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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만 배운 경찰이 글 모르는 할매를 욕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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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만 배운 경찰이 글 모르는 할매를 욕보인다" [밀양을 만나다] "어딘가에 전적으로 의존한 삶은 빛날 수 없다"
나는 듣는다. 이상하다. 책이라면 눈을 들어 읽어야 하는데 책이 말을 한다. <밀양을 살다>는 말하는 책이다. 그래서 나는 귀를 기울여 듣는다. 그런데 듣는 중간 중간 비명소리나 신음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들을수록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이 보이고 산이 보이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보이는 책이다. 한겨울에 발가벗고 맨발로 다니는 굶주린 아이들이 보이고, 아궁이 앞에 불쏘시개를 쥐고 앉아 꾸벅꾸벅 조는 앳된 아낙이 보이고, 캄캄한 밤길에 짐이 많아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지게만 걸어가는 게 보이고, 물웅덩이 앞에 서서 치마를 뒤집어 쓴 엄마에게 무섭다 말하는 아이가 보인다.

이제 나는 거기 있다. 할매가 울면 나도 울고 죽은 아들이 울면 또 운다. 여기서는 눈물이 없는 편이다. 눈물이 슬픔을 감당하기엔 너무 빨리 마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기에 속해 있지 않고, 거기에 속해 있고 싶다고 진심으로 바랬다. '나도 갈란다 나도 갈란다.'
빼앗긴 국가에서 서럽게 나고 자란 할매 할배들은 이제 되찾았다는 국가에서 그 고단했던 근현대사를 다 견디고도 이제까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비열한 국가폭력에 9년째 시달리고 있다. 이것이 밀양 송전탑 문제다.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기술이 원자력이라고 개발자들 스스로가 이미 고백하지 않았던가.

이윤을 전제로 한 이해관계에 얽혀 이른바 마피아로 비유되는 핵산업 토건족 무리와 이제 그 역할을 완전히 망각한 국가 공권력이라는 무지막지한 폭력은 그 존재적 근본토대인 자국민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짓인가.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는 빠르게 글을 배웠다. 글만 배웠다. 글만 배운 경찰들이 글 모르는 할매 할배들을 잔혹하게 욕보인다. 죽은 글은 난폭한 명령이 된다. 글을 죽이면 명령의 도구가 된다는 걸 저들은 알고 있었다. 사실 그들이 배운 것은 일종의 교묘한 기호였다. 그러나 할매 할배들은 살아있는 글이 담아야 할 온전한 지혜를 다 알고 있었다. 다만 몰라도 될 기호를 몰랐을 뿐.

글 없이도 지혜로 살아온 할매 할배들은 밀양의 골짜기를 말로 울리고 이야기로 보듬어 이제껏 조상대대로 살아 온 삶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며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마땅히 그래야 할 도리를 다해 왔다. 그러나 삶을 제대로 이해할리 없는 어리석고 난폭한 무리들은 언제나 야비함과 무력으로 우리를 짓밟아 왔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힘과 폭력 외에는 마음 둘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몇몇 주민의 문제가 아니다. 저들이나 우리 모두에게 절박한 상항이고 현실이다. 외면하지 말자. 저들은 모른 체해도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지 않는가. 하루하루가 잔인한 시간이다. 전쟁 같은 시기다.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 도곡마을 할매의 말이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고 가슴으로 보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전기도 아니고 원전도 아니고 삶이다.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는 곧 전체 사회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을 지난 세월 우리는 무수히 보고 들었다. 전기가 우리 삶을 지배한 건 고작 50년 정도다. 수천 년의 아름다운 지혜의 삶은 전기 없이도 이어져 왔고 결국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이제 우리는 다채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때다. 어딘가에 전적으로 의존한 삶은 빛날 수 없다.

별빛이 아름다운 걸 모르는 삶이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별이 빛나려면 밤이 필요하고 평밭 마을의 밤은 깊었다. 밤은 침묵의 소리로 오고 고요한 향기로 오고 은은한 별빛으로 온다. 우리의 삶도 향기롭고 고요해야 되지 않겠는가. <밀양을 살다> 듣고 보는 동안 나는 그랬다.

▲ 지난해 말, 촛불 문화제에서 합창단 주민들이 흥겹게 노래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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