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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과자, 섹스돌도 '프린트'…다음 타깃은 바로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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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과자, 섹스돌도 '프린트'…다음 타깃은 바로 너?

[과학 수다] 3D 프린팅의 신세계

'프레시안 books'는 2014년 신년호로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나오길 바라는 미래의 책들에 대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일곱 명의 필자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 당신이 읽고 싶은 책, 번역되길 바라는 책과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13일 송년호에서 예고했던 페이지 개편은 기술적인 문제로 1월 17일부터 구현됩니다. 예고한 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 2014년에도 프레시안 books를 사랑해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편집자>

최근 몇 년간 과학기술 분야의 가장 뜨거운 열쇳말 중 하나는 '3D 프린팅'입니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던 3D 프린팅, 3D 프린터는 이제 신기술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입에 올리는 말이 되었죠. 구글(google.com)에서 '3D Print'를 검색한 비율은 2011년 이후 지난 2년 새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책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요. 2013년에 <3D 프린팅의 신세계>(호드 립슨·멜바 컬만 지음, 김소연·김인항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3D 프린터의 모든 것>(허제 지음, 동아시아 펴냄), <메이커스>(크리스 앤더슨 지음, 윤태경 옮김, 알에치코리아 펴냄) 같은 책이 한꺼번에 나왔죠. 모두 다 3D 프린팅을 둘러싼 과거, 현재, 미래를 다룬 책입니다.

이 중 <3D 프린팅의 신세계>는 수십 년 후의 미래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미래에도 여전히 어렵다. 갓 구운 통밀 블루베리 머핀 냄새가 부엌의 푸드 프린터에서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달지 않은 유기농 머핀을 만들기 위해 당신이 사용하는 카트리지는 최고급품이다. 머핀의 레시피는 여러 유명 레스토랑이나 리조트의 수제 빵집들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 인간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인공 신체 부품을 찍어내는 일은 너무도 쉬워졌다. 고해상도 신체 스캐너의 가격이 지난 몇 년간 급속히 하락했다. 많은 사람이 유사시를 대비해 신체 스캐너를 사용해 20대 시절의 자기 몸을 스캔해서 데이터를 저장해두려 한다. 만약 몸이 잘못되면 대체할 장기가 급히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SF 소설이나 영화 속의 한 장면이라고요? 그런데 사정이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3D 프린터를 이용해서 제작한 부품으로 조립한 불법 총기가 시중에 유통될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개인에 맞춤한 틀니, 인공 치아(dental implant), 인공 턱뼈, 인공 고막 등을 3D 프린터로 찍어낸 얘기는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죠.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은 소장한 진품을 3D 스캔해서 3D 프린터로 정교한 모조품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관람객에게 진품 대신 똑같은 모조품을 전시하는 것이죠. 자동차 회사, 명품 회사의 디자이너는 더 이상 다음 시즌 신상품의 시제품을 시간을 들여서 플라스틱이나 점토로 만들지 않습니다. 3D 프린터로 찍어내면 그만이죠.

3D 프린팅이 가능하게 한 이런 변화를 놓고서 어떤 이들은 '메이커(maker)' 즉 제조자의 부활을 점칩니다. 누구나 손쉽게 물건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3D 프린터가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시대에 사라진 메이커를 다시 부활시키리라는 것이죠.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쓰려는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은 그 징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3D 프린팅이 새로운 산업 혁명을 촉발할까요? 이 역시 때만 되면 등장하는 장밋빛 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 호언장담하는 기술 낙관론 아닐까요?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위한 비전"을 찾는 <크로스로드>와 함께하는 '과학 수다'는 이번에는 3D 프린팅의 이모저모를 살핍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후보로 유명했던 고산 타이드 인스티튜트 대표가 3D 프린팅 가이드로 나섰습니다. 고산 대표는 최근 데스크톱 3D 프린터를 직접 제작, 판매할 계획을 밝히며 '3D 프린터 전도사'로 변신했죠. 이명현 기획위원(천문학자),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물리학자), 김창규 SF 작가 또 손문상 화백이 독자를 대신해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이번 대담은 3D 프린터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는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의 '팹랩(Fab Lab) 서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고산 대표가 운영하는 '팹랩 서울'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다양한 사람이 시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등을 구비한 장소입니다. 정리는 3D 프린터를 난생 처음 구경해본 강양구 기자가 맡았습니다.


