄). ⓒ세계사 |
1997년 이인화는 기어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소설 <인간의 길>(살림 펴냄)을 씀으로써 "권력욕 때문에 자신의 이상과 의지도 뒤엎는 모반자"로서 박 전 대통령을 미화시켰다는 논쟁에 휘말렸다. 작가 본인은 "훗날 신이 이승에서 뭐하던 사람이냐 물으면 <인간의 길>을 썼다고 말하겠다"고 답했다.
역사 : 1980년대는 대하소설의 시기였다. 1984년 황석영의 <장길산>, 김주영의 <객주>, 1985년 홍명희의 <임꺽정>, 1986년 조정래의 <태백산맥>, 1987년 이문열의 <삼국지>, 1969년부터 시작되어 80년대까지 계속 이어진 박경리의 <토지> 등이 일종의 '역사교과서'로서 정치적 억압의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 <소설 동의보감>(이은성 지음, 마로니에북스 펴냄). ⓒ마로니에북스 |
1992년, 다산 정약용의 삶을 담은 <소설 목민심서>(황인경 지음, 삼진기획 펴냄), 주역의 대가이자 파격적인 기인이었던 토정 이지함을 담은 <소설 토정비결>(이재운 지음, 해냄출판사 펴냄), 생육신의 한 사람이자 저항시인 김시습의 삶을 담은 <매월당 김시습>(이문구 지음, 문이당 펴냄) 등이 모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92년에는 역사인물소설이 70여종이나 쏟아졌는데 이 책들은 기본 2만 부는 판매가 보장된다는 속설이 나돌 정도였다."(<베스트셀러 30년>)
그 열기는 1993년 <베니스의 개성상인>(오세영 지음, 장원 펴냄)으로까지 이어졌다. 네덜란드 화가 루벤스의 그림 '한복을 입은 남자'에서 모티브를 얻어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이탈리아에 건너가 세계무역을 주름잡은 한국인, 안토니오 코레아'를 주인공으로 한 이 역사 팩션 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다.
후일담 : <동아일보> 1973년 6월 15일자 기사 '문단 반세기-30년대 전반의 문인들'에 따르면, 당시 카프문학 작가들이 "카프의 공식해산을 계기로 최재서가 뒤에 명명한 '후일담문학' 혹은 '앉은뱅이 문학'으로 맥없이 물러앉"았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즉 '후일담문학'은 30년대 카프문학진영의 몰락과 함께 등장한 무기력한 전향의 기운을 반영한 소설들이라 할 수 있겠다.
▲ <고등어>(공지영 지음, 오픈하우스 펴냄). ⓒ오픈하우스 |
"후일담문학(또는 사적체험의 소설화)에 대해 상반된 두 평가가 제기됐다. 소련 동구의 몰락과 새롭게 펼쳐지는 '문민시대' 앞에서 좌표를 잃었던 민족문학 진영이 90년대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기보다 주로 80년대의 운동경험을 개인적 체험을 통해 반성하는 작업이 후일담 문학이다. (…)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인 평론가 김윤식 씨는 <문예중앙> 여름호에 게재한 '후일담문학과 소설가소설의 넘어서기론'이란 글에서 이 후일담 문학이 아직 '세상을 합리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레닌적 꿈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자학증에 빠져있다고 진단했다."
