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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로 머리 '타 버린' 특목고 학생,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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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로 머리 '타 버린' 특목고 학생, 괜찮을까? ['공부의 신'과 맞서는 법] <공부 논쟁> '한국사회 공부를 말한다' 공개 좌담
'장원급제 DNA'의 무용함, 일찌감치 공부에 소진되어버리는 모범생의 비극,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를 먹여 살린다는 신화의 '구멍', 뺑뺑이 평준화 세대의 장점, 특목고 폐지, 입시제도의 단순화…. <공부논쟁>(김대식‧김두식 지음, 창비 펴냄)은 학생과 부모와 선생 그리고 한때 학생이었던 이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주제를 과감하게 풀어놓는다. '평준화 세대'였던 두 '엘리트' 형제가 자신들이 겪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 학교에 몸담으며 보아왔던 잘못된 공부 풍토를 낱낱이 해부한다.

"입시 전문가도 아닌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 조심스러워하는 동생 김두식 교수와, 오히려 입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더 과감하고 솔직하게 밀어 붙이자는 형 김대식 교수의 유쾌한 논쟁을 읽다보면,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조차 운 좋게 입시제도의 험난한 좁은 문을 통과했기 때문에, 그 과거가 너무 지긋지긋하기 때문에 아예 관심의 스위치를 꺼버린 채 지금 아이들의 고통에 눈 감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자책감을 떨칠 수 없게 된다. 학교 뿐 아니라 가족 단위마저 '입시'를 생의 중심에 둔 채 모든 것을 조직화하게 만드는 이 어마어마한 공부 압력의 실체를, 우리는 <공부 논쟁>을 통해 다시금 재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벗어나거나, 혹은 이 무시무시한 제도를 최소한이나마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걸까? 5월 30일 저녁에 열린 공개 좌담 '한국사회 공부를 말한다'에는 <공부 논쟁> 저자인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김대식과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두식, 그리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 대표 세 사람이 패널로 참석했다.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역할은 <나라는 여자><엄마와 연애할 때>(모두 마음산책 펴냄)의 저자인 칼럼니스트 임경선이 맡았다.

<프레시안>은 <공부 논쟁> 서평 게재(
☞기사 바로 보기 : "특목고, 서울대, 해외 유학…이제 공부의 '판'을 바꾸자!")에 이어 이번 대담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편집자>

▲ 왼쪽부터 임경선, 김대식, 김두식, 송인수. ©프레시안(최형락)

임경선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신 송인수 대표님께 먼저 질문 드리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공부에서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공부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설명해 주시지요.
송인수 : 사실 우리 사회에서 공부는 종교의 반열에 올라와 있죠. 천주교, 기독교, 불교 다 합쳐도 1위가 아닌가 합니다. (웃음) 모든 종교가 공부의 신 앞에 굴복했어요. 수능 시즌이 되면 교회도 절도 모두 수능 백일기도회를 열지요.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토록 맹렬하게 갈망하는 공부의 내용을 뜯어보면, 입시 경쟁의 공부이며 결국 자기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입니다. 다시 말해 욕망의 확대를 위한, 욕망을 위한 공부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 반대 개념은 흥미를 위한 공부, 꿈이 있는 공부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욕망이 공부를 지배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우리 사회의 굉장히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하고, 오늘 <공부 논쟁> 강연이 그에 관련한 중요한 단초를 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임경선 : 욕망을 위한 공부와 흥미를 위한 공부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공부 논쟁>(김대식‧김두식 지음, 창비 펴냄). ©창비
송인수
: 제가 생각하는 욕망을 위한 공부는, 점수와 등수를 활용해서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을 통해 나의 이익에 봉사함으로써 상대적 만족을 도모하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는 그 같은 여유 있는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요.

반면 꿈이 있는 공부는 나의 적성과 재능을 활용해서 직업을 선택하고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보람과 절대적 만족을 얻는, 그러면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는 것과 관련됩니다.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공부냐, 자기 이익 팽창을 위한 공부냐, 거기 따라 공부의 방향과 의의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해요.

