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내보내는 것에 더해 인적 청산 필요…KBS 유전자를 바꿔야"
격동의 10년을 보낸 심 기자가 느끼는 KBS의 오늘이 궁금했다. "아…." 심 기자는 한숨부터 토해냈다."지난 몇 년간 점점 나빠졌다.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노무현 정부 때 누렸던 것이 사실은 KBS 역사에서 예외적인 5년이었다는."
"예외적인 5년", 아픈 진실이다. 탄생부터 그러했다. 1961년 12월 KBS TV 개국은 5.16쿠데타를 합리화하려던 군사 정권의 홍보 목적과 무관치 않다. 박정희 정권 18년에 더해,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땡전 뉴스'는 KBS의 부끄러운 역사를 상징한다. 겉으로는 덜 드러났지만 이런 체질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다."우리가 정부 편향적으로 보도하는 것에 대해, 오래전부터 KBS에 몸담았던 이들은 젊은 기자들에 비해 거부감이 훨씬 덜하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낫지 않냐', 이런 의식을 가진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사실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무현 정권 이전, 그러니까 김대중 정부 때도 청와대의 개입은 당연히 있던 것이었다.
KBS의 이런 유전자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길환영 사장은 당연히 KBS에서 나가야 한다. 그게 KBS 변화의 선행조건이다. 그러나 길 사장이 나가는 것만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길환영 이후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할 때, 정말 획기적인 수준의 제도 개선 혹은 그걸 넘어서는 인적 청산을 하지 않으면 KBS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뉴스를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공영 방송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에서 멀어져가는 조직에서는 권력과 가까운 혹은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일부 구성원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커지는 법이다."민경욱(현 청와대 대변인), 박선규(이명박 정권 때 청와대 대변인) 같은 사람들이 곧바로 나가서 청와대 대변인이 되고 하는 건 (공영 방송의 기본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나. (그런데도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그걸 보면서 꿈을 키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걸 규탄하는 이들이 압도적 다수다."
KBS 기자로 산다는 것…"몸은 무거운데 높이 날아야만 하는 존재"
문제는 공영 방송다움을 지키려는 건강한 젊은 기자들이 KBS 내에서 "압도적 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 권력의 노골적 개입과 KBS 안의 못된 "유전자"가 맞물리면서 조직이 점점 망가지는 것을 보면 떠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지 않을까."인연이 닿아 이곳에 입사하게 됐는데, 나 개인의 편의나 행복을 위해 여기를 그냥 버리고 떠나도 되는 것인가 하는 책임감의 문제가 있다. 또 하나는 영향력의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여기에 수많은 방해 요소와 마크맨들이 있지만, 그걸 돌파해서 우리가 원하는 뉴스를 냈을 때 그게 갖는 무게와 파급력이 크다. 그것에 대한 미련도 있다. 그래서 아직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난 10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KBS 보도 중 심 기자의 손을 거친 것이 여럿 있다. 2010년 불방 위기를 맞았던 <추적 60분> '천안함 편'(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방영됐다), 2012년 대선 당시 십알단 특종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쉽게도 당분간은 그런 좋은 보도를 만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이번에도 문제는 심 기자가 아니라 KBS에 있다. 심 기자는 육아 휴직을 마치고 최근 복귀했다. 조직으로 돌아올 즈음, 후배 기자들은 반성문을 올렸고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KBS를 항의 방문했다. 심 기자는 요즘 길환영 사장과 청와대의 보도 개입 의혹의 진실을 파헤치는 KBS 기자협회 진상조사단에서 일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시절 KBS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KBS 새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가 만들어질 때 적극 나섰던 심 기자는 박근혜 정권 들어서도 취재와 보도에 전념하기 어려운 처지다. 이런 심 기자에게 2014년 한국에서 KBS 기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 또 한숨부터 토해냈다."그건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살아가지 않나. 직장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KBS에 다닌다고 해도 직장인이고 생활인이고 가장인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공적으로 부여된 책무가 있으니 직장인 같은 것으로서만 행동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 아닌가. 주어진 존재의 조건은 굉장히 취약한 직장인이지만 의식은 거기에 갇히면 안 되는 존재다. 그런 부분의 자기 분열 같은 것을 잘 극복하기 위해 굉장히 강한 '멘털'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KBS 기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린 위임받은 권력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그걸 잊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생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니까, 몸은 무겁고 날개는 녹기 쉬운 이카루스 같은 존재라고 할까. 몸은 무거운데 높이 날아야만 하는."
"<프레시안>, 투 트랙이 필요하다"
심 기자에게 <프레시안>은 낯선 매체가 아니다. KBS 입사 시험을 준비할 때도 <프레시안> 기사를 출력해서 읽곤 했다. 기자로 일하는 동안에도 틈틈이 <프레시안>을 봤지만 요즘은 예전만큼 손이 가지는 않는다. "휴직도 있었고 제작 거부 때문에 바빠서"이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프레시안>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프레시안>이 대규모 취재 인력을 가진 메이저 언론사와 똑같이 경쟁할 수는 없지 않나. 특화된 무언가가 필요하고 그런 면에서 투 트랙이 필요할 것 같다. 하나는 지금처럼 수준 높은 외부 필자 등에게 공론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때로는 보수적인 사람들의 글을 받아 토론을 붙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천안함 때나 황우석 사건 때처럼 속도보다는 깊이 있는 취재로 승부를 봐야 하는 때 <프레시안>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게 언론사로서 힘과 존재 의의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그런 게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지난해 조합 가입서를 내밀었을 때 심 기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가입서를 써줬다. 10년 넘게 <프레시안>을 본 심 기자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에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내 인생의 전망을 넓힐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줬으면 좋겠다. 뭐랄까, 새로운 것,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엿볼 수 있게만 해줘도 월 1만 원이 아깝지 않다."
고맙고도 참 무거운 말이다. 몸은 무거운데 높이 날아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건 KBS 내 '심인보들'만이 아니라 <프레시안>도 마찬가지다. 싸워야만 길이 열릴 것이라는 점도 다르지 않다. 건강한 기자들이 이끄는 공영 방송다운 공영 방송 KBS 그리고 독립 언론 <프레시안>, 모두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 사회의 자산이다. '심인보들'의 건투를 빈다. 벤세레모스(Vencere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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