즉 당시 김윤식은 공지영의 단편 '무엇을 할 것인가'와 김영현의 '비둘기' 등을 평하면서, "현실감을 잃은 마르크스주의 실험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시선변경을 생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90년대 후일담문학의 선두주자는 아무래도 시인 최영미와 소설가 공지영이다. 최영미는 1994년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70만 부라는 놀라운 판매고를 올렸다. 표제작의 내용은 당시 민주화물결의 뜨거운 열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그리고 외로울 땐 도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그러나 내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잔치는 끝났다/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그 모든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 <살아남은 자의 슬픔>(박일문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
첨언하자면, 공지영이나 최영미 등의 대중적 인기에 앞서 1992년 이미 '후일담소설'의 흔적은 등장했더랬다.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민음사 펴냄)은 브레히트의 시구절을 제목으로 삼고 불교경전 숫타니파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구절을 (공지영보다 먼저!) 인용하면서, 세 남녀의 치명적인 방황과 연애를 기이한 방식으로 뒤섞은 후일담 소설을 선보였다. 또한 양귀자의 단편 '숨은 꽃'과 최윤의 '회색 눈사람'도 이 시기에 등장하여 80년대의 암울한 기억을 형상화하는 문학적 성취로 주목받았다. 똑같이 80년대의 기억을 다루고 있음에도 좀더 균형감각 있게 다룸으로써 먼저 성취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새로운 소설 : 1992년 낯선 용어들이 신문 문화면을 장식했다. 포스트모더니즘, 패스티쉬, 보드리야르 등의 단어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면서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 논쟁의 물꼬를 튼 작품은 이인화의 1992년 작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세계사)와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경향신문> 1992년 7월 20일 자 기사 '젊은소설가 또 표절시비'는 "이인화의 소설에 대한 논쟁은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에서 나온 혼성모방'과 '명백한 표절 행위'로 대립되고 있는 반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대해서는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표절했다''안했다'로 논쟁이 전개되고 있어 심각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 ⓒ문학사상사 |
또한 소설가이자 시인 장정일과 문학평론가 남진우가 박일문의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하루키의 문체와 세계관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이에 박일문은 장정일과 그의 글을 실은 <문학정신> 발행인 김수경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고, "일본 전공투세대와 우리 5.18세대는 다르다. 우리 신세대 문학을 억지춘향격으로 전공투세대 문학에 맞추지 말라"면서 "내 소설은 외국작품과 전혀 무관하며 한국문학의 독자성은 옹호돼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연합뉴스 기사 )
이와 좀 다른 의미에서, 1993년 12월 문을 열어 시작한 출판사 문학동네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1994년 11월 창간한 계간지 <문학동네>의 창간 선언문에는 "문학은 더 이상 지식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문학에서는 지식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명시한 바 있다. <창작과비평>과 <문학과사회>가 양분했던 80년대 민족문학 담론이 90년대에 기세가 시들어가면서, '다양한 문학''오직 문학주의''차이라는 지점들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며 젊고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비평, 90년대 문학을 묻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유홍준 지음, 창비 펴냄). ⓒ창비 |
광고를 통해 판매량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소박한 진리가 통하던 시절, 당시 일간지와 잡지들에는 온갖 종류의 책 광고들이 빼곡했다. 게다가 청소년들의 '입소문'을 포착한 출판사들이 라디오 심야 프로그램에 집중적으로 광고를 배치하면서 그 수요는 더욱 늘어났다. V. C. 앤드류스의 <다락방의 꽃들>(한마음사 펴냄) 시리즈와 <헤븐>(한마음사 펴냄) 시리즈, <오도리나>(한마음사 펴냄), 로빈 쿡의 <바이러스><코마><돌연변이>(열림원 펴냄), "이상하다 아직 우리에게 눈물이 남아있다니!"라는 광고 문구로 심금을 울린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한겨레출판사 펴냄) 뿐 아니라 "여자와의 침대 속에서도 300개의 근육, 250개의 혈관, 208개의 뼈를 다듬고 암기하는 하버드 의대생들"이라는 놀라운 카피를 뽑아낸 에릭 시걸의 <닥터스>(김영사 펴냄)는 서점 매대와 도서관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실 구석에서 구석으로 너덜너덜해지도록 돌려 읽던 주요 도서였다.
