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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신 러시아 줄게', 실체는 GM의 사탕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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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럽 대신 러시아 줄게', 실체는 GM의 사탕발림?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내수·러시아·CIS에서 활로 모색? 가능한가
"한국GM은 GM 본사의 지원을 바탕으로 자동차 수출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시장에서 업계 리더의 위치를 확보함과 동시에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탈바꿈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사업 기반이 되는 내수 시장에 지속적으로 집중해 나갈 것이며, 계속해서 GM 글로벌 비즈니스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사업장으로 남을 것입니다."

GM이 쉐보레 브랜드를 2015년 말까지 유럽에서 철수하겠다는 발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한국GM 사장인 세르지오 호샤가 12월 5일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서였다. 위 내용은 당시 메일에 포함되어 있던 문구들로서, 호샤 사장이 이번 사태가 한국GM을 포기하거나 버리는 조치가 아니라는 점을 꽤 강조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앞줄 왼쪽). ⓒmedia.gm.com

내수 시장과 러시아·CIS 시장에 집중?

하긴 뭐 GM이 속으로는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치더라도, 그걸 지금 당장 "네, 맞습니다. 시간이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에서 철수할 것입니다"라고 인정할 리는 없을 것이다. 떠나는 순간까지 한 푼의 이윤이라도 더 벌기 위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을 사랑하며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뭔가 구체적인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추상적으로만 쏟아내는 얘기,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입에 발린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호샤 사장의 메일 중에서 딱 하나 구체적인 대목이 눈에 보인다. "우리의 사업 기반이 되는 내수 시장에 지속적으로 집중해 나갈 것".

이 대목은 거의 대부분의 언론 보도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물론 실명을 걸고 언론사와 인터뷰를 한 사례는 없지만, 익명의 '한국GM 관계자'를 통해 이런 얘기를 쏟아내고 있다. "(쉐보레가 유럽에서 완전히 철수하기 전까지) 향후 2년간 러시아·CIS 시장 등 쉐보레 브랜드의 전략 판매 지역에 집중하고 내수 시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겠다."

러시아와 CIS(독립국가연합) 시장에 집중한다는 얘기는 GM의 이번 발표와 관련이 있다. 비록 쉐보레 브랜드를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철수하더라도, 쉐보레 판매가 성공하고 있는 러시아와 CIS 시장만큼은 쉐보레가 여전히 주된 브랜드로 남을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GM이 생산하는 쉐보레 차량의 유럽 수출 물량을 잃은 만큼, 내수 시장과 러시아·CIS 시장에 집중함으로써 이를 만회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직원들은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라는 내용이다. 그래, 이 말을 100% 신뢰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수 시장에 집중한다면서, 왜 이래?

ⓒ환경부 홈페이지

위 문서는 환경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것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내려받을 수 있는 보도자료이다(단, 붉은색 밑줄은 강조를 위해 필자가 별도로 그어놓은 것임). 잘 읽어보면 한국GM과 관련해 언론 기사로 보도된 내용을 반박하는 홍보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반박 자료를 내게 된 것일까?

발단이 된 사건은 내년부터 한국 정부가 시행하는 환경 규제로 인해, 한국GM이 다마스와 라보 상용차를 단종하겠다(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내년부터 달라지는 환경 규제는, 다마스·라보와 같은 상용차에 '배출 가스 자기 진단 장치'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GM 측은 이 장치 개발에 수백 억이 소요되기에, 환경 규제가 예정대로 발효될 경우 다마스·라보 생산이 수지 타산이 맞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다마스·라보 팔아봐야 몇 대 안 되는데 수백 억씩 들여 환경 규제를 충족시키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환경 규제를 유예하든지, 아니면 개발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GM과 환경부·국토부가 몇 차례 접촉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GM의 협상은 끝내 결렬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월 27일, 몇몇 언론을 통해 한국GM이 정부의 환경 규제로 인해 다마스·라보 생산을 중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의 환경부가 "그건 잘못된 보도"라며 뿌린 반박 자료가 바로 위의 문서이다.

박근혜 정부의 반박 논리는 간단하다. 내년부터 진단 장치 부착이 당장 의무화되는 것은 아니며, 진단 장치 개발에 소요되는 2~3년 동안은 유예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진단 장치 개발에는 GM의 주장처럼 수백 억이 아니라 20~30억이 소요되기에, 그리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환경부 문서에는 GM의 핑계 대기를 일축하려는 듯 이런 표현까지 등장한다. "환경 규제 대응 비용은 단종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보임." 이 얘기는 뭘까? GM이 사실상 다마스·라보 생산을 하지 않기로 미리 내부 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환경 규제를 단종의 핑계거리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GM이 다마스·라보 생산을 중단하려는 진짜 이유는 뭘까? 당연히 "이윤이 많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다마스·라보가 어떤 차인가? 중소 자영업자들이 싼 가격으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민형 상용차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구경하기 힘든, 대우차 시절부터 한국 시장에서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차량이라는 것이다. 아니, 내수 시장을 강화한다면서 고작 개발 비용 20~30억이 아까워서 다마스·라보 생산을 중단한다니? 내수 시장을 중시하겠다는 GM의 선언을 그냥 믿어주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라보 생산은 영원히 중단되지만, 다마스의 경우 그동안 GM의 우즈베키스탄 공장에서도 함께 생산이 이뤄진 바 있다.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기존 GM 생산 라인에서 호레즘 지역에 생산 라인을 새롭게 깔아 다마스 생산을 앞으로도 지속할 예정이라 하니, 다마스·라보를 무조건 단종한다는 GM의 태도는 더욱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이래 갖고 무슨 내수 시장 강화를 한단 말인지?