▲ 고산 타이드 인스티튜트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플라스틱, 금속, 설탕으로 프린트하는 세상

강양구 : 오늘의 주제는 '3D 프린팅'입니다. 최근 몇 년 새 3D 프린팅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높아졌어요. 반응도 가지각색이죠. <롱테일 경제학>으로 유명한 크리스 앤더슨 같은 사람은 새로운 산업 혁명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에, 때만 되면 신기술을 놓고서 반복하는 호들갑이라고 회의적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이명현 : 오늘 이 자리는 그런 열광과 회의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3D 프린팅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살피고, 그 미래를 전망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정작 3D 프린팅 자체는 굉장히 오래된 기술이라면서요. 바로 여기서도 3D 프린터가 뭘 만들고 있긴 한데, 모양만 봐서는 꼭 1980년대의 도트 프린터를 보는 것 같습니다. (웃음)

고산 : 사실 3D 프린팅 자체는 한 30년쯤 된 기술이에요. 미국의 양대 3D 프린터 제조 회사 '3D시스템스(3D Systems)'가 1986년에, '스트라타시스(Stratasys)'가 1989년에 세워졌으니까요. 지금 저기 있는 3D 프린터에 쓰이는 기술은 스트라타시스의 창업자 스콧 크럼프가 1989년에 발명한 것이죠.

강양구 : 어떤 기술입니까?

▲ 물건을 출력 중인 데스크톱 3D 프린터. ⓒ프레시안(손문상)
고산 :
흔히 'FDM(Fused Deposition Modeling)'이라고 불리는 기술이죠. 괜히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2차원의 잉크젯 프린터와 비교해 볼까요? 잉크젯 프린터는 롤러로 이동하는 2차원 평면 즉 종이 위에 X축과 Y축이 전후, 좌우로 움직이면서 잉크를 뿌려서 이미지를 출력합니다.

전체적인 개념은 잉크젯 프린터나 3D 프린터나 다르지 않아요. 다만, 3D 프린터에는 X축, Y축에 더해서 상하로 움직이는 Z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우선 X축과 Y축이 전후, 좌우로 움직이면서 작은 구멍을 통해서 분사된 플라스틱 액체를 이용해 아주 얇은 막(레이어)을 쌓습니다.

그 다음에 상하로 움직이는 Z축이 약간 더 위로 올라갑니다. 그럼 다시 X축과 Y축이 움직이면서 플라스틱 액체를 기존의 레이어 위에다 추가로 분사하죠. 그렇게 한 층씩 쌓아올려서 물건의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완성하는 거죠. 이 기술이 바로 'FDM'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FDM이 2009년에 특허가 만료되어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죠.

김상욱 : 듣고 보니 약간 허탈한데, 그런 기술이 20년이나 특허로 묶여 있었군요.

고산 : 그렇습니다. 그 FDM 특허가 만료되면서 2009년부터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수십억 원 하던 3D 프린터의 가격이 수백만 원 심지어 몇 십만 원까지 떨어진 거예요.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2009년 창업한 개인용 3D 프린터 제조 회사 '메이커봇(MakerBot)'의 활약이 컸죠.

메이커봇은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산업용 프린터로만 쓰였던 3D 프린터를 1000달러, 그러니까 100만 원대 수준의 값싼 개인용으로 보급하기 시작했고, 4년 만에 2만 대나 팔아치웠죠. 결국 애초 FDM 특허를 가지고 있었던 스트라타시스가 지난 6월에 메이커봇을 6억400만 달러(약 7000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강양구 : 3D 프린팅과 관련해서는 또 다른 중요한 특허도 있죠?

고산 : 아까 미국의 양대 3D 프린터 제조 회사 3D시스템즈가 있었죠? 특허 연도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그 곳의 창업자인 척 헐이 1986년에 특허를 낸 'SL(Stereo Lithography)'과 텍사스 대학 오스틴 캠퍼스의 칼 데카드와 조셉 비만이 1989년에 특허를 낸 'LS(Laser Sintering)'가 있죠.

'SL' 'LS' 모두 레이저를 이용한 3D 프린팅 기술입니다. 그러니까, 레이저를 쪼이면 굳는 성질을 가진 플라스틱 혹은 금속의 액체나 분말의 표면에 프린팅하고 싶은 모양대로 레이저를 쪼아주는 거죠. 일단 레이저를 쬐면 원하는 모양대로 액체나 분말이 굳을 거예요. 그럼, 굳은 부분을 약간 내려서 액체나 분말에 잠기게 만든 다음에 또 레이저를 쬐는 거죠.

