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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좋은 거'라는 쓸쓸한 말은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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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좋은 거'라는 쓸쓸한 말은 하지 마! [최원호의 '美美哒 하우스'] 롤랑 마뉘엘·나디아 타그린의 <음악의 기쁨>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프랑스 파리. 라디오에서 남녀의 대화가 흘러나오고 있다.

"내가 담배 파이프에 숨을 불어넣을 때 나는 소리…타그린 씨, 담배 피워요?"
"유감스럽게도 파이프 담배는 안 피워요."
"그래도 그냥 담배는 피우죠?"
"뭐, 누가 굳이 권하면요."
"그럼 자주 피운다는 뜻이군요. 좋아요."

이 부분부터 들었다면 누아르 풍의 라디오 드라마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좋아요. 혀끝에 남은 담뱃잎을 털어내고 싶으면 어떻게 할까요?"
"푸으, 하겠죠."
"호른이나 트럼펫을 부는 사람의 입 모양이 딱 그겁니다."

▲ <음악의 기쁨 1 : 음악의 요소들>(롤랑 마뉘엘·나디아 타그린 지음, 이세진 옮김, 북노마드 펴냄). ⓒ북노마드
<음악의 기쁨>(이세진 옮김, 북노마드 펴냄)은 롤랑 마뉘엘과 나디아 타그린이 대화 형식으로 진행하고 당대의 음악인들이 매회 게스트로 참여한 라디오 방송을 엮어낸 책이다. 책의 제목이나 금관악기를 부는 입 모양을 설명하는 데서 느낄 수 있듯, <음악의 기쁨>은 음악 전문가보다는 클래식 음악에 막 관심을 가진 일반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총 네 권으로 이루어진 <음악의 기쁨> 1권의 부제는 '음악의 요소들'이다. 음악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 서양 음악의 개념과 분류 그리고 각 개념들의 근거를 확인한다. 이 분류 및 확인 작업들의 요지는 '왜'와 '어떻게'다. 이 화성은 왜 매력적인가? 왜, 어떻게 클래식 음악은 현재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는가? 마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관련 기사가 뜰 때마다 나오는 내용 같지만, 그곳에서 반 세기도 더 전에 방송되었던 라디오 프로그램 역시 그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렇게 '왜 음악은 매력적인가?'라는 질문에 대응하는 방식이 <음악의 기쁨>의 빼어난 점이다. 기존의 교양 클래식 음악서들이 수필에 가까운 음악 감상기나 인상비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음악의 기쁨>이 가진 장점은 독보적이다. 묘사와 비유로만 이루어진 인상비평만을 접한 독자들은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이 주관 이외에는 없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감상이 굳어지면 음악 감상은 소비의 경험으로만 남는다. 그냥 아, 좋구나 하고 들을 뿐, 그래서는 음악은 해석 불가능한 낭만주의적인 신비에 머무르고 만다. '내 마음을 흔드는 천재들의 위대한 미스터리.' 그러다보면 결국 '어차피 음악은 글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라거나 '내가 좋아하는 게 가장 좋은 거다'라는 쓸쓸한 결론에 이르고야 만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은 쓸쓸한 말이다. 왜 쓸쓸하냐면 질문을 던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도 더 알고 싶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는 걸로 만족할 뿐이다. 탐닉은 용기 또는 애정이 부족한 자들이 변명처럼 만들어 낸 사랑의 대체물에 불과하다.

물론 사랑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개중에는 첫인상의 신비를 굳이 이해하려들지 않고서 직관적인 호감을 유일한 원동력으로 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역마살과 손재수를 타고난 탐험가들 말이다. 그러나 대개는 뭔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대상을 더 알고 싶어지고 이해하고 싶어진다. 사랑은 자신의 세계 바깥에 존재하던 객체를 자신의 세계 속으로 포섭하려는 욕망과 그에 따른 노력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 <음악의 기쁨 2 : 베토벤까지의 음악사>(롤랑 마뉘엘·나디아 타그린 지음, 이세진 옮김, 북노마드 펴냄). ⓒ북노마드
따라서 질문은 자신이 질문을 던지는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 표현(나는 그를 내 안으로 초대하고 있다)이며, 그 결과로 떠오르는 감상이란 자신이 앞서 던졌던 질문에 대해 성의껏 구한 답으로서 도출되는 것이다. 감상은 즉흥적인 찬사와 짧은 시적 흥취만으로는 절반도 이루지 못한다.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 감상이란 찬탄에서 촉발된 기도와 응답의 체계다. 사랑의 신비는 비록 나중에 오해에 불과하다고 밝혀지더라도(또는 응답받지 못하더라도) 우선 이해하려고 시도할 때만이 비로소 그 사람 안에서 세계의 한 부분으로 기능한다.

요는, 공부를 하면 좋다는 이야기다. 공부라는 단어가 영 거슬리면 '덕질'이라고 해도 좋다.

물론 이러한 지성주의(?) 감상론이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럼 그저 즐기면서 들어서는 안 된다는 건가?" 그렇지는 않다. 그냥 마음에 드는 곡들의 세계에서 익숙한 선율들과 함께 살아가는 게 결코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선택의 여지는 있어야지 않겠는가 말이다. 반사적으로 터져 나온 찬탄과 에피소드 식의 간단한 음악사로 이루어진 클래식 교양 음악서는 이미 많다. 지금까지 나온 거의 모든 책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니 몇 권 정도는 음악을 이해하고자 시도하는, 사랑에 빠져버린 사람들을 위한 책이 있어야지 않을까.

