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회계 장부 분석에 앞서
한국GM이 특별히 영업을 잘못한 것이 아닌데 회계 장부에 엄청난 비용이 기입된 것은 2013년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록 1000억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긴 했지만, 영업 이익이 1조 원대임을 감안하면 순이익은 엄청나게 감소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쉐보레 유럽 철수는 정당한가?
먼저 저들이 사용하는 회계 용어들이 얼마나 복잡하게 꼬여 있는지 맛보기부터 해보도록 하자. 쉐보레 유럽 철수와 관련한 비용을 어떻게 회계 처리했는가에 대해서, 한국GM의 2013년 감사보고서 66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동 결정(쉐보레 유럽 철수 결정)은 당사의 서부 및 유럽 지역 17개 유럽 자회사와 해당 지역의 쉐보레 딜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이와 관련하여 당사는 당기 중 딜러 매출 할인 비용 지원, 재고자산평가손실 등 41,762백만원의 비용을 인식하였습니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유럽 지역 17개 자회사에서 발생한 비용 249,867백만원은 지분법 손실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한국말이지만 참 어렵다. 여하튼 쉐보레 유럽 철수와 관련해 한국GM 회계 장부에 총 2900억 가까이 비용으로 반영했으며, 그중 2500억가량은 지분법 손실에 반영했고 417억은 이러저러한 비용으로 처리했다는 얘기로 보인다. 하도 말이 어려워서 '인사이드 경제'도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걸 회사 측이 쉽게 설명한다고 하는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29일, 한국GM의 마크 꼬모 부사장과 미네르바 부사장이 직원들과 1시간 남짓 가진 웹챗(Web Chat)에서, 쉐보레 유럽 철수 비용이 왜 이렇게 많은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답변이 이렇게 나왔다.쉐보레 유럽 철수 관련 비용의 구성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법무적인 책임에 관한 비용으로서, 예를 들어 기존 재고의 유동화, 유럽 직원들의 퇴직 관련 비용 및 기타 운영 항목들이 있습니다. 이는 직접 비용으로서 유럽 세일즈 회사들을 소유하는 한국지엠에 손실로 장부에 기록되며, 2500여억 원의 비용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는 한국지엠에 손실로 지불하는 것이 아니며, 이는 미래 법률 소송에 대한 중재 비용입니다. 한국지엠은 소송부분을 예방하기 위해 모회사인 GM에 딜러들의 계약을 조기 만료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불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것이 GM 장부에 기록된 사실이며, 한국지엠에 발생한 비용이라고 보도된 것은 오보입니다.
독자들도 느꼈겠지만 이 답변 내용은 해석이 더 어렵다. 이 내용을 쉽게 이해하는 것은 이쯤에서 포기하기로 하자. '인사이드 경제'는 대신 이런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대체 왜 쉐보레 유럽을 철수한다는 거야? 손해가 얼마나 나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감사보고서 곳곳을 살펴보다가 '지분법 투자 기업의 요약 재무 정보' 항목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쉐보레 유럽 법인의 재무 상태를 요약해놓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쉐보레 유럽 법인은 2009년 글로벌 경제 위기를 제외하면 2012년까지 꾸준히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실제 낸 세금은 436억, 장부상 법인세는 6316억!
