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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돌직구'를 던져달라고 애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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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돌직구'를 던져달라고 애원하지 말자! [201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③] 사회비평 : <애완의 시대>의 김은산·이승욱
"엄마는 그렇게 사는 게 좋아?"라는 아이의 짜증 섞인 질문 앞에 말문이 막히는 부모는 문득, 그런 질문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대체 우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아이들에게 사회적인 성공 외에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라고 말해줄 것도, 다르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아는 바도 없다."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인생의 어떤 특정 방향을, 자식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일까, 강요해도 되는 것일까. 대한민국 부모들의 가장 큰 딜레마는 여기 있다.

▲ <애완의 시대>(이승욱·김은산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2012년 큰 화제를 모았던 책 <대한민국 부모>(이승욱·신희경·김은산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이후 이승욱과 김은산은 다시 한 번 부모들의 그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를 건넨다. 두 사람의 공동저작 <애완의 시대>(문학동네 펴냄)는 국가권력에 '길들여진' 부모와, 그 부모 밑에서 '어른이 되지 못하는' 자식에 대한 통렬한 자화상이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산업화의 역군으로 동원된 그들은 아직도 어떤 상실감과 결핍에 시달리며 '1970년대'라는 그들만의 시공간을 배회"하는 부모들, 자기 혐오를 감추다가 부끄러움마저 잊어버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잉여'가 되거나 '가스통 할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베'가 되어간다. 한국의 부모는, 그리고 아이들은 '지배받지 않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공공재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팟캐스트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부모><포기하는 용기>(쌤앤파커스 펴냄) 등을 쓴 정신분석가 이승욱, 정신분석가 이승욱과 출판사와 언론사, 학교를 거쳐 현재 팟캐스트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를 공동 기획·운영하는 저술가 김은산의 강의는, 결코 '듣기 좋은' 얘기로 이뤄지지 않았다. 출판사 문학동네와 인터넷 서점 YES24, 프레시안이 함께 만든 '5인의 명사에게 듣는다 - 201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세 번째 시간이었던 이승욱과 김은산의 특별 강연을 이 자리에 전한다. <편집자>

문학동네+YES24+프레시안
'5인의 명사에게 듣는다 - 201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기사 게재 순서

①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2월 14일 진행) - 3/4 화
② <화첩기행> 김병종 (2월 17일 진행) - 3/5 수
③ <애완의 시대> 이승욱&김은산 (2월 18일 진행) - 3/6 목
④ <삶을 위한 철학수업> 이진경 (2월 24일 진행) - 3/7 금


▲ <애완의 시대> 저자 이승욱과 김은산 강연회. ⓒ프레시안(최형락)

(김은산) 먼저 사회적 공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사회 속에서 내가 가진 자리, 위치, 존재감이, 그리고 사회와 내가 서로 공유하고 기대했던 기본적인 신뢰감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공포 말입니다.

전 IMF 때 회사에서 잘렸어요. 원래 그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망설이고 있던 터라 '오히려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으로 나오긴 했는데요, 마음 한 구석에선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삶이 대체될 수 있는 삶이구나. 평생 직장이 없어진 거죠. 오늘 내 일자리가 없어지면 다음날 누구라도 와서 대신한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나보다 더 뛰어나거나, 혹은 뛰어나지 않은 누구나라도 상관없는 겁니다. 비록 내내 그만두고 싶었던 일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이 거부당한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이젠 대체되는 노동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열망과 환상이 커졌어요. 자기 계발하는 주체들이 등장한 거죠. 창의적이고 뛰어난 존재가 되어야, 스펙으로 무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겁니다. 대체될 수 없는 창의적인 노동에 대한 환상이 더 커졌어요. 실제로, 그건 환상일 뿐인데 말입니다.

대체될 수 있는 노동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조종하고 착취하는 구조가 생겼습니다. 거기서 사회적인 공포를 느끼게 되고 서로 그 공포를 대물림하게 됩니다. 그 공포를 누군가는 이겨낼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탈락하거나 마음의 병을 앓게 돼요.