그럼, 제일 먼저 굳은 부분이 프린팅하려는 물건의 아랫면이 되고, 가장 나중에 굳은 부분이 윗면이 되겠죠. 반대로 레이저를 아래에서 쏴주면서 굳은 부분을 올리는 과정을 반복하면, 제일 먼저 굳은 부분이 윗면이 되고, 가장 나중에 굳은 부분이 아랫면이 되겠죠. 이렇게 프린팅을 한 다음에, 여분의 재료를 씻고 표면을 다듬으면 정교한 프린팅이 완료됩니다.

이명현 : 'FDM', 'SL', 'LS' 모든 3D 프린팅 기술 자체는 공작 놀이할 때 아이들도 응용할 법한 쉬운 기술이군요.

고산 : 그렇죠. 사실 이런 기술이 20년이 넘도록 특허로 묶여 있다 보니, 3D 프린팅 기술 자체는 발전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이게 특허 제도의 맹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FDM 특허가 풀리자마자 메이커봇이 값싼 개인용 3D 프린터를 개발, 보급한 걸 염두에 두면 특허 제도가 3D 프린터 진화의 발목을 잡았던 거죠.

이명현 : 그런데 아직까지 3D 프린터의 원료는 플라스틱인가요?

고산 : 맞아요. 현재는 ABS(acrylonitrile butadiene styrene)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ABS 플라스틱은 쇠망치로 때려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강도가 세서 공업용품에서 금속 대용으로 사용되는데, 3D 프린터에서도 원료로 사용하죠. 그런데 이미 ABS 플라스틱 대신에 여러 가지 원료를 사용하고 있어요.

우선 3D 프린터의 재료로 이미 금속 분말이 쓰이고 있고요. 금속이라도 레이저를 이용해서 녹이고 또 굳히면 되니까요. 최근에는 설탕을 3D 프린터의 재료로 사용하려는 시도도 있어요. 그러니까 다양한 재료를 얼마나 빨리 녹여서 내보내고, 다시 빨리 응고시킬지가 3D 프린팅의 새로운 과제인 셈이죠.

강양구 : 이제 3D 프린팅의 원리가 무엇인지 대충 감이 옵니다. 뭔가 복잡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기술 자체는 간단하군요.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기계와 3D 프린터를 구분하고 넘어가죠. 가끔 이 둘을 구분 없이 사용해서 헷갈리기도 합니다.

고산 : 3D 프린터가 '더하는(additive)' 기술을 사용해 물건을 만든다면, CNC 기계는 '빼는(subtractive)' 기술을 사용해 물건을 만들죠. 3D 프린터는 원료를 쌓아올려 물건을 만들고, CNC 기계는 플라스틱, 나무, 금속 블록을 드릴로 깎아 물건을 만듭니다. 물론 이름 'CNC'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모든 것이 컴퓨터로 제어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요.

ⓒ프레시안(손문상)

소품종 대량 생산 vs. 다품종 소량 생산

김상욱 : 이미 많은 공장에서 CNC 기계를 이용해서 만든 주형을 가지고 필요한 물건을 찍어내잖아요. 3D 프린터가 특별히 다른 점이 뭔가요?

고산 : 결정적인 차이는 금형의 유무예요. 공장에서 찍어내는 건 CNC 기계를 이용해서 우선 틀(금형)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틀을 이용해서 플라스틱을 사출 혹은 압출 성형을 통해서 물건을 대량으로 찍어내죠. 그런데 3D 프린터는 그런 틀 없이 물건을 한두 개씩 만들 수 있는 거죠.

이게 아주 큰 차이에요. 금형을 만들려면 몇 천만 원이 들거든요. 그런데 내가 원하는 물건을 하나 찍어내려고 몇 천만 원의 금형을 만들 수는 없잖아요?

▲ <메이커스>(크리스 앤더슨 지음, 윤태경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알에이치코리아
강양구 :
그와 관련해서는 3D 프린터 전도사 중 한 명인 크리스 앤더슨이 <메이커스>에서 비교를 해뒀더군요. 잘 알다시피, 공장에서 기계로 대량 생산하는 전통적 제조 방식에서는 생산량이 늘수록 제품 1개를 추가로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크게 낮아지죠.

