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카시즘은 용두사미로 끝났지만, 미국 사회에 하나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의 의식 지형을 오른쪽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전교조 법외 노조화부터 시작해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까지. 1년간 숨 가쁘게 진행되어온 일련의 '법질서 세우기', 혹은 '공안몰이'에 대해 물었다. 답은 냉전체제가 견고했던 1950년,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 광풍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근거조차 없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판명났음에도, 미국 사회는 매카시즘 이후 급격히 우향우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일종의 '두려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의 '공안몰이'를 매카시즘 광풍에 빗댔다. 가뜩이나 보수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국사회에서, 박근혜 정부가 종북 공세를 통해 톡톡히 '효과'를 봤다고 지적했다. 또한 "철부지들의 코미디"에 불과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보다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우리 정치의 '수준'을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남 전 장관은 공안몰이와 노동에 대한 탄압을 한 축으로, 남북관계의 다소 '위험한' 방향 설정을 다른 한 축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우려를 표했다. "진정한 평화란 갈등과 분열을 감추어버리는 보기 좋은 포장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매일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입에 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해 박 대통령에게 "거꾸로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인터뷰는 정부 출범 1년 평가와 지방선거 전망을 주제로 18일 서울 서교동 프레시안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박인규 이사장이 진행한 인터뷰를 2회로 나누어 게재한다. 다음은 남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프레시안 : 국정원 대선 개입부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의혹까지 사건은 끊이지 않는데,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은 계속 고공행진 중이다. 야권 및 야권 지지세력이 무력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한데, 이런 지지율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일각에선 보수 우위의 정치 지형, 즉 ’기울어진 운동장‘을 원인으로 꼽는다.
남재희 : 베트남 전쟁을 다룬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The Best and the Brightest'
“이석기 내란음모, 철부지들의 ‘코미디’…‘코미디’에 처벌 과했다”
프레시안 : 최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의 유죄 판결이 있었다. 사법부의 판단을 일단 인정하더라도, 이 역시 정권 차원의 ‘종북몰이’와 떼어놓기 어렵다.
남재희 : 이석기 재판에 대해선 단편적으로 얘기하긴 어렵다. 단편적 접근을 했을 때, 상당한 오해를 부를 수 있는 까다로운 문제다.
사실 과거부터 통합진보당의 북한에 대한 태도에 개인적으로 상당한 의문점을 갖고 있었다. 일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두 가지 가설을 갖고 있었는데, 하나는 정말 ‘북의 추종세력’일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자주적 입장을 강하게 갖고 있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비쳐지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의로 해석해서, 민족자주적 입장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압력에 강하게 반발하다 보니 ‘종북’이란 평가를 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두 가지 관점 중 어느 쪽이 맞는 판단인지는 지금까지도 머릿속을 맴도는 문제다.일각에선 다른 해석도 나오는 것 같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임미리 박사가 쓴 글을 보니, 이른바 ‘이석기 세력’의 기원을 성남 광주대단지에서의 차별과 배제의 집단 경험에서 찾더라. (임미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고립>-편집자) 당시 빈민촌으로 배제됐고, ‘폭동’으로까지 번진 광주대단지의 경험을 집단 공유한 젊은이들의 그룹이란 것이다. 그 역시 상당히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광주대단지 키즈(kids)’가 급진화됐다는 것이다.
그와 별개로 통합진보당 세력의 언행을 보면, 국민감정과 반하는 부분이 많다. 북에 대한 문제나 애국가 논란 등이 그렇다. 지탄을 받아야 맞는 대목이다. 과거 혁신계의 전통은 그렇지 않았다. 독립운동의 전통에 오랜 망명과 수감생활을 해서 그런지, 상당히 신중하고 치밀했다. 요새 진보청년들의 학생운동 식의 가벼움과 달랐다. 어떻게 보면 이번 내란음모 사건의 경우 ‘철부지들의 코미디’ 수준이다. 코미디란 본래 심각한 척을 해야 진짜 코미디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차원에서, ‘내란을 음모했다’기엔 설익은 이야기들이었다. 함량 미달이었고, 심각하게 국가를 위협하는 상태로까지 나아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저 경망했다. 그런 ‘경망함’도 처벌할 수 있다고 보지만, 이번엔 다소 가혹하지 않았나 싶다. 함량 미달의 코미디에 징역 12년 형은 과했다고 본다. 사실 이번 재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심판이다. 법이란 것은, 특히 법의 적용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운영하는데 있어 지혜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사법부의 판단에 따른 정당 해산보다는 국민이 선거로 심판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정치의 수준은 이미 그 단계에 와 있다. 외국에서 보기에도 ‘나라의 격’이 걸린 문제다. 우리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그래야 우리 정치도 발전하고 국민들도 납득한다.“김용판 1심, 사법부 정치적 판단 결과…특검 불가피”
프레시안 :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수사 은폐 의혹을 받아온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경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어떻게 보나?
