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8.15처럼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들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필자는 <한국생활사박물관>,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 <민음 한국사> 등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역사 오디세이프랑스 혁명에 참여한 여성운동가 올랭프 드 구즈는 지롱드당의 편에서 왕정 폐지에 반대하다가 자코뱅당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런 운명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자신이 회원으로 있던 '진실을 위한 친구들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연단에 오를 권리도 있습니다." 연단이란 남들에게 연설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를 말한다. 그곳에 오른다는 것은 여성도 공적인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훗날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두고두고 기억하는 명언으로 남게 되었다. 그 후 200여 년,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은 연단에 올라 공공의 문제에 대해 사자후를 토해 왔다. 수많은 여성 공직자, 국회의원, 경영자, 대학 총장, 교장 등이 배출되었을 뿐 아니라 여성 국가원수도 적지 않게 나왔다. 한국도 지난 2012년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몇 안 되는 나라가 되었는데, 이것은 올랭프 드 구즈의 나라 프랑스도 아직 이룩하지 못한 업적이다.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2>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3>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4>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5>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6>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7> 세종은 오로지 존경 대상? 세종을 질투하라
<8> 10월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9> 하얼빈역·궁정동…한국 근현대사 관통한 두 번의 10.26
<10> 러시아혁명의 교훈, 대중을 외면하면 진보도 없다
<11> 전태일과 박정희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12> 미국이 한국 독립 낙점? 유영익의 기묘한 이승만 띄우기
<13> 개화파의 역사적 과오, 안중근이 씻어 내다
<14> 망령 되살린 수구의 '종북' 칼춤…6.29의 저주 풀어야
<15> 억압과 저항의 '선사 시대' 넘어 '민중기원'은 온다
여성 대통령 시대에 "못살겠다" 외치는 여성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한국 여성은 강하다.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한명숙·이정희·심상정 등 정치인들, 박경리·박완서·오정희 등 문단의 거장들, 두말하면 잔소리인 김연아·이상화·박승희·장미란 등 스포츠 스타들……. 이렇게 대단한 여성 파워를 가진 나라에서 최고 지도자의 자리까지 여성이 차지했으니 한국은 꽤 여성이 행복한 나라여야 마땅할 것 같다. 올랭프 드 구즈 같은 여성운동가도 더 이상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한국 사람은 아예 없거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것은 그런 현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점이다. 정말 희한한 일 아닌가? 오랜 남녀 차별과 여성해방운동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것은 놀라운 진보라야 한다. 그러나 2012년 대선이 막을 내렸을 때 한국의 진보 세력은 탄성을 지르기는커녕 실망하고 분노했다. 진보적인 여성운동계도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것 같은 보수 세력은 안도하고 환영했다. 물론 그들이 하루아침에 여성해방론자나 여성 예찬론자로 돌변한 것은 아니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이날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나 눈여겨보았지만 작년에는 별다른 소리가 없었고 올해도 아직 듣지 못했다. 그런 박 대통령을 바라보는 여성계의 눈길은 차갑기 그지없다. 세계 여성의 날 106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연다는 어떤 여성단체는 "박근혜 정권 1년, 여성들은 못살겠다!"는 반정부 구호까지 내걸었다. 올랭프 드 구즈의 어법을 빌리자면 그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여성은 대통령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대통령을 거부할 권리도 있습니다." 여성 대통령과 다른 여성들이 반목하는 이 놀라운 사태를 이해하는 데 실마리가 될 사례를 하나 알고 있다. '알파걸'인 한 여성이 대기업에 입사했다. 남성들과 경쟁해 빠른 승진을 거듭했다. 그런데 새로 배속된 부서에서 고졸 여사원이 남성 간부들에게는 커피를 타 주는데 그 여성에게는 이런 서비스를 안 해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여사원을 혼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 같은 여자가 나 같은 여자한테 잘해야 여자들의 지위가 높아질 수 있는 거야!" 다방 여종업원도 아닌 여사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강요하는 것은 남자든 여자든 원칙적으로 안 될 일이다. 그런데 기왕 그런 부당한 관행이 존재하는 남성 우월 사회라면 그 부당한 특권을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누릴 수 있어야 남성과 대등하게 성공하는 여성이 나올 수 있다는 논리!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급자를 착취할 수 있는 권리를 남성과 동등하게 누리는 여성의 등장이 '여성해방'이라는 얘기가 된다. 여성 대통령까지 나왔는데 여성들이 "못살겠다!"라고 외치는 한국 사회야말로 바로 이런 논리 위에 서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대다수의 여성들은 어디에 희망을 걸어야 한단 말인가?
강주룡·YH·김진숙, 그리고 황유미 가족들…한국 여성의 힘
물론 이 질문은 우문(愚問)이다. 반복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떠올리지도 않는다. '성공하지 못한' 대다수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들 속에는 이미 여성 대통령, 여성 장관, 여성 CEO 등과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막강한 한국 여성의 파워가 자라나 왔고 지금도 꿈틀거리고 있다. 이젠 제법 알려진 것처럼 세계 여성의 날에 깃들인 역사는 '하층 여성'의 해방에 대한 염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08년 3월 8일, 1만5000여 명의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정치적 평등권 쟁취', '노동조합 결성',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역사적 시위를 벌였다. 1910년 독일의 여성 사회주의자 클라라 제트킨이 이날을 '여성의 날'로 제안한 이래, 남녀의 진정한 동지적 관계를 바라는 세계인들이 이를 기념해 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국적 모를 '화이트데이(3월 14일)'에 묻혀 있지만, 이날은 유엔이 기념하는 세계인의 축제일이고 이를 공휴일로 지정해 성대히 보내는 나라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는 3년 전 이날 노회찬 전 의원이 박근혜, 한명숙, 이정희 등 여성 정치인들에게 축하의 꽃을 보내면서 조금 알려졌지만, 그러기 전부터 한국 여성은 이미 자기 자신의 해방을 위해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춘천교대 김정인 교수에 따르면 동학(지금의 천도교)이 여성 신도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것은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것보다 앞선다고 한다. 1931년 5월 평양 을밀대 지붕 위로 올라가 고공 농성을 벌이며 평원고무공장의 노동 착취를 고발하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모습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여성의 힘을 아로새긴 명장면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1979년 8월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며 유신 정권의 혹독한 노동 탄압을 고발하던 YH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은 유신 종식의 도화선이 되었다. 35미터 높이의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끄떡없이 버티며 한진중공업의 부당 행위와 싸운 김진숙, 공룡과도 같은 삼성전자와 맞서 세계 최초로 반도체 공정에서 산재 판정을 받아낸 황유미의 가족들……. 이 눈물겨운 기록을 보면 올랭프 드 구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클라라 제트킨 등 기라성 같은 여성운동가들이 오히려 왜소하게 느껴진다. 여성이 대통령 자리에 올라도 찾아오지 않은 여성해방은 결국 반대편에서 이들 전혀 다른 여성의 힘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에 유의미한 '여성'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면 이들에게 주목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 목소리가 더 커지고 격렬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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