반면에 3D 프린터의 경우에는 아무리 생산량이 늘어도 제품 1개를 추가로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낮아지지 않죠. 다만, 방금 고산 대표가 지적한 대로, 3D 프린터로는 제각각 다른 디자인을 채택해도 추가 비용이 없죠. 앤더슨은 고무 오리로 예를 듭니다. 만약 금형 제작 비용이 1만 달러(약 1000만 원)이고, 고무 오리 1개당 제작 비용이 20달러라면 어떨까요?

똑같은 고무 오리를 많이 찍을수록 제조 원가는 계속 낮아지죠. 100만 개를 만들 때쯤에는 원재료 비용만 들 거예요. 그러니 고무 오리 100만 개 이상을 만들 때는 전통적 생산 방식이 훨씬 유리하죠. 만약에 이 고무 오리 100만 개를 3D 프린터로 만든다면, 고무 오리의 제작 비용은 처음이나 끝이나 똑같으니 손해죠.

하지만 서로 다른 모양의 고무 오리 수백 종을 수백 개씩 생산하려는 기업이 있다면 기존의 대량 생산 방식은 답을 줄 수 없죠. 반면에 3D 프린터는 이런 기업에게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고산 : 예를 들어 보죠. 이미 3D 프린터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분야가 있어요. 바로 치아 교정입니다. 틀니, 인공 치아, 치아 교정기 등을 생각해보세요. 치아의 모양은 개인마다 다르잖아요. 치아 교정의 경우에는 치아가 자리를 잡아갈수록 새롭게 만들어야죠. 그런데 이런 것들을 3D 프린터로 만든다면 어떨까요?

김창규 : 사실 틀니, 인공 치아, 치아 교정기는 고전적인 방식으로는 엄청나게 비쌀 수밖에 없어요. 숙련 노동자의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니까요. 고산 대표의 지적처럼, 이런 분야에서는 3D 프린터가 그 공정을 획기적으로 혁신할 수 있겠죠. 이미 3D 프린터가 가장 각광받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김상욱 : 네, 3D 프린터가 제조업에 어떤 방식으로 충격을 줄 수 있을지는 감이 옵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고산 : 범용 소프트웨어가 많이 있습니다. 글을 쓸 때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듯이 3D 프린터로 물건을 찍으려면, 물건의 형태를 3차원으로 디자인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그런 프로그램이 바로 캐드(CAD)죠. 캐드 프로그램에는 무료인 '구글 스케치업'부터 엔지니어나 건축가가 쓰는 '솔리드워크', '오토캐드'까지 다양합니다.

이런 캐드 프로그램은 모두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기계어 'G코드'로 디자인을 변환합니다. 원래 G코드는 공장 기계에서 사용하는 언어였지만, 오늘날은 범용의 제조 언어로 쓰이죠. 그러니까 어떤 프로그램에서든 G코드를 읽을 수 있고, 또 그렇게 읽은 G코드로 어떤 3D 프린터에서나 프린팅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인터넷 공간에는 다양한 물건의 G코드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집에서 컵을 직접 만들어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컵을 따로 디자인할 필요가 없어요. 인터넷에서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의 컵 G코드를 받아서, 캐드 프로그램으로 읽은 다음에, 3D 프린터로 출력하면 됩니다.

강양구 : 최근에는 3D 프린터로 총을 만들었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었죠? 그건 총의 부품을 3D 프린터로 만든 다음에 조립하는 거였죠?

고산 : 2012년에 3D 프린터로 만든 소총이 처음으로 논란이 되었죠. 누군가 총의 부품 G코드를 인터넷에 공개한 겁니다. 미국에서는 총기의 손잡이, 탄창, 소염기 등만 규제를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손잡이, 탄창, 소염기 부분을 3D 프린터로 만들어, 시중의 다른 부품과 함께 조립한다면 개인이 규제를 피해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죠.

그런데 이건 총기의 일부 부품을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수준이었어요. (물론 이렇게 플라스틱으로 탄창을 만들어 조립한 총기도 살상용 무기로 기능하죠.) 그런데 2013년 11월 7일에는 미국의 한 기업이 아예 3D 프린터로 제작된 금속 부품 33개로 제작한 권총을 공개했습니다. 이 권총은 50발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죠?