임경선 : 전 대학 입학 전까지는 외국에서 살아서 한국식 교육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그래서 요즘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을 키우는 게 좀 막막하게 느껴지는데요. 욕망을 위한 공부라는 연장선상에서 생각했을 때, 제가 항상 신기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떠오릅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어느 대학 나왔냐고 물어보는 게 실례인 것으로 여겨지더라고요. 대신 "나 봉천동에서, 혹은 신촌에서 하숙할 때…" 이런 식으로 표현하더라고요? (일동 웃음) 특히 서울대생은 자기 입으로 서울대 나왔다고 얘기하면 밉상이 된다고 하던데, 그런 인식 뒤에 있는 게 뭔지 궁금해요.

김두식 : 그 말씀 들으니까 생각나는데, 요즘 이해할 수 없는 문화 중 하나가 과 잠바입니다. 야구선수도 아닌데 왜 전부 과 잠바를 입고 다니는 거죠. (웃음) 서로 소속 학교를 묻진 않지만, 대신 학교 이름이 쓰인 잠바를 입고 다니는 문화라고 봐야 할까요. 하지만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을 떠올려 보니 그때는 과 잠바 대신 파일함을 바깥에 잘 보이게 들고 다녔더랬습니다. (웃음)

김대식 : 예상 밖의 질문이라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 중인데요…. (웃음) 그런 분들은 눈에 안 보이는 엄청난 기득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걸 숨겨야 합니다. 대신 완벽하게가 아니라, 남들이 조금은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흘리는 식으로 폼을 잡죠. 유학생 시절 만난 유대인 학생들 중에도 그런 유형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미국 학계에서 유대계가 가진 영향력에서 비롯된 기득권을 절대 노골적으로 내비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 부모님은 독일에서 왔다'라든가, '나 예전에 이스라엘에 잠깐 다녀왔는데 그때 키부츠에서 좀 살았어' 이런 식으로 표현해요. 그러면 자기들끼리는 무슨 뜻인지 딱 알아차립니다. 그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김두식 : 사실 제가 고려대학교를 다닐 때 형하고 그와 비슷한 얘길 나눈 적이 있어요. 형은 저한테 '네가 잘 모르는데 서울대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득권 집단이라고 하나로 묶어서 얘기할 수 없다, 절대 뭉쳐 다니지 않고 죄다 흩어져 있다'라고 하더라고요. 서울대 안에 있는 사람은 그 기득권의 세계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겁니다. 하지만 이제 본인이 아이들 교육을 시켜보고 나니까 시야가 좀 열린 것 같아요. (웃음)

임경선 : 두 분 모두 대학 사회에 몸담은 입장에서, 또 자녀를 키우시는 당사자 입장에서 공부를 각종 폐해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셨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누워서 침 뱉기'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 부담은 없으셨나요?

▲ 김두식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두식
: 지금 저희 나이에서의 교육은 결국 자식 교육 문제잖아요. 거기서 고민이 시작됐거든요. 지금 옆에 계신 송인수 선생님이 제 인생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요. 6년 전 초등학교 5학년짜리 우리 아이와 함께 천안에서 열린 송 선생님 강연을 들으러 갔는데, 사교육 절대 시키지 마라, 안 시켜도 공부 하는 애들은 고1 때부터 정신 차리고 알아서 한다, 스스로 공부 시작하는 애들이 진짜다, 그런 얘길 하시더라고요.

