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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사람들, 10일 안산에서 약속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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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사람들, 10일 안산에서 약속을 만들자" [기고] 생명과 존엄에 관한 선언을 제안하며
오늘도 단원고에는 운구차가 들어온다. 학생들이 다니던 교정을 한 바퀴 돈다. 영정은 그들이 웃고 싸우고 때로는 졸음에 지겨워하던 수업시간, 치마 길이로 혼나고 벌점 때문에 속상했던 일상의 교실에서 멈춘다. 볼펜, 지우개, 교과서, 인형… 어느 아이에게는 살아서 모질기만 했을지 모를 추억조차 영정과 함께 담긴다. 자신의 자리였던 책상 위에 놓인 국화꽃을 남기고 먼저 누운 친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떠난다.

수업이 시작된 단원고 1학년과 3학년 교실에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선배와 후배들, 선생님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사는 안산에는 '세월'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2만 명이 죽은 한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2만 개 사건

일본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후쿠시마 사고를 두고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한다면 우리는 피해자의 고통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죽은 2만 개의 사건으로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권운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힘을 썼다. 송전탑에 반대하는 밀양 할매와 쌍용차에서 해고된 사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 삶이 당신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려 노력했다. '모든 사람은 존엄할 권리가 있다'는 지당한 문장이 현실에서 힘을 얻기 위해 그들이 '모든 사람'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세상에 설명해야 했다.
▲ 세월호 침몰 관련 청소년 촛불 집회에 참석한 한 학생이 세월호 관련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세월호 사건은 그러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많은 이들이 생존자와 실종자, 사망자 숫자를 온전한 한 사람의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단원고 2학년 8반과 10반은 배에 탑승했던 학생 중 단 한 명만 생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살아남은 학생과 실종되거나 사망한 학생들 얼굴을 떠올렸다. 문장에 없는 가족의 통곡과 살아남은 자들이 감내해야 할 세월이 읽혔다.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세상에 옮겨 적는 일은 힘겹다. 소박하거나 기구하거나 결국은 힘줄이 툭 끊어지거나 숨통이 막혀 버린 삶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도 앞바다에서 실시간으로 보내진 영상은 수많은 이들을 목격자로 만들었다. 많은 이들이 아픔에 동참하는 이유는 이들이 세월호 사건의 이야기 전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달자가 해야 할 일이 또 있다. 인권이 침해된 이유를 찾아야 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며 다시는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이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사후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누가 규제를 암이라 불러 사람보다 이윤을 앞세웠는지, 누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배에 수백 명 삶을 싣고 운행해도 되는 법을 만들었는지, 누가 구조할 수 있는 생명 앞에서 명령을 기다렸는지, 명령 없이 움직일 수 없게 한 자는 누구였는지, 찬바람에 맨발로 걸어가던 가족 앞을 가로막고 채증한 자는 누구였는지, 진실이 아닌 거짓을 보도하도록 통제한 자는 누구였는지… 샅샅이 밝혀야 한다. 반복되는 참사의 사슬을 끊기 위해 꼭 필요하다.

한편 중요한 것이 더 있다. 침몰한 배 안에는 잘 사는 학생, 가난한 학생, 말썽꾸러기와 모범생, 그들의 선생님이 있었다. 20대 아르바이트생이 있었고, 환갑 기념 여행을 떠난 머리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있었다. 제주에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던 가족이 있었으며, 고단한 노동에 지쳐 휴가길에 오른 이주 노동자가 있었다. 그들의 그동안 삶은 모두 달랐고 앞으로도 같지 않을 참이었다. 그들은 사는 동안 평등하지 않았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평등하게 등장했다. 존엄한 존재라는 같은 기준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토록 모질게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될, 비극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가족에게 안부 묻는 사람들에게

요즘 가족에게 안부를 자주 묻게 되었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마찬가지다. 부모님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게 되었고, 강의 중인 수업에서 출석 체크하다가 결석한 제자들에게 무슨 일 있느냐는 안부를 물었다. 바쁘다고 연락을 끊었던 친구에게는 별 탈 없는지 문자를 보냈다. 매일 보는 중학생 딸을 백 년 만에 만나는 사람처럼 깊이 안아주고 있다. 당신 모두는 내 인생 최고의 사람들임을 자꾸 말하게 되었다.

그들과 10일에 있을 '안산시민 추모 마당'에 함께 가자고 할 생각이다. 떠난 이들이 남긴 말을 살아남은 이들이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따뜻한 선의와 단단한 정의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존엄에 관한 사회적 약속을 만들자고 할 생각이다. 전쟁의 참상과 야만을 딛고 세계인들이 만들었던 '세계인권선언'처럼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가 모두 '생명과 존엄에 관한 선언'을 만들자고 제안하려 한다.

우리의 존엄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와 사회에 약속을 받아내자. 아니 약속을 만들자. 사라진 이들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미래 세대가 '생명과 존엄에 관한 선언'으로 보다 나은 삶과 고유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전달자인 우리는 사라진 이들에게 덜 미안할 수 있지 않을까. 못 견딜 만큼 괴로운 미안함에서 나는, 한 발 더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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