▲ <퇴마록 1>(이우혁 지음, 엘릭시르 펴냄). ⓒ엘릭시르 |
1989년 연세대학교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자유문학사 펴냄)은 감히 '대학교수'가 섹스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마녀사냥의 서막을 올린 불운한 작품이었다. 진보 진영이 특히 심하게 그를 공격했는데, "자라나는 청소년에게까지 그릇된 이성관(…)을 심어준다"는 게 이유였다.(<베스트셀러 죽이기>) 1992년 마광수 교수는 소설 <즐거운 사라>(청하 펴냄)가 '음란문서 유포' 죄로 강의도중 검찰에 연행되었다. 이 책은 문화부에 의해 판매금지되었고 마광수 교수는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1996년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김영사 펴냄) 역시 출간되자마자 '음란도서' 낙인이 찍혔다. 출판사에선 단 며칠 만에 서점으로부터 이 책을 자진수거했으며(그래서 출간 첫날 이 책을 산 이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장정일은 음란문서제조 등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1999년 서갑숙의 에세이집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중앙M&B 펴냄)가 19세 미만 구독금지 딱지를 받고 어마어마한 화제의 중심에 서면서 80만부 이상이 팔려 나갔다.
"책이 갑자기 품귀 사태가 벌어지는 바람에 책을 확보하기 위해 제책사에 서점 관계자들 수십 명이 대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베스트셀러 30년>)
▲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1999년 작 <거짓말>(감독 장선우, 출연 이상현, 김태연). |
당시 마광수, 장정일, 서갑숙 모두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다시피, 정도 이상의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90년대 말 비밀스럽게 유출된 유명 연예인의 섹스 비디오 'O양 비디오'와 어린 청소년들의 섹스 비디오 '빨간마후라' 등을 인터넷으로 다운받기 위해 중년 남성들의 컴퓨터 사용 빈도가 급증했다는 이야기까지 돌았을 정도로 '음란'에 목숨 걸던 시절도 같은 시기다. 부끄러운 일이다.
'잊지도 않고 또 왔네' 과거는 언제나 조금쯤 미화되기 마련이다. 90년대의 출판계는 지금보다 호황을, 다양성을 누렸을 것 같지만 문제는 상존해 있었고 반복되어 왔다. 당시에도 있었고 2013년 현재도 있는 현상과 문제들을 통해 시대와 난제의 원인을 동시에 읽어 본다. <편집자> ▲ 베스트셀러 사재기 얼마 전에도 한경BP의 자기계발서 배후에 있는 사재기 정황이 포착됐다. 올해 봄엔 자음과모음의 사재기 사례가 '방송'을 타고 곧이어 황석영 작가가 해당 도서 절판, 출판사와의 계약 파기 발표하면서 이런 수법이 출판계 바깥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사재기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대리해주는 신종 온라인 업체가 등장하고 '보는 눈'이 많아지면서 수법이 진화했을 뿐이다. 베스트셀러 사재기 문제는 90년대 초반부터 언론에 등장했다. 1992년 8월 24일 <동아일보>는 일부 베스트셀러 순위가 의심된다는 사실을 단서로 직접 현장을 찾는다. "L그룹 직원 2명이 와서 이 그룹의 총수가 쓴 책을 40권이나 한꺼번에 사가는 장면"이 목격됐고, "출판사에서 고용한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종로서적,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대형 서점들을 돌며 한 종류의 책만 10~20권씩 사서 큰 가방에 넣어 다니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출판사 영업부장의 증언이 나왔다. 올해 5월 사재기 문제를 다룬 방송 인터뷰에서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는 '90년대에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배낭을 메고 다니게 하는 소박한 형태였다'고 말했는데, 이 장면과 겹친다. 기사는 한동안 잠잠하다 1997년 말에 폭발한다. 그간은 사재기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언론의 관심이 불황의 천태만상과 시장에서의 불법 행위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방아쇠가 된 것은 서울 시내 대형 서점의 현장 추적을 통해 각 출판사들이 자사의 책을 무더기로 사재기하는 장면을 포착한 <도서신문> 177호(1997년 12월 8일)의 특종 기사였다. 자작나무의 <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명진출판사의 <살아보고 결혼합시다> 등 4개 출판사 5종이 거론됐고 해당 출판사의 간접 시인도 있었다. 