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세 살까지 어촌에서 살았다. 1991년에 다가올 난개발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동네 가장 큰 길에 아스팔트를 깐 촌동네였다. 아스팔트를 깔던 날, 아이들은 길에 막 깔린 시커먼 덩어리를 구경하러 집 앞에 나왔다가 눈이 마주치는 대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 떼거리들은 끈적거리는 아스팔트 위에 올라가 쩍쩍 달라붙는 발걸음이 재밌다고 걷고 뛰고 웃었다. 갓 깔린 아스팔트의 열기가 대단했다. 도로 위에서 신난 아이들과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다가온 개들 모두 힘찬 아지랑이에 휩싸여 윙윙거렸다. 석유 폐기물 냄새가 뜨거운 공기를 타고 올라왔지만 그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우리는 어촌의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배가 무엇으로 움직이는지 알았고, 그걸로 가족들이 먹고 산다는 것쯤은 이해했고, 부두로 심부름을 갈 때나 어쩌다 심심해서 배를 얻어 탈 때나 아니면 짜장면 사먹을 잔돈을 벌려고 부둣가에 고기 낚으러 갈 때조차 멀리서 실려 온 석유 타는 냄새를 맡아왔었다. 우리에게 아스팔트 도로는 삼사십 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타고 사오십 분을 가야 하는 시내로부터 전해진 문물이 아니었다. 바다 위에서 기름밥을 먹는 사람들이 낳고 키운 아이들에게 아스팔트는 삶터의 냄새를 풍기는 덩어리였다. 그 순간만큼은 아스팔트는 바다에서 건진 물질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로 잠시나마 그렇게 믿었지 싶다.
이 장면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저 내가 살던 동네가 얼마나 구석진 곳이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가끔 서류처럼 호출하는 기록 같은 거였다. 그런데 <한국의 재발견>(임재천 지음, 눈빛 펴냄)을 보던 어느 순간에 그날의 감각이 확 올라왔다. 수없이 덧칠되고 재조합된 기억이겠지만, 감각을 동반한 기억이 뜬금없이 돌아오는 순간은 언제나 감격적이다. 나는 기쁜 한편으로 왜 이 기억이 떠올랐는지가 궁금했다. 책의 주제가 주제인지라 전국 방방곡곡의 시골 풍경들이 끊임없이 출현해서였을까. 그건 아니다. 시골 풍경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보아왔던 터다. 나는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기로 했다. 출판사 대표가 쓴 발문에 힌트가 있었다. 슬라이드 필름을 썼구나. 이렇게 명암 대비와 색깔이 강렬한 필름이라면 코닥 E100V 계열 아니면 후지 벨비아일 것이다. 물론 나는 실제로 어떤 필름이 사용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채도가 워낙 강렬해서 멀쩡한 사람을 찍어도 술 한 잔 걸친 듯이 나온다고 농담하던 그 필름들이 뿜어낼 법한 진한 색감이 고향 바다의 빛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한국의 재발견> 속 풍경들은 강렬한 빛과 함께한다. 그 빛은 바다의 빛이다. 물결과 파도로 흔들리는 수면에 부딪힌 빛들이 온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곳에서는 이런 강렬한 색과 명암 대비를 얻을 수 있다. 포토샵이나 각종 보정 프로그램에서 필라이트(Fill Light)라고 부르는 기법과 비슷하다. 필라이트란 그림자 속에 내려앉은 부분을 더욱 밝게 살려내고 너무 밝은 부분은 좀 더 어둡게 만들어 그 부분이 품고 있던 색깔과 명암 대비를 더욱 강하게 살려내는 기법이다. 바다가 반사한 빛은 햇빛과는 다른 각도에서 피사체를 비추고, 따라서 햇빛만으로는 그림자가 졌을 부분에 바다의 빛이 다다라 자연스레 필라이트 효과가 발생한다. 그래서 빛이 좋은 날의 바다 풍경은 보다 진하고 강한 색을 갖는다. 바다에 놀러라도 가본 사람이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바다 풍경의 힘은 드넓게 펼쳐진 물의 스펙터클뿐만 아니라 어쩐지 더욱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동행의 피부에서도 느껴진다는 사실 말이다. 그제야 나는 <한국의 재발견>을 보면서 느꼈던 이질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 책에 실린 한국의 풍경은 너무 드라마틱한 색감을 지녔던 것이다. 사진이 촬영된 시기를 보면 계절의 분포가 고른데, 한여름에 찍은 사진 속의 빛들이 강렬한 건 당연하지만 봄이며 가을에 찍은 사진들마저 힘차게 색을 뿜어낸다. 대비가 강렬한 필름을 썼으니(또는 그를 기준으로 후보정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사진집의 가을과 겨울 풍경은 내가 봐온 한국의 빛과는 달랐다. 초봄과 늦가을과 겨울, 좀 더 멀어진 태양이 좀 더 오랫동안 대기권을 통과해 다다른 빛은 여름의 그것과는 달라야 했다.
