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그렇게도 읽고 싶은 책을 눈앞에 두고도 읽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도리어 그쪽에서, 서적 통관이 쉬운지 아느냐,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책이라도 있으면 어쩔 거냐고 공격한다. 이 책들은 그런 책하고는 거리가 멀며, 문학에 관한 이론서일 뿐이라는 내 설명을 무지르고 다시 돌아오는 대답이 이렇다. "책 내용을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책은 사세요?" 나는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창구의 가로대를 뛰어넘었다." (<밤이 선생이다>(난다 펴냄) 11쪽)
지금이야 아마존에서 '원 클릭'으로 가능하지만, 70년대에는 "'꿈은 이루어진다' 같은 표어를 내걸고 감행해야 하는 일대 사업"이었다는 외국 서적 구입. 불문학자 황현산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는 저자가 외국 책으로 문학을 공부하던 그 당시, 구입한 책을 손에 넣는 마지막 관문과도 같았던 서대문 국제우체국의 퉁명스러운 '미스 아무개'와의 슬픈 추억으로 시작된다. 이 글에서 황현산은 분노도 숨겨야만 했던 유신 시대를 윤색해서 아름다게 받아들이는 것은 과거에 대한 착취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형편이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는 2014년 현재, 자주 이 글을 되새기게 된다. 인터넷 서점부터 스마트폰까지 어디서나 '문학' '문학 책'을 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문학가'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을 둘러싼 담론들은 위기를 반복해 말하고, 자꾸 지워져 가는 듯한 문학의 자리를 만드는 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문학의 효용성'을 말하는 사람들, 그 시효가 끝났다는 선언들도 익숙하다.
지난 2월 14일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열린 황현산의 특별 강연 '이 시대,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에서는 그 사이에 익숙해진 냉소도, 강연이란 형식이 쉽게 빠지곤 하는 유혹인 기만도 없었다. 그가 말하는 문학의 핵심인 '타자를 만나고자 하는 의지'를 곱씹는다면, 그것의 형식이 반드시 서사를 갖춘 출판 시장의 줄글 낱권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글을 쓰고 싶다' '문학을 하고 싶다'는 수많은 젊은 청중들 앞에서 원로 문학자는 결코 차갑지 않게, 그러나 애써 상냥하지도 않게 "외로움을 견뎌 내라"고 말했다. 출판사 문학동네와 인터넷 서점 YES24, 프레시안이 함께 만든 '5인의 명사에게 듣는다 - 201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 번째 시간이었던 황현산의 특별 강연을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문학동네+YES24+프레시안
'5인의 명사에게 듣는다 - 201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기사 게재 순서
①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2월 14일 진행) - 3/4 화
② <화첩기행> 김병종 (2월 17일 진행) - 3/5 수③ <애완의 시대> 이승욱&김은산 (2월 18일 진행) - 3/6 목
④ <삶을 위한 철학수업> 이진경 (2월 24일 진행) - 3/7 금
동양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지만, 문학, 그 중에서도 시를 평가할 때 귀기(鬼氣)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그것이 가진 비범한 성격이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뜻이지요. 저는 타자가 드러나는 것을 곧 '귀기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어떤 독창성을 뽐내게 하고, 초월적 힘을 갖게 하기 위한 귀기는 반드시 완전한 미지의, 신비한 것과 교섭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타자라는 것들도 아주 사소한 것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황현산에게 묻는다 - 청중과의 1문 1답
Q. 선생의 이름 앞에는 '이 시대의 어른'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습니다. 그런 선생에게 있어 어른과 같은 존재는 누구입니까?A. 그 수식어는 제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입니다. 결국 늙었다는 거잖아요. (웃음) 지혜를 주는 말을 듣고 싶어서인 것 같은데, 사람이 나이 든다고 지혜로워지는 건 전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살아보니 어떻더라'라는 경험을 젊은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저는 어디 가서 놀고도 싶고 춤추고도 싶은, 그런 한 남자입니다. (웃음)
Q. 나중에 세계관이 좁고 소통이 안 되는 노인이 되지 않으려면 젊어서부터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A. 이런 질문이라면 내 세대 사람들을 욕해야 하잖아요. (웃음) 그런데 정말 욕할 일이 있긴 합니다. 전 65학번인데, 동기 중에 지금 운동, 정치, 관(官) 여러 분야에서 현역으로 종사하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최근 그들이 함께 등산에 가서 제 험담을 했다는 겁니다. "황현산이 책을 읽어보니, 앞에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마지막 문단 가서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요. 그건 그 친구들이 학교 졸업한 이후 책 한 권 제대로 안 읽었다는 얘깁니다. (웃음) 책 한 권 안 읽고 5년이 지나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일지언정 아무 말도 이해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다면, 그게 바로 꼰대입니다. 나이 들어도 젊고 활기차게 살려면, 책을 읽는 수밖에 없어요.
Q. 글 잘 쓰는 것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소설을 쓰다보면, 냉정하게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언제나 '나의' 이야기에 갇혀 버립니다. 또는 항상 매듭을 짓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A. 저도 이해가 갑니다. 저 역시 소설가가 되려고 노력했던 사람 중 하나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답은, 계속 써 보시라는 겁니다. 매듭이 안 지어지면 안 지어지는 대로, 자기가 구축하려 하는 세계와 자기 자신이 겹치면 겹치는 대로요. 그렇게 어느 매수, 어느 단계까지 일단 죽 끌고 나가 보세요. 그러고 나서 스스로 점검을 하고, 다른 이에게도 점검을 부탁해 보는 겁니다.