김상욱 : 굉장히 단순한 기술이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겠군요.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면, 3D 프린팅은 기술 혁신을 통해서 속도, 재료, 가격만 보완하면 되겠군요.

고산 : 정확합니다. 속도, 재료, 가격. 그런데 정말로 하루가 다르게 혁신 중이죠.

▲ 3D 프린터로 부품을 제조해 조립한 금속 재질의 권총. ⓒsolidconcepts.com

프린트를 허하라?!

▲ <3D 프린팅의 신세계>(호드 립슨·멜바 컬만 지음, 김소연·김인항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한스미디어
김창규 :
방금 총기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3D 프린터가 보급될수록 미처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카피라이트 문제도 쟁점이 되지 않을까요?

강양구 : 코넬 대학교의 호드 립슨 등이 지은 <3D 프린팅의 신세계>에서도 바로 그 문제를 특별히 언급했더군요.

김창규 : SF 작가 중에서 코리 닥터로우(Cori Doctorow)가 있어요.

강양구 : 3D 프린팅에 열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선지자 취급을 받던데요. 앤더슨은 <메이커스>에서 또 립슨은 <3D 프린팅의 신세계>에서 닥터로우가 2009년에 펴낸 소설 <메이커(Maker)>를 중요하게 인용했죠. 이 소설은 3D 프린팅이 일상생활로 들어온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죠.

김창규 : 닥터로우는 정보 기술(IT) 분야의 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예요. 또 작가 중에서 앞장서서 자신의 책이나 소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한 누구나 접할 수 있도록 카피레프트로 공유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가 2006년에 펴낸 단편 소설 중에서 '프린트크라임(Printcrime)'이 있습니다.

강양구 : 프린트한 죄?

김창규 : 그렇죠. 그러니까 3D 프린터가 보급된 세상에서 저작권 침해를 염려한 이들이 정부와 결탁해서 3D 프린팅을 하려는 이들을 탄압하는 내용입니다. 결국 군홧발이 3D 프린터를 짓밟고, 그에 저항하는 사회 운동이 일어나는데요. 그 때의 운동 구호가 "모든 것을 프린트하라!"랍니다. (웃음)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요?

고산 : 일단 3D 프린팅의 세계에서는 기본적으로 공유가 원칙이에요.

강양구 : 그런데 김창규 작가가 얘기한 소설 속 상황이 황당하게만 들리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여기 굉장히 정교한 '뽀로로' 플라스틱 인형이 있어요. 성인 중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건담과 같은 로봇 피겨라고 해도 좋고요. 지금은 그렇게 정교한 인형이나 피겨를 소유하려면 구매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만약에 성능 좋은 3D 프린팅이 대세가 되면, 그런 뽀로로 인형이나 건담 피겨를 집에 있는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당장 저작권을 둘러싼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물건의 3차원 이미지를 스캔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앞으로는 더욱더 정교한 스캔이 가능할 거고요.

고산 : 맞아요. 지금도 현실의 물건을 곧바로 캐드 프로그램의 3차원 이미지로 변환할 수 있는 3차원 스캐너가 있어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3차원 스캐너 중에는 아이패드에서 물건을 여러 방향에서 찍은 다음에 3차원 이미지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오토데스크 123D 캐치)이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3차원 스캐너의 성능은 더욱더 좋아지겠죠.

당장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뽀로로 인형이나 건담 피겨와 질에서 상대가 안 되겠지만, 앞으로는 정말로 똑같은 걸 집에서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게 가능할 거예요. 그건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요? 카피라이트냐, 카피레프트냐 이런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그런 대립 구도 자체가 바뀌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디지털 음악 파일이 등장하면서 음반 산업은 완전히 망할 거란 예상이 많았죠. 하지만 지금 음반 산업은 음반 대신 디지털 음악 파일을 통해서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고 있죠. 또 예전과는 다르게 디지털 음악 파일만 팔아서 먹고사는 게 아니라 공연, 영화, 드라마 등과 같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잖아요.

3D 프린터가 몰고 올 변화도 이것과 비슷할 거예요. 물론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접근, 그러니까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의 대립 같은 건 있겠죠. 하지만 그런 대립은 결국 큰 변화 속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소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3D 프린팅은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니까요.

'메이드 인 차이나'의 붕괴 vs. 섹스 산업의 진화?