그 얘기에 강력한 신뢰를 품었어요. 계속 기다렸어요. (웃음) 그런데…송 선생님 페이스북을 최근에 보면 아이에 대한 절망과 비탄을 가끔 적으시더라고요. 어휴 이게 정말 자기 자식 문제가 되면 쉽지 않구나, 그렇게 자신 있어하던 송 선생님도 마찬가지구나 하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일동 폭소)

송인수 : 지금 우리 아이가 고3인데 공부를 썩 잘하지 않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라면 늘 학부모 평균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데, 우리 아이가 사교육 없이도 명문대에 갈 실력을 갖췄다면 재수 없다는 소릴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평균 혹은 그 이하의 성취를 보이는 아이의 부모 입장에서 '스트레스 받지 마라, 아이 인생은 19살에 결정되는 게 아니다, 성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아이의 재능을 귀하게 여기자'라고 발언하면, 다른 부모님들께 큰 위로가 되지요. (웃음)
우리 아이는 고2 중반쯤 되어서야 공부를 시작했어요. 고1 때까진 도박에 심취해서 심지어 원정도 나갔더라고요. (웃음) 놀 만큼 다 놀았고, 가보지 않은 길이 없을 지경이에요. 그러니까 아쉬운 게 없이 고3을 맞이했고, 지금은 공부가 재미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고3 시절을 여유 있고 행복하게 보내는 아이가 거의 없잖아요. 전 인생에 공부 총량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 아이는 그 안에서 나름대로 자기 시간을 관리하며 알아서 가고 있어요. 저도 속이 타지만, 그 속을 아이한테 말로 표현하진 않기로 했어요. 우리 아이 망가지지 않았거든요. 전 응원합니다. (일동 박수)

임경선 : 공부 총량제 하니까 <공부 논쟁>에 등장하는 과학고 출신들의 번아웃(burnout) 얘기가 떠오릅니다. 한 분야에서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은 학생이 학업 과정에서 금방 소진되는 현실이 안타까운데, 그렇다면 과학고가 없어져야 하는 건가, 순기능은 없는 건가, 그런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과학고 학생들은 대체로 부모에 의해 영재로 만들어진 아이들입니다. 영재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머리가 굳어요. 이공계에는 머리가 말랑말랑한 애들이 와야 하는데 과학고 진학을 준비하면서 이미 머리가 굳는 거예요.

과학고가 생기기 전에는 그나마 희망이 있었어요. 왜냐? 머리 굳은 애들은 의대에서 다 데리고 가주니까! 그런데 과학고 애들이 왕창 자연대와 공대에 오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어요. 현재 입시제도에서 과학고는 외고와 함께 정확히 과거의 경기고를 비롯한 명문 고등학교 역할을 하고 있어요. … 자기가 실험을 좋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계획 아래에서 명문대학에 가기 위한 이력만 쌓아가는 거예요. 구조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거죠. 이런 습관이 들면 연구를 자기 커리어를 쌓는 수단으로만 생각하게 돼요. (<공부 논쟁> 중 229~230쪽)

▲ 김대식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대식
: 매우 민감한 주제입니다. 일단 저는 평준화 세대, 다시 말해 '뺑뺑이 세대'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이기적인 이유를 들이대게 됩니다. 저보다 이전 세대들은 경기고, 서울고 출신들끼리, 저보다 이후 세대들은 과학고나 외고 등 특목고 출신들끼리 배타적인 그룹을 형성하죠. 심지어 경기고 세대와 특목고 세대들끼리도 묘하게 잘 통하고요. 그 사이에 약 10년 정도 유지된 평준화 세대, 뺑뺑이세대는 소외감 비슷한 걸 자주 느껴요.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자신이 그런 트라우마를 겪었기 때문에 과학고나 외고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이 나왔을 겁니다. 그게 30퍼센트 정도의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70퍼센트가 저의 진심일 텐데, 여기 대해선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특목고에서 학생들이 겪는 번아웃 이전에, 그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친구들 입장에서 먼저 바라보게 됩니다. 과학고에 진학하지 못한 90퍼센트 학생들이 희망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은 채 계속 연구할 수 있게, 현실적으로 희망이 분명 있는데도 지레 먼저 학력의 벽 앞에 포기하지 않게, 그렇게 시장 전체를 넓히자는 의미에서 특목고를 공격하는 총대를 매자,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실제로 존재하는 번아웃 문제를 꼽을 수 있어요. 그냥 열심히 산게 아니라 너무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머리가 다 타버리고 소진된 학생들의 미래는 왜 모른 척할까요? 실제로 해외에서도, 영재 교육을 거쳐 20대 초반에 박사 학위 받고 30대에 무대에서 사라진 과학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식으로 마켓에서 이미 검증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박사 학위를 빨리 받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다들 압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여전히, 잘못된 엘리트주의의 망령을 재생산하고 오히려 더 엑셀레이터를 밟는 광경을 많이 봤어요. 가만히 내버려두면 되는 걸 왜 그렇게 잡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로 조심하자, 페이스 조절해서 오래 가자, 같이 살자, 그런 입장입니다.