<음악의 기쁨>이 그런 책이다. 이 책은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일반 애호가들을 위해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따라서 중학교 수준의 화성학마저 까먹은 상태로 클래식 음악의 감상 경험조차 일천하다면 약간의 악보와 수많은 작곡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 책을 읽기가 꽤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지식 없이 어떤 시스템의 체계를 이해하기란 완전히 불가능하다. '일반 독자'를 배려한답시고 난이도를 낮추다 못해 기초적인 수학 공식마저 배제한 수많은 교양 물리학 책들이 이미 그러한 실패를 많이 증명해 준 바 있다. 도구에 대한 이해 없이 어떻게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언어로 이루어지지 않은 철학 입문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면 모를까….

요는, 역시 공부를 하면 좋다는 이야기다. 분명히 감동의 폭이 커진다. "E는 엠씨스퀘어"에서 무려 제곱되는 C값의 어마어마한 숫자를 추정으로나마 연산해보는 것과 '쉽게 말해서 질량이 곧 에너지라는 뜻인데 이게 엄청난 에너지입니다'라는 설명만 들을 때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의 불안한 매력이 집요한 반음계 화음에서 온다는 점을 확인하고 온음계에 비해 반음계가 어떤 식으로 미완의 느낌을 주는지를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하고 나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교도적인 주제가 반음계적 화성을 통해 표출되는 과정을 머릿속에서 그려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작품의 주제와 선율이 반음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은 특수상대성이론 공식을 사용한 에너지 값을 바라볼 때처럼 경이롭다.

게다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한 이해는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유도동기) 개념은 물론이고 당대 작곡가들의 새로운 조성에 대한 열망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는 후기 낭만주의에서 쇤베르크에 이르는 근대 음악사의 중요한 열쇠다. 앎은 연쇄되고 세계는 확장된다.

▲ 음표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된다. 알고자만 한다면 <음악의 기쁨>은 여러 종류의 장점을 펼쳐 보여줄 것이다. 이 책이 음악에 대해 설명하듯, 이 책의 매력을 크게 구조와 표현 두 가지로 나누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구조의 매력. <음악의 기쁨>은 어지간한 대학 교양 수업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질 좋은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현재 발간된 1, 2권만 해도 그 구조가 탄탄하다. 1권 '음악의 요소들'에서는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통해 음악의 탄생과 역사를 체크하면서 시작한 뒤, 각 악기군과 화성 및 리듬이라는 음악의 기본 구성 요소들을 하나씩 일별한다. 그러고 나면 다시 각론에서 다루었던 주제들을 통합해 음악의 형식과 작곡이라는 작업에 대해 알아본다.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책의 처음과 끝이 질문과 답의 형태로 구성되고 그 사이에 들어간 각론들은 그 결론에 이르기 위한 단계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유기적인 구조다.

이어지는 2권 '베토벤까지의 음악사'에서는 1권에서 배웠던 기초적인 지식을 토대로 고전주의까지의 서양 음악사를 전개해 나간다. 이때 단순히 연대별 나열에 그쳤다면 질 좋은 커리큘럼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짜임새가 유기적이다. 예를 들어 각국의 음악적 색깔을 소개할 때, 스페인 음악에 이어 러시아 음악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두 나라의 지리적 요건과 정치경제적 상황의 유사함, 그로 인한 국민들의 기질과 그 기질에 기인하는 음악적 개성의 '따로 또 같음'을 비교해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 지역별 특색을 제시한 다음에 음악사 탐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동시대 각국 음악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읽다 보면 앞서의 선행학습이 얼마나 유용했는지를 깨닫게 되는 식이다.

그리고 표현의 매력. 앞서 언급한 좋은 짜임새의 커리큘럼도 진짜로 참고서마냥 딱딱하게 쓰여 있다면 애호가를 위한 입문서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일반 청취자'를 대상으로 만든 라디오 프로그램 대본은 보다 풍부한 인용과 유머를 사용해서 가능한 접근성을 높인다. 예를 들어 리듬을 다루는 부분에서 루바토라는 용어를 다른 음악 용어를 통해 설명하기보다는 쇼팽과 리스트라는 두 천재 라이벌이 루바토에 대해 남긴 말들을 인용하면서 직관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게다가 그 비유들은 아름답기도 하다.

"이탈리아어 '루바토'는 '훔쳐간, 잃어버린'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어느 음가 혹은 음가들의 집단에서 뭔가를 '훔치되' 박자의 길이는 그에 영향을 받지 않게끔 보상해주는 거죠. 루바토 얘기를 할 때면 반드시 쇼팽을 거론하게 되는데요, 그는 우리에게 루바토의 비밀을 이렇게 말합니다. '왼손으로 엄격하고 고집스러운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삼고 오른손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라.'"
"결국 쇼팽을 연주할 때에는 박자를 준수해야 한다는 거군요.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요."
"그렇고 말고요! 리스트는 자신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쇼팽을 높이 평가했었죠. 그는 쇼팽의 루바토를 설명하면서 인상적인 비유를 듭니다. 숲속에 산들바람이 불어와 나뭇잎들은 흔들리되 나무들은 별로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다고요."
"바로 그런 흔들림이 스윙이고요."

▲ 음악가 에릭 사티. ⓒWikimedia Commons
루바토를 스윙과 연결하고 재즈와 래그타임을 언급한 뒤에 자유 변주와 굳건한 베이스 리듬 사이의 긴장과 조화를 말하고 나면, 리듬을 다룬 열한 번째 꼭지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에릭) 사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재즈를 사랑하는 이유는 재즈는 우리에게 고통을 동반하면서 다가오고…우리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 달콤한 인생.

<음악의 기쁨>에서 멋진 문구와 기발한 비유들은 백 개 정도는 더 손쉽게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예시들로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에릭 사티의 말을 빌어 마지막으로 추천을 변주하고 싶다.

동반되는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음악을 사랑해 보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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