사재기가 90년대부터 나타난 이유가 있다. "1987년 10월 출판사 설립 자유화 조치 이후 출판사들이 매년 1000개씩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경쟁이 격화"되고, 1988년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집계 및 발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나자 그 목록의 '약발'이 입증되어 갔다. (백원근, '사재기 베스트셀러 파문과 우리 출판의 자화상' <문화예술> 통권 266호(2001년 9월)) 또 90년대 초부터 100만 부가 넘는 밀리언셀러나 스타 작가가 탄생했고 여러 회사들이 그 뒤를 이으려 한 종에 사운을 거는 행태가 자리 잡았다. 시대는 바야흐로 사회과학의 시대에서 '대중을 위한 교양서 시대'로 전환하고 있었다. 소수의 열혈 독자에서 다수의 대중으로 타깃이 옮겨가면서 책의 상품적 가치가 주목되고, 출판사의 신문 광고 경쟁이 심화된 것도 이 즈음이다. 그러나 "정가 4000원의 책을 300권 사재기한다 해도 50만원이 채 들지 않아 방송이나 신문 광고비보다 싸면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광고 효과도 좋"았기에, (<동아일보> 위의 기사) 사재기는 빨리 시장을 선취하고 싶은 다급한 이들에게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 유혹에 넘어간 것이 20년이 지나 교묘한 방법으로 진화하여 베스트셀러 '중독'을 낳게 되었을지 알았을까, 몰랐을까, 모르는 척 했을까. ▲ 변화에 적응한 자, 못한 자 출판계가 그 전해에 비해 상당히 위축되었던 1992년, 몇 편의 베스트셀러가 나와 출판사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그 가운데 <소설 토정비결>의 해냄,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의 둥지의 운명은 대조적이다. 1983년 창립된 해냄은 1992년까지는 경영이 어려웠지만 이재운의 <소설 토정비결> 200만 부 판매라는 쾌거를 이루며 사세를 반전시켰고, 90년대는 물론 현재까지 승승장구 중이다. 반면 둥지는 <세상을 보는 지혜> 등으로 90년대 전성기를 누렸으나 몇 해 전 부도를 맞았다. 90년대에 활약했던 출판사들의 흥망사 속에서 일관된 흐름을 읽긴 어렵다. 다만 출판물이 좀 더 대중적인 상품의 가치를 띠어가던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탄탄하게 자라날 수 있는 체질 변화에 성공했는가가 이후의 사세를 가를 관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997년 초 한보사태가 몰고 온 도미노 현상을 피하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던 고려원의 경우, 그 1~2년 전부터 자본이 많이 드는 어학 교재에 투자한 것이 화근이 됐다. 연 매출액 200억 원에 베스트셀러를 여러 종 보유한 종합출판사였지만 무리한 투자의 대가와 시기적 불운이 겹쳤다. 이 회사는 7년 후 '고려원북스'로 재기한다. 한편 1982년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 "진보적 사회이념을 담은" 묵직한 책들로 출발했던 사계절은 "1990년대 초에 출판 분야 다변화를 시도하면서 어린이·청소년과 인문 분야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탄탄한 토대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한겨레> 2012년 7월 15일 사계절 강맑실 대표 인터뷰) 어린이 동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와 청소년 책 <논리야 놀자> 등의 성공으로 그 시장에 확실히 날개를 폈다. 돌베개와 창비 역시 기존의 색깔을 지키면서도 90년대의 '대중 도서 강세'에 맞게 변화와 브랜드력 강화에 성공한 예로 꼽힌다. 한편 수많은 '90년대생' 출판사 가운데 극적인 성장을 상징하는 예로는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문학동네를 들 수 있다. 1993년 12월 열 명 남짓한 직원으로 윤흥길의 <텁석부리 하나님>, 이병천의 <모래내·모래톱>을 출간하며 출발한 문학동네는 7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문학동네 출판 그룹'으로 성장했다. '문지'와 '창비'라는 오래된 양대 산맥 사이에서, 변모한 문학 지형에 대한 감각과 신구를 가리지 않는 작가들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이룬 쾌거라는 분석이다. 한편 그보다 4년 늦게 출판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출발, 10여 년간 양서를 내며 활약했던 '생각의 나무'는 2011년 부도를 맞았다. ▲ 임대료에 작은 서점 고사 -결국 임대료 인상 문제로 폐업하게 됐는데 소형 서점이 번화가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까. "긴 세월동안 책방을 유지했던 것은 싼 임대료로 매장을 내준 건물주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 더 이상 건물주에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 싶어 결심을 굳혔습니다. 