송인수 : 실태를 조사했을 떄 과학고에 들어가려는 학생의 60퍼센트는 명문대 합격이 목적이고요, 과학 자체가 좋아서 들어왔다는 학생은 9퍼센트 정도밖에 안돼요. 일단 입학하고 나면 2학년 마치고 조기졸업하는 학생들이 다수인데, 엇비슷하게 우수한 학생들 사이에서 좋은 내신 성적을 받기 어려우니 내신 학원을 따로 다녀야 하죠, 각종 유명대학교 특기자전형에선 또 각종 올림피아드 실적을 요구하니까 그 준비도 알아서 해야 합니다. 과학고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가열차게 준비했는데, 과학고에 막상 입학하고 나서도 2년 내내 계속 사교육을 받으며 달리는 겁니다. 힘들게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대학 2학년까지의 학과과정이 이미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과 겹칩니다. 똑같은 내용을 또 배우니 당연히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어요.

▲ 송인수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외고 출신 선생님들이 이런 고백을 하신 적이 있어요. 스스로가 단 한 번도 공부 못하는 또래들과 시간을 오래 보낸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이 왜 교과 과정을 이해 못하는지, 왜 따라오지 못하는지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학생을 지도하는 부분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결국 사교육 학원에 보내는 것밖에 방법이 없더라는 거죠. 교사로서의 효능과 자존감이 사라지는 겁니다. 특목고 자체가, 삶에서의 일반 능력도 키워주지 못하고 생존 능력도 키워주지 못한 채 단지 특수한 기술이랄까 목표에만 집중하는 게 목적이라면, 그 존재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임경선 : 개인적으로 <공부 논쟁>의 미덕 중 하나는 형님이신 김대식 교수님이 보수 쪽 입장, 아우 김두식 교수님이 진보 쪽 입장을 대변하면서, 양극화된 가치관 속에서의 중간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점이었습니다.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하고요. 김두식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죠. 진영에 갇히는 순간 생각의 동력을 잃는다고요.

김두식 : 사람은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한 사람 내부에도 진보와 보수라는 다양한 면이 존재하고요. 제가 근무하는 경북대학교 로스쿨에서 입시 치를 때 가끔 그런 질문이 나와요. 노무현이 더 좋냐, 박정희가 더 좋냐. 이런 질문을 왜 하냐면, 늘 같은 편하고만 모여 살다보면, 온 세상 사람이 자기 같은 줄 알고, 마음 속 안전장치 없이 막 얘기하게 되는 문제가 있어요. 지금 우리 사회 모습이 그렇지요. 진보는 진보끼리만, 보수는 보수끼리만.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렵다는 겁니다.

전 형이랑 등산을 자주 다니는데,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형이 꼭 질문해요. 통계적으로 확인된 거냐? 근거가 확실한 거냐? 그런 질문을 받으면 저도 돌아서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되죠. 같은 편끼리만 있다 보면 자멸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저는 형과의 대화를 통해 자꾸 스스로를 점검하고 더 보충하게 되더라고요.

임경선 : 김대식 교수님이 책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죠. 내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정말 나온 건지 끊임없이 질문할 필요가 있다고요. 우리는 흔히 나의 개성, 나만의 특장점, 나의 소신 등을 내세우지만, 그게 어디까지 나의 진짜 목소리인지, 어디까지 내가 나일 수 있는지 구별할 수 있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마흔 넘어서까지 그게 고민이예요.

