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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0만 원만 준다면, 사장님께 큰절이라도…" [저임금 공단의 오늘·①] "월 40만 원 인상, 물러설 수 없는 요구"
서울남부지역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녹산노동자 '희망찾기', 반월시화공단노동자 권리찾기 모임 '월담', 성서공단 노동조합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녹산공단, 반월시화공단, 성서공단의 네 개 공단에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3717명 노동자의 임금 실태와 임금 요구안을 조사했다. 이 조사를 통해서 무려 42.9%의 공단 노동자가 저임금을 받는다는 사실과 낮은 시간당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해야 생활할 수 있는 현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노동자 요구에 근거하여 임금 인상 요구안을 마련하고 한국경영자총협회에 요구안을 전달하였다. 공단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안의 의미, 그리고 왜 공단 노동자들이 저임금일 수밖에 없는지, 대안은 무엇인지를 함께 이야기하고자 <프레시안>과 함께 5회에 걸쳐 기획 연재를 진행한다. <편집자>

"잔업을 줄여요? 절대 안 되죠. 먹고 살아야 하는데…."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짜리 두 아들을 두고 있는 김주길(가명·46) 씨는 하루 꼬박 10시간씩을 일한다. 화력 발전소 등에 들어가는 단조 밸브를 만드는 부산 녹산공단 내 한 공장이 그의 일터. 주말에도 8시간가량 특근을 하는 김 씨의 한 주 노동 시간은 60시간에 가깝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지만 그는 "10시간이 아니라 24시간이라도 시켜만 준다면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들 키우는 것, 경조사 챙기는 것 등 사는 게 전부 돈과의 전쟁"이고 "기본 시급이 적어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해야 한다는 게" 그가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는 이유다.

밸브 제조 경력만 9년 차인 김 씨의 시급은 6000원. 시간 외 수당과 명절, 여름휴가 때에 맞추어 나오는 상여금을 제외하곤 다른 수당은 전혀 없다. 잔업·특근이 사라지면 그가 손에 쥐게 될 돈은 월 120만 원대에 불과하다. "노후 대책은 그저 희망 사항"이고 "근로시간 단축은 남의 일"일 뿐이라고 김 씨는 말한다.

근로시간 단축? 저임금 노동자들에겐 "남의 일"

해외 여러 나라와 비교해 한국의 근로시간은 압도적으로 길다. 2012년 기준 한국 노동자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0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705시간보다 387시간이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국회와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최근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정작 장시간 노동의 상징 지역과도 같은 주요 공단의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포기할 수가 없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주요한 한 가지 논의를 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름 아닌 '저임금 문제'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부산 녹산공단, 경기도 반월·시화 공단, 대구 성서공단에서 진행된 3717명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2.9%가 시급이 6524원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6524원은 2013년 8월 기준 전체 노동자 임금의 중윗값의 3분의 2선으로, OECD는 이 선 아래의 급여를 받는 노동자를 '저임금 노동자'로 규정한다.

실태조사를 진행한 서울남부지역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녹산노동자 '희망찾기',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권리찾기 모임 '월담', 성서공단 노동조합 등은 지난달 18일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시간당 임금이 낮은 노동자일수록 주당 노동시간이 길었다"고 분석했다.

▲ 부산 강서구 녹산공단. ⓒ연합뉴스

치료비로 쓸 퇴직금 필요해 자진 '실업'하기도

임금은 한 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당연한 명제이지만 자주 잊는 명제이기도 하다. 급여 수준은 한 사람의 수면 시간과 여가 길이를 결정하고, 친구·가족 관계와 건강 수준을 결정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녹산공단 내 한 환풍기 제조 공장에서 일하다 지난해 '자진 해고'를 감행한 박제현(가명․55) 씨의 사례다.

박 씨는 젊어서 용접 일을 배워 B산업사에서만 10년 넘게 일했다. 반장을 달 정도로 긴 세월 회사에 헌신한 그는 지난해 "병원 치료를 위한 목돈이 필요해"서 일을 그만뒀다.

박 씨는 "예전에 일을 하다 한번 다친 머리가 갈수록 심해져 결국 신경과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며 "월 170만 원 벌이로는 월세 내고 세끼 먹고 나면 저축을 전혀 할 수 없었다. 당시 목돈이라곤 퇴직금밖에 가진 게 없었다"고 했다.

이처럼 돈이 필요해 일자리를 잃은 박 씨는 급한 치료를 마치고 지난해 새 일자리를 구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잔업을 하지 않으면 월 140만 원 벌이라, 8시간을 일하고 또 3시간씩을 더 일한다. 그는 "이제는 몸살이 나도 그냥 견디고, 머리나 허리가 아파도 약만 사 먹고 그냥 버틴다. 병원은 더는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월 40만 원 인상, 물러설 수 없는 요구"

'저임금 노동자' 장 씨와 김 씨는 '얼마큼 벌면 만족하겠나'는 질문에 짜 맞춘 듯 "200만 원"이라고 말했다. 그리 큰 금액의 돈이 아닌데도 김 씨는 '200만 원'을 입에 올리며 '꿈 같은 얘기'라고 말한다. "사장님이 그 정도만 맞춰준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큰절을 올리고 살겠어요. 어떤 고통을 준다고 해도 감수할 겁니다."

앞서 소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달 벌이가 160~170만 원을 밑도는 두 사람이 '200만 원'을 얘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 조사에 응답했던 시급 6524원(월평균 고정급 106만3000원) 미만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밝힌 임금 인상 요구액은 평균 월 41만4000원으로 계산됐다.

따라서 저임금 노동자가 희망하는 고정급여 수준은 147만7000원인 셈이다. 여기에 지금 하는 것과 같은 잔업·특근이 붙으면 월 200만 원가량이 맞춰진다. 실태조사를 진행한 단체들은 "2013년 기준 법원이 산정한 최저 생계비가 146만1347원이었다"며 "공단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최소 수준의 생계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2월, 올해 적정 임금 인상률로 2.3% 이내를 제시했다. 시급 6524원을 받으며 노동자들로서는 기본급이 3~4만 원가량 인상되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미래 등 4개 단체는 "경총은 최저임금이나 통상임금 등 임금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있을 때마다 '임금이 오르면 중소·영세 기업이 어려워지고 임금이 낮아야 고용이 증가한다는 같은 말을 반복해 왔다"며 "그러나 저임금 노동자가 밀집한 공단은 갈수록 영세화하고 있고 고용 증가율도 높지 않다. 월 40만 원 인상 요구는 경제 위기 이후 지난 6년간 억제된 실질 임금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려는 물러설 수 없는 요구"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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