Q. 현대시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와 나 사이를 잇는 감정의 지대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제가 사회과학도 때문에 바로바로 이해되는 문서들에 익숙해져서이기 때문일까요?A. 말의 상징체계, 의미 관계를 가르치는 교육들이 있는데, 그것이 동시에 어떤 말을 못 알아듣게 만들기도 합니다. 만일 고양이에게 사람 말을 가르치면, 고양이들끼리의 소통은 못 하게 될 수도 있어요. 바꿔 말해, 시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교육이 있는데 그게 새로 등장하는 시들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때 '매직아이'라는 그림책이 있었지요. 그 속에 숨은 그림을 죽어라고 못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웃음) 시 읽기도 비슷한 측면이 있지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말들이 갖는 여러 가지 심상을 떠올리면 '이게 무슨 소리구나' 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데, 다른 교육을 받아 논리적으로 탄탄하게 무장되면 오히려 안 보이고 안 들리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사회과학의 언어에 익숙해지면 거기에 있는 명백한 틀이 있기 때문에 시를 읽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거꾸로, 어떤 시인들은 굉장히 머리가 좋지만 책 한 권을 못 읽기도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있어 난독증이 있다고 할까요. 우리가 세상을 볼 때, 막 보는 듯하지만 실은 그 밑에 여러 가지 체계가 있습니다. 그 체계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쉽게 해석하는 세상의 어떤 것들이 혼란스럽게 보이겠지요. 우리가 기존에 받은 교육과는 다른, 시 읽는 훈련을 한다면 창조적 세계를 만나는 데 이로운 측면들이 있을 겁니다.
Q. 지금의 20대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A. 20대라 해도 다 처지가 다르고 능력이 다르니까 한꺼번에 해당되는 말이 생각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살아 보니, 창조적인 삶이 진짜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영어 속담에도 있듯 "정직함이 가장 좋은 정책"입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정직하게 하려고 하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고, 그것이 대개 창의적인 것으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해도 괜찮고 안 해도 괜찮은 거짓말들을 늘어놓고 삽니다. 세상 말 90% 정도가 입에 발린 소리인데, 정직하게 말하고자 하면 입에 발린 것이 아니게 되며, 그것이 바로 창조적인 말과 삶이 되는 것 아닐까요?
Q 선생에게도 닮고 싶은, 혹은 과거에 닮고 싶다고 생각한 문장가가 있습니까?
A. 젊을 땐 굉장히 많았지만, 환갑 지나고도 10년이 되니 이제 닮아보았자 뭐 하겠어,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예전에는 바로 윗세대 선배인 김현 선생의 문장을 닮고 싶었습니다. 그의 문장을 통해 '평론 문장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를 알게 되었지요. 제게 특히 영향을 준 것은 프랑스 작가들인데요. 젊을 때 사르트르의 글을 혼자 번역하면서 문장 연습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생텍쥐페리, 플로베르, 보들레르 등이 나름의 문체를 만드는 데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Q. '문학 번역'을 하며 느끼는 고충이나 유의할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A. 제가 오랫동안 표방해 온 것은 직역, 직역이면서도 동시에 순순한 우리말이 되는 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우리말로 글을 잘 씁니다. 결국 우리말로 글 쓸 수 있는 능력이 곧 번역을 하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문학적인 지식과 감수성이 결국 원문을 잘 이해하게도 하고 좋은 번역문을 만들기도 합니다. 번역가 이세욱이나 김석희는 우리 시대의 문장가들이지요.
이 세상에는 거의 번역가만큼의 번역론이 존재하는데요, 그 번역론이라는 게 현장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번역을 하며 만나는 문제는 항상 새로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남의 번역론에서 답을 찾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작은 것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라고 하셨는데요, 선생 본인을 변화시켰거나 만든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A. 얼마 전 문학동네 팟캐스트를 녹음하면서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가 내게 있어 큰 재산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때 전 서슴지 않고 한국에서 살아온 것, 한국을 경험한 것이라고 답했지요.
저는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두 달 전에 태어났고,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철이 들고 나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피난길이나 잔혹한 죽음들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4.19도 경험했지요. 한국 사회에 있어 4.19는 그 이전과 이후를 명확히 가르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5.16도, 군사독재와 유신 시대도, 신군부 독재, 김대중과 노무현의 시대, 이명박의 시대도 겪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우여곡절과 슬픔, 고통을 포함해 세상의 변화에 대한 제 개인적인 체험도 들어 있습니다. 저는 다행히 문학 공부를 했기 때문에, 문학과 함께 이것들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문학은 모든 것을 재산으로 쓸 수 있는 활동입니다. 못 사는 대로, 잘 사는 대로, 고통스럽게 산 대로, 수치스럽게 산 대로 다 재산이 되는 것이 바로 문학입니다.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제가 겪은 역사적·개인적 불행이 하나의 재산이 되게끔 하게 한 것도 문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글쓰기란 온전히 홀로 하는 활동입니다. 그래서 외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선생은 그 외로움이나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 왔습니까?
A. 외로움을 이겨내는 특별한 방법은 없습니다. 특별한 방법이 있어서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견뎌내는 것입니다. 외로운 것은 우리의 존재론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연애를 해도 궁극적 외로움은 남는 거니까요. 외롭기 때문에 쓰는 것이라고, 또는 훈련의 시간이라 생각하면 어떨까요. 자신을 깊이 있게 만드는 시간으로 역이용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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