소형 서점이 살기 위해서는 첫째 (…) 임대료에 대한 부가세를 면세해 주어야 합니다. 둘째로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굳이 복잡한 대형 서점을 찾을 필요 없이 잡지나 참고서 베스트셀러는 작은 서점을 이용해달라는 것이지요. 작지만 문화공간의 하나인 서점이 주변에 없다는 것은 독자 자신의 불행일 수도 있습니다." '길담서원이 세 들어있는 건물 주인으로부터 "나가주세요"라는 통고를 받았습니다. 월세를 올려달라는 말씀이 있을 줄은 각오하고 얼마를 올려 달라 하실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내왔습니다만… 내 집 없는 길담이가 어디에서 어떻게 새로운 둥지를 지을 수 있을지, 당장은 멍하네요. 병은 자랑하랬다고, 고민을 움켜 안고 있기보다 이렇게 허심하게 풀어놓습니다.' 위의 인용문은 1995년 9월 <동아일보>에 실린 종로의 "마지막 소형 서점" '삼일' 주인 김영채 씨와의 대화이고, 아래의 인용문은 2013년 5월 종로구 통인동의 서점을 겸한 문화 공간 길담서원 박성준 대표가 SNS를 통해 털어놓은 이야기다. 임대료 부담에 작은 서점들이 밀려나는 현상 역시 이렇게 반복돼 왔다. 물론 차이도 드러난다. 건물주의 압박 면에서 전자를 후자에 견주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잡지나 참고서 베스트셀러는 작은 서점을 이용해달라는 것이지요"라는 당부에서도, 오히려 참고서나 베스트셀러를 피하고 일종의 셀렉트샵을 지향하는 최근의 '독립 서점' '사회과학 전문 서점' 등 소형 서점 추세와는 다른 모습을 읽을 수 있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작은 서점 하면 역시 대학가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들 수 있다.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는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새 활로를 모색 중인 성균관대 앞 '풀무질' 외에도, 약속 알림판과 토론 장소 등 단순히 책을 사는 것 이상의 기능을 하던 서점들이 대학마다 있었다. 대부분 서슬 퍼런 80년대에 출발해 90년대 초까지 활발히 운영되다가, 대학가에도 '이념 색'이 빠지면서 서서히 사라지거나 교재 판매로 성격을 변경해 간 곳들이다. 그 중에서도 연세대 앞의 '오늘의 책'은 그 시절 신촌의 독자들에게 각별한 기억을 안긴다. 1995년 서점이 있던 자리가 주거지역에서 준 상업지역으로 바뀌면서,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172만 원 하던 책방의 임대료가 보증금 5억에 월 400만 원으로 올라 문을 닫게 된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학생들이 '오늘의 책 학생대책본부'를 결성하고 출자 운동을 벌여 서점을 다시 열었고 장소를 옮겨 '제2의 오늘의 책' 시대를 맞아 2000년까지 명맥을 이었다. ▲ 같은 책, 다른 가격 2013년 출판계 뜨거운 감자였던 도서 정가제 문제는 출판업에서 유통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보여준다. (☞관련 기사 : [Q&A] 도서 정가제를 둘러싼 풍경) 무엇이든 같은 상품이면 더 싼 값으로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들과 그들을 붙잡아야 하는 유통업계, 그 유통업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출판사(또 각 사마다 '힘'도 다르다)를 둘러싼 매우 복잡한 문제다. 문제의 뿌리를 찾다 보면 1996년 유통시장 개방과 함께 전 분야에서 일어난 가격 파괴 경쟁이 나온다. 도서 역시 이러한 흐름에 따라 할인 경쟁 요구를 받았지만, 출판계의 저지로 인해 정가제는 완화가 아닌 강화 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와 함께 출판 유통 구조는 커다란 조정을 겪게 된다. 의정부 경림, 목포 한림, 창원 사립문고 등 지방의 유력 도매상들이 그해를 버티지 못했고 1998년 2~3월 도매업계 2위 송인, 1위 보문당마저 부도 처리된다. 이런 도매상들은 대부분의 출산사와 1만 5000곳 소매서점을 잇는 출판의 '대동맥' 역할을 했는데, 영세한 규모와 유통 구조의 난맥상 때문에 만성적 불황을 겪다 경제 위기에 휩쓸렸던 것이다. 당시 도매상들은 소매상을 잡기 위해 책값의 5%라는 지극히 낮은 수익율을 유지했고 해외 출판업자들로부터 '그렇게 유지해 온 것은 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한겨레> 1998년 3월 3일) 대부분의 도매상들은 출판사들로부터 책을 먼저 받아 소매상에 깔고, 소매상에서 수금한 뒤에야 출판사에 어음으로 책값을 지불하는 위탁 거래 방식을 취해 왔다. 그들의 부도 이후 많은 업체가 피해를 입었지만 가운데서도 그 즈음 물량 공세로 대형 베스트셀러를 냈던 출판사들의 피해가 특히 컸던 것은 그래서다. "뿌리고 띄운 뒤 올려라"(도매상을 통해 전국에 책을 '뿌리고' 언론에 광고를 통해 책을 '띄운 뒤' 대형 서점에서 사재기로 베스트셀러 순위에 책을 '올린다')라는 출판사의 한탕주의를 비판한 기사가 줄을 이었다. 