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8.15처럼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들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필자는 <한국생활사박물관>,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 <민음 한국사> 등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역사 오디세이2012년 3월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었을 때 민주 진보 진영은 이를 '을사늑약'에 비유하며 맹비난했다. 박근혜 정부가 호주, 캐나다와 잇따라 FTA를 맺으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향해 치닫고 있는 요즘 그들 '을사늑약론자'는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한미 FTA를 을사늑약에 비유하는 것은 적합한 측면과 부적절한 측면을 다 가지고 있다. 적합한 측면을 이야기하자면, '한미 FTA≒을사늑약'이라는 공식은 한미 FTA보다는 을사조약의 역사적 본질을 이해하는 데 더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한미 FTA는 국내 산업 보호 장치 상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도입, 공공 서비스 퇴조 등 국가 주권의 일부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한일협상조약(을사조약)과 비교될 수 있다. 이처럼 주권의 일부를 양도하는 게 분명한데도 한미 FTA를 의욕적으로 추진한 참여정부 관료들은 이 협정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을사조약이 대한제국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을사 5적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미 FTA로 한국의 경제 구조는 초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현대 세계 경제에 걸맞은 형태로 '고도화'되어 가고 있다. 을사조약 후 대한제국의 사회 경제 구조가 당시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맞춰 '근대화'되어 간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 땅의 누군가에게는 이익이라는 점에서 '국익에 부합'한다. 그 '누군가'는 한미 FTA에서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소수 재벌과 그를 대변하는 관료들이고, 을사늑약에서는 친일 관료, 지주, 사업가들이다.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2>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3>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4>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5>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6>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7> 세종은 오로지 존경 대상? 세종을 질투하라
<8> 10월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9> 하얼빈역·궁정동…한국 근현대사 관통한 두 번의 10.26
<10> 러시아혁명의 교훈, 대중을 외면하면 진보도 없다
<11> 전태일과 박정희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12> 미국이 한국 독립 낙점? 유영익의 기묘한 이승만 띄우기
<13> 개화파의 역사적 과오, 안중근이 씻어 내다
<14> 망령 되살린 수구의 '종북' 칼춤…6.29의 저주 풀어야
<15> 억압과 저항의 '선사 시대' 넘어 '민중기원'은 온다
FTA와 '을사늑약', 그리고 원 간섭기 고려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이 왜 그렇게 국민의 욕을 먹으면서까지 '식민지 근대화론'에 집착하나 궁금했었다. 그런데 한미 FTA와 TPP의 전개를 보니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식민지 근대화론이야말로 한미 FTA를 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이를 열정적으로 추진한 사람들에게 부합하는 근대 역사관이 아닐 수 없다. '약육강식과 우승열패의 세계에서 강자가 정한 방향대로 나아가지 못하면 저 멀리 뒤처질 테니 주권의 일부를 내주더라도 그 길에 합류해야 한다.' 이것이 이완용 같은 개화파와 오늘날의 FTA파가 공유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주권을 양보해야 시류 편승을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왜 1905년이나 1910년의 이완용처럼 행동하지 않겠는가? 2014년 3월 11일 한-캐나다 FTA가 타결되자 언론은 일제히 '세계의 62%가 우리의 경제 영토가 되었으며 이는 세계 3위의 기록'이라는 협상 당국의 자화자찬을 쏟아냈다. 