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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베트남에 건넬 건 '한류'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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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베트남에 건넬 건 '한류'만이 아니다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25> WTO 20년,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등수가 인생을 결정하는 고도의 경쟁 사회에 살고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절규는 이 경쟁의 강도가 얼마나 센 것인지를 아프게 알려줄 뿐이다. 1970년대 들어 비상을 시작한 한국 경제는 등수에 몹시 민감하다. 실패한 이명박 정권의 747 공약이 이를 상징한다.

선진국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에 1994년 4월 15일 모로코의 마라케시에서 탄생한 세계무역기구(WTO)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여겨졌다. 7년 반 동안 이어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끝에 태어난 WTO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대체해 범세계적인 자유 무역을 지휘하며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WTO 탄생 20주년을 맞는 2014년 현재 한국 경제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정부는 화려한 수식으로 개방되고 선진화된 한국 경제를 찬양하고 있지만, 국민 경제에 관한 객관적 수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1995년 세계 11위에 오른 국민총생산(GDP)은 조금씩 뒷걸음질 쳐 지금은 15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2만 달러 언저리를 맴도는 1인당 국민소득은 30위권에 머물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제법 사는 나라들 가운데 WTO 이전 10년(1985~1995)에 비해 이후 10년(1995~2005)의 성장률이 가장 많이 하락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WTO 20년, 초라한 한국 경제 성적표

무엇이 문제였을까? WTO에 가입한 것이 실수였을까? 사실 WTO는 출범할 때부터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이와 같은 자유 무역 기구를 추진했으나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구속력 없는 GATT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1990년대 들어 WTO를 출범시켰으니, 이는 미국과 초국적 자본의 논리로 세계 경제를 농단할 위험이 크다고 우려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즉각 WTO의 행보를 저지하고 나섰다. 1999년 11월 30일, 미국 시애틀에서는 제3차 WTO 각료 회의가 열려 우루과이 라운드를 대체해 WTO 중심의 자유 무역 질서를 논의하는 '뉴 라운드'가 출범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회의는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참가국들 사이의 이견 탓이 아니었다. 반세계화 시위대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들어 회의 개최를 차단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농민 단체, 환경 단체, 여성 단체, 인권 단체 등 수백여 비정부 기구(NGO)와 아나키스트 등 4만여 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새벽 5시부터 움직였다. 그들은 행사장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거대한 인간 사슬을 만들고 'WTO 해체'를 외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라고 했다. 궁지에 몰린 미국 정부는 주 방위군까지 투입해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며 시위를 진압했지만, 극렬한 시위에 놀란 회의 참가자들은 끝내 아무런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시애틀 대전'으로 불린 대규모 시위 이후 반세계화 운동은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시위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논의되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녔다. 2000년 4월 1만5000명의 인간 사슬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춘계 회의를 포위했다. 그해 9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세계은행-IMF 연차 회의는 거친 시위를 유발해 '프라하의 봄 이후 최악의 사태'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처럼 격렬한 반세계화 운동의 역풍을 맞아 세계화 추진 세력은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디서 회의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힘을 얻은 반세계화 세력은 적극적인 연대를 모색했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정치인, 노동운동가, 시민운동가 등 100여 개 국가, 1만5000여 명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 경제 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자기들끼리 세계 사회 포럼을 열고 연대를 다졌다.

이처럼 팽팽하던 세계화 진영과 반세계화 진영의 균형을 단번에 무너뜨린 것이 2001년 9월 11일에 터진 미국 대폭발 테러 사건이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탈레반이 지배하는 이 나라가 9.11을 일으킨 알 카에다의 지도자 빈 라덴을 숨겨 주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아가 2002년에는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다.

정치 군사적 일방주의는 경제적 일방주의를 동반했다. '시애틀 대전'에서 WTO 각료들을 무릎 꿇린 반세계화 운동 세력은 주춤거렸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인 2001년 11월, 카타르 정부의 안락한 보호를 받으며 이 나라 수도 도하에 모인 WTO 대표들은 시애틀에서 실패했던 뉴 라운드 협상을 공식 출범시켰다. 여기서 채택된 선언문은 '도하 개발 어젠다'라고 불렸고, 우루과이 라운드에서는 다루지 않던 비농산물, 서비스, 지적 재산권 등을 자유 무역 질서에 포함시키는 논의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 1999년 11월 30일 '시애틀 대전' 당시 시위대에게 페퍼 스프레이(pepper spray)를 뿌리는 경찰. ⓒ위키미디어커먼스

중국, WTO의 운명을 바꾸다

9.11과 더불어 WTO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은 그해 12월 확정된 중국의 가입이었다. 중국은 1978년만 해도 세계 무역 거래액의 1%를 차지하는 데 불과한 후진국이었다. 당시 세계 32위 수준인 이 수치는 중국의 덩치를 감안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 중국이 개혁 개방을 표방하고 오랜 세월 WTO의 문을 두드린 끝에 21세기 초 마침내 자유 무역의 '로도스'에 발을 디딘 것이다.