사진가 역시 그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나름의 방안으로 추측되는 바가 있다. 사진의 톤 전체를 어둡게 낮추는 것이다. 그러면 색깔들은 가장 빛나는 중간 톤에서 조금씩 어둠을 품고 내려가 좀 더 차분하고 단단하게 엮인다. <한국의 재발견> 속 해가 짧은 시기의 풍경들은 약해진 빛으로 인해 좀 더 낮은 곳에서 뭉친다. 그러나 그 색깔들은 여전히 여름의 그것처럼 힘차다. 어째서 약해지지 않는가. 어째서 다들 여름처럼 살아 있을까. 나는 그 지점에서 사진을 즐기지 못하고 맴돌았다. 이 사진들은 정말로 한국 땅을 ‘다시’ 보게 한다. 평상시에는 이 땅에서 만날 수 없는 비현실적인 빛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다소 이질감을 느끼는 와중에도 거기 대고 섣불리 과잉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이는 정답을 제시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다. 풍경을 정확히 재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선 사진 톤의 일관성 문제다. 사진집은 한 작가의 단편을 단편집처럼 일관된 정서 또는 스타일을 필요로 한다. 주제나 소재뿐만 아니라 색감과 톤에서도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으면 금세 잡탕 같은 느낌을 받는다. 계절 따라 색감을 빼고 더했다가는 책의 흐름이 엉켜버렸을 것이다. <한국의 재발견>은 여름 나절의 강하고 진한 톤을 선택했고, 일단 선택한 이상 거기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 중립이 아닌 강하고 진한 톤을 선택했을까?'로 넘어간다. 여기서부터 임재천의 사진들을 '읽어야' 한다. 현실의 풍경을 넘어서는 색채의 폭발이 한반도에 드리운 빛으로부터 주어진 게 아니라면 나머지 출처는 단 한 군데, 사진가의 내면일 것이기 때문이다. 임재천의 사진 속 피사체들은 똑같은 포즈로 얼굴을 가린 아줌마들처럼 재미있는 패턴을 가진 사물로 존재하거나 화려한 색채의 대비를 구성하는 점, 선, 면으로 기능한다. 즉, <한국의 재발견> 속 피사체들은 사진의 구도를 채우는, 멋진 색과 포즈로 감탄을 자아내는 객체적인 요소로만 동원된다. 이때 주체는 사진 속의 풍경 자체다. 색과 명암 대비의 스펙터클이다. 전체 풍경이라는 구성 속에 등장하는 모든 피사체를 '평등하게' 객체화시키는 이 화려한 스펙터클의 세계는 결과적으로 모든 피사체를 타자화함으로써 철저히 가치중립적이며, 따라서 어떤 해석이나 비평도 소용되지 않는다. <한국의 재발견>은 바라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발화하는 형형색색 불꽃놀이의 세계다. 이는 작가 후기에서 청소년 시절의 임재천을 사진가의 길로 이끌었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모토이기도 하다. 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스러움'이 <한국의 재발견>에 드리운 강렬한 빛과 색감의 근원일 것이다. 독학으로 사진을 배웠다는 그가 본능적으로 끌렸던 색채와 빛의 향연이야말로 <한국의 재발견>의 진정한 주제다. 따라서 임재천의 사진에서 '한국'의 어떤 다른 특성을 '읽어'내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는 비주얼리스트기 때문이다. 나비는 아름다운 꽃들을 찾아 날아다니지만 꽃에게 왜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느냐고 묻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꽃이 많으면 흥에 겨울 뿐이다.