김대식 : 솔로몬 왕이 "태양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그랬잖아요. 자기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경우가 한 80퍼센트 정도 될 거라고 봅니다. 확신범이죠. (웃음)

임경선 : 그럼 자신의 생각이 대다수의 그것과 다를지언정, 소수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발언한다는 것부터 어떤 시작일 수 있을까요?

김두식 : 제가 볼 땐, 스스로는 알 거 같아요. 자기 생각을 깊이 들여다보면, 남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 아니면 진짜 용기를 내어 하는 말인지 다 알 거라고 봅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저는 <공부 논쟁>의 첫 인상이 '재수 없음'일 거라고 봐요. (웃음) 기획 단계에서도 그 얘기 많이 나눴어요. 많은 분들이 책을 안 읽은 상태에서 제목만 봤을 때의 첫 느낌이 '재수 없음'일 거라고요. <공부 논쟁>이 많이 팔린다면, 그 재수 없음의 벽을 우리가 운 좋게 넘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웃음)

임경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쓰셨다는 게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가 타인 눈에 어떤 식으로 비춰질 수 있는지 다 알잖아요. 요즘 보면 20대들이 자기 방향성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주입받은 것 말고,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찾고 싶어 소위 멘토들의 강연도 열심히 들으면서 뭔가 여러 생각, 가치관 등을 주워요. 그러면서 더 혼란스러워지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를 많이 보고 들었지만 난 아직까지 내가 뭘 원하는지 어딜 가는지 모르겠다는 거죠.

송인수 : 자기 자신이 독립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는 성찰 자체가 큰 성취입니다. 하지만 그 성찰이 쉽지 않다는 게 우리의 문제고요. 자신의 현 위치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좀 전의 '재수 없음'에 대해서도, 자기 기반을 초월해서 객관적으로 나를 들여다보자는 기획 의도에서 이 책의 힘이 나온다고 봐요. 아이들에게도 그 성찰을 주는 게 정말 중요하지요. 그게 우리 교육과 부모의 숙제이기도 하고요.

사실 부모들부터가 자녀들의 독립적 사고에 대해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의 생각을 잘 안 따라오고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현상에 대해, 그걸 뭔가 기형적이고 병리적인 사춘기적 현상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허용하는 자세야말로 자녀의 독립적 사고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한국 사회에선 그걸 잘 용인하지 않죠. 19살에 인생이 결판난다는데 여유를 가질 틈이 어딨냐, 일단 대학에 가라, 그러고 말죠.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그때부터 취직 준비해야죠.(웃음) 그러니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몇 살이냐에 상관없이 말이죠.

▲ '희망의 우리학교' 학생과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 김태균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대표, 신난초 통합진보당 전 청소년위원장이 2012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임경선 : <공부 논쟁>을 읽으면서 제 상황과 겹쳐서 떠오르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제 딸이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는데, 벌써 일군의 엄마들이 그룹을 형성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아이들이 수업에 들어가면, 엄마들끼리 차 한 잔 마시면서 정보를 교환하기 시작해요. 저도 아주 잠깐 그 그룹에 들어가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이런 누락을 두려워해야 한다'와 '이런 누락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사이에서 갈등한 적이 있었어요.

송인수 : 대부분 부모님들은, 궁극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사회가 설정한 좋은 일자리를 잡기 위해 그런 경쟁 대열에서 누락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너무 큽니다. 삼성경제연구소, 경총에서 꼽는 '좋은 일자리'라는 건 남들보다 20퍼센트 더 잘 주는 직업이죠. 그 일자리가 한 해 창출하는 고용 인력이 2만 명입니다. 한 해 고등학교 졸업생은 60만 명이고요. 그 2만 명 안에 못 들어가면 루저가 된다는 불안감이 대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힘입니다.