유통업체는 무리한 시장 확대와 지나친 신간 의존이 지적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구조조정은 시장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대형 서점의 힘은 더 커졌고 중소 서점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새 시대의 변수로 할인마트와 인터넷 서점이 등장했다. 97~99년 사이 교보, 영풍, 종로 등 오프라인 서점의 인터넷 서비스는 물론 '북파크' '다빈치' '비엔케이' 등의 사업자가 시장에 뛰어들어 가입자를 잡기 위한 가격 낮추기 경쟁을 벌였다. 또한 아마존의 한국 진출 여부 이야기는 이때부터 나왔다. 이후 가격 경쟁은 심화되고 문제는 복잡해졌지만 유통 구조의 난맥상은 그대로다. 과거와 같은 커다란 외부의 충격이 오면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 추억은 언제나 '문제' 국문학자 한만수 동국대학교 교수는 '90년대 베스트셀러 소설, 그 세계관과 오락성'(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한국문학연구> 20호(1998년 3월))이라는 논문에서 90년대에 100만부 이상 팔린 국내 소설 다섯 편을 분석하며 '성 묘사의 후퇴' '진정성의 후퇴와 문학의 오락화'와 함께 '과거 지향성의 강화'를 그 특징으로 꼽았다. 다섯 편은 <소설 동의보감>, <천년의 사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영원한 제국>, <아버지>다. <소설 동의보감>은 조선조 명의 허준의 이야기이고 <영원한 제국>은 정조 독살설을 소재로 했으며 그가 강조한 근왕주의가 '박정희 옹호'로 이어진다는 점, <천년의 사랑>은 천 년 전 맺은 전생의 인연이 현세의 삶을 좌우한다는 점이 이유가 됐다. 한편 현대적 배경과 소재를 취하는 나머지 두 편의 경우, "<아버지>는 (…) 전통적 가부장 질서에 대한 진한 향수에 기대면서 널리 읽"혔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 박정희 시대에 대한 회귀 의지를 강력하게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지향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과거 지향이 "80년대 주류를 이루었던 노동 소설들이 대체로 전망성이라는 이름 아래 미래를 강력하게 지향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라며 "최근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신보수주의에 기대고 또 동시에 그것을 증폭시킨다"며 우려했다.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해 말 일간지의 연말 결산 기사를 보면 다른 의미에서 수긍이 간다. 1998년 12월 21자 <경향신문>은, 그해 여름부터 "IMF와 수재의 혼란을 틈타 영웅주의에 대한 향수가 박정희로 되살아났다"며 "칭기즈칸, 나폴레옹 등 영웅들의 생애를 다룬 책들도 출판 러시를 이뤘다"고 전했다. 복고 바람과 가족주의에의 의존 경향은 영화·드라마에서 더욱 두드러져 <그대 그리고 나>의 히트나 고개 숙인 아버지를 대신하는 '해결사 어머니' 이미지의 전원주 신드롬을 낳았다는 언급도 뒤이었다. 즉 1998년의 우울한 정서에서 90년대 베스트셀러를 돌아볼 때, 과거 지향성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는 약 10년 뒤 실시간으로 목격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창비 펴냄) 열풍에 대한 분석과 닮아 있다. 어쩌면 이 기사의 계기가 된 <응답하라, 1994>의 인기에 대한 분석도 마찬가지다. 추억의 소품이든 잃어버린 가족의 정이든, 그것이 70년대든 90년대든 '과거는 좋았지' 유의 회상은 늘 있어 왔고, 지난 시간이 뿌옇게 미화되어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행위는 언제나 과거보다 지금 여기의 상황을 비춘다. 미래 전망을 갖기 어려운 시대라는 사실을. |
▲ <응답하라 1994>에서 윤진이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고 있다. ⓒtvN |
마지막으로, <베스트셀러 30년>에 실린 교보문고 연도별(1990년~2000년)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을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
1990년
김우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박완서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이원복 외 <자본주의‧공산주의>/필립 체스터필드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편집부 <오싹 오싹 공포체험>/칼릴 지브란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노아 벤샤 <빵장수 야곱>/N. H. 클라인바움 <죽은 시인의 사회>/이문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바바하리다스 <성자가 된 청소부>/에리히 쇼일만 편 <빠빠라기>/서영은 편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욱 더 마음 절이는 것은 작은 웃음이다>/이영준 <숙제왕 그룹>/웨인 다이어 <내 인생 내가 선택하며 산다>/신달자 <물위를 걷는 여자>/안정효 <하얀 전쟁>/박렬 <만남에서 동반까지>/김윤희 <나 홀로 되어 남으리>