두 번째 질문은 이겁니다. '한국식'으로 살아간다는 건 뭘까? 일단 제 생각은, '한국식'으로 산다는 게 큰 도전에 처했다는 겁니다. 최근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빅토르 안 선수가 큰 조명을 받았죠. 몇 년 전만 해도 빅토르 안을 응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빅토르 안의 선택의 옳고 그름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를 통해 우리가 뭘 느끼고 말하고 싶은가를 얘기해보고 싶어요.

제가 최근에 만난 20~30대 초반 친구들이 한결같이,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들은 정규직이 아닙니다. 그중 한 명은 디자이너로 아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이었는데, 얼마 전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의 배경이 됐던 야쿠시마 섬이라는 곳에서 6개월 정도 살다 왔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이 살 수 있었대요. 피치 못할 이유로 한국에 돌아왔는데,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다시 야쿠시마 섬으로 갈 거라고 합니다. "저한텐 보상이 필요해요"라고 하더군요. 한국에서의 삶이 우리에게 무엇이길래, 내가 여기서 살아주는 게, 혹은 여기서 견디는 게 보상을 받아야 할 무언가로 인식되는 걸까요.

▲ 김은산. ⓒ프레시안(최형락)
빅토르 안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도 느낀 게, 그 사람은 자기 삶에 대한 보상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한 인터뷰에서, "난 한국에서 쇼트트랙 선수로 있는 동안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여기서 공부를 좀 하고 싶고, 마음 편하게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게 참 마음 아팠습니다. 빙상 연맹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라든가 파벌, 군대 문제 등이 이슈였지만, 제가 연장자로서 가장 안타까웠던 건 빅토르 안에게는 한국에서 사는 게 고통이었구나, 고통의 구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귀화를 결심했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안현수'라는 천재가 한국에선 성공할 수 없어서 국적을 바꾸는 선택까지 하며 모든 불운을 견뎌낸 다음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요? 모두들 한국사회의 불공정함에 대해, 나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그리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구조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빅토르 안은 중요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국적을 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봅니다. 국가란, 나에게 무엇일까요.

얼마 전 노후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설문을 세계 각국에서 조사한 결과가 발표됐죠. 매우 놀랍게도, 조사 대상 국가 중 '나의 노후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답변의 비중은 한국이 제일 높았어요. '가족'이라는 답의 비율은 매우 낮았고요. 다른 나라들의 경우, '가족'의 비율이 제일 높았고 그 다음이 '정부'였죠. 그 결과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그 생각을 했습니다. 국가는 왜 있는 걸까?

<애완의 시대>는 사회적 공포가 전염되고 대물림되는 과정을 이야기한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위기에 처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이걸 50~60대 독자들이 읽어주길 바랐지만 아마도 그분들 중 다수는 읽지 않으시겠죠. 20~30대 독자들에게는, 여러분 부모의 삶을 여러분이 연구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부모와 사회의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온 나는 무엇인지, 그것도 연구해줬으면 좋겠고요.

바우만의 책 제목처럼, '유동하는 공포'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 공포를 바로 보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선 그 공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님과 자기 자신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한 자료로 쓰이기 위해 <애완의 시대>를 썼습니다. 말하자면, 이건 결론이 없는 책이에요.

(이승욱) 김은산 선생님 말씀에 한 마디만 덧붙인다면, 저는 '대한민국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것'을 문제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공포를 생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심각한 문제라는 걸 일단 인식시킨 다음, 미리 만들어놓은 해답과 약을 제시하는 거죠. 답을 만들어놓고 안을 채우라고 하는 식이죠. '유동하는 공포'가 자본화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제가 이어갈 세 번째 이야기는 왜 우리는 더 이상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을까라는 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애완'의 특징은, 의문을 갖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맹인견으로 활용될 만큼 똑똑한 개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늑대에 비하면 지능이 10분의 1밖에 안 된다고 하더군요.