태어난 존재에는 모두 생명의 뜻이 있고,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그 인생은 고귀합니다. 돈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는 엄마 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90퍼센트가 루저 취급당하는 건 부당해요. 일자리에 대한 그 기준을 버리기 시작하면 부모도 여유가 생기고, 19살에 인생이 결정된다는 인식도 바꿀 수 있어요.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그런 움직임이 아주 힘 있는 시민 실천운동으로까지 확대되진 못하는데요.

지금의 진로 교육은 결국 남하고 비교했을 때에만 잠깐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1등주의지요. 실패한 자들을 돌보지 않는 경쟁주의고요. 하지만 그에 대한 공포를 언제까지 부모가 지켜줄 수 있을까요? 아이는 부모 곁을 떠나게 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부모도 아이 곁을 떠나게 됩니다. 부모가 없이도 그 아이가 한국에서 사람대접 받으면서 살 수 있게 하려면, 부모가 정말 해줘야 하는 게 뭘까요? 사교육 경쟁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그 방법이 전부가 아니라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제 능력을 키우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경총에서 말하는 '좋은 일자리'만 있는 게 아닙니다. 혁신형 중소기업 포함해서 행정기관, 병원, 교육기관 포함해서 추천할 수 있는 일자리가 15만 개 정도 됩니다. 60명 중에서 한 15명 정도는 괜찮은 일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현재 우리는, 어차피 아이들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가능성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 가능성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도 역시 안정적인 삶에 꽂아 넣기 위해 지금부터 20년 동안 번아웃시킬 거냐, 선택해야 한다는 겁니다.

친한 학원 강사 분이 그러더라고요. '학원빨'은 딱 33살 정도까지 간다고. 시험이 있는 곳에는 학원이 도와줄 수 있는데, 대체로 기업 입사시험 정도까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 이후 승진 문제는 개인 능력이라는 거죠. 33년까지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살다가, 이후 4, 50년의 삶은 어떻게 혼자서 꾸려나가죠? 비교해보면 계산이 분명해지는 겁니다.

▲ 2010년에 황우여 의원실이 공개한 2007~2010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배출 상위 10개 고교. ⓒ황우여의원실

임경선 : 지금까지 세 분이 다양한 말씀 해주셨는데요. 아마 청중 여러분께서도 묻고 싶은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질문 받겠습니다.

관객 : 김대식 교수님께선 책에도 쓰셨다시피 꼴찌부터 일등까지의 심정을 다 아시는 분이다보니, 혹시 직접 총대를 매고 교육부 장관에 출마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진지하게 여쭙고 싶습니다.

김두식 : 음, 형은 연구도 해야 하고 학생 미래를 위해서는 그냥 학교에 계시는 편이…(웃음) 개인적으로 교육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 국어교육은, 밑줄 긋고 선생님이 불러주는 해석을 받아 적어 외우는 게 다였어요. 잘못된 교육이죠. 대신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이 읽히지 않은 책들을 직접 찾아 공부했단 말이죠.

하지만 지금 와선, 독서가 교육에 중요하다면서 교과 과정에 들어왔잖아요. 수능 시험 끝나면 그동안 쌓아놨던 공부 교재들을 죄다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독서에 대한 열의까지 같이 버리는 것 같아요. 전 교육이 이런 걸 하겠노라 시도하는 게 늘어날수록 우리의 호기심이 죽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육이 뭘 할 수 있다, 김대식이 교육부 장관 되면 뭘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버리고, 오히려 뭘 안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더 줄이는 방향으로 간다면 선생과 학생 모두 여유를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대식 : 전 아직 꿈을 버리지 않았는데요. 인사 청문회는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관객 : 회사에서 인재개발 담당하는 직원입니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과는 좀 관심이 다를 것 같은데요, 현 정부 시작하면서 그동안 30년 간 주입식 교육 받던 직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창조성을 키울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떨어졌는데요. 성인들에게도 그런 공부 방법이 따로 있을지, 어떤 의견이신지 궁금합니다.

