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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찍는 사진가, 왜 마을을 '짓는' 사진가로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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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산을 찍는 사진가, 왜 마을을 '짓는' 사진가로 변했을까 [마을주의자] <10> 남원 중기마을 마을사진가 강병규
마을이 많이 변했다. 발전하고 진화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바로 지리산 바람이 느껴진다. 전혀 예상치 않은 풍경과 마주친 것이다. 오르는 골짜기 길섶마다 정갈하고 소박하게 새로 지은 농가가 연이어 들어섰다. 좀 더 과장하자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수년 전 이 마을을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집은 고작 두서너 채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로 둥지를 튼 집의 주인은. 식구는 안 봐도 알 수 있다. 필시 지리산 자락을 찾아 깃든 귀농인일 것이다. 새로운 인생과 사회를 찾아 길을 나선 '사회적 이민자'들 일 것이다. 어느 마을이든지, 새로운 사람과 새 집은 그 마을의 발전척도라 믿는다. 지속가능성의 약속이라 믿는다. 진화와 진보의 분명한 확증이다.

내친걸음으로 갤러리 대문을 들어서자 놀라움과 반가움이 더 해진다. 갓난아기가 눈에 들어온다. 전에는 중년의 독신 아들과 어머니, 그리고 호신용 개가 전부였다. 이제 더 이상 외롭고 한적한 산골 오두막의 모습이 아니다.

비로소 사람 사는 집이 되었다. 갓난아기를 등에 업은 할머니가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하고 양지바른 마당에서 쉬고 있다. 아직 도시물이 빠지지 않은 젊은 아낙이 분주히 부엌을 들락거리고 있다. 아이의 엄마이자 할머니의 며느리일 것이다. 마침내 새 사람이 들어오고 또 새 생명이 태어남으로써 생명이 없던 황토건축물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사진이 주인이던 갤러리는 사진을 감상하는 정적인 공간에서 역동적인 생활 공간으로 바뀐듯하다. 사람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전후 사정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주인장에게 일부러 물었다. 약간 쑥스러운 듯하지만 행복감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바로 대답이 돌아온다. 약간 들떠서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갤러리 구경하러 온 처녀를 자빠뜨려 주저 앉혔어요. 딸아이도 바로 낳았고. 이제 돌이에요. 아무래도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죠. 보시다시피 손녀를 종일 거의 끼고 사시네요."

▲중기마을 길섶갤러리 가는 길. ⓒ정기석

귀농인이 지리산 자락 길섶에 일군 사진갤러리

남원 인월읍을 지나쳐 뱀사골을 향해 가다 산내면에 접어들면 지리산 둘레길을 만난다. 매동마을 쯤에서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무심코 걷다 보면 중기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들판의 빈집 같은 실상사를 건너 내려다보며 마을의 여린 살 속으로 1km 정도 더듬어 오르다 보면, 느닷없이, 또는 뜬금없이 낯선 갤러리와 맞닥뜨린다.

산골마을에 갤러리라니. 지리산 자락 외진 산골마을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세련된 구조물이자 공간이다. 이름하여 ‘길섶갤러리’다. 이름처럼 나서거나 드러내지 않으려는 자세로 산자락에 가만히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지리산이나 둘레길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피해갈 수 없는 명소가 되었다. 공지영 작가의 ‘지리산 행복학교’에도 등장할 정도로.

갤러리 관장은 지리산 사진작가로 잘 알려진 강병규 씨(50). 귀농인이다. 서울에서 다우기술, 현대해상화재 등에서 IT전문가로 일했다. 회사나 업계에서는 전문가로서 능력도 인정받았고 먹고 살만 했다. 이른바 안정적인 대도시의 전문직 급여노동자였다. 하만 강 씨는 사는 곳에, 일하는 곳에 좀처럼 정이 들지 않았다. 정을 줄 수 없었다. 자연과 자유가 그리웠다. 대신 강 씨는 산과 사진에 정을 주었다. 주말이면 도시를 벗어나 카메라를 둘러메고 지리산을 찾았다.

▲마을사진사 강병규. ⓒ정기석
"좋은 풍광과 장면을 찾아 지리산 골골을 헤맸지요. 아마 사람보다는 자연이 더 그리웠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지리산에 정이 든 정도가 아니라 시나브로 지리산에 미쳐갈 정도가 되었죠. 그러다 결국 짐을 쌌어요. 도시에서 잘 못 산 것도 아니고 누가 밀어낸 것도 아닌데, 이를테면 ‘자발적 유배’를 떠난 셈이죠. 밥벌이의 고역에 짓눌린 도시 직장의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그런 피로감, 무력감이 견디기 어려웠어요. 이미 사전에 작심하고 중기마을에 1만5000여 평 임야부터 사 둔 상태였고요. 나름대로는 배수의 진을 친 셈이죠. 그때가 2005년 겨울이었으니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마흔에 내려왔으니 이제 쉰이 다 됐고. 돌이켜보면 1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일을 했어요."