▲ 이승욱. ⓒ프레시안(최형락)
지금 우리는 자아 성형의 시대에 접어들었죠. 얼마 전 강남의 모 성형외과에서 수술한 턱뼈를 쌓아 탑을 만든 사진이 유행했었죠. 1월, 2월 경에는 선글라스 끼고 지하철에 탄 젊은 여성들이 특히 많이 보여요. 성형수술을 제일 많이 하는 시기거든요. 그런 외부의 성형과, 제가 말하는 자아성형의 유사성은 뭘까요?

제일 좋은 피부는 잠을 잘 자고 섭취를 잘하고 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의 피부입니다. 안에서부터 밝아지거든요. 필링을 많이 한 피부와는 완전히 달라요. 성형은, 외부의 압력이 가해지는 행위입니다. 약을 넣건 칼로 째건,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처럼 만들어주는 행위죠.

정신분석가에게 가장 곤란한 문제는, 상담자로 하여금 가면을 잘 쓰고 살거나 가면을 완전히 벗고 살아야겠구나, 그 결심을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길어 올리게 돕는 게 참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변화하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변화를 결심하도록 만드는 게 가장 힘들어요. 다들 변화하고 싶다고 정신분석가를 찾아오지만, 막상 스스로 변화하질 않습니다.

우리의 고통 속에 도사리고 있는 쾌감이 있어요. 예를 들어 아이들한테 막 화풀이를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더라도, 아이들을 통제한다는 쾌감이 그 안에 숨어있는 겁니다. 그 고통의 행위 안에 숨어있는 쾌락을 제거해내야 하는데 어렵죠.

내가 하는 행위가 완벽하게 고통이 될 때까지 계속 진행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폐암 진단을 받고서야 담배를 끊듯 말이죠. 그건 고민의 영역이 아니죠. 그 전에 변화하겠다고 결심하는 게 어려워요. 외부에서 '돌직구'를 날리면, 언뜻 들었을 때 속은 시원하죠. 미분 문제를 풀 때 답은 대체로 –1, 0, 1이거든요. 그런 답을 미리 말해주면 언뜻 즐겁거나 시원할 수 있지만, 함수, 수열, 통계 방정식을 제대로 모르고 문제를 푸는 게 가능할까요? 자아성형의 시대에 타인이 말해주는 답을 계속 듣고 산다면, 성형을 너무 많이 해서 괴물처럼 변한 연예인 얼굴과 우리 마음이 크게 다르다는 보장이 생길까요? 확정적인 답만 제시하는 게 과연 윤리적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너무 강력한 국가를 너무 오랫동안 유지했습니다. <애완의 시대>에도 썼다시피, 무슨 노래를 부를지 어떤 집에서 살지 국가가 정해주는 시대를 살아왔잖아요. 요즘 들어서는 심지어 우리에게 '즐겨라'라는 명령까지 내립니다. 질문도 허용하고 답도 허용하는 그런 아버지입니다.

칼 융이라는 정신분석학자를 아실 겁니다. 프로이트가 인간 무의식 밑바닥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했을 때, 융은 그 밑바닥에 지혜가 있다고 했어요. 그 둘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죠.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부처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려는 게 아니라 너희가 부처라는 걸 알려주러 왔다'고 한 것처럼, 융의 훼손될 수 없는 지혜가 우리 핵심에 있습니다. 왜 우리는 스스로의 지혜를 길어 올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돌직구를 외부에서 맞길 원하는 걸까요? 이게 문제인지 아닌지를 고민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시스템의 정체가 뭘까요?

정신분석가로서의 경험에 비춰 얘기하자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문제를 없애는 겁니다. 문제인가 아닌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월 230만원의 노후 자금을 얘기하면 우리는 정말 우리의 노후에 230만원이 필요한가를 물을 수 있는 겁니다.