이러한 임재천의 특징 또는 장점은 그 장점이 발휘되지 못한 부분들을 보면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한국의 재발견>에서 '한국적'인 모습들, 제례나 불상 등을 피사체에 담은 사진들은 사진가가 거리를 떠돌며 찍은 사진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평범하고 관습적인 구도를 보여준다. 한국적이라는 주제의식이 사진가의 흥을 넘어서서 사진의 중심이 되려고 하자 사진가의 장점이 함께 밀려나버린 게 아닐까. 확실히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재발견>은 수록된 사진들 간의 고저차가 느껴진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진들의 숫자는 매우 적으며(많았다면 이 코너에 소개할 리가 없다), 이 작은 요철들은 되려 임재천이라는 '사람'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된다. 만약 <한국의 재발견>이 사진을 반 정도로 줄여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또는 초기의 매그넘 에이전시 풍의 멋진 스냅 사진들만으로 구성되었더라다면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월드 오브 컬러 앤 라이트 - 사우스 코리아 편'이라고 이름붙이자고 건의했을지도 모른다. 비꼬는 뜻으로 떠올린 제목은 아니다. 임재천의 사진들은 '중립적' 스펙터클의 획득으로 인해 국제적인 보편성을 가진 멋진 이미지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나는 별달리 덧붙일 말이 없을 것이다. 본능적인 색 배치 감각과 꾸준히 작업을 유지하는 지구력을 갖춘 한 명의 유능한 사진가를 보도자료 마냥 깍듯하게 소개할 수 있을 뿐이다. 대신에 '프레시안 books' 애독자들의 취향에 맞는 주제들을 집어넣어 좀더 비평적인 맥락을 선보이기를 꾀할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함축하는 강대국의 시선 권력이 어떻고저떻고, 무국적성은 곧 신자유주의의 모토이며 따라서 중립을 표방하는 스펙터클의 소비란 어떻고저떻고…. 그러나 <한국의 재발견>을 보면 볼수록 사진들 간의 고저차가 주는 작은 요철들 때문에 마음이 점점 더 흔들린다. 빛의 꽃밭을 보면 흥에 겨워 셔터를 누르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행선지의 정체성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한국이 아니면 어떤가. 한국답지 않으면 어떤가. 아니, 한국이란 게 뭐냐? 이 '비주얼리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떠나서 발견하고자 하는 열망이며 그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다. <한국의 재발견>을 관통하는 강렬한 빛에 대한 미스터리는 이렇게 고백의 형태로 마무리된다. 아름다운 풍경을 열망하는 사람이 그 열망하는 풍경을 만났을 때의 감격이 빛의 형태로 덧씌워진 것이다. 그는 같은 풍경을 보았어도 더 열렬히 받아들였을 테니, 내가 그의 사진에서 본 '너무 강한 빛'은 그의 내면 속에서는 진실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재발견>은 정말로 재발견이었다. 어떤 맥락에도 소용되지 않으며 '사실'조차 한 수 접어버리는, 아무래도 좋으니 그저 좋아서 노래하는 풍경. 시적인 주관. 한국이라는 관념적 압력을 거절하는 순전한 색의 세계. 주류 사진계와 취미 사진가들-아마추어-사이의 회색지대를 기꺼이 떠도는 희귀한 방랑자의 박물지.
이 열렬함을 추동하는 원천이 무엇인가를 밝혀야 이 글은 말끔히 마무리될 것이다. 풍류의 심리학이랄까 역마살의 정신분석학이랄까. 그러나 나는 모른다. 천생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보니 그저 추측할 뿐이다. 집요하게 떠오르는 또 다른 옛 기억 하나로 대신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그, 대로가 흙바닥이던 촌동네에도 멋쟁이 청년이 하나쯤은 있었는데, 1톤 트럭 몰고 온 전국을 싸돌아다니길 좋아하던 그 청년은 결국 결혼하기로 했다는 여자도 놓아둔 채 아주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청년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도 없이 사라진 애인이 야속해 몇날며칠을 울다가 기어코 엄마한테 등짝을 두들겨 맞던 여자도 결국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명절이면 아들이 돌아오려나 싶어 연휴 내내 집안에서 안 나온다던 그의 부모도 대충 동네 마실을 돌 만큼 시간이 흘러서, 그러니까 육 년 쯤 지났을 무렵 멋쟁이 청년이 돌아왔다. 돌아왔다기보다는 잠시 들른 셈이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쎄가 빠지게' 두들겨 맞은 뒤 다시 기약 없는 인사를 드리고 나와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러고는 이튿날 아침에 떠났다. 마을을 떠나던 그는 등교하던 나를 정미소 앞에서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아니면 내가 그의 차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차창을 내린 채 내게 공부는 잘 하는지, 부모님 말은 잘 듣는지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그에게 아주 돌아온 거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면 어디서 뭘 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면 왜 떠나냐고 물었다. 아마, 그는 나를 잠시 쳐다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다음 질문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자기가 수 년 전에 가르쳐 준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아직 기억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외운 가요였기 때문이다. 그는 웃으면서 '비 내리는 영동교'의 마지막 소절을 부르고는 잘 있으라며 떠났다. 그러고는 우리는 다시는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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