ⓒ프레시안(손문상)
이명현 :
그럼, 기왕에 얘기가 나왔으니 3D 프린팅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한 번 얘기해 봅시다.

김상욱 : 일단 딴죽을 한 번 걸어보죠. (웃음) 2D 프린터가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진집과 같은 책을 사보잖아요. 2차원 프린터로 비슷한 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지만, 여전히 편집자와 같은 전문 인력의 손을 거친 대량 생산 제품을 선호한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성능 좋은 3D 프린터가 있더라도, 당분간 우리는 여전히 대량 생산 제품에 의존해서 살아가지 않을까요?

강양구 : 반대로 오히려 저가의 이른바 '메이드 인 차이나' 시장이 붕괴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예를 들어, '다이소' 같은 데서 파는 저가 물품들 있잖아요. 플라스틱 컵, 플라스틱 도마, 비누 케이스 같은 것들이요. 그런 것들을 굳이 사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대로 3D 프린터로 프린팅해서 쓸 수 있잖아요.

김상욱 : 잠깐, 중요한 질문을 빠트렸네요. 지금 플라스틱 재료비가 얼마나 들어요?

고산 : 1킬로그램에 4~5만 원이죠.

강양구 : 똑같은 모양의 '메이드 인 차이나' 컵을 4000원 주고 네 개 살 바에는 차라리 각기 다른 디자인의 컵 네 개를 집에서 3D 프린터로 만드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고산: 글쎄요. 그런 대량 생산된 물건을 3D 프린터가 대체하는 건 아닐 것 같아요. 오히려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삶의 모습이 만들어진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요? 앤더슨이 <메이커스>에서 부각하는 것처럼 이미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개인의 시도가 늘어나고 있잖아요.

김창규 : 같은 맥락에서 얘기를 덧붙여 볼게요. 옛날에는 집짓기 블록 같은 것을 아이들만 갖고 노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레고 블록을 어른들도 가지고 놀아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제는 메이커봇에서 만든 3D 프린터로 3차원 이미지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렸죠.

그러면 점점 자신이 메이커 즉 제조자가 된다는 개념이 싹트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지금은 특수한 기술을 가진 이들만 메이커였다면, 앞으로는 보통 사람이 디자이너고 메이커라는 생각이 사회에 뿌리를 내릴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당장 지금도 그렇잖아요. 전자책(e-book)이 퍼지면서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서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늘었죠.

이명현 : 3D 프린터가 '제조의 민주화'를 가속화하리라는 얘기죠?

강양구 : 개인들이 메이커가 되어서 '메이드 인 차이나'와 같은 저가 물품이 아닌 뭔가 창조적인 것을 만들 가능성을 얘기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도 인터넷 공간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만의 콘텐츠를 창조할 수 있지만, 대다수는 기존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태에 머무르죠. 3D 프린팅을 계기로 메이커 운동이 불붙으면 좋겠지만, 어째 계속 회의적입니다. (웃음)

김상욱 : 의외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될 수도 있어요. 인터넷만 놓고 봐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으며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은 포르노 산업이잖아요. 이 부분에서는 제 이름은 빼주세요. 저랑 이미지가 안 맞으니까요. (웃음) 3D 프린터도 이렇게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을까요?

이명현 : 아주 중요한 지적 같은데요. (웃음)

강양구 : 섹스 인형이나 자위 도구 같은 거요? (웃음)

고산 : 실제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3D 프린팅의 등장으로 섹스 용품의 상당수가 개인 맞춤형으로 대체될 수 있으니까요.

▲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천문학자). ⓒ프레시안(손문상)

이명현 : 한창 재밌는데 화제를 바꿔보죠. (웃음)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3D 프린팅에 주목하는 것 중 하나는 우주여행에 이용할 가능성이에요. 3D 프린팅에 의존하면 더 이상 지구에서 모든 걸 만들어서 우주로 가지고 갈 필요가 없어요. 현지에서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지구에서 정보만 보내주면 즉석으로 만들면 되니까요. 우주여행의 개념이 바뀌는 거예요.