을사조약으로 대일본제국과 그 식민지들이 사실상 우리 영토가 되었다고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만약 그렇다면 좀 더 정확한 비유의 대상이 있다. 13세기에 원의 부마국이 된 고려다. 원의 간섭을 받게 된 고려는 거대한 세계 제국을 자신의 경제적, 문화적 영토로 삼게 되었다. 원 황실의 피가 섞인 고려 국왕은 황제의 사위로 제국에서 높은 지위를 누렸고, 수많은 고려 귀족과 승려와 상인이 대륙을 누비며 '팍스 몽골리카'의 혜택을 받았다. 미국, EU, 캐나다, 호주 등과 FTA를 맺고 이들 거대 경제권을 자유롭게 누비게 된 대한민국 관료와 기업인은 원 간섭기 '충(忠)'자 돌림 왕들과 부원배들이 느꼈던 자유와 자부심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기쁨이 대륙으로 끌려간 20만 고려인과 파탄지경에 이른 500만 농민 때문에 줄어들겠는가? 그러고 보니 <기황후>라는 드라마가 역사 왜곡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공녀(貢女)로 제국에 끌려갔다가 황제의 여인이 되어 모국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기황후야말로 FTA 시대 세계 무대를 노리는 한국인의 멘토로 적합하지 않은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출세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통상 관료, M&A 전문가, 로비스트 등으로 활약하면서 한미 FTA의 체제의 정점에 올라 있는 '검은 머리 미국인'들을 보라. 기황후의 음덕을 입고 고려를 좌지우지하던 기철 무리의 환생이라고 하면 지나친 상상력의 발동일까? 그런데 고려는 30년 가까이 죽자고 싸우면서 버텼기 때문에 '부마국'이라는 지위라도 누릴 수 있었다. 몽골 제국에 복속한 나라들 가운데 국체를 보존한 곳은 고려뿐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무슨 자산이 있어 정글과도 같은 FTA, 나아가 TPP 체제에서 몽골 제국 하의 고려와 비슷한 지위라도 누릴 수 있을까?
무너진 건 한국 경제가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한미 FTA와 그 주도 세력을 비난하고 있으면 스트레스는 풀릴지 몰라도 해결되는 문제는 하나도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미 FTA≒을사늑약' 공식의 부적절한 면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공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은연중에 빠지곤 하는 함정이 있다. '붕괴론'이다. 한미 FTA든 을사조약이든 그 파장과 효과에 대한 계급적 분석을 통해 현실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한미 FTA가 결국은 을사조약처럼 이 나라를 망하게 하리라는 포괄적 예단에서 머무는 것이다. 이러한 '붕괴론'은 일제 강점기 이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을 거치면서 진보 진영 일각의 뇌리를 끈질기게 맴돌고 있다.외세 의존 세력, 독재 세력이 반민주적, 반민중적 행보를 보일 때마다 그렇게 하면 이 나라는 망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한국은 망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1910년에도 망한 것이 아니다. 일본이 수탈을 위해 추진한 '근대화'의 세례를 받은 한국인이 있었고, 그들이 현대 한국에서도 건재해 왔기 때문이다. 붕괴한다던 한국 경제는 승승장구해서 세계 10위권에 올라서 있다. '붕괴론'은 선전으로는 그때그때 약효를 발휘했을지 모르지만 이론으로는 진작 파산했다. 한미 FTA 역시 한국 경제를 망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외형은 더 커질 수 있다. 분명히 누군가는 망하는데 누군가는 혜택을 보고 고려 때의 기철 세력처럼 잘나가리라는 것이다. (관련 기사 : '제2 새마을운동' 찬가 속 '이등 국민'들의 절규)
진보 진영이 한미 FTA의 각론을 분석하고 그 부정적 측면을 고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르도록 추세는 바뀌지 않았고 FTA만이 살길이라는 선전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와 선전의 밑바닥을 파헤쳐 본질을 드러내는 '이론'의 정립이 절실하다. 한국 경제는 일본, 미국 등 강대국에 대한 의존과 종속이 강화된다고 해서 무너지기는커녕 승승장구해 왔다. 그러면서 의존의 강도는 점점 더 세지고 혜택을 받는 누군가보다 망하는 누군가가 점점 더 많아졌다. 이것이 자본주의에 편입된 이래 한국 근현대사를 특징지어 온 흐름이다. 이런 흐름의 구조를 냉정하게 이론화하지 않는 한 한미 FTA는 극복되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 다가오고 있는 TPP는 한 줌의 초국적 자본이 개별 국가와 개인의 주권을 압도하는 체제로, 그것이 본격화되면 차라리 한미 FTA가 좋았다는 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이 거친 흐름을 파악하게 해 주는 '이론', 현 시점에서 민중의 존망이 걸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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