김대식 : 사실 성인들이 뭔가 공부한다는 건 참 힘듭니다. 3, 40대면 이미 머리가 굳어버리거든요. 그런데 그것과 별도로, 저는 좀 비딱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주입식 교육이 나쁘다는 생각 자체가 주입된 거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한국은 주입식 교육, 미국은 창의적 교육, 그렇게 구분지어서 한국 교육이 나쁘다고 생각들 하시죠.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창의적이고 역동적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겁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문제가 있으니 창의성 교육을 하자라고 주장하는 게 창의성을 더 없앨 수 있어요. 왜 창의성이 없을까라고 고민하지 마시고, 우리가 창의성이 없다는 생각 자체가 주입된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임경선 : 저도 한마디 보탤게요. 예전 직장인 시절을 떠올려보면, 직원 중에 창의적인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게 마련인데, 그들 모두에게 창의성 개선을 시키려면 먼저 사원, 대리, 차장 이런 위계질서 사이의 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도록 길을 뚫어주는 게 먼저 아닐까 싶어요. 내 창의성이 나를 소수로 만들어서 조직에서 불이익 당할 수 있지 않을까, 두려움이 먼저 앞서게 마련이거든요. 그걸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다음 교육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관객 : 김두식 교수님은 <욕망해도 괜찮아>(창비 펴냄) 에서 엘리트들의 은밀하고 지질한 욕망을 잘 보여주셨는데, 그렇다면 김대식 교수님의 은밀한 욕망은 뭘까 궁금합니다.

김대식 : 아까 교육부 장관 얘기도 잠깐 나왔지만, 전 은근히 학문적인 사람입니다. (일동 웃음) 과학에 대한 첫사랑을 못 잊어요. 그걸 숨기기 위해 자꾸 다른 짓을 했는데, 왜냐하면 공부가 잘 안 됐을 때 핑계가 필요하잖아요. 내가 능력은 있지만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다 보니 공부를 못 했지,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니까요. (웃음) 제 은밀한 욕망은 그래서 아직도 물리학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관객 : 격차가 심한 사회에서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좀 공허한 논리로 빠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자리에 대해서도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실 의향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김두식 : <공부 논쟁>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라고 생각했던 게 공부가 아니라는 얘길 하고 싶었습니다. 창의성이란 게 대체 어디서 올까? 제 주변엔 문학자 친구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지금껏 이름도 몰랐던 다른 나라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머리가 트이는 경험을 했어요. 순전히 스펙 쌓기에만 집중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그 줄에서 살짝 벗어나 굉장히 많은 책을 읽으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분들도 많아요. 아름다운 변화죠. 저도 그런 친구들로부터 계속 문자 받으면서, 이 책 봤니 저 책 읽었어 하고 귀찮게 하는 문자를 받으면서, 그들과 서로 격려하며 책 읽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스펙을 쌓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아는 순간 또 새로운 삶의 방식이 열린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관객 : 공립학교 교사입니다. 과학고반을 처음 맡게 되면서 특목고에 대한 편견도 많이 사라지고, 특목고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공부 논쟁>에서 아무래도 번아웃 문제가 가장 눈에 걸리던데, 과학고에서 명문대까지 이어지는 트랙을 죽 밟고 가게 될 아이들에게 직접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김두식 : <공부 논쟁>은 과학고나 다른 특목고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난관이 놓여 있는지를 솔직히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극복해야 할 길, 주변의 잘못된 길 등을요.

김대식 : 과학고 출신인 너는 이미 번아웃됐으니까 포기해라, 이럼 책을 안 사겠지요. (웃음) 당연히 그런 건 아니고요 현실적으로도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과학고 학생들에게 번아웃을 조심하라고 먼저 주의를 주고 싶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알아서 그에 대한 창의적인 액션을 할 수 있고, 본인이 앞으로 더 크게 뻗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찾아낼 것이라고 봅니다.

임경선 : 이제 마쳐야 할 시간이 다 됐습니다. 아쉽지만 자리를 정리해야 할 것 같네요. 긴 시간 동안 한국에서의 공부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주신 세 분 선생님, 그리고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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