강양구 : 저는 기자니 타임 스케일이 좀 짧은 얘기를 하나 덧붙여 볼게요.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풍력 발전기의 상당수는 덴마크의 풍력 발전기에요. 그런데 고약한 게 볼트, 너트가 마모되어서 간단한 수리를 하려고 해도, 덴마크에서 공수를 해 와야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가 볼트, 너트 못 만드는 나라도 아닌데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아무튼 그래서 며칠씩 볼트, 너트 때문에 풍력 발전기가 서 있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하는데, 3D 프린팅이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오면 더 이상 이런 일은 없겠죠. 볼트, 너트 정보를 보내면 즉석으로 3D 프린팅을 해서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식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도 같군요.

이명현 : 얘기를 듣고 보니, 3D 프린팅이 정말로 새로운 영역을 창조할 거라는 고산 대표의 얘기에 좀 더 공감이 가네요.

강양구 : 화제를 바꾸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얘기해 보죠. 립슨의 <3D 프린팅의 신세계>를 보면 앞부분에 푸드 프린터가 맞춤한 식단을 아침마다 찍어내는 얘기가 나오거든요. 설탕을 이용한 3D 프린팅이 현실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보면, 이런 것도 소설이나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닐 것도 같은데요.

고산 : 가능할 텐데요, 가난한 사람만 그렇게 먹지 않을까요? 누가 그걸 먹고 싶겠어요. 음식은 손맛인데. (웃음)

김창규 : 푸드 프린터는 1950년대부터 SF 소설이나 만화에서 볼 수 있었죠.

강양구 : 엄마들의 꿈이잖아요.

고산 : 어이쿠, 엄마들은 사겠군요. (웃음)

3D 프린팅, 예술의 정의를 바꿀까?

강양구 : 지금 고산 대표는 한국 3D 프린팅 산업의 대표적인 개척자입니다.

고산 : 일단 3D 프린터를 활용해서 누구나 다양한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이런 '팹랩'을 열었죠. 또 이곳을 기반으로 보급형 3D 프린터를 제작해서 판매할 예정입니다.

이명현 : 지금 준비하는 3D 프린터의 가격대는 어느 정도인가요?

고산 : 200만 원 정도요.

강양구 : 얼마나 가격을 낮출 수 있는데요?

고산 : 훨씬 더 싸질 수 있을 것 같아요. 100만 원 이하도 가능하죠.

이명현 : 그런데 다들 얼마 정도면 집에 한 대씩 들여놓겠어요?

김상욱 : 40~50만 원 정도?

김창규 : 한 70~80만 원 정도라도 호기심에 살 사람은 살 것 같아요. 인터넷에 공개된 다양한 G코드를 만들어서 장난감처럼 출력해보려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가격에 주머니를 열지 않을까요?

▲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물리학자). ⓒ프레시안(손문상)
김상욱 :
원래 제 이미지에 맞는 얘기를 해보죠. (웃음) 2012년 7월에 <네이처>에서 3D 프린팅 특집을 한 적이 있었어요. 물론 <네이처>는 3D 프린팅이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죠. 그런데 주로 과학자가 도움 받을 수 있는 부분으로 이런 것들을 꼽더군요.

예를 들어, 인류학자가 발굴한 화석을 연구할 때 훼손되기 십상이잖아요. 만약에 그런 화석을 3D 스캔을 한 다음에 3D 프린팅을 해서 모조품으로 연구를 하면 좋겠죠. 또 생물학자나 생화학자가 특정한 분자 구조 모형을 만드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드는데, 그걸 3D 프린터로 쉽게 만들어서 연구나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는 거예요.

3D 프린터의 가격이 한 200만 원 정도만 되더라도 대학이나 학교에서는 구입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네이처>의 지적대로 3D 프린터로 여러 가지 모형을 만들어서 교육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사실 과학 교육에 필요한 모형은 터무니없이 비싸서 학교마다 구비해 놓기가 쉽지 않거든요. 여럿의 손을 타니 망가지기 십상이고요.

강양구 : 그나저나 여기 손문상 화백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요. 예술가 입장에서 3D 프린팅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손문상 : 전혀 매력 없죠. (웃음)

강양구 : 그런데 3D 프린터는 인간이 도저히 손으로 만들 수 없는 형태도 창조할 수 있는데요? 예술가에게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손문상 : 3D 프린터를 예술가가 굳이 활용한다면, 이런 식은 가능하겠죠. 3D 프린터로 모양의 틀을 대강 잡는 거죠. 요즘도 그런 건 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거든요. 그런데 결국 예술가의 독창성이 들어가는 부분은 다 손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3D 프린터는 보조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거죠.