이번에는 법인세 비용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항목은 회계사들도 어려워하는 파트이다. 세무사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대목도 여러 가지이다. 우선 도대체 왜 이렇게 법인세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회사 측의 설명부터 들어보도록 하자.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통상임금 소송 환입에 따른 2013년 세전 이익에 대한 법인 소득세 증가, 실현 가능성 판단에 따른 이연법인세 자산 미인식으로 인한 법인세 비용, 이월세액공제 소멸 등으로 인해 유효세율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웹챗에서 회사 측이 밝힌 법인세 관련 설명)
실현가능성 판단, 이연법인세 자산 미인식, 이월세액공제…. 어이쿠, 한국말이 뭐 이렇게 어렵담? 하지만 이번에는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 보도록 하자. 우선 감사보고서에 '법인세 비용의 산출 내역' 항목을 보면서 시작해 보자.일시적 차이, 실현가능성, 이월세액공제…
우선 자주 등장하는 개념부터 살짝 짚어보고 가자. '일시적 차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업 회계와 세무 회계가 다르다는 점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기업 회계에 사용하는 회계 장부와 세무서에 제출하는 회계 장부가 서로 다르다. 이중 장부 아니냐고? 그렇다. 이게 정부 당국이 만들어놓은 회계 기법이다. 이중 장부를 허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이중 장부를 의무화해 놓은 것이다. 두 개의 회계 장부가 서로 다르다는 말은, 결국 같은 항목을 놓고서도 수치가 각각의 장부에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황당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2개의 장부에 수치가 달라지는 부분을 '일시적 차이'라고 부른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시적 차이'라는 명목으로 이중 장부 사용을 합리화해주고 있다. '이월세액공제'는 말 그대로 '세액공제의 이월'을 뜻한다.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기업들에 세금 깎아주기 경쟁을 시작한 이후, 한국 정부 역시 수많은 방식으로 세액을 공제해준다. 한국GM과 같은 완성차 업체의 경우에는 연구개발비도 상당 부분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며, 각종 투자에 대해서도 다양한 세액공제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런데 세액을 공제해 주려면 우선 내는 세금이 있어야 한다. 세금도 안 내는데 깎아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다시 말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더라도, 올해 적자가 나서 법인세를 내지 못하게 되면 세액공제도 못 받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역대 정부가 어떤 분들이던가. 기업에 세금 못 깎아줘서 안달이 나신 분들 아니던가. 이럴 경우에는 향후 5년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때 다음 해로 이월되는 세액공제를 이월세액공제라 부른다. 그럼 '실현가능성' 얘기는 뭘까? 예를 들어 이월된 세액공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향후에 세금 낼 만큼의 실적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결국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 전망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경우 '미래에 세액공제 혜택의 실현가능성이 불확실해졌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이 불확실해진 세액만큼을 미리 법인세에 반영하게 되는데, 이 경우 '실현가능성 판단에 따라 이연법인세 자산에서 차감한다'고 표현한다. 너무 어렵다고? 그럼 좀 쉽게 말해 보겠다. 앞으로 이익이 안 남을 것 같아서, 그동안 쌓아둔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그럴 경우 그 세액을 올해 낸 것처럼 회계 장부에 '미리' 기입을 한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저렇게 어렵게 하고 있다. 자, 그럼 법인세가 왜 이렇게 과다하게 책정되었는지 설명하던 회사 측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실현 가능성 판단에 따른 이연법인세 자산 미인식으로 인한 법인세 비용, 이월세액공제 소멸 등으로 인해 유효세율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아하~! 결국 대부분이 '이월세액공제' 문제로 집중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 이연법인세 자산이 어쩌고 실현가능성이 어쩌고 하는 타령의 핵심에 이월세액공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마지막 단계이다. 이월세액공제만 파고들면 한국GM의 높은 법인세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앞으로 한국에서 이윤 남기지 않겠다는 말?