지리산에 내려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을 짓는 일이었다. 남의 손은 빌리고 싶지 않았다. 자립하고 자급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사는 뻐꾸기 같은 삶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흙집 학교와 현장을 쫓아다니며 기술을 배웠다. 그러자, 엔지니어 출신답게 뚝딱 흙집을 설계하고 건축했다. 본채, 갤러리, 황토방 펜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목천공법으로 집을 지었다.

그리고 2009년에 길섶갤러리 문을 열었다. 이제 한해에 1만 명이 넘는 손님이 다녀갈 정도가 되었다. 연 갤러리에는 강 씨가 그동안 지리산 자락을 헤매며 카메라에 새긴 장엄하고 미려한 지리산 사진이 걸려있다. 누구나 관람할 수 있고, 누구나 차 한 잔쯤은 거저 얻어먹을 수 있다. 작품도 사 갈 수 있다. 하룻밤 자고 갈 요량이면 누구나 황토집에서 민박을 할 수도 있다. 입장료나 숙박비는 따로 정해놓지 않았다. 대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후원금'을 놓고 간다면 굳이 사양하지는 않는다.

구절초 향기와 사람냄새가 흐드러진 마을공동체의 꿈

▲갤러리 외부. ⓒ정기석

그러나 강 씨는 갤러리 주인장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홀어머니의 아들, 한 아이의 아비, 한 아낙의 지아비 역할에 그치지 않으려 한다. 산을 찍는 지리산 사진가로 만족하지 않는다. 지리산에서 꾸는 꿈은 정작 따로 있다. 바로 중기마을 원주민들, 그리고 골짜기마다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한 귀농인과 마을공동체사업을 벌였으면 한다.

구체적으로 뒷산에 ‘구절초 문화체험농장’을 가꾸는 꿈은 벌써 행동에 들어갔다. 없는 살림에 호주머니도 털어 구절초 축제도 몇 번 열었다. 나아가 구절초를 테마이자 자원으로 삼아 마을사람들과 더불어 문화적이고, 향토적인 마을기업을 꾸렸으면 한다.

"누추하지만 갤러리와 중기마을을 찾는 도시민들이 구절초 향기와 구절초차로 위안을 얻었으면 해요. 그 대가로 중기마을 원주민들은 구절초차를 만들어 팔아 돈도 벌면 좋겠고요. 조금이라도 가난한 농가생활에 보탬이 되었으면 해요. 그게 중기마을에 스며들어와 얹혀사는 사진가로서 최소한 도리이자 책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로서도 마을에 들어와 마을주민으로 사는 기쁨이고 보람이 될 테고요."

그렇게 강 씨는 중기마을 사람이 되고 길섶갤러리는 중기마을의 값진 문화자산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크다. 어차피 지리산이 도피처도 아니고 갤러리가 유유자적한 쉼터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강 씨와 그 가족에게는 지리산이, 중기마을이 곧 영혼의 정착지이고 일터이고 삶의 터전이다.

▲갤러리 내부. ⓒ정기석

마을의 미래를 찍는 '마을사진가'로 변신하고 싶어

그래도 강 씨의 직분은, 정체성은 엄연히 사진가다. 그동안 천왕봉, 제석봉, 촛대봉, 영신봉, 명선봉, 반야봉까지의 모습을 앵글에 담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앞으로도 성삼재, 만복대, 정령치, 바래봉 등이 그의 앵글을 기다리고 있다. 2012년 지리산 둘레길의 완전 개통을 기념해 '행복한 걷기여행 지리산 둘레길' 책도 냈다.

지리산 둘레길 22개 전 구간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소개하는 이 책에는 강 씨가 찍은 지리산 자락의 올망졸망한 산골 마을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미 사진 작품집 ‘지리산’을 냈던 강 씨는 이번에는 산보다 마을에 더 힘을 주어 사진을 찍었다. 마을 사진마다 지리산이 품고 있던 역사, 문화, 인간의 이야기가 두런두런 들리는듯하다.

"2년 전부터 10월에 구절초 축제를 마을잔치처럼 소박하게 열고 있어요. 산골에서 혼자 하려니 힘든 점이 많아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되는 사업도 있다고 하던데 아직 제 차례는 아닌가 봐요. 돈도 돈이지만, 사람이 좀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원주민과 귀농인 사이의 이질감, 갈등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가 안타까웠죠. 자연경관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중기마을만의 축제를 주민, 여행객들과 더 많이 함께 나눌 수 있으면 더 행복할 텐데. 나아가 구절초 축제가 지리산 둘레길 대표적인 상생 아이콘이 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강 씨는 이제 산내면 슬로시티 사업 등 마을공동체사업에도 적극 나서려고 한다. 서류가 오가고, 돈이 오가는 그런 관제 '마을 만들기' 사업판이 여전히 좀 불편하기는 하다. 하지만 마을공동체의 꿈에 다가가려면 부정만 할 수 없는 하나의 도구이자 방식이라는 생각을 좀 하기로 했다. 물론 그 일이 강 씨의 살림살이나 이름값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책에서 저자 강 씨는 이렇게 소개되고 있다. “자신이 소망하는 삶을 살기 위해 도시의 삶을 버리고 지리산 자락에 새로운 삶의 둥지를 튼 조금은 바보스러운 사람.” 아주 적절한 저자 소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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