이명현 : 그냥 예술을 위한 새로운 툴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손문상 : 글쎄요. 예술 작품이 미적 권위를 갖는 건 예술가의 미적 감각에 기반을 둔 노동력이 그 작품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예술 작품을 수천만 원, 수억 원을 주고 사는 거고요. 그런데 그런 과정을 3D 프린터가 대신했을 때, 그걸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상욱 : 그런데 옛날에는 초상화가 중요한 예술의 영역이었지만,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더 이상 그렇지 않잖아요. 사진도 한때는 소수 사진가의 예술로 취급을 받았지만,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서 그 위상이 변하고 있고요. 그런 점에서 3D 프린터도 예술가의 역할 또 더 나아가서 예술의 성격에 큰 변화를 주지 않을까요?

손문상 : 물론 백남준처럼 3D 프린팅을 이용한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하는 이들은 나오겠죠. 하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이 어떨지 저로서는 아직 상상이 안 되네요. (웃음) 아까도 얘기가 나왔지만, 3D 프린팅의 핵심은 다품종 소량 생산에 최적화된 도구를 제공한다는 것 아닌가요?

강양구 :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제조 기업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나요?

고산 : 아직 큰 관심은 없어요. 개인적으로, 삼성과 같은 제조업에 기반을 둔 대기업이 굉장히 장점이 많은 기업이라고 생각해요. 그 성취도 놀랍고요. 다만 3D 프린팅은 수십 년간 잠들어 있다가 이제 막 깨어난 기술이거든요. 오늘 확인했듯이 그 가능성도 무한하고요. 이럴 때 삼성 같은 기업이 뛰어든다면, 또 다른 신화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이런 점은 좀 아쉽죠.

▲ 김창규 작가. ⓒ프레시안(손문상)

인간, 자연이 만든 3D 프린팅의 걸작

강양구 : 이제 얘기를 정리할까요?

김상욱 : 아까 <네이처> 기사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하더군요. 궁극적으로는 생명의 본질이 3D 프린팅이랑 다를 바가 없다는 거예요. 나의 DNA만 넘겨주면 이 DNA를 가지고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아기가 만들어지잖아요. 그러니까 DNA를 통해서 유전자를 전달하는 생명 현상 자체가 3D 프린팅의 한 종류라는 거죠.

▲ <금지된 행성(Forbidden Planet)>(1956년). ⓒwikipedia.org
김창규 :
3D 프린팅 얘기를 들으면 감회가 새로워요. 예전에 프레드 윌콕스 감독의 <금지된 행성(Forbidden Planet)>(1956년)이 있었죠? 그런데 이 영화에서 외계인의 기술로 만든 로봇 '로비'가 나와요. 외딴 행성에서 과학자 아버지랑 살던 딸(앤 프린시스)이 처음으로 멋진 지구인 남성(레슬리 닐슨)을 보고 반합니다.

남자한테 잘 보이려고 예쁜 옷의 디자인을 쭉 훑은 다음에 주문을 하면, 로비가 즉석해서 만들어주죠. 그러니까 이게 1956년 영화인데, 벌써 3D 프린팅 개념이 등장한 거예요. SF 영화나 소설 속에서는 반세기 전부터 정보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찍어내는 3D 프린팅이 낯설지 않았어요.

이렇게 SF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하는 3D 프린터의 최종 비전은 자기 복제하는 프린터예요. 그러니까 '셀프 레플리케이터'가 되는 거죠.

고산 : 마침 메이커봇에서 만든 데스크톱 3D 프린터의 이름이 '레플리케이터'예요.

강양구 : 앤더슨의 <메이커스>나 립슨의 <3D 프린팅의 신세계>나 3D 프린팅의 마지막 비전으로 자연이 생물을 만들 듯 모든 물질을 프린팅하는 걸 꼽더군요. 심지어 생체 조직도요.

김상욱 : 먼 훗날의 얘기죠.

김창규 : 아니요. 원래 기술은 항상 예측 못할 변화를,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만들어 내잖아요. 그리 먼 훗날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웃음)

강양구 : 한 30년쯤 후에 다시 모여서 누구 말이 맞나 시험해 볼까요? 아무튼 푸드 프린트보다는 맞춤형 섹스 도구가 훨씬 더 빨리 등장할 건 확실할 것 같군요. (웃음)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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