남재희 : 채동욱 검찰총장부터 윤석열 특별수사팀장까지, ‘찍어내기’를 통해 수사팀을 사실상 해체하지 않았나. 과연 검찰이 제대로 수사해서 재판에 임했는지 의문이 든다.
“朴 정부 공공기관 개혁, 결국 노조탄압 수순으로 갈 것”
프레시안 : 오는 25일이면 박근혜 정부 출범 1주년을 맞는다. 지난 1년, 어떻게 평가하나?
남재희 : 최근의 화두는 ‘비정상의 정상화’인데, 기본적으론 공공기관의 부조리를 뿌리 뽑겠다는 것이지만, 결국 노조 옥죄기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물론 형편없는 공공기관은 개혁해야 한다. 노동조합 역시 일부 특권화된 귀족노조가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크게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국엔 노조 탄압으로 귀결될 것 같아 걱정이다. 사실 그런 전력도 있지 않나. 이 정부 출범 이후 전교조부터 시작해 공무원노조, 철도노조, 민주노총까지 이어지는 강압적 조치가 일관되게 진행돼 왔다. ‘공공부문 개혁’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들고 있지만, 노조 옥죄기의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또 공공기관은 반드시 영리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 얼마 전에도 공공 의료기관을 적자가 났다는 이유로 폐업시키지 않았나. 문제가 있는 접근이다. 사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이라는 것은,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공공성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이 기본적인 전제다. 영리가 아니라 공공성이 우선돼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최근 언급한 ‘진돗개 정신’으로, 이런 공공성 저하는 물론 노조 탄압까지 몰아칠까봐 상당히 우려하고 있고, 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프레시안 : 지난 1년의 노동 현안을 돌아보면 현 정부의 갈등조정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 같다.
남재희 :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성탄 메시지로 이런 말을 했다. 그대로 인용하면, “진정한 평화는 대립하는 힘의 균형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란 갈등과 분열을 감추어버리는 보기 좋은 포장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매일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입 있다.” (“True peace is not a balance of opposing forces. It is not a lovely ‘façade’ which conceals conflicts and divisions. Peace calls for daily commitment.”) 갈등을 덮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드러내놓고 해결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미국 진보센터 10주년 기념행사에서 아주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노동조합이 기울지 않는 운동장을 갖도록 단체교섭권이 제대로 작동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이 보다 많은 교섭을 할 수 있고 중산층이 보다 나은 임금을 받게 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강화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미국의 중산층 역시 회복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두 개의 연설이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나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것들이 세계적인 양식이고 추세인데, 박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결국 사용자의 이익 증대만을 가져오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몰락하는 등 다른 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노조만 옥죄는 논리로 전개될 것 같다.프레시안 : 공기업이 ‘신도 부러워할 직장’으로 불리다 보니,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 잡기용으로 공공기관 개혁에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남재희 : 거듭 강조하지만 개혁이 필요한 곳도 있다. 그런데 공공기관이 이렇게 불신을 받게 된 이유가 뭔가? 따지고 보면 정권이 원인을 제공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하는 바람에 공공기관 부채를 잔뜩 올려놨고, 그런 문제는 다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있었다. 공공기관 스스로 경영을 잘 못한 것도 있겠지만, 그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정부의 요구를 수용했다고 강변할 것이다.
임금 격차도 갈수록 심각해진다. 대략 40년 전의 격차가 10대1이었다면, 이제 100대1 수준으로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은 자꾸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추세다. 노조만 억누를 것이 아니라, 이런 사회 양극화 현상과 빈민층 증가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의 노동정책 전반이 대기업 위주인 것 같아 걱정이다.“과정 생략한 ‘통일대박론’, 흡수통일론으로 이어질까봐 걱정”
프레시안 : 남북관계는 진전이 있다고 보나?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을 꺼내들며 통일 논의에 불을 지폈고, 조만간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열린다.