러시아 생산 시설 2배 이상 확충

한편 내수 시장과 함께 집중한다는 러시아와 CIS 시장은 어떠한가. 사실 러시아 자동차 내수 시장은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 시장의 대표국을 일컫는 말)라는 신조어가 부끄러울 정도로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의 완성차 업체 자본가들은 향후 몇 년 안에 러시아 시장이 독일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하며 너도나도 러시아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이러한 추세는 러시아 현지 공장 설립 열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얼마 전에 러시아 현지 공장 가동을 시작한 바 있다.

GM의 경우 자회사를 설립해 이미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 생산 공장을 갖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러시아 주요 완성차 업체와 합작해 3개의 생산 공장을 추가로 가동하고 있다. GM 러시아의 생산 공장 현황과 생산 차종, 합작사 등을 정리해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오민규

주목해야 할 대목이 '생산 능력 확충을 위한 투자' 부문이다. 우선 100% 자회사인 페테르부르크에는 10억 달러를 투자하여 현재 연간 생산 능력 9만8000대를 2배 이상으로 늘려 무려 23만 대 수준으로 올린다. 이 증축 공사는 작년 6월 22일에 시작되었는데, 당시 착공식에는 주 러시아 미국 대사는 물론이고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연간 7만 대 수준의 똘리아띠 공장 생산 능력 역시 12만 대로 늘리게 되며, 2억 달러를 투자해 별도로 부품 공장까지 짓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2월부터 러시아 업체 GAZ와 합작해 연간 3만 대가량 쉐보레 아베오를 생산하고 있다.

▲ 2012년 6월 22일, GM의 페테르부르크 공장 확장을 위한 착공식에 참석한 GM 회장이자 CEO인 댄 애커슨(왼쪽),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주 러시아 미국 대사 마이클 맥폴(오른쪽). ⓒmedia.gm.com

보호무역 강화하는 러시아로 수출?

정리해보면 이렇다. GM은 작년부터 최소 12억3000만 달러를 러시아에 투자해, 현재 연간 17만 대 수준의 생산 능력을 무려 38만 대로 2배 이상 확충했으며, 별도로 부품 공장까지 짓고 있다. 이 얘기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렇다. 기본적으로 러시아에서 판매되는 쉐보레 차량은 러시아에서 생산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미 쉐보레 크루즈와 아베오 등 한국GM의 핵심 차종들이 현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심지어 오펠 아스트라 차세대 생산도 러시아가 예약해놓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러시아 시장에 한국GM이 수출할 차량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또한 CIS 역시 구소련 시절부터 러시아와 무역을 해온 국가들이기에, 이들 시장에서도 러시아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여기에 한 가지 장벽이 더 있다. 최근 러시아 정부가 강화하고 있는 보호무역 조치이다. WTO 규제에 따라 관세 장벽을 낮춰야 하다 보니 러시아 국내에서 생산하는 차량들이 자칫 수입차에 밀릴 우려가 있어서, 러시아 정부는 작년 9월 1일부터 수입차에 대해 '재활용세'라는 추가 세금을 물렸다.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차량은 나중에 폐차할 때 폐차 비용을 물지만, 수입차의 경우에는 폐차 비용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는 (참으로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물리는 세금이다.

이에 대해 EU가 지난 7월 최초로 WTO에 러시아를 제소했으며, 일본도 같은 달 제소 대열에 합류했다. 미국은 제소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터키, 우크라이나와 함께 EU와 러시아 간 협상에 옵서버로 참여할 것을 WTO에 요청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제소에 따른 분쟁 해결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고, 따라서 최종 해결 이전까지는 러시아의 보호무역 조치가 힘을 갖는다는 것이다. 수입차에 비해 러시아 현지 생산차가 더 유리한 지위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요타와 GM을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 러시아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거나 현지 생산 능력 확충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르노·닛산 그룹은 아예 러시아 제1의 완성차 업체인 아브토바즈를 인수하는 과감한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아마도 향후 르노·닛산 그룹은 르노·닛산·아브토바즈 그룹으로 불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러시아 수출이 전체 수출의 절반이 넘는 한국의 쌍용차와 같은 업체조차 러시아 현지에 CKD 조립 공장을 알아보고 있는 현실이다. 완성차를 수출하는 것에 비해 차라리 CKD 형태로 부품을 수출해 러시아 현지에서 조립하게 되면 세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GAZ와 합작해 생산하기 시작한 쉐보레 아베오 역시, 본래는 한국GM이 러시아로 수출하던 물량인데 현지 생산으로 돌려진 것이다. 아마도 한국GM에서 CKD 형태로 부품을 러시아로 수출해 현지에서 조립하는 형태인 것으로 보인다.

자, 이렇듯 오히려 러시아로 수출하던 차량까지 러시아 현지 생산으로 돌려지고 있는 추세인데, 쉐보레 브랜드가 전반적으로 유럽에서 철수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와 CIS 시장을 뚫어서 한국GM 활로를 모색한다고? 도대체 구체적인 계획을 한번 들어보자. 이런 현실을 어떻게 돌파하겠다는 것인지, GM 자본 측은 완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응답하라, GM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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