'멘토'를 찾아 정답을 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어릴 때의 멘토라 하면 사촌 형, 동네 형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멘토가 다 늙어빠진 50대 CEO이고 심지어 멘티들도 30~40대에요. 다들 너무 늙었어요. (웃음) 멘토는 신화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아버지가 전쟁에 출정하면서, 멘토라는 친구에게 자기 아들을 부탁한 거예요.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아버지 자체가 절멸된 지 너무 오래됐죠.

전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드리는 답이 여러분이 원하는 답이 아닐 수 있어요. 가만히 앉아서, 어떤 일이 나를 괴롭히는지 세 번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야생동물은 끝없이 고민해야 하지만, 애완동물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똥오줌 누는 자리도 인간이 다 정해주죠.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자리를 지정해주는 외부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하는데, 인간의 본질적인 고통은 연대로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분절된 사회에서 각자의 고통 속에서 매몰되어 있다 보니 각자 아픔에만 머무르기가 쉽죠. 공감, 배려, 말은 참 진부하지만 행하기 참 어려워요. 그래도 우는 건 같이 울었으면…분절시켜 놓으면 통제하기 정말 쉬워요. 예를 들어 노조 파괴를 생각해보세요. 내가 포함된 우리의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이승욱과 김은산. ⓒ프레시안(최형락)

김은산·이승욱에게 묻다 - 청중과의 1문 1답

청중 : 잠깐 대안학교에서 일하면서 뚜렷한 한계를 느껴서 그만두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고민이 많구요. 김은산 선생님도 학교에서 근무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대안학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은산 : 저는 대안학교에서 딱 2년을 일했기 때문에, 충분히 경험했다고는 말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한국사회에서는 공교육과 대안교육 모두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어요. 대학 때문이죠. 모두가 결국 대학에 가야 하니까, 한국에서 실질적인 대안 학교가 존재할 수 없어요. 대안학교 자체나 부모님이 문제가 아니에요. 대학이라는 블랙홀이 있으니까, 어떤 좋은 교육 체계를 도입해도 '탱자'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더 좋은 것을 위해서 모두들 좋은 것을 하려 합니다. 대안학교의 목표도 그랬죠. 하지만 누군가 더 좋은 것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더 나은 것은 생기지 않아요. 대안을 주어지는 것이라 착각하면 안 됩니다. 정답으로 주어지는 건 대안이 아니에요.

청중 : 일만 하는 아빠와 사춘기 아이들이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 때문에 바빠서 학교 행사도 한 번도 오질 않았는데 아빠와 아이들이 자꾸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승욱 : 많은 아빠들이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주고 싶다고 하시죠. 전 세상에 친구 같은 아빠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빠는 그냥 아빠입니다. 아이들은 아빠를 친구로 생각하질 않거든요. 기본적으로 친구 관계가 형성될 수 없어요.

호칭을 아빠 대신 아버지로 바꾸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남성성이 좀 더 강하게 느껴지는 호칭이죠. 네, 남성성이 마초를 뜻하는 것 맞아요. 마초이기만 한 게 문제지, 마초인 게 문제는 아니잖아요? (웃음) 얘기 잘 들어주고 놀아주고 장난치고…이건 아버지가 아니에요. 아버지는 친구일 뿐 아니라 엄마의 역할도 해줄 수 있어야 해요. 아버지는 모든 것의 통칭이 될 수 있어요.
아버지와 아이들의 관계를 확정짓는 게 엄마의 영역이 되어버리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아버지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가장 크게 결정짓는 사람이 엄마거든요. 엄마의 평가에 의해 아버지의 이미지가 결정되어요. 욱하는 아버지, 심보가 밴댕이 소갈딱지인 아버지, 자린고비 아버지…그건 자식과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와 아버지의 관계죠.