남재희 : 지금 남과 북이 군사적 대치 상황에 있지 않나. 이런 대치 상태를 평화체제로 돌리는 일이 가장 급선무다. 그런데 그 노력은 별로 하지 않으면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만 하면 과정이 설명이 안 된다. 과정없는 ‘통일 대박론’은 급변사태 임박론이나 흡수통일론의 맥락으로 비쳐질 수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의 발언이 그런 사례 아니었나. ‘2015년 통일’을 이야기하면서 국정원 직원들에게 “자유대한민국 체제의 통일을 위해 다 같이 죽자”며 독립군가까지 불렀다고 한다. 완전히 일장춘몽 코미디다. 내년에 통일을 한다? 그렇다면 북진 통일밖엔 없는 것이다. 국정원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코미디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국민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남 원장 말대로, 북한이 붕괴되고 무력통일이 이뤄진다고 해도 중국이 가만히 있겠나? 그런 방식이라면 북에도 잔당이 남을 수밖에 없다. 평화체제가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을 한다면, 그건 무력통일 밖엔 없는 것이다. 상당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얘기다.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도 마찬가지다. 선언만 할 것이 아니라,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나마 요새 다소 남북관계가 좋은 기미를 보이고 있는데, 이제 그 분위기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가 문제다. 북한의 급격한 변화를 유도하지 말고, 정말 서서히 변화를 유도해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코스트(비용)가 적고 희생이 없다. 급격한 변화는 위험한데다 비용도 많이 들 것이다. 인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하지만, 투명성은 갖춰야 한다. 북측이 한 발 양보하면 우리는 두 발 양보하는 능동적 자세로 평화체제 구축에 힘써야 한다.“한일관계, 냉정하게 접근해야…‘안개비 외교’ 필요할 때”
프레시안 :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본 내 반한(反韓) 여론도 높아지고 있는데,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로 그런 분위기가 더욱 가열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재희 :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깜짝 방문'이 국내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았나. 국내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깜짝 쇼였다.
독도 문제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선 분명한 우리 땅인데, 국제적인 안목에서 보면 미해결 문제다. 한일회담에서도 미해결로 남지 않았나. 쉽게 접근해선 안 되는 문제다. 종기도 자꾸 건드리면 중병이 되지 않나. 그 문제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아주 팍팍 긁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도는 이왕 우리가 점유하고 있으니, 가만히 있으면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 자꾸 긁어버리면 불리해지는 것이다. 외교란 것은 기본적으로 정략에 의해 작동한다. 경우에 따라선 강경한 자세도 취하고, 한 발 물러설 때도 있다. 순간순간에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동시에 품위와 냉정함이 필요하다. 극도로 흥분했다가 극도로 아첨하는 방식의 외교는 과거 우리의 한일외교에서 계속 이어져 왔다. 해방 후 역사를 쭉 보면, 어떤 때는 일본에 특사를 보내며 굴욕적으로 아첨하고, 어떤 때는 대사관 앞에서 손가락까지 절단하는 극도로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행태는 결국 우리에게 불리하다. 적당한 수준의 예의와 긴장관계를 항상 가져야 한다. 나는 늘 “반일 감정이 홍수가 나게 하지 말고 댐을 막아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당한 긴장관계를 항상 유지해야지, 홍수가 나면 안 된다. 조용한 외교를 일러 ‘가랑비 외교’라고 한다. 나는 ‘안개비 외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랑비보다 더 약한 게 안개비인데, 아는 듯 모르는 듯 서서히 상대방을 젖게 하는 외교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까지 ‘소나기 외교’를 반복해 왔다. 흥분해서 질러버리는 식의 외교는 결국 우리에게 손해로 돌아올 것이다.일본의 이른바 ‘보통국가 전환’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리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일본 입장에서야 현재의 헌법이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만들어진 '강요된 헌법' 아닌가.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이제 맥아더헌법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고, 이는 그들 입장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이런 문제로 너무 실랑이해서 좋을 것이 없다. 국민과 언론이 혼동해선 안 된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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