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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선언과 삼성, 그리고 <시사저널>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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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7 선언과 삼성, 그리고 <시사저널>사태 [기자의 눈] 약속 이행 완료?…"1년전 했던 말부터 되새겨야"
어제(7일)는 삼성에겐 남다른 날이었다. 지난해 같은 날 삼성이 이례적으로 국민들 앞에서 머리를 숙였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이 머리를 숙인 것은 사회 공헌 활동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2.7 선언'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언론들은 'X파일 사건'으로 불붙은 비난 여론을 삼성이 전환하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로부터 꼬박 일 년이 지난 현재 삼성은 또다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 역시 직접적인 기업 경영활동과는 무관한 일에서 비롯됐다. <시사저널> 사태가 그것이다. 과거와 다르다면 삼성이 '직접' 연루됐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뿐, 대다수 국민들은 "삼성이 또 사고쳤다"고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일 년 전의 그것과 흡사하다.
  
  2.7 선언, 모두 이행됐다?
  
  지난 6일 삼성은 A4 한 장의 설명자료를 기자들에게 베포했다. 2.7 선언 1주년을 맞아 이를 평가하는 기사를 써야하는데 관련 자료를 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도 이 자료를 받았다. 구구한 문장 하나 없이 도표 하나로 구성된 깔끔한 자료였다. 그러나 이 자료는 2.7 선언이 모두 이행됐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실제 삼성은 2.7 선언에서 약속한 사항들을 모두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8000억 원 상당의 사회기금을 헌납키로 한 약속도 지난해 10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출범으로 갈음됐고, 외부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약속도 같은해 5월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삼지모)이 구성되면서 이행됐다. 그밖의 약속들도 순차적으로 실행됐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2월 약속한 사항들은 완벽히 이행됐다"면서 약속 이행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니나 다를까 2.7 선언 1주년을 다룬 대부분의 언론들도 "삼성, 2.7 선언 완전 이행"이라는 식의 제목이 달린 기사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자료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뭔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삼지모'는 지금껏 단 세 차례의 모임만 가졌고, 그마저도 오찬을 겸해 두 시간 정도 삼성의 고위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당시 오간 대화 내용들이 모임의 취지대로 삼성에 대한 '따끔한 쓴소리'였는지는 불투명하다. 삼성은 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을 뿐이다.
  
  또한 삼성이 8000억 원을 기부해 지난해 10월 설립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도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 지원이라는 취지에 맡게 운영되고 있는지는 판단하기 이른 상황이다. 이 재단의 고위 관계자는 "중점 사업을 개발하는 연구기획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범한 지 3개월이 넘도록 80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어디에 쓸지도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재단은 출범 직후 교육부 퇴직자가 사무국 11명 가운데 9명을 독식한 사실이 드러나 거센 비난 여론에 휩싸이는 등 출발부터 잡음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이를 두고 삼성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다. 삼지모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문제고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문제도 돈을 기부하고 손을 뗀 삼성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X파일 사건' 판박이인 '<시사저널> 사태'
  
  그러나 2.7 선언이 나온 지 1주년인 현재 삼성이 처한 상황을 보면 1년 전의 그것과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삼성은 1년 전의 약속을 모두 이행했다고 하는데 삼성을 바로보는 사회의 시선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삼성 측은 약속을 다 지켰다고 하는데 왜 삼성에 대한 인식은 바뀐 흔적이 없는 것일까?
  
  그렇게 된 데에는 최근 진행되고 이는 <시사저널> 사태의 탓이 크다.
  
  현재의 <시사저널>사태 역시 2.7 선언의 배경이 된 'X파일 사건'의 진행과정과 똑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 처음에는 한 언론사 내부에서 경영진과 기자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으로 비쳐졌지만, 이내 언론과 광고주인 거대자본 간의 피할 수 없는 싸움으로 해석되더니, 삼성으로서는 심기가 불편할 '삼성공화국'이란 단어가 거론되는 국면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또 싸움의 주체도 한 언론사의 몇몇 기자에서 출발해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언론계 전반으로 확산됐고, 급기야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처럼 싸움이 그 의미나 주체 모두가 확대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1년 여 전에 있었던 'X파일 사건'의 전개과정과 판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년 전 삼성은 뭐라고 말 했었나?
  
  삼성은 2.7 선언을 발표하면서 "지난 날의 잘못된 관행을 반성하고 우리 사회와 더불어 발전하고 국민들의 기대와 뜻에 부응하겠다"고 말했다. 기자가 보기에 이는 8000억 원의 사회 헌납이나, 삼지모의 구성운영 등의 약속보다는 훨씬 무게가 있고 의미 있는 약속이었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약속들은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재력이나 인맥 등 능력을 생각하면 일사천리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전자의 약속은 진정한 자기반성을 수반해야 하고, 그 실천 역시 매우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후자의 약속들은 수단에 불과하다면, 전자의 약속은 수단을 통해 구현해야 하는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사태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삼성이 전자의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고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년 여 간 거액을 헌납하고,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한 삼성으로서는 국민의 싸늘한 시선이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사저널> 사태를 어느 특정 회사의 노사 간의 문제로 국한시켜 보면서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입장을 삼성이 여전히 고수하는 한, 유감스럽게도 삼성의 억울한 심정은 더욱 커질 것이고, 국민들이 느끼는 삼성에 대한 실망감도 아울러 커질 것이 분명하다.
  
  삼성이 불명예스러운 2.7 선언과 같은 약속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삼성이 2.7 선언을 발표하면서 스스로 했던 말들과 다짐들을 되새겨봐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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