청중 : 김은산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사교육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은데, 지금으로선 공교육 문제가 더 심각하지 않을까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공교육 문제와 방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은산 : 그건 교육부 장관에게 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웃음) 제가 대안학교나 교육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는 걸 누차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사를 잠깐 하던 시절 제가 내린 결론은 공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공교육을 궁지로 몰아가는 건 우리들입니다.

공공상담소에서 강원도에 대안 중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교과과정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제7차 교육과정을 검토할 때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그것대로만 실행된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그게 제대로 시켜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학교는 다양한 아이들이 와서 함께 공부하는 곳이거든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가난한 집 아이, 부잣집 아이,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가 함께 어울려 공부할 수 있는 것으로는 공교육만큼 좋은 게 없어요.

교사도 그렇고 교감도 그렇고, 실은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없어요. 굉장히 많이 흔들립니다. 그래도 우리는 공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교사를 신뢰하고 학교 교육에 대해 신뢰했으면 좋겠습니다. 원론적인 얘기로 들리겠지만, 그게 삶에 대한 공공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청중 : 대한민국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고통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김은산 : <대한민국 부모>를 쓰면서 깊은 불안을 느꼈습니다. 교육을 통해 우리 문제를 들여다보자는 의제를 설정하고 시작한 책인데, 퇴고하면서 불안하더라고요. 실현 가능성 이전에, 이게 가장 좋거나 정당한 걸까? 저 자신에 대한 불안이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와 5공화국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 억압의 시대를 경험한 나에게서 나온 상상력에 대한 불안이었어요.

<애완의 시대>는 저를 위한 책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를 납득시켜야 했어요. 나 잘못 살았나? 잘못 알고 생각했던 건가? 역사는 진보하는 게 아닌가? 우리 삶이 더 나아졌나? 그 부분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회의를 했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 사회가 나아질 수 있는 상상력이 나한테 나올 수 있나, 이런 곳에서 살았는데? 그런 불안을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이었어요. 저한테 이 책은, 눈 치우는 작업입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왔는데 아무도 안 치우면, 그 무게 때문에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생깁니다. 지금 굉장히 무거운 눈이 한국을 내리누르고 있습니다. 그걸 치우는 게 어른의 역할이고, 그 역할을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어요.

그 다음은, 죄송하지만 모르겠어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게 맞지요. 우리 세대는 모든 걸 안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안했어요. 비판하던 윗세대를 똑같이 따라했고, 아랫세대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우리 세대는 윗세대의 잘못을 더 정교하게 구축했어요. 이제 아랫세대가 우리를 몰아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몰아내고 있지 않습니다. 386세대를 비난만 하면서 한편으론 의존하려 해요. 그게 아니라, 저희를 낡은 세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럴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이었으면 좋겠어요.

이승욱 : 우리 아직 안 죽었어요. (웃음) 임계점을 살짝 넘었다 말았다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예요. 질문하면 바로 답하는 사람이 되지 마시고, 독립된 개인의 자유로운 연대를 한번 해봅시다.

김은산 : 누구도 '당신한테 미래가 없어'라고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 내가 아는 대한민국의 어떤 부분은 망했다, 그런데 당신들에겐 다른 미래가 있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당신들이 노력해야 한다, 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중 : <대한민국 부모>를 읽고 감명 받아 변한 1인입니다. 그 책을 읽은 다음, 방학 때 아들 둘을 데리고 동남아 5개국을 도보로 여행했어요. 제가 정말 오늘 소주 한 잔 사드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오늘 강연에 왔어요. (웃음) 저 같은 시골 아줌마도 이렇게 달라졌는데, 눈을 계속 치우는 작업을 힘들게 하시는 걸 보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일동 박수)

이승욱 : 감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하는 것보다, <애완의 시대> 마지막에 인용한 이호철 선생님의 책 한 구절을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더러운 물과 깨끗한 물이 싸우면, (…) 어떻게 하면 깨끗한 물이 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계속 흐르면 돼요!" 너는 흘러라, 라는 명령이 아니라 계속 흐르면 된다는 그 말을 다시 한 번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들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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