1991년
오쇼 라즈니쉬 <배꼽>/이호 <그대의 야심, 첫 번째>/이계진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버지니아 울프 <세월>/최병서 <병팔이랑 민지랑>/에릭 시걸 <닥터스 1>/앨빈 토플러 <권력이동>/이은성 <소설 동의보감(상)>/서정범 외 <인생의 가장 행복한 반시간>/윤재근 <장자-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신\진호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김용옥 외 <대화>/신달자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김기만 <내가 여전히 나로 남아야 함은 아직도 널 사랑하기 때문이다>/이태형 <2000년의 한국>/N. H. 클라인바움 <죽은 시인의 사회>/칼릴 지브란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김기린 <내가 나로 다시 태어난다면>/서영은 편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욱 더 마음 절이는 것은 작은 웃음이다>/이어령 외 <정보사회의 기업문화>
1992년
황인경 <소설 목민심서 1>/발타자르 그라시안 <세상을 보는 지혜>/이재운 <소설 토정비결 (상)>/이외수 <벽오금학도>/구자경 <오직 이길밖에 없다>/신세용 <나는 한국인이야>/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김영희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이문구 <매월당 김시습>/예반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이면우
1993년
위기철 <반갑다 논리야>/석용산 <여보게, 저승갈 때 뭘 가지고 가지>/이청준 <서편제>/발타자르 그라시안 <세상을 보는 지혜>/이희재 <아름다운 여자>/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이인화 <영원한 제국>/홍정욱 <7막 7장>/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박경리 <김약국의 딸들>/김한길 <여자의 남자 1>/이명복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이경훈 <프로비즈니스맨 삼성맨>/방문주 편 <꺼리>/장덕균
1994년
전여옥 <일본은 없다>/김진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1>/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로빈 쿡 <돌연변이>/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인화 <영원한 제국>/한호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이명복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이우혁 <퇴마록 1>/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위기철 <반갑다, 논리야>/홍정욱 <7막 7장>/로버트 제임스 윌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1>/김정일 <나는 다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공지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빈 쿡 <바이러스>/김수환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 <응답하라 1994>에서 삼천포가 빙그레에게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를 건넨다. ⓒtvN |
1995년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임채성 외 <컴퓨터 길라잡이>/한호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공지영 <고등어>/이명박 <신화는 없다>/로버트 제임스 윌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이정하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강준만 <김대중 죽이기>/양귀자 <천년의 사랑(상)>/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전유성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유태종 <음식궁합>/이일경 외 <저는 컴퓨터를 하나도 모르는데요>/김정일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조화유 <이것이 미국영어다 1>/이정순 <강한 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전여옥 <일본은 없다 1>/윤후명 외 <하얀 배>/시드니 셀던 <영원한 것은 없다>