중국의 WTO 가입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이 변화하는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미국 주도의 자유 무역 질서 속에서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는 무장 해제될 것이고, 일당 독재와 계획 경제는 무너질 것이며, 중국 경제는 초국적 자본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예상은 일부 들어맞았다. 중국은 WTO 기준에 맞게 자국 시장을 개방했고, 세계 각국의 자본은 중국을 헤집고 들어가 극단적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를 그곳에 심어 놓았다. 그러나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는 아직도 건재하고, 초국적 자본의 놀이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과 달리 중국 경제는 일취월장하며 세계의 중심을 향해 거칠 것 없이 달려가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무역 규모와 GDP는 세계 1, 2위로 성장해 미국과 함께 G2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중국의 가입으로 WTO는 애초의 예상과 다른 경로에 들어섰다. 미국의 일방적인 주도 아래 움직일 것 같던 WTO가 미국 등 선진국 그룹과 중국 등 개발도상국 그룹이 힘을 겨루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의사를 결정하는 WTO의 속성상 개발도상국이 버티기를 하면 합의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9.11 이후 서슬 퍼런 미국의 위세를 등에 업고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던 도하 개발 어젠다는 시한이던 2005년을 가볍게 넘기더니 2010년대 들어서도 오리무중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작년 12월 일부 의제에 관해서만 합의한 '발리 패키지'를 이끌어내기 전까지만 해도 WTO 무용론이 광범위하게 유포될 정도였다.

WTO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미국이 택한 전략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양자 간 FTA의 연쇄 체결이었다. 다자 간 협상인 도하 개발 어젠다에 비해 소수 당사자끼리 협상을 벌여 타결되는 FTA가 미국의 의도를 관철하기는 좀 더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8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포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할 의사를 밝힌 뒤 지금까지 그 협상을 주도해 오고 있다.

흔히 TPP는 중국을 포위하는 경제 동맹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고들 한다. 2013년 일본이 이 협상에 참여하면서 그런 성격은 더욱 강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인도 등 16개국을 묶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타결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WTO 밖에서도 미국과 중국이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중국 포위 동맹이라는 TPP에 중국이 가입을 저울질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일어나고 있다. 미국도 중국이 들어온다면 말릴 생각이 없다는 태도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껄끄럽지만 배제할 수 없는 동반자로 자리 잡아 가는 형국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등수'로만 보면 WTO 가입 이후 우리는 정체되거나 완만하게 미끄러지고 있는 반면 중국은 가파르게 상승해 왔다. 중국에 이어 2007년에는 베트남이 WTO에 들어와 이륙 엔진을 가동하고 있다. 중국이 가볍게 치고 나갔듯 곧 인구 1억을 넘길 젊은 나라 베트남이 언제 한국의 등 뒤로 바짝 따라붙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과 초국적 자본이 정한 게임의 법칙을 뒤집어야

전후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적자'로 자부해 오던 한국이 WTO 체제에서 고전하고 있는 반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이 이 체제에서 재미를 보고 있는 모습은 역설처럼 보인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해 오고 있는 요즘, 우리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들이 보여주는 고효율의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 모델을 목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도 그들의 모델을 따라가야 할까? 아니면 WTO에 가입하면서 받아들인 미국형 신자유주의 모델을 더욱 가다듬어 그들과 등수 경쟁에 박차를 가해야 할까?

지난 20년이 말해 주는 것은 중국,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 국가도 외면할 수 없을 만큼 WTO와 FTA 체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발랄한 생기를 내뿜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 경제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 체제가 강요하는 양극화와 물신주의가 폭발의 위험을 간직한 채 심화되어 가고 있다. 나는 한국이 그들에게 '한류' 말고도 해 줄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WTO 체제, 아니 자본주의 체제에 고유한 문제점을 훨씬 더 오래, 더 많이, 그리고 더 깊이 겪어 왔기 때문이다. 2003년 WTO 각료 회의가 열리던 멕시코 칸쿤에서 유명을 달리한 농민운동가 이경해가 불현듯 뇌리를 스친다.

WTO 체제는 미국이 고안했지만 지금은 그 체제 안에서 미국과 중국 등 후발 국가들이 주도권을 둘러싼 게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그 게임의 규칙은 어디까지나 미국과 초국적 자본이 정한 것이다. 이 게임의 법칙을 뒤집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지 않는 한 WTO 체제가 가져온 양극화를 극복하고 각국 대중이 인간적인 연대를 이루어 살아가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한국인이 등수 경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사고를 전환한다면 그 풍부하고도 끔찍했던 경험들을 살려 저 발랄한 아시아 각국의 상승 기운을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8.15처럼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들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필자는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역사 오디세이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2>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3>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4>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5>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6>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7> 세종은 오로지 존경 대상? 세종을 질투하라
<8> 10월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9> 하얼빈역·궁정동…한국 근현대사 관통한 두 번의 10.26
<10> 러시아혁명의 교훈, 대중을 외면하면 진보도 없다
<11> 전태일과 박정희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12> 미국이 한국 독립 낙점? 유영익의 기묘한 이승만 띄우기
<13> 개화파의 역사적 과오, 안중근이 씻어 내다
<14> 망령 되살린 수구의 '종북' 칼춤…6.29의 저주 풀어야
<15> 억압과 저항의 '선사 시대' 넘어 '민중기원'은 온다

<16> 부활하는 일제 망령…해법은 동학농민군 계승

<17> 박근혜·남재준, '푸에블로호 교훈' 잊었나

<18> 일본인들이여, 러일전쟁의 진실을 기억하라

<19> 166년 전 문서, 현대 한국의 비밀을 말하다

<20> 이것은 3.1운동이 갈구한 나라가 아니다

<21> 여성의 날, 여성 대통령 박근혜를 생각한다

<22> FTA 경제 영토 3위? 기황후가 기가 막혀

<23> 추신수 둘러싼 '가증스런 피라미드'에 대한 단상

<24> 대한민국이 한 4.3 사과, 미국은 왜 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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