만일 작년에 이월된 세액공제가 있는데 올해 추가로 세액공제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둘을 합했더니 올해 세금보다 많아졌다. 낼 세금보다 세액을 더 공제해줄 순 없는 노릇인데, 이럴 때엔 어떻게 될까? 작년에 이월된 세액공제 혜택이 먼저 적용되고, 올해 발생한 세액공제가 내년으로 다시 이월된다. 물론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5년 동안만 이월될 수 있으며, 그 안에 공제 혜택을 못 받으면 소멸되고 만다. 하지만 통상적인 기업 활동에서 이월세액공제가 소멸되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한국GM의 경우 특이하게도 2013년에만 무려 1082억의 이월세액공제가 소멸되었다고 감사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인사이드 경제'는 지난 6년간의 한국GM 감사보고서에서 '세액공제'와 관련한 금액이 어떻게 변동되었는지를 아래 표로 정리해 보았다.GM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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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발생할 비용들
한국GM은 2013년에 세전 이익 7326억을 남겼고, 적정 세율(24.2퍼센트)을 적용하면 1773억의 법인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법인세 비용으로 장부에 기록된 것은 여기에서 무려 4500억 넘게 늘어난 6316억이었다. 이 중에서 이월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본 금액이 2686억이고, 이월세액공제가 소멸된 금액이 1082억이다. 즉, 이월세액공제가 사라지거나 사라질 것으로 본 것 때문에 3700억이 넘는 법인세 비용을 장부에 기록했다. 그렇다. 한국GM의 회계 장부에서 1조 원대의 영업 이익을 내고도 당기순이익이 1000억으로 쪼그라드는 내용 모두 '미래'에 발생할 비용을 작년 회계 장부에 모조리 때려 넣었기 때문이다. 쉐보레 유럽 철수와 관련한 비용은, 실제로는 작년에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왜냐면 철수를 결정한 시점이 작년 12월 5일 이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달 사이에 철수 비용이 2900억이나 발생한다니 말이 되는 얘기인가? 실제로 쉐보레 유럽 철수는 2015년 말까지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즉, 실제 비용이 집행되는 것은 올해와 내년인데, 이 비용을 작년에 미리 회계 장부에 넣어둔 것이다. 이월세액공제가 사라지는 것 역시 '미래'의 일이다. 사실 실제 사라질지 아닐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그런데 그런 비용 2000~3000억을 미리 법인세 비용으로 인식해서 장부에 기록한 것이다. 이러는 과정에서 1조 원의 영업 이익은 1000억의 당기순이익으로 확 떨어지고 만다. 사실 2012년에 통상임금 충당금으로 6260억을 비용 처리한 것 역시, 지금 당장 지급할 돈이 아니라 "미래에 소송 결과에 따라 지급해야 할지도 모르는 돈"이었다. 그걸 '미리' 회계 장부에 기입하는 방식으로 멀쩡한 흑자 기업을 적자로 만들었다. 이 모든 기법이 기업 회계와 세무 회계에서 허용되고 있다. 한국GM처럼 미리 비용을 처리해도 무방하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러니 당연히 모든 기업은 최대한 비용을 많이 처리해서 세금을 덜 낼 수 있도록 장부를 꾸미기 마련이다. 위의 일은 단순히 한국GM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기업에서 마찬가지로 발생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인사이드 경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리해고나 임금 삭감 등 구조조정 공격이 벌어지는 거의 모든 기업에서 '회계 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 의혹들 모두 정당하다. 왜냐하면 정부 당국이 만들어놓은 회계 원칙과 기준 자체가 조작과 이중 장부, 삼중 장부 작성을 합리화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조작하지 않는 기업을 오히려 바보로 만들 정도로, 기업이 자유롭게 회계 장부의 수치를 조정·조작할 수 있도록 모든 규제를 풀어줬기 때문이다. 기업 회계에 쓰이는 장부와 세무 회계에 쓰이는 장부가 다르다는 것을 대체 일반인의 상식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미래에 발생할 비용을 올해 회계 장부에 반영해서 세금을 덜 내도록 조작하는 일이 도대체 어떤 상식에 근거한 것이냐 이 말이다. 그럼 왜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혜택을 주지 않는가? 자녀들이 몇 년 뒤에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과 교육비가 더 들어갈 테니 미리 비용으로 책정해서 세금을 덜 내도록 말이다. 부모님이 언젠가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실 테니 미리 병원비를 작년 수입에서 공제한 것으로 서류를 꾸며서 올해 연말정산에서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러다가 조만간 "미래에 외계인의 침공이 예상되므로 그에 대비한 자금 집행 예상액을 미리 비용으로 처리하자"는 얘기까지 나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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