1996년
파트리크 쥐스킨트 <좀머 씨 이야기>/김정현 <아버지>/장승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이청준 <축제>/양귀자 <천년의 사랑(상)>/노구치 유키오 <초학습법>/한호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하루야마 시게오 <뇌내혁명>/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임채성 외 <컴퓨터 길라잡이>/조안 리 <사랑과 성공은 기다리지 않는다>/생텍쥐페리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법정 <무소유>/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1>/빌 게이츠 <빌 게이츠의 미래로 가는 길>/파트리크 쥐스킨트 <콘트라베이스>/하광호 <영어의 바다에 빠뜨려라>/류지창 외 <인터넷 무작정 따라하기>
1997년
잭 캔필드 외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1>/김정현 <아버지>/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나카타니 아키히로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후안 마누엘 <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1>/크리스티앙 자크 <람세스 1>/도리스 매틴 외
1998년
법정 <산에는 꽃이 피네>/양귀자 <모순>/김주영 <홍어>/박광수 <광수생각>/은희경 외 <아내의 상자>/잭 캔필드 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1>/재정경제부 외 <국민과 함께 내일을 연다>/이원복 <이원복 교수의 진짜유럽이야기>/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김진명 <하늘이여 땅이여 1>/잭 캔필드 외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1>/류시화 엮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배진용 <두 번만 읽으면 끝나는 영문법>/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김준수 <내 삶을 다시 바꾼 1%의 지혜>/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법정 <무소유>/이외수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앤드류 매튜스 <마음 가는 대로 해라>
1999년
오토다케 히로타다 <오체 불만족>/이케하라 마모루 <한국, 한국인 비판(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빌 게이츠 <빌 게이츠@생각의 속도>/앤서니 기든스 <제3의 길>/김경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신경숙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류시화 엮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은희경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양귀자 <모순>/구본형 <낯선 곳에서의 아침>/박완서 <너무도 쓸쓸한 당신>/서진규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법정 <무소유>/원성 <풍경>/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편집부 <귀여운 우리 아기>/박상우 외 <내 마음의 옥탑방>/리처드 칼슨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김진명 <한반도 1>/히라노 게이치로 <일식>
2000년
조창인 <가시고기>/조앤 K. 롤링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제1권(상)>/로버트 기요사키 외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김하인 <국화꽃 향기 1>/정찬용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조앤 K 롤링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제2권 (상)>/스펜서 존슨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김용옥 <노자와 21세기 1>/현각 <만행1>/류시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이원복 <먼 나라 이웃 나라 7: 일본 1>/법정 <오두막 편지>/이정하 <한 사람을 사랑했네>/장일호 <플래시4 애니메이션 홈페이지 만들기>/도몬 후유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법정 <무소유(양장)>/장 코르미에 <체 게바라 평전>/김우영 <명탐정 뚱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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