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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독립, 판사를 선거로 뽑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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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독립, 판사를 선거로 뽑는다면? [박동천 칼럼] 판단하지 않는 판사들
전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책무를 맡은 재판정이 그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대해 <한겨레>의 논설위원 김이택은 이렇게 썼다. “판결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목에 가시 걸린 듯 켕기는 대목이 있다. 108쪽짜리 판결문의 주요 쟁점을 관통하는 논리는, 경찰관들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서로 일치하니 믿을 만하나 이와 어긋나는 권은희 과장의 진술은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쟁점을 15개나 뽑아 일일이 따지면서 이상하게도 사건의 핵심인 경찰의 ‘허위 발표’에 대한 직접적 판단은 빠져 있다. 대신 이 부분은 별도 항목으로 빼내서 ‘시기와 내용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나…’라고 애매하게 언급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바로 대선 3일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왜 그처럼 진실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발표를 강행했는지가 김 전 청장의 선거 개입 ‘의도’를 가려줄 결정적 대목이다.” ( 국정원 직원이 오피스텔에서 수상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민주당의 제보를 받았을 때, 경찰은 범죄 현장일지도 모르는 공간을 신속하게 장악해서 증거를 확보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미적거리며 시간을 끌면서 결과적으로 범죄 피의자로 하여금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줬다. 그렇지만 당시 경찰은 막상 여론의 압박 때문에 수사가 개시되자마자 수사팀이 진상을 확인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게시글이나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고 서둘러 발표하고 말았다. 따라서 이 재판에서 핵심은 이와 같은 불균형이 왜 일어났는지를 가려내는 데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질문을 “아쉬움이 남는다”는 식으로 회피해버리고 김용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런 판결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아주 없지는 않다. 결론을 정해놓고 짜맞추기식 판결문을 쓸 때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핵심 쟁점을 회피하는 길뿐인 것이다. 전 서울시 교육감 곽노현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다룬 1심, 2심, 그리고 대법원까지, 판사들은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판단을 회피한 채 판결을 내렸다. 그 사건에서 핵심 쟁점은 2010년 5월 19일에 최갑수와 이보훈과 양재원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금전 거래에 관한 합의로 볼 수 있느냐에 있었다. 그런데 세 차례의 재판에서 모두 판사들은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회피함으로써 곽노현을 유죄로 판결했다. (관련기사 ☞ “곽노현 항소심 판결문에는 논리가 없다”).

 핵심 쟁점을 회피함으로써 판결을 조작하는 수법은 사실 매우 오래 된 것이다. 최근에 재심을 통해 무죄로 뒤집힌 사건들 중에 중요한 것들만 열거해도 조봉암 사건, 인혁당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부림 사건, 서울대 의대 간첩단 사건 등이 있다. 재판부가 실체적 진실의 발굴을 위해 조금만 신경을 써줬더라면, 억울한 사형도 부당한 옥살이도 애당초 일어날 까닭이 없었다. 용산참사의 경우에는 불이 왜 났는지를 확인하지 못한 재판부가 방화범을 단죄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5·18 특별법에 따른 재판에서는 광주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경위도 밝히지 못하고 그 배후에서 누가 어떤 기획을 꾸몄는지도 밝히지 않은 채, 전두환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사형이 집행되리라고 예상한 판사가 있었을까?) 대충 넘어갔다. 판사라는 직위는 올바른 판단을 하라는 임무를 맡기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다.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라고 시민들을 세금을 내서 그들을 먹여 살린다. 이 임무가 평화롭고 정의로운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이 직위에는 명예와 권력이 수반된다. 그런데 한국의 판사들은, 항상 그런 것은 물론 아니지만, 어떤 사건에서는 판단을 스스로 회피한다. 따져서 밝혀내야 할 핵심 쟁점을 덮고 묻고 가림으로써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에 어디선가 법정 바깥에서 미리 정해진 결론을 마치 정당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법과대학에서 배운 법률 지식과 여타 문학적 소양을 총동원한다. 왜 그럴까? 법률과 양심 말고 그들로서 신경 써야 할 사항들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가장 원초적인 사항은 승진이다. 법관의 인사권이 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참 판사들의 손아귀에 있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서 혹시라도 벗어날까봐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보다 약간 깊은 곳에는 정치권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조바심이 있다. 이번 김용판 재판을 담당한 판사들은 만약 김용판에게 유죄를 선고하게 되면 현직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차후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물론이고, 과거 박정희 시절에 있었던 것 같은 사법파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마저 있었을 것이다. 야당을 편드는 “정치판사”라는 비난 또는 “빨갱이 판사”라는 낙인도 두려운 터에, 이미 끝난 선거의 정당성을 다시 헤집고 들어가 봤자 안 그래도 정신없는 정치판에 혼란만 가중되리라는 가식적 애국심도 한 몫을 거들었을 것이다. 한국처럼 법치주의의 역사도 일천하고 헌정주의의 원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확고하지 못한 사회에서 사법적 정의가 홀로 우뚝 서기는 어려운 일이다. 오로지 정의와 진실에 일생을 바치고자 결단을 내리고 일관되게 실천하는 사람들만이 판사로 임용되도록 만들 길은 한국 아니라 이 세상 어느 나라에도 없다. 그만큼 사법개혁이라는 과제는 아주 복잡한 일이고, 단번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는 없는 과제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느라 핵심 쟁점을 회피하는 판결의 빈도를 줄일 수 있는 길은 있다. 판사를 선거로 뽑는 길이 그것이다. 이 발상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대법관이 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헌법 조문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미 대법관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방식을 우리 자신이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식을 연장한다고 생각하면 전혀 무리가 아니다. 고등법원 판사까지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지방법원 판사는 관할 지역의 주민들이 선출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 고등법원 판사의 임기는 6년으로 정해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본인이 사퇴하거나 탄핵받지 않는 한 한 곳에서 근무하도록 하고, 지방법원 판사는 4년마다 주민들의 신임을 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물론 모든 판사들이 오로지 법률과 양심에 따라서만 판결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느라 정치적으로 중요한 판결에서 핵심 쟁점을 회피하는 빈도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한국의 사법부가 권력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독립할 수 있도록 만드는 단초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앞으로 있게 될 각종 선거에서 이런 구상을 공표하는 후보와 정당에게 나는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낼 것이다. 그런 후보와 정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늘어나야 한국의 정치도 민주화되고 경제도 민주화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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